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치즈 ◆ 스위스 라끌렛, 라끌레뜨, 라끌레트, 하끌렛 Raclette 본문

세계 치즈

치즈 ◆ 스위스 라끌렛, 라끌레뜨, 라끌레트, 하끌렛 Raclette

단 단 2014. 10. 10. 01:00

 

 

 스위스 발레Valais.

 

 

 

 

 

 

라끌레트를 소개합니다. 소젖 생유로 만드는 반경성 치즈로, 3개월에서 6개월 정도 숙성을 시킵니다. 스위스에서는 옛날 이름인 '발레 라끌레트Valais Raclette' 혹은 '프로마쥐 아 라끌레트Fromage a Raclette'로 부르기도 합니다. 프랑스쪽 알프스에서도 만들지만 스위스 것을 원조로 칩니다. 스위스 사람들이 발음하는 걸 들어 보니 '라끌레트'와 '하끌레트'의 중간 발음쯤 되는데, '라'를 가래 끓듯이 내뱉어야 합니다. 수요를 맞추기 위해 지금은 스위스 전역에서 만들고 있다고 합니다.


이 치즈도 참 맛있습니다. 라끌레트의 라끌러racler가 불어로 '긁어 내다'라는 뜻이라는데, 이름 탓인지 이 치즈는 생으로 먹는 걸 여간해서는 볼 수가 없고, 치즈에 열을 가해 녹은 부분만 긁어 낸 뒤 감자와 함께 먹는 모습들을 주로 봅니다. 라끌레트는 치즈 이름이기도 하고, 라끌레트 치즈를 녹여 먹는 요리 이름이기도 합니다.


예전에 소개해 드린 에멘탈이나 리어다머와 비슷한 느낌이 약하게 나는데, 달고 고소한 호두맛이 나나 쓴맛은 없어 아이들과 함께 먹기에는 라끌레트가 좀 더 낫겠습니다. (라끌레트도 잘못 만든 것들은 조제 가루약 먹을 때와 같은 쓴맛을 내기도 합니다. 프랑스산 라끌레트 중에 이런 쓴맛 나는 것들이 더러 있었습니다.) 여기에 매력적인 건초향과 건어물 우마미가 더해져서 아주 맛있어요. 그뤼예르나 아펜젤러에서 나는 짙은 해산물 우마미는 안 납니다.

 

열을 가해 녹여 먹지 않고 그냥도 한번 씹어 봤는데, 질감은 에멘탈이나 리어다머처럼 탄력이 있지는 않고 끈적하게 녹아 입에 들러붙습니다. 맨입에 먹었을 때는 식감이 썩 좋지가 않네요. 이 치즈는 아예 녹여 먹는 것을 염두에 두고 만든 게 아닌가 싶습니다. 녹이면 갑자기 다른 치즈로 변신을 합니다. 없던 탄력이 생겨 식감이 매우 좋아지고 풍미도 훨씬 짙어지죠. 스위스 치즈들 중에는 그냥 먹을 때보다 녹여 먹을 때가 더 맛있는 것들이 많은데, 여느 치즈들처럼 하염없이 녹아 내려 바닥을 흥건히 적시질 않고 형태를 적당히 잘 유지하면서 윤기가 돕니다. 식감도, 풍미도 좋아지고요. 아래에 라끌레트 녹이는 여러 가지 방법을 소개해 드리겠습니다.

 

 

 

 

 

 

 



먼저, 전통 방식입니다. 치즈 원반을 반 갈라 벽난로 앞에 단면이 향하도록 놓아 두면 표면이 녹아 흐물흐물해집니다. 이걸 긁어서 각자의 접시 위에 놓아 주는 거지요. 주로 삶거나 찐 감자와 함께 먹습니다. 얼마나 맛있을지 상상이 되죠?

 

 

 

 

 

 

 



접사.
침샘이 아픕니다. 여름에 이 사진을 봤다면 더웠을 텐데, 가을에 보니 분위기도 아늑하고 맛있어 보이네요.

 

 

 

 

 

 

 



허나, 요즘 벽난로 있는 가정집이나 레스토랑이 얼마나 되겠습니까. 특히, 여러 손님 상에 내야 하는 레스토랑에서는 이 벽난로 방식은 효율이 많이 떨어질 수밖에 없지요. 여름에 벽난로 때는 것도 더울 테고요. 그래서 영업집들은 대개 위와 같이 생긴 간단한 열기구를 손님들 식탁에 올려 놓고 치즈를 녹여 줍니다. 저 가로질러 걸려 있는 검은 막대 밑에 열원이 설치돼 있어 그 밑에 치즈를 두면 말랑말랑 녹는 겁니다. 그렇게 녹은 것을 긁어서 손님 접시 위에 놓아 주는 거지요. 원리 자체는 벽난로 방식과 같죠.

