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loudspotter

[영국음식] 웨딩 케이크의 역사와 의미 본문

영국음식

[영국음식] 웨딩 케이크의 역사와 의미

단 단 2014. 6. 19. 00:00

 

 

 

영국의 다단 웨딩 케이크. 수공이 많이 들어 매우 비싸다.

케이크를 실제로 잘라 하객들에게 일일이 나누어준다.

 

 


예식장이나 호텔에서 결혼식 올리신 분, 손들어보세요~
피로연 때 하객들 앞에서 웨딩 케이크 잘랐던 분, 손들어보세요~
그때 잘랐던 웨딩 케이크, 본인이 직접 맛보고 깐깐하게 고른 분 손들어보세요~

 


영국인들의 결혼식에서는 웨딩 케이크가 매우 중요한 역할을 합니다. BBC 드라마 <셜록> 시즌 3에서 존과 메리가 웨딩 케이크 고르느라 고심하는 장면이 잠깐 지나가죠? 예비 신랑 신부가 머리를 맞대고 케이크의 전체 디자인, 단 수, 높이, 케이크 속에 들어갈 스폰지 맛 등을 카탈로그와 샘플 체크해 가며 꼼꼼히 고르죠. 영국에서는 웨딩 케이크 시장이 제법 큰 산업입니다. 우리 한국에서도 피로연 때 3단으로 올린 웨딩 케이크 자르는 시늉을 잠깐 하는 순서가 있잖아요. 저는 교회에서 결혼식을 올려 이걸 못 해봤는데, 예식장이나 호텔 결혼식에는 이 순서가 꼭 들어 있죠. 대개 아래 두 단은 모형이고 맨 위 한 단만 진짜 케이크를 쓰는데, 우리나라에선 이 한 단의 케이크조차도 신랑 신부가 고르는 일이 드뭅니다. 제대로 만든 케이크인지도 알 수가 없고, 잘라서 신랑 신부가 조금 맛보는 시늉만 하고 끝내니, 참 의미 없는 서양 흉내 내기가 아닐 수 없습니다.

 

 

 

 

 

 

 

 

 빅토리아 여왕의 장녀 결혼식에 쓰였던 웨딩 케이크. 1858년.

 


오늘날 결혼식에서 많이 보는 다단의 웨딩 케이크는 영국에서 비롯된 전통입니다. 로마 시대에도 웨딩 케이크 비슷한 것이 있어 신랑이 신부 머리 위에 놓인 빵을 한입 먹고 부러뜨려 행운을 비는 관습이 있었다는데, 신랑이 신부의 'virginal state'를 'break'하고 신부 위에 군림한다는 숨은 뜻이 담겼다고 합니다. 이건 그냥 한 덩어리의 빵이니 오늘날 우리가 보는 키 큰 웨딩 케이크와는 거리가 좀 있죠.


영국에서는 중세 때 번이나 롤, 스콘, 비스킷 등 밀가루로 구울 수 있는 것들은 모두 모아 차곡차곡 최대한 높이 쌓은 뒤 신랑 신부가 그 위로 키스를 하게 했다는 기록이 있습니다. 이 '번의 장벽'을 넘어 무사히 키스할 수 있어야 자자손손 번창한다는 재미있는 통과 의례가 있었는데, 이 높이 쌓은 번이 프랑스에 전해져 ☞ 크로캉부쉬가 되었다고 하죠.

 

어떻게 하면 신랑 신부를 더 골탕 먹일까, 어떻게 하면 번을 안 쓰러뜨리고 최대한 높이 쌓을 수 있을까 궁리하다 1660년대 들어와 드디어 지지대를 받쳐 쌓아 올리는 방식을 고안하게 됩니다.


유복하지 못한 가정에서는 과일이 든 '신부의 케이크bride's cake' 대신 고기를 채운 한 단짜리 소박한 '신부의 파이bride's pie'를 제공했다는 기록도 있습니다[17세기 중반-19세기]. 파이 속에 몰래 숨겨 놓은 유리 반지를 발견하는 처녀는 그 다음 결혼할 신부라고 믿는 재미있는 풍습이 있었다는데, 오늘날 신부가 던지는 부케와 같은 역할을 했던 모양입니다. 19세기 말까지 이 고기와 유리 반지가 든 한 단짜리 '신부의 파이'는 점차 사라지게 되고, 과일 케이크인 '신부의 케이크'만 남아 오늘날까지 전해지고 있습니다. 파이속 유리 반지는 부케를 던지는 것으로 대체되었습니다.

 

 

 

 

 

 

 

 

 St Bride's Church, Fleet Street, London.

 


높이 쌓아 정교하고 화려하게 장식한 웨딩 케이크는 1703년 영국의 어느 제과점 견습생이 고용주의 딸을 사모하여 청혼한 데서 비롯되었다고 합니다. "지금은 비록 견습생 신분이나 내 실력을 보고 나와 결혼해주십시오." 런던 플릿 스트리트에 있는 세인트 브라이즈 처치 모양을 본떠 여러 층을 올린 뒤 화려하게 장식해 실력을 뽐냈다고 하죠. 교회 이름 한번 끝내줍니다.

