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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국음식] 뱅어스 앤드 매쉬 Bangers and Mash 본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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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국음식] 뱅어스 앤드 매쉬 Bangers and Mash

단 단 2014. 6. 16. 00:00

 

 

 

 

다쓰 부처가 좋아하는 '뱅어스 앤드 매쉬'를 소개합니다. 소세지와 으깬 감자를 일컫습니다. 영국인들은 소세지를 '뱅어'라 부르기도 합니다. 대개 복수형인 '뱅어스'라고 쓰는데, 평소에는 소세지라고 잘만 부르다가 이 요리를 지칭할 때면 어김없이 '뱅어'로 바꿔 부릅니다. 소세지를 왜 이렇게 부르게 되었느냐?

 

배급제를 실시하던 2차대전 당시에는 고기가 턱없이 부족해 양을 불리느라 소세지 소에 물을 많이 섞었답니다. 고기 함량이 떨어지는 이런 물 많은 소세지를 고온에 갑자기 굽게 될 경우 "빵Bang!" 하고 터지는 일이 빈번했다네요. 그래서 뱅어라 부르게 되었다는 거지요. 요즘 영국 소세지는 질이 좋아 이렇게 부를 이유가 없지만 영국인들은 여전히 재미 삼아, 그리고 애정을 듬뿍 담아 '뱅어스'라고 부릅니다.

 

이 뱅어스 앤드 매쉬는 얼핏 보면 참 간단한 음식처럼 보이는데, 집에서 직접 만들어 보니 결코 간단하지가 않습니다. 세 가지, 혹은 네 가지 구성 요소를 동시에 시간 맞춰 조리해 담는 게 쉽지가 않아요. 어느 것 하나라도 식지 않도록 제 온도에 맞춰 내야 하는데, 보통의 가정집 주방에서는 이게 좀 힘듭니다. 구성 요소를 하나하나 살펴보겠습니다.

 

 

 

 

 

 

 

 




소세지
수퍼마켓 냉장 선반에 놓인 많은 종류의 소세지 중 취향에 맞는 것으로 골라 쓰시면 됩니다. 더 좋기로는 동네 정육점에 가서 그 정육점 특제 소세지를 사다 쓰는 건데, 영국의 푸주한butcher들은 수퍼마켓에서 고기 사는 사람들의 발길을 동네 정육점으로 돌리게 하려고 정육점 고유의 특색 있는 소세지 만드는 데 힘을 많이 쏟고 있습니다. 동네마다, 혹은 정육점마다 소세지가 다 달라 대략 400여 종의 소세지가 존재한다는 통계가 있습니다. 영국의 수퍼마켓, 파머스 마켓, 동네 정육점에서 파는 소세지들을 열심히 사 먹고 평가하는 소세지 전문 블로거가 다 있을 정도죠. ☞ Rate My Sausage

 

영국 밖에 계신 분들은 질 좋은 수제 생소세지 중 길이가 짧고 포동포동한 것을 사다 쓰시면 영국 소세지와 얼추 비슷할 겁니다. 한국에서는 생소세지 구하기가 좀 힘들긴 하겠지만요.


영국 전통 소세지 중 가장 유명한 것 두 가지를 꼽자면,
 후추와 향신료를 넣은 컴벌랜드 소세지Cumberland Sausages
채소와 세이지를 넣은 링컨셔 소세지Lincolnshire Sausages

 

과거 컴벌랜드쪽 항구를 통해 이국 향신료가 수입돼 들어왔기 때문에 컴벌랜드 소세지에 후추와 향신료가 잔뜩 들어가게 되었고, 링컨셔에는 향초와 채소 경작지가 많았던 탓에 링컨셔 소세지에 채소와 세이지가 들어가게 되었습니다. 후추와 향신료가 든 컴벌랜드 소세지는 익숙해서 한국인들 입맛에도 그럭저럭 맞겠으나 세이지가 든 링컨셔 소세지는 맛이 다소 생소할 수 있습니다. 세이지 맛이 좀 특이하거든요. 뱅어스 앤드 매쉬에는 전통적으로 후추와 향신료가 든 컴벌랜드 소세지를 씁니다.


