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치즈 ◆ 스페인 만체고 Manchego • 타파스 집에서 즐기기 본문
▲ 라 만차La Mancha, 스페인.
만체고 치즈는 그간 몇 번 사 먹었었는데 사진을 찍어 두질 않아서 다시 사 왔습니다. 스페인의 라 만차 지역에서 만드는 양젖 경성 치즈입니다. 체다처럼 만체고라는 지역 이름이 치즈 이름이 되었습니다. 《돈 키호테》에도 여러 차례 언급이 된 스페인의 유서 깊은 치즈입니다. 유럽연합에 의해 PDO로 보호를 받으려면 다음의 요건을 충족해야 합니다.
• 라 만차 지역의 지정된 네 개 마을에서 만들어야 한다. [Albacete, Ciudad Real, Cuenca, Toledo]
• 지정된 마을의 지정된 농가에서 라 만차 지역 고유 품종인 만체가Machega 양의 젖으로 만들어야 한다. 탈지하지 않은 전지유를 써야 한다.
• 최소 60일은 숙성을 시켜줘야 한다. 최장 2년까지도 숙성 가능하다.
• 최대 높이 12cm, 최대 지름 22cm의 원통에 넣어 압착을 해야 한다.
• 살균유를 쓰든 생유를 쓰든 상관 없으나 생유를 쓸 경우에는 "Artesano (artisan)"라는 별도의 표기를 해줄 수 있다.
아래 영상에 만체고 생산지와 제조과정, 가짜에 안 속는 법 등이 소개돼 있으니 참고하세요.
라 만차 지역은 아랍어로 "land without water'라는 뜻을 가졌다고 합니다. 드넓으나 나무가 드문 매우 건조한 고원입니다. 비도 거의 내리지 않는데다 뜨거울 땐 섭씨 50도까지도 올라간다고 하죠. 옛 시절의 폐허와 양떼와 풍차만이 점점이 놓여 있는, 시간이 멈춰 있는 듯한 고요를 간직한 곳이었다가 현대에 와서 기술의 발달에 힘입어 이 건조한 곳에 물을 대기 시작해 포도, 올리브, 해바라기, 기타 작물들을 재배할 수 있게 되었다고 합니다. 이 지역에서 자라는 만체가 양들의 젖은 진하고 향기로워 만체고 치즈에 독특한 맛을 더한다고 합니다. 영상에서와 같이 오늘날에는 만체고 치즈를 대부분 공장에서 만듭니다.
영상을 보고 기억할 점:
• 모방 만체고가 많이 돌아다니니 주의하자.
• 포장에 돈 키호테와 산초 판사 그림이 있다고 해서 다 만체고가 아니다.
• 풍차 그림에도 속지 말자.
• "Made in La Mancha" 문구에도 속지 말자. (가장 쉬운 방법은 포장에 유럽연합 PDO 마크가 있는지 확인하는 것.)
▲ 우리 집 돈 키호테 아저씨.
"만체고를 사실 땐 PDO 마크를 꼭 확인하세용~"
제가 사 온 만체고는 생유를 써서 수작업해 만든 "Artesano" 치즈이며 숙성 기간이 다소 긴 제품입니다. 몇 개월 숙성시켰는지는 포장에 구체적으로 밝히질 않고 있는데, 치즈의 외양을 살펴보고 맛을 보니 제법 오래 숙성됐다는 느낌이 옵니다. 포장에 "Nutty, Savoury & Piquant"라고 써 있네요. 말 그대로 고소하고 적당히 짭짤하고 매운 기운이 좀 있어요. 숙성 기간에 따른 등급은 아래와 같이 나뉩니다. 제가 사 온 것은 '뷔에호' 이상은 되는 것 같습니다. (확인해 보니 뷔에호 맞네요.)
• Fresco 2주 숙성. 진하면서도 순한 맛. 생산량이 적어 스페인 밖에서는 보기 힘듦.
• Semicurado 3주~3개월 숙성. 중간 정도의 단단함. 큐라도보다는 맛이 순함.
• Curado 3~6개월 숙성. 중간 정도의 단단함. 달고 고소한 맛.
• Viejo 1년 숙성. 단단함. 날카롭고 후추 같은 매운 풍미가 있음. 갈아서 쓰기 좋음. 그냥 먹어도 좋음. 따빠스에 써도 좋음.
