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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이어트와 죄의식에 관한 고찰 본문

잡생각

다이어트와 죄의식에 관한 고찰

단 단 2009. 12. 24. 04:45

 

 

 

 

믿거나 말거나.

오후 4시 티타임 즈음해 야심차게 홈 베이킹을 하기 시작한 이후 살이 야금야금 빠지고 있다. 다쓰베이더와 이 기이한 현상을 놓고 진지하게 분석 및 토론을 한 결과 다음과 같은 것들을 그 원인으로 의심해 볼 수 있었다.


1. 일단 베이킹을 한 당일은 재료 준비와 고된 믹싱 작업과 사후 설거지라는 중노동에 시달려 피곤이 급격히 엄습, 먹고자 하는 의지고 뭐고 침대로 가 무조건 엎어지게 된다.


2. 준비하고 굽는 동안 들이켰던 버터와 설탕 냄새 때문에 입맛은 저만치 달아난 지 오래.


3. 숙성을 위해 하루 묵혀 두었다가 다음 날 먹으려고 꺼내 보면, 제아무리 최고급 재료만 골라 만들었다 해도 혈관 막히고 당뇨 걸릴 것 같은 죄의식에 사로잡혀 최대한 얇게 썰어 적은 양만 맛보게 된다.


4. 설탕을 반으로 줄이긴 했어도 먹고 나면 단맛이 입 안에 오래 남아 물을 자꾸 들이켜게 되고 식욕은 사라진다. 밥맛이 없으니 밥도 먹는 둥 마는 둥.

 

5. 한바탕 오븐질 할 때마다 최소한 컵케이크 12개, 또는 지름 20cm짜리 케이크 하나가 나오게 되니 다 먹어 없어질 때까지는 내내 같은 것만 먹어야 한다. 금세 물린다. 이웃에게 나눠 줄 만한 실력이 아직은 안 되므로 어떻게든 집안에서 해결해야 한다. 먹어치워 줄 아이들을 어여 풍풍 낳든지, 길 가던 무고한 영국 꼬맹이를 납치해 잔뜩 먹인 뒤 방생하든지.


6. 5번의 당연한 귀결로, 식탁 위에 늘 단것이 놓여 있으니 단것에 대한 집착이 사라진다. 밖에 나가 제과점 쇼윈도에 껌처럼 달라붙어 하염없이 껄떡대던 버릇도 사라졌다. 수퍼마켓 빵과자 코너에서도 소 닭 보듯 심드렁.

 

 

 

 

 

 

 

         

며칠 전 어느 영국 신문에서 본 흥미로운 실험에 관한 기사 한 토막 -

쵸콜렛 케이크 같은, 매혹적이지만 우리 몸에는 치명적인 고지방 고열량 음식 사진을 보고 나면 남성들과 달리 여성들은 먹고 싶다는 강한 충동을 느끼면서도 한편으론 'guilty'를 느끼게 된단다. 그리하여 이런 사진들을 본 후에는 반작용으로 드레싱이 적은 샐러드나 건전한 요리를 고르게 된다고.


많고 많은 다이어트법 중 가장 신뢰할 만한 방법으로는 이제 다음의 두 가지가 있다고 감히 말할 수 있다. 유태우 박사의 반식半食 다이어트. 그리고 홈 베이킹.

 

자, 그럼 지금부터 어제 만든 촉촉한 쵸콜렛 퍼지 케이크 사진들을 실컷 보시고 'guilty'를 원없이 느껴 보시기 바란다. 매끈하게 크림 발라 주는 스패츌라는 아직도 못 샀다. 없어도 되겠다는 생각이 들기도 한다. 빵·과자·케이크는 삐뚤빼뚤 울퉁불퉁 못생길수록 맛나 보인다고 느끼는 건 나뿐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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