<웨이트로즈>나 <막스 앤드 스펜서> 같은 고급 수퍼마켓의 생소세지들이나 <세인즈버리즈> 등 다른 수퍼마켓들의 자사 프리미엄급 소세지들은 종류도 다양한데다 다들 기본 이상은 합니다. 재래종rare breed 돼지로 만든 소세지도 몇 가지가 있으니 영국에 계신 분들은 취향껏 골라 드세요.
영국 수퍼마켓에서 볼 수 있는 냉장 생소세지들

 

영국 소세지는 굵게 다지거나 굵게 간 고기를 쓰기 때문에 파테처럼 곱게 간 고기를 쓰는 독일식 소세지에 비해 고기 씹는 맛이 좀 더 납니다. 수제 햄버거 패티 같은 식감이 나죠. 영국 소세지는 염지나 훈제를 하지 않은 생고기 소세지이며, 미리 한 번 데쳐서 팔지도 않습니다. 비조제 생소세지라 한국인들은 많이 낯설 겁니다. 발색제를 안 넣는 경우도 종종 있어 익히면 분홍빛이 아니라 회갈색빛이 돌기도 하고요. 그릴을 하거나 기름 두른 지짐판frying pan에 지져 먹습니다.

 

포장의 문구를 보세요. 밖에 풀어 놓아 마음껏 뛰놀며 자란 영국산 돼지를 썼다고 돼 있죠. 맛도 다양하고 값도 참 쌉니다. 질 좋은 돼지고기로 만든 소세지 여섯 개들이 400g 한 팩이 우리돈으로 4,500원도 안 합니다. 영국인들 체감 물가로는 약 2,500원 정도.

 

 

 

 

 

 

 



매쉬트 포테이토
매쉬용 감자가 따로 있으니 쫀득쫀득한 샐러드용 감자 말고 포실포실한 매쉬용 감자로 잘 맞춰 사야 합니다.

 


감자를 맛없게 먹는 비결
미리 껍질 벗겨 적당한 크기로 자른 뒤 물에 삶으면 됩니다. 물 잔뜩 머금은 싱거운 감자 맛을 물씬 느끼실 수 있을 겁니다. 껍질째 삶으면 물 맛이 덜 나서 그나마 좀 낫고, 찌는 건 그보다 좀 더 낫고, 가장 좋기로는 감자를 껍질째 오븐에 장시간 굽는 겁니다. 물 없이 익히니 맛이 농축되죠. 시간이 좀 오래 걸린다는 게 흠입니다. 사진에 있는 것 같은 매쉬용 도구를 써서 손수 만드셔도 되고,

 

 

 

 

 

 

 

 


좀 더 수월한 인생을 위해
수퍼마켓에서 미리 만들어진 제품을 사다 쓰셔도 됩니다. 집에서 직접 만든 것과 비교하면 재료도 맛도 비용도 거의 비슷한데 시간은 훨씬 적게 들죠. 우리나라 햇반의 질이 좋은 것처럼 영국 수퍼마켓 매쉬트 포테이토도 질이 좋습니다. 감자가 주식이기 때문에 감자를 쓰는 제품들이 매출에 중요한 역할을 합니다. 수퍼마켓들마다 맛이 다 달라 잘 골라야 합니다. 같은 수퍼마켓 매쉬트 포테이토라도 가격대별로 또 차이가 나고요. 사다가 전자 레인지에 돌려 주기만 하면 됩니다. 직접 만드는 건 어렵지 않은데 꽤 성가십니다. 설거지도 많이 나와요. 영국에 있을 때나 수퍼마켓에서 손쉽게 사다 먹지, 한국 가면 별수없이 집에서 만들어 먹어야지요. ☞ 매쉬트 포테이토 만드는 법은 별도의 글에서 소개해 드립니다.

 

사진에 있는 매쉬트 포테이토 성분:
potatoes (91%), milk, butter, salt, white pepper. 끝.


