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잡생각

어린이날 - 인간과 그의 새끼들에 관하여

단 단 2011. 5. 5. 13:58

 


어이구내새끼5에게 사다 준 피터 래빗 인형.

해로즈 제품으로, 바느질이 아주 꼼꼼하다.

 

 

 

우선, 한국이 아닌 영국에 있다는 점과 피곤한 몸 이끌고 나가 북적이는 곳에서 돈 펑펑 쓰며 놀려 줘야 할 새끼가 없다는 점에서 안도의 한숨을 쉰다. 

 

*   *   * 

 


싸이월드에 몸 담고 있던 시절, 내 <불가해단어목록>에 관해 이야기를 한 적이 있다. 대략 이런 단어들이었다. 

- 식욕감퇴

- 여윳돈

- 서랍용 작품

  └ 공산독재국가 같은 곳에서 작곡가나 작가들이 당국의 검열을 피해 몰래 작품을 써 놓고는 발표를 하지 않고 더 나은 세상이 도래하기를 기다리며 서랍 깊숙한 곳에 넣어둔 데서 비롯된 용어. 가령, 스탈린 치하의 쇼스타코비치라든가. 왜 이 말이 '불가해 단어'인고 하면, 발표 날짜가 코앞으로 다가온 작품 하나 써 내는 것도 허덕이는 단단으로서는 발표용 작품과 서랍용 작품을 따로 쓰고 있는 그들의 초인적인 능력에 고개를 숙이지 않을 수 없으므로.  

그런데 이런 <불가해단어>뿐 아니라 <불가해문장>내지는 <불가해표현>이란 것도 얼마든지 생각해 볼 수 있다. 머글들이 제 생일이나 어버이날 등 특별한 날만 되면 습관적으로 내뱉는 말 중에 단단이 기이히 여기는 것이 하나 있으니 바로,

 

"낳아주시고 길러주신 어버이 은혜 감사드립니다." 


'은혜'라...

흐음...

 

이 말을 곰곰 생각해보라.

이 말에는 마치 세상에 태어나 사는 일이 보람되거나 가치 있다는 뜻이 숨어 있다. 


정말 그런가? 정말 세상에 태어난 것을 감사할 정도로 인생은 살 만한가?


이런 말 하면 <이방인>의 주인공 뫼르소처럼 사회 부적격자로 낙인 찍힐지 모르겠다만, 부모님은 내 의사를 묻지도 않고 당신들 마음대로 나를 낳았으니 내게 큰 실례를 범한 것이다. 이 대목에서 권여사님, 이렇게 항변하실 터. 


"아니, 이런 괘씸한 딸년을 봤나! 내가 너(희)를 낳느라 남의 피까지 맞아 가며 응급실에서 얼마나 고생을 했는데!"  


그러게 왜 그러셨어요. 누가 낳아 달랬나? 나를 키우느라 두 분이 온갖 고초를 겪으신 건 물론 인정하지만, 왜 그러셨냐고요. 억지로 세상에 태어나져 내게 주어진 인생 살아 내느라 나도 아주 힘들다고.


그러니 다음과 같은 말에서는 첫 번째 것은 탐탁지 않으나 두 번째 것은 그럭저럭 눈감아 줄 만하다.

 

"부모님, 낳아주신 은혜(탐탁지 않다), 키워주신 은혜(이건 좀 인정해 줄 수도), 감사드립니다."  


첫 아이를 낳고 감격에 겨워하는 젊은 부부들은 곧잘 이렇게 말하기도 한다. 

 

"아이를 낳아 키워보니 비로소 부모님 심정을 이해할 수 있었고 나 자신도 진정한 어른이 된 것 같았습니다. 아이는 나를 완성하는 존재입니다." 


이보오. 

아이는 제 부모 완성시키는 일 따위나 하기 위해 태어나는 존재가 되어서는 아니 되오. 그리고, 원래부터 그 됨됨이가 훌륭했던 미혼이 결혼해서도 훌륭한 부모가 되는 거지, 아이 낳았다고 갑자기 인간이 된다는 건 납득하기 어렵소.



 



 단단 것으로 하나 더 샀어야 했다.

 



"둘만 낳아 잘 기르자"던 시절에 미개인 원시인 소리 들어가며 무려 넷이나 낳은 우리 권여사님. 고령사회가 코앞인데 결혼한 지 10년이 지났어도 애 낳을 생각도 않고 있는 단단. 두 모녀가 세대를 거듭해 국가 이익에 반하는 중범죄를 저지른 셈인데, 한마디로 우리 모녀는 한 치 앞도 못 보는 국가가 개인에게애 낳아라 말아라 한다는 것 자체가 몹시 불쾌하다. 게다가 생명이란 고귀하므로 아이를 낳아야 한다는 것도 아니고, 어느 칼럼니스트의 말마따나 기성 세대들의 "어서 태어나서 나 좀 부축해다오."가 그 목적인 작금의 애 낳기 장려 운동은 참으로 못마땅한 것이다. 


