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치즈 ◆ 스위스 그뤼에르, 그뤼예르 Gruyére 본문

세계 치즈

치즈 ◆ 스위스 그뤼에르, 그뤼예르 Gruyére

단 단 2014. 10. 10. 00:00

 

 

 

 스위스 프리부흐Fribourg

 

 


치즈 시식기가 스무 개 가까이 밀렸으니 당분간 밀린 치즈 시식기를 좀 쓰겠습니다.

 

 

 

 

 

 

 

 


그뤼예르를 사 왔습니다. 1782년부터 스위스 치즈 숙성을 전문으로 해온 에미 유업The Emmi Company이 공급하는 제품으로, 14개월간 동굴에서 숙성시킨 강도 6짜리입니다. 원어민 발음을 들어보니 그뤼르보다는 그뤼르에 더 가까운 것 같네요. 스위스 사람들이 가장 많이 사 먹는 치즈라고 합니다. 치즈보드에 올려 그냥 먹기도 하지만 요리에 특히 많이 써서 수요가 많은 것 같습니다. 이게 그 유명한 스위스의 국민 요리 '퐁듀'의 주재료이거든요.

 

치즈 포장 뒷면의 광고 문구:
"The Emmi Company have been maturing cheese since 1782. They have selected the finest Le Gruyere from canton of Vaud, to be ripened in the Labyrinthine caves of Moudon near Lousanne."

 

 

 

 

 

 

 

 


지름 70cm, 높이 15cm, 무게 30~40kg 정도 되는 아주 큰 원반 형태로 만듭니다. 이것도 마을 이름을 따서 치즈 이름을 지었습니다[Gruyéres]. 첫 기록은 무려 1115년부터 찾아볼 수 있다고 하는데, 기록만 놓고 보면 영국의 체다나 네덜란드의 하우다보다도 오래되었습니다. 아래의 지역canton에서 만들고 있습니다. 프리부흐에서 생산한 것을 좀 더 쳐주는 것 같습니다. 프리부흐 안에 그뤼예르 마을이 속해 있기도 합니다.


  Fribourg
  Vaud
  Neuchatel
  Jura
  Berne

 

그뤼예르를 만들던 치즈 장인들이 이 나라 저 나라로 이주를 하면서 제조법이 널리 퍼지게 되어 독일, 프랑스, 덴마크, 심지어 미국에서도 그뤼예르를 만들고 있지만 스위스 그뤼예르만이 '오리지날'로 유럽연합의 보호를 받습니다. 프랑스와는 1951년 회의에서 그뤼예르를 브랜드명으로 쓰기로 합의를 보았고, 그 덕에 스위스는 유럽연합국도 아닌데 치즈 포장에 저렇게 떡하니 PDO마크를 달고 있습니다.

 

 

 

 

 

 

 

 


저온살균하지 않은 생유로 만들고 대개 5개월에서 12개월 숙성을 시킵니다. 12개월 넘는 것들도 물론 있고요. 유럽연합에 의해 보호를 받기 때문에 생산지와 생산 방법이 엄격하게 지정돼 있습니다. 생산지에 있는 동굴과 비슷한 환경에서 숙성시켜야 하므로 습도는 94%에서 98% 사이로 맞추고, 온도는 13˚C에서 14˚C로 맞춰야 합니다. 이 조건을 못 맞추면 제대로 된 맛과 질감이 안 난다고 하네요. 등급은 숙성 기간과 조건별로 다음과 같이 나뉩니다. 유기농도 물론 따로 존재합니다.

 

Mild/Doux
최소 5개월 숙성. 단단하고 고소함.

 

Réserve
최소 10개월 숙성. 그뤼예르 특유의 복잡한 맛이 나타나기 시작함.


Surchoix

 

Vieux


Sale


Höhlengereift
동굴 숙성 제품. 최대 14개월까지 숙성. 오늘 소개하는 제품임.


Le Gruyére Switzerland AOC Alpage
여름에 알프스 산자락의 풀을 뜯은 소의 젖으로 만든 그뤼예르. 최고 등급으로 침.

 

Le Gruyére Premier Cru
프리부흐에서 생산. 습도 95% 온도 13.5°C의 동굴에 넣어 14개월 숙성시킨 제품. 국제 치즈 대회에서 여러 차례 수상한 전력이 있음.

