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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국음식] 윔블던 스트로베리 앤드 크림 본문
윔블던 선수권 대회Wimbledon Championships가 한창입니다. 호주 오픈, 프랑스 오픈, US 오픈과 함께 세계 4대 그랜드 슬램 테니스 대회로 꼽힙니다. 세계에서 가장 오래된 테니스 대회이기도 합니다[1877년]. 잔디 코트 위에서 하얀 옷 입은 선수들이 실력 겨루는 모습 많이들 보셨죠? 저는 4대 그랜드 슬램 대회 중 영국 대회가 가장 눈이 시원하고 보기가 좋더라고요. 강렬한 테라코타 색의 프랑스 클레이 코트도 멋있지만, 영국의 잔디 코트 경기를 보는 건 마치 야외에 피크닉 나온 것처럼 마음이 상쾌해집니다. 실제로 이것저것 바리바리 싸 들고 와서 경기장밖 잔디밭에서 대형 화면으로 경기를 보면서 피크닉을 즐기는 사람이 많아요.
윔블던 대회는 또 선수들의 복장 규정이 엄격하기로 유명하죠. 우리가 떠올리는 테니스 선수의 이미지 - 푸른 잔디 위에서 하얀 옷 입고 서브 넣는 멋진 모습이 바로 이 윔블던 대회에서 비롯되었습니다. 다른 나라 대회에서는 복장 규정이 까다롭지가 않아 선수들이 자유롭게 색상을 선택해 입을 수 있지요.
제가 영국 와서 관람 취미를 붙인 스포츠 세 개:
자동차 경주인 포뮬라 원, 스누커snooker, 테니스.
한국에서는 이렇다할 선수가 없어 관심 밖의 종목들이죠. 포뮬라 원이야 뭐 경주용 차 하나 개발하는 데 천문학적 돈이 드는 첨단 스포츠이니 그렇다 쳐도, 스누커와 테니스를 볼 때마다 느끼는 건 이들 스포츠에 참 상류층스러운 분위기가 있다는 겁니다. 경기 규칙이나 진행, 관람객들의 태도 등이 참으로 절도 있고 신사적이죠. 스누커의 경우, 선수가 마치 집사의 시중을 받아 가며 당구를 즐기는 귀족집 도련님 같다는 인상도 들고요.
스누커와 테니스 경기 관람객들은 다들 마음 속으로 선호하는 선수가 따로 있더라도 상대 선수가 멋진 경기를 펼치면 그 선수에게도 잘했다고 열심히 박수를 쳐 줍니다. 신기하죠. 축구 팬들처럼 시끄럽지가 않아요. 저는 귀를 아껴야 하기 때문에 시끄러운 소리 내는 것들을 싫어합니다. ㅋ 한국에 있을 땐 확성기로 고래고래 소리 내면서 골목골목 누비는 차장수, 신장개업 가게 앞 스피커, 확성기 선거 유세, 볼륨 콘트롤 제대로 안 된 청년 찬양 집회, 매미, 다 싫어했습니다. 영국엔 이런 것들이 없더라고요. 스포츠도 조용하게 관람할 수 있는 걸 좋아합니다. 특히, 테니스는 선수 둘이 손끝 하나 닿지 않고도 치열하게 겨룰 수 있다는 점이 매력적입니다. 아, 딸기 얘기를 해야죠.
영국인들이 윔블던 경기를 관람할 때마다 꼭 먹는 것 - 바로 딸기와 크림입니다. 경기장 앞에 저렇게 딸기를 담아 늘어놓고 손님이 달라고 할 때마다 크림을 한 국자씩 끼얹어 주죠. 윔블던 경기가 6월말에서 7월 초까지 2주에 걸쳐 진행되는데, 이때가 마침 영국 노지 딸기 제철입니다. 수퍼마켓들도 이 윔블던 경기 시작에 맞춰 딸기를 잔뜩 갖다 놓습니다. 이렇게 단 기간에 온 국민이 다같이 집중해서 먹어치우는 음식이 또 있을까 싶어요.
점도 높은 액상 크림을 끼얹어 먹기도 하지만,
대개는 묽은 'pouring cream'을 그냥 끼얹어 먹습니다. 더 산뜻하거든요. 취향에 따라 크림에 단맛을 추가할 수도 있고요. 영국인들은 쨍한 신맛의 과일을 먹을 때는 반드시 부드러운 크림을 곁들여 맛의 균형을 맞춰 줍니다. 영국엔 질 좋은 목초지가 많아 낙농업이 잘 되고 유제품의 품질이 아주 좋습니다. 이렇게 먹는 거, 얼마나 맛있는데요. 딸기와 크림 조합은 이제 지구촌 상식처럼 굳어졌죠. 1500년대 영국 튜더 시대부터 내려온 오래된 관습입니다. 그 이전 시대에도 이미 신혼 부부가 결혼식을 마친 다음 날 아침에 딸기와 크림을 먹었다는 기록들이 있고요. 최음제aphrodisiac로 여겨 행복한 성생활과 수태에 도움을 준다고 믿었답니다. 어쨌거나 딸기 농사와 낙농업이 둘 다 잘되는 국가에서만 가능한 일이었죠. 영국의 전통 디저트 중에 베리와 크림 조합이 많은 이유가 바로 이 때문입니다. 스콘에 딸기잼과 클로티드 크림을 발라 먹는 것도 다 같은 맥락이고요. 사진은 윔블던 경기 관람객이 경기장에서 딸기와 크림을 떠 먹고 있는 모습이네요. TV 중계를 보다 보면 중간중간 휴식 시간에 이거 먹고 있는 사람들이 눈에 띕니다.
