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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모단 White Peony Tea 본문
대나무 차숟가락이 나온 걸로 봐서는 오늘은 찻잎을 본격적으로 다룰 태세렷다. [차칙 - 권여사님 기증]
<포트넘 앤 메이슨>의 가향 백차를 우려보기로 한다. 백차는 맛과 향이 매우 섬세해 서양인들은 종종 이 백차를 가져다가 향 나는 부재료를 섞어 원하는 향을 마음껏 그리기 위한 도화지로 삼기도 한다. 한여름에 마시면 좋을 차를 가을이 지나갈 무렵 마시려 들다니 뒷북도 이런 뒷북이.
자잘한 홍찻잎들만 보다가 솜털이 보송보송한 실한 잎을 보니 눈이 다 시원하구나. 찻잎이 하도 커 홍차 250g을 담는 통에 백차 100g이 담길 정도다. 백차 중에서도 심 하나와 잎 하나, 즉 일심일엽만 따서 담은 백모단이 기본 찻잎, 여기에 파란색 콘플라워와 향을 내기 위한 유칼립투스 나뭇잎이 첨가되었다.
백차는 6대 차류인 녹차, 백차, 황차, 청차, 홍차, 흑차 중에서 가장 사람 손을 덜 탄, 즉, 가공을 최소화한 순수한 형태의 찻잎을 말한다. 찻잎을 따서 그저 햇볕이나 그늘에 시들려 건조시키는 것으로 모든 공정이 끝난다. 사람 손을 덜 타긴 했지만 시들리는 과정에서 약간의 자연 발효가 일어나기 때문에, 잎을 따자 마자 살청殺靑 발효를 피하기 위해 열을 가해 산화효소를 죽이는 작업을 하는 녹차보다는 발효도가 높고 유용한 성분은 훨씬 많다 한다.
일심일엽의 백모단. 일심이엽이 백모단의 기본이라는데 이건 심의 비율이 더 높으니 더 고급인 것이다. 푸른 잎 사이에 하얗게 빛나는 심이 꼭 모란꽃 같다고 하여 이런 이름이 붙었다 한다. 잎 뒷면에도 은빛 털이 보송보송하다. 둘이 꼭 붙어있다. 사이 좋아 보이는 한 쌍이로다.
부재료인 유칼립투스 잎과 파란색 콘플라워 꽃. 유칼립투스는 향이 강하고 생강처럼 매운 기운이 있다. 백차와 마찬가지로 소염·항균 작용을 하면서 호흡기 질환과 기침에 특별한 효능을 보인다고 하니 당분간 이 차를 꾸준히 섭취하면서 기침과 식도에 생긴 염증이 나아지는지 확인을 좀 해봐야겠다. 얼그레이류의 가향차에도 종종 들어가는 저 콘플라워는 순전히 시각적 즐거움을 위한 것인지, 무언가 조금이라도 맛을 내긴 하는 건지 늘 궁금하다.
우린 찻물에서는 유칼립투스의 향이 강하게 난다. 찻잎 자체는 순하고 떫은 맛이 적어 산뜻하다. 한여름에 열을 식히고 향기 요법aroma therapy을 하기에 좋을 차다. 차통 안의 찻잎을 들여다보는 즐거움이 있다. 큰 통에 들었어도 큰 잎이 얼기설기 하니 양이 적어 금방 없어지겠다. 한 번 덜어낼 때마다 차통 안에 공간이 많이 생긴다.
한국에서는 백차가 미용에 좋다고 하여 요즘 전례없는 관심을 모으고 있다는데, 심만 갖고 만든 백호은침보다는 어린 잎이 같이 붙어있는 백모단이나, 성장한 큰 찻잎을 쓰는 '수미壽眉' 쪽이 미용에 유용한 성분이 좀더 많다고 한다. 꼭 백호은침을 고집하지 않아도 된다는 얘기다. ■
▲ 파란색 콘플라워 꽃 그림의 빈티지 찻잔. 찻물색이 맑고 곱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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