첨가물 일절 안 들고 집에서 만드는 것과 재료가 같습니다. 영국 수퍼마켓 간편식ready meal 중에는 값이 비싸지 않으면서 성분 좋은 것들이 많이 있으니 영국에 막 도착하신 분들은 잘 활용해 보세요. 어설픈 곳에서 외식하는 것 보다 나을 때가 많아요.

 

 

 

 

 

 

 



어니언 그레이비
어니언 그레이비도 집에 양파가 떨어졌거나 귀찮을 때는 인스탄트 젤 타입 제품으로 쓰기도 합니다. 그런데 이것도 컵라면처럼 뜨거운 물만 붓고 기다리기만 하면 되는 게 아니라 따뜻한 물에 잘 푼 다음 보글보글 끓여 주어야 합니다. 원하는 농도가 나올 때까지 계속해서 저어 주어야 하죠. 우리 한국인들은 양파가 든 갈색 소스를 보면 무의식 중에 (옛날) 짜장면을 떠올리거나 하이라이스 소스를 떠올리죠. 이런 단 소스들에 익숙한 우리 한국인의 입맛에 맞추려면 어니언 그레이비에 설탕을 따로 넣어 줘야 할 겁니다. 주요리를 달게 먹지 않는 서양인들은 어니언 그레이비나 데미-글라스 소스를 양파나 포도주의 은은한 단맛만으로도 잘 즐깁니다.
☞ 어니언 그레이비 집에서 직접 만들기

 

 

 

 

 

 

 

 

 

 

 

더 편한 제품도 있습니다. 미리 만들어진 그레이비를 사다가 그냥 데워서 내기만 해도 됩니다. 영국에서는 어니언 그레이비 시장이 제법 큽니다. 집에서 육수부터 내서 그레이비 만들기가 여간 번거로운 게 아니거든요. 이런 제품들은 좀 비싸긴 해도 편하고 맛도 가루나 젤 타입의 인스탄트 제품들보다는 낫습니다. 심지어 미슐랑 스타 셰프들이 개발해 내놓은 제품들도 다 있고요. 그래도 내가 직접 공들여 만들어야 성에 찬다는 분들은 육수만 따로 사다가 볶은 양파에 부어 주셔도 됩니다. 육수 시장도 마찬가지로 큽니다.

 

 

 

 

 

 

 



어니언 링
어니언 링은 필수가 아니고 선택지입니다. 어니언 그레이비를 직접 만들어 쓰면 그레이비에 양파 건더기가 잔뜩 들어가니 어니언 링이 필요치 않지요. 그레이비를 사서 쓸 경우엔 어니언 링을 따로 올려 주면 좋고요. 무언가 높이 쌓아져 있으니 '뽀대'도 좀 더 나고, 물컹한 것들 가운데 바삭한 게 씹히니 식감도 다채롭습니다.


저의 주방 철칙 중 하나가 '내 집에서는 튀김을 하지 않는다.'입니다. 영국음식 소개 차원에서나 튀김을 하지, 평소에는 튀김 거의 안 해먹어요. 몸에 안 좋은 건 둘째치고 뒤처리가 정말 끔찍하거든요. 단 한 번 튀긴 것만으로도 기름에 발암물질이 그득해지기 때문에 기름을 깨끗이 걸러 다시 쓰는 짓은 절대 하지 말라고 식품 관련 전문가들이 신신당부를 하더라고요. 집에서 몸에 나쁜 음식 만드는 건 홈베이킹 만으로도 충분합니다. 영국에서도 요즘은 기름에 튀겨서 마무리해야 하는 냉동 감자 튀김보다 오븐에 굽는 제품이 더 인기입니다. 저도 저 어니언 링을 오븐에 구웠습니다. 오븐에 구운 제품도 기름에 튀긴 것 못지 않게 바삭합니다.

 

 

 

 

 

 

 

 

 

휴... 네 가지 요소를 시간 맞춰 동시에 데워 내는 게 어찌나 힘들던지요.