껍질의 헤링본 문양 좀 보세요. ☞ 쁘띠 바스크가 바로 이 만체고를 흉내내 만든 신생 치즈임을 알 수 있는 대목입니다. 영상에도 설명이 있죠. 옛 시절엔 남유럽과 북아프리카 특산 에스빠르토 그라스esparto grass로 짠 바구니에 담아 유장을 뺐기 때문에 치즈 옆면에 헤링본 무늬가 새겨지게 되었다고요. 현대에 와서는 이를 플라스틱 틀로 재현하고 있지요.
즉, 치즈의 아래 위 바닥 면에는 나무 선반의 빗살 무늬가, 옆면에는 에스빠르토 바구니의 헤링본 무늬가 새겨지는 것이지요. 만체고를 식별하는 첫 번째 조건이 되기도 합니다. 만체고를 낼 때는 그래서 모방품이 아니라는 걸 확인이라도 시켜 주듯 껍질을 포함해 썰어 내는 것이 일반적입니다. 하몽 이베리코 베요따Jamon Iberico de Bellota도 햄만 덜렁 썰어 낸 건 가짜일 확률이 높다잖아요. 진짜 이베리코 베요따 하몽을 내는 곳에서는 까만 발굽이 고스란히 붙어 있는 이베리코 흑돼지의 뒷다리를 가져다 손님이 보는 앞에서 썰어 주곤 하지요.
제가 사 온 만체고 치즈 100g당 영양 성분은 이렇습니다.
• 열량 411kcal, 1703kj
• 단백질 24.0g
• 탄수화물 0g (당분 0g)
• 지방 35.0g (포화지방 23.0g)
• 소금 1.75g
향
껍질에서 아세톤과 유사한 향이 물씬 납니다. 껍질은 먹지 않는 치즈인데, 껍질 쪽에 가까울수록 이 아세톤의 매운 향이 많이 나서 치즈 고유의 맛이 좀 많이 가려집니다. 포장의 광고 문구 중 'piquant'가 이를 뜻하는 모양입니다. 양의 피지로 만든 라놀린유 향이 난다고도 하고 양고기구이의 향도 좀 난다고 하는데, 제가 라놀린유 향을 맡아 본 적이 없어 잘 모르겠습니다. 아세톤 같은 매운 느낌이 혹시 라놀린유 향과 비슷한 걸지도 모르겠네요. 다른 양젖 치즈들을 먹을 때는 안 났던 특이한 향이 좀 납니다.
맛
고소합니다. 기름지고 고소한 것이 마치 브라질 넛 씹을 때와 비슷한 느낌입니다. 젖산의 산미도 약간 느껴집니다. 많이 짜지는 않아요. 캬라멜 맛을 느끼는 사람도 있다는데, 다쓰 부처한테는 단맛이 거의 안 느껴집니다. 양젖은 원래 소젖보다 단맛이 많이 나는데 양젖 치즈에서 이렇게 단맛이 안 나는 건 또 처음입니다. 그래서 꿀을 뿌려 먹기도 하는 모양입니다. 게다가, 숙성 치즈에서 이렇게 우마미가 안 나는 것도 또 처음입니다. 치즈에 단맛과 우마미가 없어 좀 생소하네요.
질감
기름지면서도 건조합니다. 전지유를 쓰는데도 수분이 적어 그런지 탄성이 없고 가루처럼 부서져 건조하게 씹힙니다. 정말로 브라질 넛 씹는 것처럼 부서집니다. 고소하기는 한데 식감이 주는 관능미는 그래서 많이 부족합니다. 보슬보슬 가루 내기가 좋으니 그냥 먹기보다는 갈아서 요리에 이용하면 좋겠다는 생각이 듭니다.
스페인의 대표 치즈라고는 하나 그간 맛있는 양젖 치즈를 이것저것 먹어 봐서 그런지 썩 맛있지는 않네요. 값은 또 얼마나 비싼데요. 예전에 어린 만체고를 먹었을 때는 제법 맛있게 먹은 기억이 있는데, 숙성 정도에 따라 맛이 많이 달라 그런 건지, 다쓰 부처가 그간 맛있는 양젖 치즈들을 이것저것 경험해 봐서 입맛이 바뀌어 그런 건지, 잘 모르겠습니다. 공평을 기하기 위해 조만간 어린 만체고도 다시 한 번 사 먹어 봐야겠습니다. 이 밑에 추기를 하도록 하겠습니다. 치즈를 오래 숙성시켰다고 해서 반드시 맛이 더 좋아지는 건 아니니 어린 치즈와 오래 숙성한 치즈를 골고루 먹어 보아야 합니다.