 

 

 

 

 

 

 

 

 하얀 웨딩 드레스를 입은 빅토리아 여왕. 1840년.

 


하얀 웨딩 드레스의 시작
하얀 웨딩 드레스를 입는 것도 영국에서 시작된 관습입니다. 흰색은 서구에서 'purity'를 상징해 왔는데, 빅토리아 여왕이 결혼식 때 흰 드레스를 입은 것을 시작으로 흰 웨딩 드레스가 관행이 되었습니다. 흰 웨딩 드레스, 웨딩 케이크, 부케 던지기, 신랑 신부를 위해 하객들이 다같이 잔 들고 건배하기, 피로연에서 신랑 신부가 하객들 앞에서 먼저 춤추기 등이 모두 영국에서 비롯되었죠.


'Breakfast' 단어의 유래
오늘날 우리들이 '아침 식사'로 알고 있는 영어 단어 'breakfast'가 영국의 결혼식에서 온 용어라는 것도 이 글 쓰면서 자료 보다가 처음 알았습니다. 결혼식 전 금식에 들어갔던 신랑 신부가 식을 올리고 나서 비로소 아침 식사를 함께 한 데서 비롯되었는데, 금식을 푼다고 해서 'break that fast'. 'Wedding Breakfast'라는 말에서 'wedding'이 빠지고 남게 된 용어라고 하네요.


로얄 아이싱
신부의 케이크라 불리던 웨딩 케이크. 그 이름대로 항상 하얀 드레스 입은 신부의 이미지를 담아 흰색이나 밝은 색으로 화사하게 만들지요. 그 때문에 쵸콜렛이 아무리 맛있어도 웨딩 케이크의 장식에는 여간해서 갈색 나는 쵸콜렛은 쓰질 않는데, 웨딩 케이크에 씌우는 하얀 아이싱icing의 유래는 이렇습니다. 냉장 시설이 없고 밀봉이 여의치 않던 옛 시절엔 미리 만들어 둔 케이크가 마르지 않도록 표면에 라드lard를 두껍게 발라 먹기 직전에 죄 긁어 내곤 했다는데, 영국에 설탕이 유입되면서 케이크 속이 달아지고 라드 대신 설탕 아이싱을 덧씌우게 되었다고 하죠.

 

빅토리아 시대 이전부터 이미 케이크를 아이싱으로 덮고는 있었으나 고도로 정제된 눈처럼 흰 고운 설탕은 당시 매우 귀한 것이어서 여염집에서는 엄두도 낼 수 없는 것이었습니다. 케이크가 하얘 보일수록 부유한 집이라는 인식이 있었지요. 화려한 설탕 공예도 귀족들에 의해 번성을 하게 되고요. 19세기에 들어오면 설탕 값이 이전 시대보다 많이 저렴해집니다. 신부의 하얀 드레스와는 상관없이 너도나도 있는 집 행세하고 한 푸느라 새하얀 아이싱이 이때 대유행을 하게 되었다니, 예나 지금이나 결혼식에는 항상 허세라는 것이 뒤따랐던 모양입니다. 제가 영국에 와서 몸에 좋을 것 하나 없는 이 하얀 설탕 반죽 따위에 '로얄 아이싱'이라 이름 붙인 걸 보고는 웃긴다 생각했는데, 다 이런 역사가 있어서 그런 것이었습니다.


'신부의 케이크'란 용어에는 결혼식의 주인공이 신부라는 의미도 담겨 있습니다. 'Bridegroom', 'bridesmaid' 같은 용어도 모두 신부를 결혼식의 중심 인물로 본 데서 비롯되었다고 합니다.

 

 

 

 

 

 

 

 

 어느 전도 유망한 부부. 실제 상황이었다고 함.
credit: ☞ Tom Hall

 


케이크 자르기
신부가 신랑의 도움을 받아 케이크를 자르는 데도 숨은 의미가 있습니다. 둘이서 어떤 일을 함께 해 나간다는 심오한 뜻이 담겨 있지요. (사실, 케이크가 너무 높고 아이싱이 너무 단단해 신부 혼자 자르기가 힘들어 신랑이 거들게 되었다는 게 정설.) 케이크 조각을 서로 먹여주는 것에는 서로 보살핀다는 의미가 담겨 있고요.


케이크 하객과 나누기
로마 시대 때는 하객들이 신부 머리 위에서 부러뜨린 빵의 부스러기를 얻으려고 난리법석을 떨었다는데, 이때 떨어지는 빵 부스러기를 먹으면 자식을 많이 낳을 수 있다는 믿음이 있어 그 난리들을 떨었다고 합니다. 하객들에게 케이크를 골고루 나눠주는 관습이 여기에서 비롯되었다고 보는 시각도 있고요. 그러니 한국에서처럼 신랑 신부가 하객들 보는 앞에서 케이크를 잘라 자기들끼리만 먹고 마는 것은 영국인들이나 미국인들 입장에서는 다소 엉뚱하거나 무례한 것으로 보일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듭니다.