 

감자 옆에 곁들인 코흐니숑cornichons과 실버스킨 어니언도 눈여겨보세요. 유럽인들이 치즈 먹을 때 자주 곁들이는 피클들입니다. 라끌레트 먹을 때도 꼭 올라옵니다. 영국 플라우맨스 런치Ploughman's Lunch에도 들어가기 때문에 영국 수퍼마켓에서도 흔히 볼 수 있어요. 참고로, 유럽 피클들은 단맛이 없습니다. 우리 한국에서 먹던 통닭무나 피짜집 오이피클 생각하고 코흐니숑을 처음 먹으면 신맛과 향신료 맛만 있어 놀라게 되죠. 영국에서는 코흐니숑 대신 거킨gherkin을 내기도 합니다. 굳이 구별을 하자면, 코흐니숑은 크기가 새끼손가락처럼 작으면서 표면에 뿔이 불뚝불뚝, 성깔 있게 생겼고, 거킨은 매끈하면서 크기가 좀 더 큽니다. 촛물에 넣는 향신료나 양념에도 차이가 좀 있습니다. 코흐니숑과 거킨은 작은 오이처럼 생겼지만 오이와는 다른 과의 채소라고 합니다.

 

 

 

 

 

 

 

 프랑스산이나 독일산을 사지 말고

 

 

 

 

 

 

 

기왕이면 본고장 스위스 것으로 사 주자.

 


그런데 또, 일반 가정집에서 라끌레트 좀 먹자고 치즈를 반원 크기의 거대한 것을 들여놓을 수는 없는 노릇이죠. 가정에서는 대개 미리 썰어 포장한 제품들을 사다 씁니다. 두툼한 조각으로 사서 손수 썰어도 되지만, 치즈를 집에서 얇고 고르게 잘 써는 것도 품이 많이 듭니다. 이런 슬라이스 라끌레트 제품들은 어떻게 먹냐면요,

 

이런 도구를 써서 녹여 먹습니다. 우리나라 고기 불판 같은 개념입니다. 근사하죠?

 

 

 

 

 

 

 

 


취향껏 이런저런 재료들을 늘어놓고 구워 먹으면 되는데, 뜨거운 불판 밑에 라끌레트 녹이는 개인 지짐판을 놓아 위에서 재료를 구울 동안 밑에서는 치즈를 녹이는 겁니다. 머리 좋죠. 영국 백화점에서도 볼 수 있습니다. 가족들이 조로록 둘러앉아 먹으면 추억도 되고 재미있겠어요.

 

 

 

 

 

 

 



위에서는 고기와 채소가 지글지글,

 

 

 

 

 

 

 

 

 

아래에서는 치즈가 사르르.

 

 

 

 

 

 

 

 


주재료와 치즈가 둘 다 준비되면 각자의 접시에 옮겨 놓고 녹인 치즈를 부어 냠냠. 치즈 질감이 어떨지 눈으로도 짐작이 되지요? 스위스 사람들은 "라끌레트는 감자 위에만 부어야 돼!" 꼬장을 부리기도 한다는데, 음식이란 먹는 사람 마음이죠. 채소를 다양하게 늘어 놓고 먹으면 눈도 즐겁고 먹는 재미도 있고 몸에도 좋지 않겠습니꽈.

 

 

 

 

 

 

 

 

 

 

그런데 저희처럼 달랑 부부만 사는 집은 저런 이중 불판조차도 거창하고 번거롭습니다. 독신 가구나 가족이 많지 않은 집에서는 그래서 이런 걸 사서 쓰기도 합니다. 이건 저도 탐이 좀 나네요. 노란색 빨간색 둘 다 장만하고 싶어요. 색상과 문양은 다양하게 더 있습니다. 티라이트tealight 네 개를 써서 치즈를 녹이는 건데, 이건 전기도 필요 없고 크기도 작아 식탁 작은 집에서도 부담 없이 올려 쓸 수 있겠어요. 디자인 참 스위스다우면서 깔끔하죠.

 

 

 

 

 

 

 

 


기웃이: 위에 소개한 도구들이 하나도 없는 사람은 그럼 라끌레트를 먹지 말란 소린가요?


: 이 없으면 잇몸으로 살면 되죠. 오븐의 그릴 기능을 이용하거나, 오븐마저도 없는 분들은 주방용 토치torch를 쓰면 됩니다. 이것마저도 없으면 그냥 지짐판frying pan에 올려 가스불에 녹여 드셔도 되고요. 불을 발견한 문명인이 집에서 치즈 하나 녹일 방법 못 찾겠습니까. 그릴 밑에 넣어 열을 살짝만 가했더니 표면에 기름이 배어나와 윤기가 반들반들 돕니다.

 

 

 

 

 

 

 

 


흘러내릴 정도로 많이 녹여서 긁어 먹어도 좋고, 사진에서처럼 살짝만 녹여서 저며 먹어도 좋습니다. 질감이 참 관능적입니다. 전통 방식 대로 녹여서 감자에 끼얹어 먹은 것도 맛있었고, 빵 조각 위에 끼얹어 먹은 것도 맛있었습니다. 스위스 치즈들은 다들 치즈 토스트용으로도 훌륭합니다. 아, 김정은이 스위스 치즈를 너무 많이 먹어 살쪘다잖아요. 저는 돈이 없어 많이는 못 사 먹습니다. 요리에 쓰려면 양이 많이 필요한데 돈이 많이 들어요. 그래도 떨이할 때는 사진에 있는 한 조각을 단돈 1,500원에 사 먹기도 합니다.

 

 

 

 

 

 

 

 

- 며칠 뒤 -

 

음화화화, 주문한 티라이트 치즈 그릴이 왔슴다.

 

 

 

☞ 티라이트 그릴로 라끌레트 즐긴 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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