2014년 8월 6일 추기
위에서 소개한 것은 <웨이트로즈> 수퍼마켓 자사 상품이었고, 이번에는 <세인즈버리즈> 수퍼마켓의 자사 상품을 사 보았습니다. 웨이트로즈 것은 숙성 기간이 긴 농가의 생유 만체고, 세인즈버리즈 것은 숙성 기간이 짧은 공장제 저온살균유 만체고입니다. 웨이트로즈의 치즈들이 세인즈버리즈 치즈들보다 숙성 기간이 대체로 더 깁니다. 영국에 계신 분들은 참고하세요. 어떤 치즈는오래 숙성한 게 더 맛있고 어떤 치즈는 어린 게 더 맛있으니 좌우간 골고루 사 드셔 보세요.
100g당 영양성분
• 열량 460kcal, 1906kj
• 단백질 25.6g
• 탄수화물 0.5g (당분 0.5g)
• 지방 39.5g (포화지방 22.1g)
• 소금 2.30g
세인즈버리즈의 어린 만체고가 웨이트로즈의 숙성 만체고보다 열량도, 단백질도, 탄수화물도, 지방도, 소금양도 조금씩 더 높습니다. 포화지방은 더 낮고요. 맛은 어린 만체고가 훨씬 낫네요. 아세톤 같은 매운 향도 없고, 풍미도 더 또렷하고, 단맛과 우마미도 있고, 기분 좋은 산미도 더 있고, 좀 더 촉촉해서 꼬득꼬득 씹히기도 합니다. 양젖 치즈 특유의 향이 뒷맛으로 남습니다. 위의 숙성 등급표에서 'Curado'쯤 되지 않나 싶습니다. 예전에 먹고 맛있어했던 것이 이런 어린 만체고가 맞나 봅니다. 편견이 또 한 번 깨지는 순간입니다. 공장 치즈가 농가 수제 치즈보다 더 나을 수 있고, 살균유 치즈가 생유 치즈보다 더 맛있을 수 있으며, 숙성 기간이 길다고 반드시 더 맛있어지는 것도 아니라는 것. 숙성 기간이 짧으면 값도 싸죠. 풍미가 더 또렷하게 느껴지는 데에는 아마 소금이 더 든 탓도 있을 거라 보는데, 치즈마다 풍미를 가장 잘 살릴 수 있는 고유의 소금양이 있는 게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듭니다.
만체고를 산 김에, 집에서 간단한 타파스tapas를 한번 즐겨 보겠습니다. ('따빠스'로 쓰는 것이 원 발음에 더 가깝다죠?) 제이미 올리버가 이 책 저 책에서 소개한 따빠스들 중에서 가장 쉬워 보이는 것 네 가지만 골라 준비해 봅니다. 치즈는 웨이트로즈의 장기 숙성 만체고로 써 봅니다. 따빠스에는 또 장기 숙성 만체고가 더 낫다고들 합니다. 어린 만체고는 그냥 먹어도 맛있으니 치즈보드에 올려 따로 즐기면 좋겠네요. 본고장에서는 만체고를 얇은 웨지로 썰어 그 고장에서 생산되는 향이 강한 녹색의 올리브 오일에 담가 풍미를 더 강하게 만들어 즐기기도 합니다.
스페인의 빠드론 페퍼pimientos de Padrón.
실제로 스페인의 빠드론 지역에서 재배한 '정품' 고추를 영국 수퍼마켓에서도 쉽게 볼 수 있죠. 이 빠드론 페퍼는 재미있는 특성이 있습니다. 5%의 비율로 아주 매운 녀석들이 하나씩 끼어 들어간다네요. 제가 사 온 30개들이 봉지에도 "1 in 30 has a kick!" 하고 빨간 소를 그려 놨습니다.
아니?