 

 

 

 

 

 

 

 

 "고객님, 속은 어떤 걸로 해드릴까요?"

 


케이크의 속살이 궁금하다
영국의 웨딩 케이크에는 본래 말린 과일을 넣어 만든 묵직한 프룻 케이크가 쓰입니다. 지금은 다들 솜털처럼 가벼운 케이크를 좋아하지만 옛 시절에 가벼운 빵이나 케이크는 소비자를 기만하는 것으로, 엄벌의 대상으로 여겨졌습니다. 말린 과일도 매우 비싸 사치스런 식재료로 여겨지던 때이고요. 프룻 케이크는 영국의 전통 케이크입니다. 요즘도 예비 신랑 신부가 웨딩 케이크를 고를 때 전통식인 프룻 케이크로 할 것이냐, 좀 더 가볍고 포실포실한 현대식 뽀얀 바닐라 스폰지로 할 것이냐, 달콤쌉싸름한 쵸콜렛 스폰지로 할 것이냐, 당근 케이크 속으로 할 것이냐를 놓고 결정을 합니다. 윌리엄 왕자와 미들턴양은 자신들의 웨딩 케이크로 어떤 속을 골랐을까요? 신세대이니 쵸콜렛 스폰지로 고를 거라는 세간의 통념을 깨고 전통 프룻 케이크를 선택했습니다.

 

 

 

 

 

 

 

 

 

 


 윌리엄 왕자와 미들턴 양을 위한 로얄 웨딩 케이크. 2011년.
제과제빵의 기본 원칙 - 먹을 수 있는 물질로만 장식해야 한다.

 


로얄 웨딩 케이크
로얄 웨딩에 선보이는 웨딩 케이크는 전세계 제과인들 사이에서 화제가 되기도 합니다. 윌리엄 왕자와 미들턴 양의 결혼식 때도 영국의 내로라 하는 케이크 장인 여덟 명이 무려 5주에 걸쳐 정성껏 만들었습니다. 로얄 웨딩에 쓰일 케이크 담당자로 선정된다는 것은 실로 대단한 영광입니다. 일생일대의 기회죠. 로얄 웨딩 케이크는 영국 디자인사에 길이 회자될 중요한 기념물이거든요. 케이크 겉을 꾸민 저 설탕 꽃들이 괜히 달린 게 아녜요. 하나하나 다 의미가 있어요. 영국이 또 가드닝과 원예의 나라 아니겠습니까.

 


Rose (white) - national symbol of England
Daffodil - national symbol of Wales, new beginnings

Shamrock - national symbol of Ireland

Thistle - national symbol of Scotland

Acorns, oak leaf - strength, endurance

Myrtle - love

Ivy - wedded love, marriage

Lily of the valley - sweetness, humility

Rose (bridal) - happiness, love

Sweet William - grant me one smile (스윗 '윌리엄'이라는 꽃도 다 있네요.)

Honeysuckle - the bond of love

Apple blossom - preference, good fortune

White heather - protection, wishes will come true

Jasmine (white) - amiability

Daisy - innocence, beauty, simplicity

Orange blossom - marriage, eternal love, fruitfulness

Lavender - ardent attachment, devotion, success, and luck.

 

 

 

 

 

 

 

 

윌리엄 케이트 부부가 하객들에게 답례로 보낸 웨딩 케이크.

아, 그 아름답던 케이크가 조각조각...

 


웨딩 케이크 나누기
오늘날에는 웨딩 케이크를 대개 3단으로 구성하는데, 아래 두 단은 결혼식 피로연에 참석한 하객들을 위해 쓰거나 결혼식이 끝난 뒤 따로 답례품으로 보내주고, 맨 윗단의 작은 케이크는 잘 보관했다가 1년 뒤 첫 번째 결혼 기념일에, 혹은 첫 아이 탄생 후 세례식 때 꺼내 먹는다고 합니다. 술을 많이 넣고 아이싱으로 단단히 밀봉을 하기 때문에 가능합니다. 전통식인 프룻 케이크에만 해당합니다.


여염집 결혼식에서는 가족 중 솜씨 있는 누군가가 정성 들여 직접 웨딩 케이크를 만들어 축하해주기도 합니다. 영국에서는 이렇게 결혼식에도, 생일에도, 누군가의 은퇴식에도, 부활절에도, 크리스마스에도, 집에 손주들이 놀러 왔을 때도, 평범한 일상의 티타임에도, 항상 케이크가 준비됩니다.

 

 

 

 

 

 

 


웨딩 케이크를 이렇게 먹기 좋게 일인용 작은 케이크로 만들기도.

영국에서 아이비는 '행복한 결혼 생활'의 상징.

 

 

 

 

 

 

 

 

 단맛 나는 웨딩 케이크 외에 이렇게 진짜 '치즈 케이크'도 하객들에게 제공됨.

 

 

 

 

댓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