 


소세지 익히기
65˚C 물에 20분간 데친 뒤 기름 두른 중약불의 지짐판에 계속 굴려가며 노릇노릇 지져 줘야 합니다. 물에 먼저 데치는 이유는 소세지를 속까지 안전하게 다 익히면서도 촉촉함을 잃지 않기 위해서입니다. 영국 소세지는 뚱뚱해서 속까지 잘 익히기가 좀 힘들어요. 데친 소세지는 키친 타월로 물기를 말끔히 닦은 후 중불의 지짐판에 시간 들여 천천히 지집니다. 껍질이 바삭해지도록 충분히 지져 주지 않으면 질겨서 잘 안 썰립니다. 처음부터 너무 강한 불에 올리면 껍질이 금방 타고 터지기도 합니다. 생소세지 굽는 게 스테이크 굽는 것보다 힘들어요. 스테이크는 덜 익어서 피가 흥건해도 쇠고기라 문제가 안 되지만 돼지고기가 든 소세지는 촉촉함을 잃지 않으면서 껍질 터뜨리거나 태우지 않고 속까지 완전히 익히기가 까다롭습니다. 귀찮은 분들은 그냥 그릴이나 오븐에 구우셔도 됩니다.

 

어니언 링 굽기
어니언 링은 예열한 오븐에 넣고 구워 줍니다.


어니언 그레이비 끓이기
눋지 않도록 잘 저어가며 끓여 줍니다. 미리 끓여 놓으면 풀처럼 굳고 표면에 막이 형성되니 주의하시고요.


매쉬트 포테이토 데우기
전자 레인지에 넣고 5분 데워 줍니다.


가스 레인지와 전자 레인지와 오븐을 동시에 다 쓰면서 소세지 굴려 주고, 어니언 그레이비 저어 주고, 그릇 뜨겁게 데워 주고, 정말 눈코뜰새 없이 바쁘죠. 완성품을 사다 데우기만 하는 것도 이렇게 힘이 듭니다. 매쉬트 포테이토와 그레이비를 직접 만들어 쓴다고 생각해 보세요. 정성도 이런 정성이 없죠. 그러니 많은 영국인들이 이 뱅어스 앤드 매쉬를 집에서 안 해먹고 나가서 사 먹나 봅니다. 주로 펍에 가서 먹습니다.

 

접시에 담기
접시를 뜨겁게 데워 놓아야 음식이 금방 안 식습니다. 그릇이 차가우면 어니언 그레이비가 그릇에 닿자마자 풀처럼 굳어 버려요. '뱅어스'라고 복수로 쓰는 걸 보니 소세지는 늘 하나 이상을 담는 모양입니다. 세 개를 올리는 게 기본이라고 합니다. 짝수로는 잘 안 올리는데, 소세지가 클 경우엔 두 개만 올린 것도 간혹 보기는 합니다. 다쓰 부처는 고기를 많이 먹지 않으므로 저렇게 담은 걸 둘이 나누어 먹습니다. 손님한테 낼 때는 세 개 정도 넉넉히 올려 주는 것이 좋습니다.

 

뱅어스 앤드 매쉬는 고급 음식이 아니라 영혼을 위로하고 달래 주는 '컴포트 푸드'입니다. 추울 때 해먹으면 몸과 마음이 다 훈훈해지죠. 영국의 여름은 무덥지 않으므로 여름에 먹어도 맛있습니다.

 

 

 

 

 

 

 


 추운 날 떨면서 밖을 돌아다니다

아무데나 들어가서 사 먹은 뱅어스 앤드 매쉬.
식당 이름도 기억 안 나나 큰 위로가 되었다.

값싼 식당이었는데도 그 고장에서 키운 돼지로 만들었다는

수제 소세지가 무려 네 개나 올라가 있다.

쪼글쪼글한 걸 보니 그릴에 구운 모양.

 

 

 

 

 

 

 

 몇 달 뒤 또 집에서.

 

 

 

 

 

 

 

 

<웨이트로즈> 수퍼마켓표.

매쉬에 씨겨자whole-grain mustard를 넣어 성깔을 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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