다 맵거나, 다 안 맵거나 할 것이지, 아주 매운 게 딱 한 개만 끼어 있다고 하면 매운 녀석 나올 때까지 계속 조마조마 두근두근 하면서 먹으란 소리잖아요? ㅋ
고추를 깨끗이 씻어 물기를 닦은 뒤 올리브 오일 두른 중강불의 지짐판에 지져 줍니다. 물집이 생기면서 까맣게 타는 부분이 보이기 시작하면 불을 끄고 소금을 쳐서 바로 먹습니다. 반 정도는 지짐판에 있는 걸 바로 집어먹고,
나머지는 사진용으로 테라코타 그릇에 담아 보았습니다. 식으면 맛이 뜨거울 때만 못합니다. 뜨거울 때 드세요. 소금은 좀 넉넉히 쳐야 맛있다는데, 과연 소금이 많이 묻은 것과 적게 묻은 것의 맛 차이가 많이 나긴 하더군요. 짭짤하고 쌉쌀하면서 고소합니다. 하나도 안 매워요. 우리 한국의 풋고추나 꽈리고추보다 안 매워요. 속에 든 고추씨가 알알이 씹히는 게 재미있습니다.
그 다음 초릿쏘chorizo.
적당한 굵기로 썰어 올리브 오일 넉넉히 두른 냄비에 넣고 익힙니다. 왜 냄비를 쓰느냐? 벽이 높아야 기름이 사방으로 튀어나가질 않아요. 소세지에 든 고춧가루 때문에 기름이 빨갛게 물들 겁니다. 소세지가 적당히 익으면 마늘 편 썬 것을 넣고 이 빨간 기름에 익혀 줍니다. 마늘까지 다 익었으면 이제 스페인의 명물 식초인 셰리 비니거sherry vinegar를 넉넉히 뿌리고 꿀도 좀 넣어 줍니다. 천상의 맛이 탄생합니다. 마늘이 아주 맛있으니 마늘을 좀 넉넉히 넣어 조리하시면 좋아요.
속을 채운 체리 페퍼.
속을 채워서 쓰라고 아예 속을 비운 체리 페퍼를 병에 담아 파는 제품들이 많이 나와 있어요. 사다가 취향껏 속을 채워 주면 되는데, 아몬드와 빵가루와 치즈를 섞어 채운 뒤 오븐에 구운 것도 맛있고, 치즈만 채워 구운 것도 맛있고, 양념한 참치를 채운 것도 맛있었습니다.
이것마저도 귀찮아하는 사람들을 위해 아예 속까지 채워서 파는 제품들도 있으니 취향껏 골라 사도 되고요. 사진에 있는 것은 단맛 나는 크림 치즈를 채운 겁니다.
만체고 치즈.
테라코타 그릇이 모자라 올리브 그릇에 담아 봅니다. 동그랗게 파인 데다 올리브 씨를 뱉는 겁니다. ㅋ 만체고는 적당한 크기로 썰어 꿀을 뿌린 뒤 생타임thyme 한 가닥을 얹어 내면 됩니다. 그간 이 만체고는 그냥 먹거나 요리에 써서 익혀 먹기만 했었는데 꿀을 뿌려 먹으니 놀랍게도 제 어릴 적 먹던 바밤바 맛이 납니다. 네에, 바밤바 맛이요. 소금이 적게 든 장기 숙성 만체고에 꿀을 발라 먹으면 바밤바 맛이 난다 - 기억해 두세요.
타임 잎을 조금 뜯어 얹어 먹어 보기도 했는데, 하필 향이 강한 타입의 타임이라서 생각보다 맛이 강해 바밤바 맛은 온데간데없이 타임맛만 남습니다. 그래도 이것도 나름 제3의 맛이 나면서 맛이 있으니 이렇게저렇게 다양한 시도를 해보세요. 만체고 치즈 한 조각 사서 느닷없이 휴가지 기분을 내 보았습니다.
참, 그래서 빠드론 페퍼 먹다 매운 녀석이 나왔느냐?
네, 나왔습니다.
다쓰베이더가 당첨됐습니다.
▲ 빠드론 고추 포장 한 구석.
▲ 따빠스 이야기 나온 김에, 따빠스 바 단골 메뉴인 초절임 안초비도 소개.
단출하기 짝이 없는 재료. 내륙에 살거나 산지가 아닌 곳에 사는 사람들은
생안초비 대신 미리 초절임된 안초비를 사서 쓰는 것도 좋은 방법.
한국에서는 생멸치 사다 손질해서 쓰면 동일.
▲ 뚝딱 완성. 불도 필요 없이 그야말로 '조립' 수준.
▲ 브렉시트가 확정된 날 스트레스 해소차 차려먹은 따빠스.
▲ 만체고 치즈. 쐐기꼴로 썬 것도 예쁘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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