 


그뤼예르는 가열 압착 치즈입니다. 세 차례에 걸쳐 열을 가합니다. 먼저, 원유 온도를 34˚C까지 높여 응고 효소rennet의 작용을 돕습니다. 이렇게 해서 굳은 응유curd를 유장whey으로부터 분리해 잘게 썬 다음 43˚C까지 데웁니다. 그 뒤 54˚C까지 또 올립니다. 성격이 각각 다른 배양균들의 활동을 각기 다른 온도로 정지시키는 겁니다. 원하는 맛과 질감을 내기 위함입니다. 전문 용어라서 여기까지만 이해를 했는데, 원유나 응유에 열을 가하는 것은 원유를 저온살균하는 것과는 다른 개념입니다. 살균 온도는 72˚C 정도로, 훨씬 높아야 하죠. 이렇게 응유를 가열해 만들면 치즈에 특유의 단맛이 생기고 오래 저장할 수 있다는 장점이 생깁니다. ☞ 에멘탈, ☞ 콩떼, ☞ 보포르도 제조법이 비슷한데, 그뤼예르가 에멘탈보다 소금을 더 쓰고, 응유를 더 크게 자르고, 더 뜨겁게 데우고, 더 세게 압착을 하고, 더 낮은 온도에서 천천히 숙성을 시키기 때문에 더 짭짤하고 더 단단하고 단맛도 더 납니다. 에멘탈의 경우는 이산화탄소를 내뿜는 특별한 배양균이 하나 더 들어가기 때문에 치즈 속에 구멍도 송송 생기지요.

 

 

 

 

 

 

 

 

 

스위스 그뤼예르는 2001년에 AOC 인증을 획득했습니다. 프랑스도 AOC 인증제를 쓰고 있죠? 유럽연합식 영어 표기로는 PDO가 됩니다. 다 같은 뜻입니다. 스위스와 프랑스는 국경을 맞대고 치즈를 만들기 때문에 종종 같은 치즈를 두고 우리 치즈다, 우리가 원조다, 쌈박질을 하곤 합니다. 프랑스 치즈 중에 콩떼나 보포르도 이 그뤼예르 계열 치즈로 묶이는데, 프랑스에서는 콩떼 등급을 매길 때 최상급이 아닌 것들에 '그뤼예르'라는 이름으로 등급을 매겨 마치 자기네 콩떼가 스위스 그뤼예르보다 한 수 높은 치즈라는 뉘앙스를 풍기곤 하죠. 그래, 콩떼가 정말 스위스 그뤼예르보다 품질이 우수하고 맛이 더 낫느냐? 꼭 그렇지는 않습니다. 아래에 비교 시식한 소감을 써 놓았으니 참고하세요.

 

 

 

 

 

 

 

 

 

썰어 보겠습니다. 속살은 색도 질감도 비교적 균일해 보이죠? 단단하면서도 나름 부드러운 데가 있어 '스극'하며 기분 좋게 썰립니다. 이 치즈는 껍질을 먹지 않습니다. 높은 습도에서 뒤집고 소금물로 닦기를 반복하기 때문에 껍질을 닦은 치즈 특유의 연갈색의 끈적끈적한 껍질이 형성됩니다. 모르주morge라 불리는 단백질 분해 박테리아의 증식으로 생기는 현상입니다. 이로 인해 바깥에서 안쪽으로 숙성이 천천히 이루어집니다.

 

 

 

 

 

 

 

 


