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loudspotter

꿈꾸는 가족 본문

잡생각

꿈꾸는 가족

단 단 2010. 8. 27. 06:59

 

 

하드디스크 정리하다가 발견한 글이 있어 다시 올려 봅니다.

아마 2006년이나 2007년에 썼던 글이 아닌가 생각합니다.

 



인간의 두뇌 작용 중 가장 신기하다고 생각하는 것이 바로 '꿈꾸기'이다. 제아무리 가방끈 긴, 첨단 분야에 몸 담고 있는 수석 과학자라 할지라도 눈곱만큼도 제어할 수 없는 게 바로 이 꿈꾸기 아닌가. 나는 조물주는 유머가 가득한 악동임에 틀림없다고 생각한다. 인간들이 콜콜 자는 사이, 각자가 가진 기억의 조각들을 취해 그것들을 허구와 적당히 버무려 초현실적인 새 이야기로 만든 다음 뇌에 도로 솔솔 뿌려 준다...  상상만 해도 킬킬 웃음이 나온다.


내 친정 식구는 다들 요란한 꿈꾸기로 유명한 사람들인데, 그런 걸 보면 아무래도 꿈도 유전적인 무언가가 있는 듯하다. 어릴 적 우리 식구들은 아침만 되면 밤새 자기가 꾼 꿈 까먹기 전에 서로 먼저 이야기하겠다고 밥상머리에서 투닥거리곤 했다. 다음은 기억 나는 우리 식구의 꿈 몇 가지.

 


돌아가신 영감님 편


하루는 우리 영감님, 권여사님께 일언반구 말도 없이 친구분들과 보신음식 드시러 몰래 나들이를 나갔다. 돈에 눈이 먼 한 농장에서 정력에 좋다는 사슴피를 '특별한' 분들께만 한정 제공한다는 말에 솔깃, 철부지 중년 남성 몇 분이 우- 하고 몰려갔던 것이었다.


따끈한 사슴 피 한 컵 들이켜고 오신 우리 영감님. 하루 종일 왠지 배가 쌀쌀 아프기도 하고 커다란 사슴 눈망울이 자꾸 떠오르는 것이 아무래도 내가 잘못했지 싶어 마음이 편치 않으셨던 모양이다.

 

아니나다를까. 권여사님의 증언에 따르면 그날 저녁 영감님이 주무시다 꿈을 꾸는데 "으흐흑, 용서하소서! 용서하소서!" 식은 땀 줄줄 흘리며 끙끙 신음 하더란다. 혹독한 벌을 받는 중인지, 지옥에 떨어지려는 찰나였는지.


괴로움에 몸부림치고 있는 남편 깨울 생각은 않고 우리 권여사님, '흥. 무언가 나 몰래 잘못한 게 있는 게야. 당해 봐라.' 하곤 밤새 모른 척. 아침에 추궁하니 풀이 죽어 순순히 다 불더라는.



다음은 도예가 둘째 오라버니의 꿈

 

아침에 일어나 세수하면서 거울을 보니 얼굴에 웬 뾰루지가 하나 솟아 있더란다. 힘껏 짰더니 아 글쎄, 얼굴이 폭삭 무너져 내리더라고. 이를 어째, 궁리하다 '아하, 석고로 거푸집 만들어 재건하면 되겠군.' 했단다. 역시 도예가.


형태를 파악하기 위해 이렇게 저렇게 제 두상을 들여다보는데 (그 순간 자아가 분리됐던 모양.)
자세히 머릿속을 보니 골이 텅 비어 있는 것 아닌가.
충격!
내가 골 비었다니!



단단의 꿈 1


하루는 권여사님 옆에서 낮잠을 자는데, 단단을 흔들어 깨우며 하시는 말씀.
권여사:  얘! 너 물에 빠졌지!
단   단:  어? 어, 엄마, 어떻게 알았어? 헉헉헉;;
권여사:  어푸어푸 거렸어.

 


단단의 꿈 2


신혼 초 한밤중.
다쓰베이더:  이봐, 단단! 일어나 봐! 무서운 꿈 꿨어?
단단:  어? 어어... 어떻게 알았어? 헉헉헉;;
다쓰베이더:  무언가를 있는 힘껏 후-후- 하고 필사적으로 계속 불어제꼈어.
단단:  어? 어엉... 장농 밑에 귀신이 숨었는데, 컨설팅 해주러 온 엑소시스트가 그 틈에 대고 숨을 힘껏 불면 도망간다길래;;

 

이런 꿈은 하도 많이 꾸어서 열거가 불가능할 정도다. 

 


단단의 꿈 3


어젯밤 꿈에 나는 다쓰베이더가 탄생하는 순간을 보았다. 참고로, 우리 집 다쓰베이더, 어머니가 병원으로 달려가실 틈도 없이 집에서 그냥 나와 버린 맏이이다. 하여간, 나보다도 더 어린 우리 어머니가 다쓰베이더를 낳는 그 역사적 현장에 나이 지긋한 동네 산파 할머니와 같이 있었는데, 곧 거사를 치를 우리 어머니 손을 꼬옥 잡아 드리고 옆에 앉아 있었더랬다.


마침내 긴 한숨과 함께 다쓰베이더가 쑤욱! 


오븐에서 갓 나온 다쓰베이더를 받아다 따뜻한 물에 말끔히 씻겨 놓고 보니 눈 초롱초롱 방실방실 그렇게 예쁠 수가 없었다. 이에 탄성이 절로 나왔다.


"아이구! 지금 모습이 고대루 다 있네!"


어찌나 좋아했던지.

그리고 나서는 예의 바른 단단, 이 말도 잊지 않고 제 시어머니께 건넸다.
"어머니! 수고 많으셨어요!"


도대체
이 꿈의 시제는 어떻게 되는 거냐.
하도 생생해 아직도 머리가 다 어질어질하다. 

 

 

 

 

 

 

 

 

저렇게 꼼짝 않고 30분을 있었다.

이보오, 지금 꿈을 꾸는 중인 게요?
London Regent Park, 2007.

 

 

 

댓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