경제 타령, 돈 타령만 하지 말고 인간이 지구에 끼치는 해악에 대해서도 좀 생각해 보라. 반식 다이어트 하느라 음식을 많이 먹지도 않는 단단과 다쓰베이더는 매일매일 둘이서 쏟아내는 어마어마한 양의 쓰레기를 보고는 놀라움을 금치 못 한다. 가진 돈도 없어 과소비도 할 수 없는데 도대체 성인 둘이서 어떻게 이렇게 많은 양의 쓰레기를 배출해 낼 수 있는지 놀라울 지경, 지구가 다 걱정될 정도다. 영국은 과대포장에 관대하지도 않은 나라라 포장도 가뿐한데 말이다. 한국의 상황만 놓고 보면 애들이 많이 태어나 주는 게 좋겠지만 지구의 입장에서는 환경에 하등 도움될 게 없는 인간의 수가 적을수록 좋은 것이다. 한 아이가 자라면서 써재낀 1회용 기저귀들은 그가 죽을 때까지도 썩지 않고 쌓인다 하니 좀 거시적으로 생각해 아이를 낳지 않거나 적게 낳는 편이 지구에는 더 유익하다. 그런데도 단단은 한국의 무수한 아버님들로부터 지금까지 수차례에 걸쳐 면전에서 이런 말을 들었다고 한다.   


"요즘 젊은 것들은 이기적이라 즈덜 즐기며 살겠다고 애를 안 낳아."

 

렇군요. 선생님께서는 매우 이타적인 분이라 애덜을 낳으셨단 말씀이 되겠군요. 훌륭하십니다. 저어, 그런데, 어제 친구분들과 함께 빨대 꽂아 드신 반달곰 쓸개즙은 효과가 좀 있던가요?   


나는 이런 말을 들을 때마다 정말이지 뚫린 입이라고 아무 말이나 다 뱉어 내는 그들의 무식함과 교양 없음에 정신이 다 혼미해질 지경이다. 다쓰 부처처럼 자발적 의지로 애를 낳지 않는 집도 있지만 각고의 노력을 기울여도 애를 갖지 못하는 집이 수두룩하다. 남편이 자리 좀 잡고 난 뒤 낳겠다고 미루다가 마누라가 너무 늙어 버리는 바람에 잘 안 되는 집도 있을 터. (늦은 나이까지 공부하는 남편들이 좀 많은가 말이다.) 애 없는 집 속사정은 아무도 모르는 일이다.        

 
말이 나왔으니, 애를 낳지 않은 사람이 과연 더 이기적인가에 대해서도 한번 따져보자. 조카들, 남의 집 아이들 가릴 것 없이 아이들을 좋아하는 단단으로서는 역설적으로 내 아이가 없기 때문에 세상 모든 아이들을 사심 없이, 편견 없이 사랑할 수 있다. 부모들이야말로 이기적인 사람 되기 딱 좋지 않은가? 자기 애가 태어나면 주변의 또래 아이들은 순식간에 제 새끼가 밟고 올라서야 할 경쟁 상대로나 전락하기 일쑤다. 내 아이보다 매사 더 똘똘한 옆집 아이를 과연 마냥 예뻐할 수 있을까?   

"무슨 소리, 자기 애를 낳아 봐야 남의 집 애 귀한 줄도 아는 겁니다."

그럴듯하다. 그러나 가슴에 손을 얹고 생각해보라. 밤낮 자기 애가 "나쁜 친구"를 사귀어 이리 잘못 됐다고 푸념하는 게 또 부모들 아니었던가. 풋, 자기 애가 그 '나쁜 친구'인 건 생각도 못 하고. 하여간 항상 남의 새끼가 문제다.       
 
기독교인이라면 이렇게 반박할 수는 있겠다. 

 
"성경도 안 읽어봤소? '이 백성은 나를 위해 지었나니 내 찬송을 부르게 하려 함이라.' 하나님을 찬양하는 것이 우리 인간이 지음 받은 목적이란 말이오."  

이 대목에선 사실 좀 뒷골이 땡긴다. 나 같은 불량신도는 신의 영광은커녕 잘 있던 동료 신도도 나가떨어지게 할 판이니. 실족케 하는 자는 누구든지 물에 떠오르지도 못 하도록 연자맷돌 지워 물에 빠뜨려 버리라는 구절이 생각 나 등골이 오싹, 자다가도 벌떡 일어나는데.  
 
그런데, 
제 주변을 이토록 파괴해 놓고도 희희낙락 "하나님 찬양" 운운하기엔 너무 염치가 없지 않나. 지구상의 다른 어떤 동물도 인간만큼 파괴적이고 자멸적이지 않아 보인다. 게다가, 전도서Ecclesiastes를 읽다보면 아직 그리 늙지도 않았는데 인생과 세상을 향한 탄식이 절로 나오지 않는가 말이다.   



 

 

 

 

생일을 맞은 '어이구내새끼5'.

고모가 사준 천사 쵸콜렛 케이크 한 쪽을 애타게 기다리고 있다.

 


"이미 낳은 아이를 어쩌란 말이오?"


그래, 어쩌겠소. 

아이의 의사도 묻지 않고 둘이서 쏙닥거려 쑴풍 낳아 버렸으니 그 죗값으로 혼신의 노력을 해 아이를 양육하는 수밖에. "내가 널 얼마나 힘들게 낳아 힘들게 키웠는데." 요따구 리디큘러스한 소리 하지 말고. 효도는 해주면 고마운 거고, 안 해줘도 섭섭마귀 들 건 아니라는 거. '부모 복' 따위는 세상에 존재하지 않지만 확실히 '자식 복'이란 건 있다는 거. 그런 의미에서 우리 권여사님은 애들 넷이 큰 사고 안 치고 그럭저럭 잘 커줬으니 복 많은 마나님이라는 거.  


또 하나.

나만큼 애새끼를 쿨하게 키우는 부모는 없을 거라고 착각하는 자들의 교활함은 말로 형용할 수가 없을 지경이니, 인간이 지껄이는 거짓말 중 최고는 바로 이것이라 하지 않나.  

 

"우리 ○○이, 건강하게만 자라다오~"


          



 

애비는 행복한 아이로 키워 그 죗값을 치르도록 하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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