껍질에서는 마른 오징어 향이 납니다. 서양인들은 이를 건초향이라 하는 것 같았습니다. 숙성이 많이 된 것들은 가끔 아주 시어진 캠벨 포도 껍질 안쪽에서 나는 것과 같은 신맛과 향이 납니다. 우리 쌈장맛이 날 때도 있고요. 껍질 바로 안쪽 속살에서는 바닷가재, 게 같은 갑각류의 달고 고소한 맛이 나는데, 이게 참 매력적입니다. 갑각류의 우마미가 끝내줍니다. 차이브chive맛도 나고요. 속살은 콩떼보다 맛의 강도가 더 세고 진합니다. 까나리 액젓의 짜릿한 우마미가 납니다. 여기에 젖산의 산미와 우유맛이 어우러지고 알파인 치즈 특유의 호두맛까지 더해져 기가 막혀요. 전체적으로는 단맛, 짠맛, 갑각류 우마미, 젓갈류 우마미, 호두맛이 고루 어우러져 참 맛있습니다. 우리 한식 상차림에서 나는 익숙한 향이 나므로 한국인들 입맛에도 잘 맞으리라 봅니다. 치즈 포장에 "Nutty with spicy caramel. Firm & smooth with a bit of crunchy."라고 써 있는데, "바삭한crunchy"이라는 표현을 쓴 이유는 치즈를 씹다 보면 오래 숙성한 치즈에서 나타나는 특징인 젖산칼슘 결정calcium lactate crystals이 가끔씩 서걱거리며 씹히기 때문입니다. 또다른 스위스 치즈들인 에멘탈이나 아펜젤러보다도 질감이 단단합니다.

 

제조 방법이 유사하고 생산 지역이 가깝기 때문에 그뤼예르는 종종 콩떼와 비교를 당하기도 하죠. 제 나름대로 비교를 해보자면, 그뤼예르가 콩떼보다 향미가 더 짙습니다. 특히 젓갈류의 짜릿한 우마미가 많이 나면서 더 달아요. 숙성 콩떼에서 나는 쓴맛도 적게 납니다. 콩떼는 대신 그뤼예르보다 더 고소했던 것 같습니다. 둘 다 장점이 뚜렷해 우열을 가리는 건 의미가 없을 듯합니다. 한국인들 입맛에는 우마미가 더 짙은 그뤼예르가 좀 더 잘 맞으리라 봅니다. 

 

 

 

 

 

 

 

 


곁들이면 좋은 것들:


 화이트 와인 중 Riesling
레드 와인 중 Dole, Burgundy
Sparkling apple cider
Bock beer

 

 

 

 

 

 

 

 


그뤼예르는 잘 녹으면서 좋은 질감을 내주기 때문에 요리에 활용하기에도 좋습니다. 다음과 같은 요리들에 많이 씁니다.


 키쉬quiche
퐁듀fondue: 에멘탈이나 바슈랭 등 다른 스위스 치즈들과 섞어서 소스를 만듦.
구제르gougéres: 치즈를 넣어 만든 짭짤한 슈choux
프렌치 어니언 수프
크로크-므씨유croque-monsieur: 치즈 햄 샌드위치
꼬르동 블루cordon bleu: 얇게 두들겨 편 고기로 햄과 치즈를 감싼 뒤 빵가루 입혀 튀긴 것. 주로 닭고기나 송아지 고기를 얇게 두들겨 씀.
샐러드, 파스타, 각종 소스에 갈아 넣어도 좋음.

 


아주 맛있는 치즈입니다. 스위스 치즈는 지금까지 여섯 종을 먹어 보았는데, 어느 것 하나 버릴 것 없이 다 맛있었습니다. 나머지 치즈들도 시식기를 곧 올리겠습니다. 북한의 김정은이 스위스에서 유학을 한 적이 있다죠? 스위스에 머물 동안 스위스 치즈에 흠뻑 빠졌다는데, 얼마 전 치즈 유학단을 보내고 싶다고 타전을 했다가 스위스로부터 거절 당한 일이 있었습니다. 이 기사를 접한 후 저는 스위스 치즈를 먹을 때마다 김정은이 생각 나 웃음이 나면서도 한편으론 측은한 마음이 듭니다.


김 군,
가뜩이나 타국 치즈들에 밀려 스위스 치즈 장인들 고전하고 있다던데, 인민들 시켜 자가 공급할 생각말고 그냥 지금처럼 수입이나 열심히 하시게.

 

 

 

 

 

 

 

 

 

 퐁듀 세트 하나 사고 싶..

 

 

 

 

 

 

 

 

생각해 보니, 집에 퐁듀 세트를 대신할 만한 미니 냄비와 워머가 있었네.

예전에 해먹었던 간이 퐁듀. 스위스 치즈 대신 체다를,

화이트 와인 대신 영국 에일IPA을 넣어 만든 제이미 올리버의 영국식 퐁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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