다쓰 부처도 요즘 TV로 윔블던 경기 시청하면서 딸기와 크림을 열심히 먹고 있습니다. 영국 딸기는 알이 작으면서 새빨갛고 맛과 향이 아주 진해 부엌에서 딸기 포장을 뜯으면 거실에까지 딸기 향이 진동을 합니다. 야무지고 향이 진한 것이 마치 야생 딸기 같다는 느낌이 들죠. 딸기를 잘 씻어 예쁜 그릇에 담고 액상 크림을 부은 뒤 숟가락으로 딸기와 크림을 함께 떠 먹습니다. 으흠~ 이 꿈같은 맛과 향.
영국에서 사 먹어 본 품종 중에서는 소나타Sonata와 드리스콜 쥬벌리Driscoll Jubilee가 맛있었습니다. 다른 품종들도 다들 맛있었지만 엘산타Elsanta만은 절대 사면 안 됩니다. 저장성만 좋고 맛은 드럽게 없어 수퍼마켓들은 좋아하고 미식가들은 아주 싫어하는 품종입니다. 덩치만 크고 싱거워요. 영국에 계신 분들은 딸기 살 때 포장에서 품종을 잘 확인해 보고 사세요. 사진에 있는 것은 소나타입니다. 작고 단단하면서 맛과 향이 진합니다. 꼭지 바로 밑부분까지 새빨갛고 한국에서 먹던 딸기들에 비하면 단맛도 신맛도 더 많이 납니다. 미식가들과 요리사들은 다음의 것들을 추천합니다.
• 제철 초기 (6월 중순~7월 초): Darlisette, Sallybright
• 제철 중기 (6월 하순~7월 중순): Sonata
• 제철 후기 (7월): Malwina
그 외 Gariguette, Mara des Bois, Royal sovereign, Buddy, Marshmello, Albion 등.
▲ 저 마지막 세트 스코어. 둘이 정 들었겠네그려.
테니스의 또 다른 매력 - 다른 종목에 비해 남녀 선수가 거의 대등한 대접을 받는다는 점입니다. 그랜드 슬램 대회의 상금도 남녀 차별 없이 같고 언론에서 다루는 비율도 거의 같죠. 중계도 공평하게 해주고요. 월드컵은 남자들만 우글거립니다. 마초적인 스포츠 같으면서도 또 이놈의 건장한 남정네들이 골대가 가까워지면 누가 톡 건드리기만 해도 나자빠지며 나죽네 골골goal-goal댑니다. 참고로, 저는 남자 테니스 선수들 중에서는 스위스 선수인 로저 페더러와 세르비아 선수인 노박 조코비치를 응원합니다. 둘이 붙으면 페더러를 응원합니다.
아니? 영국에 있으면서 영국 선수 응원은 않고?
몰라요, 앤디 머리는 왠지 얼굴에 여유와 유머가 없어 보여 호감이 안 갑니다. 이 총각은 영국인답지 않게 밤낮 심각한 얼굴을 하고 있어요. 웃는 걸 못 봤습니다. (스콧이라 그런가?) 안달복달하지 않는 여유 있는 표정의 남자가 좋아요, 저는. 여자 선수들 경기는 누가 겨루든 상관없이 즐겁게 봅니다. 젊어 테니스 못 배워 둔 게 한이 됩니다.
▲ 경기장에 난입한 나체의 여인.
남녀가 비교적 평등한 영국에는 이렇게 여자 치한과 폐인도 많다.
윔블던 스트로베리 & 크림에 관한 이런저런 통계들
• 딸기는 대개 영국의 정원이라 불리는 켄트Kent에서 생산한 1등급 딸기를 쓴다.
• 경기가 진행되는 2주 동안 무려 28,000 kg의 딸기가 경기장에서 소비된다.
• 하루에 8615 그릇punnet의 딸기와 크림이 팔리며, 한 그릇당 최소 10개 이상의 딸기를 넣는다.
• 이를 위해 크림은 무려 7,000 리터 이상이 소비된다.
• 2012년 윔블던 경기 때는 2주 동안 모두 142,000 그릇의 딸기와 크림이 팔렸다.
• 딸기는 매일 하루 전날 수확한 것을 쓰기 때문에 매우 신선하다.
• 새벽 5시 30분에 경기장 앞에 딸기가 도착하면 바로 검사와 손질에 들어간다.
• 딸기와 크림 1인분 한 그릇의 값은 다음과 같이 변해 왔다.
1993 - £1.70
1994 - £1.70
1995 - £1.75
1996 - £1.80
1997 - £1.85
1998 - £1.85
1999 - £1.75
2000 - £1.80
2001 - £1.85
2002 - £1.95
2003 - £2.00
2004 - £2.00
2005 – £2.00
2006 - £2.00
2007 - £2.00
2008 - £2.25
2009 - £2.25
2010 - £2.50
2011 - £2.50
2012 - £2.50
2013 - £2.50
딸기 맛있게 먹는 법
• 딸기를 살 때는 얼룩지지 않고 색이 균일한 것으로, 꼭지는 최대한 밝고 생생한 초록색이 나는 것으로 고른다.
• 꼭지는 미리 떼지 말고 딸기를 다 씻고 나서 뗀다.
• 먹기 한 시간쯤 전에 냉장고에서 미리 꺼내놓아 풍미를 회복시킨 뒤 먹는다. 차가울 때 먹어야 맛있는 과일들이 있는 반면 실온일 때 더 맛있는 과일들도 있는데, 딸기는 실온일 때가 훨씬 더 맛있는 과일이다. 심지어 햇볕 잘 드는 창가에 잠깐 두었다 먹는 것도 괜찮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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