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치즈 ◆ 스위스 아펜젤러 Appenzeller 본문

세계 치즈

치즈 ◆ 스위스 아펜젤러 Appenzeller

단 단 2014. 10. 10. 00:30

 

 

 

 스위스 아펜첼Appenzell

 

 

 

 

 

 

 

 

 

 

 

 



아펜젤러.
제가 가장 좋아하는 스위스 치즈입니다. 그간 먹어 본 스위스 치즈들은 우열을 가리기 힘들 정도로 다 맛있었는데, 그래도 가장 맛있는 것 하나를 어렵게 꼽자면 저는 이 아펜젤러를 꼽겠습니다. 스위스 치즈의 장점인 달고 고소하고 탄력 있는 질감은 고스란히 다 갖고 있으면서 '성깔'까지 있어 매력적이거든요. 스위스 산악 지방 치즈들 중에서는 아펜젤러가 가장 맛이 세고 '스파이시'한 치즈로 꼽힙니다. 스위스 북동부 아펜첼 주에서 만들며, 이것도 역사가 꽤 오래된 치즈라 13세기 말에 이미 그 기록이 있을 정도입니다.

 

그러나 오랜 역사와 명성에도 불구, 아펜젤러는 AOC 제도로 보호를 받지 않고 있습니다. 신기하죠? 여기에는 사정이 좀 있습니다. 아펜젤러를 만들 때는 '술츠sulz'라 불리는 조제 액체에 담갔다가 꺼내고, 숙성시키는 동안에도 치즈 표면을 주기적으로 이 액체로 반복해 문질러 줘야 합니다. 이 술츠 때문에 아펜젤러 특유의 갈색 껍질이 형성되고 맵싸하고 짜르르한 맛이 생기죠. 술츠란, 포도주 또는 사과주cider에 향신료, 향초, 씨앗, 식용 꽃, 소금과 누룩yeast를 섞은 혼합액을 말합니다. 술츠에 20종에 달하는 재료를 넣는 치즈 농가도 있을 정도인데, 바로 이 술츠가 각 아펜젤러 농가들의 '씨크릿 레서피', 즉, 농가 고유의 비장의 무기가 됩니다. 철통 같이 비밀이 지켜지기 때문에 치즈 생산 농가당 단 두 명만이 이 배합 재료와 배합비를 알고 있다고 하지요. 술츠로 표면을 닦고 문질러 치즈에 미묘한 색채를 입히는 것은 저 먼 옛날 수도사들이 처음 도입한 것으로 보고 있습니다.

 

문제는, 정부나 유럽연합으로부터 AOC[PDO] 인증을 받으려면 원료와 제조 과정을 낱낱이 공개해 보고를 하고 하나의 표준을 만들어야만 한다는 겁니다. 아펜젤러를 생산해온 각 농가들이 집안 대대로 전수해온 자기 집만의 고유 술츠 레서피를 공개할 리가 없죠. 공개했다 쳐도 하나로 통일하기도 힘들 테고요. 이런 연유로 아펜젤러 치즈는 스위스 정부나 유럽연합으로부터 보호를 받지 못하게 되었습니다. (스위스는 유럽연합국이 아니지만 치즈에 있어서는 프랑스의 AOC 제도를 공유하고 있습니다.) 유럽연합국의 각 식품 생산자들이 그렇게 획득하고 싶어 안달을 하는 AOC, PDO, PGI 인증 등을 이 아펜젤러 농가들은 제 발로 걷어차고 있는 겁니다. 대단한 뚝심이죠. 그 때문에 아펜젤러 치즈는 같은 등급이라 하더라도 각 농가별로 뉘앙스가 많이 다릅니다. 골라 먹는 재미가 있어요. 어제 사 먹은 아펜젤러와 오늘 다른 곳에서 사 먹은 아펜젤러가 풍미가 많이 다를 수 있다는 겁니다. 여러 농가의 아펜젤러를 두루 먹다가 자기 입맛에 딱 맞는 기가 막히게 맛있는 아펜젤러를 만나면 생산 농가 이름을 기억해 두어야 합니다. 정부나 유럽연합의 인증은 받을 수 없지만 생산자 조합 같은 것은 있습니다. 아펜젤러 치즈 포장을 보면 치즈 이름옆에 항상 등록 상표 표시®가 붙는데, 생산자들이 모여 치즈 자체를 브랜드화한 모양입니다.


아펜젤러 역시 큰 원반 모양으로 성형을 합니다. 지름 30~33cm, 높이 7~9cm로, 에멘탈이나 그뤼예르보다는 좀 작습니다. PDO로 지정돼 있지 않기 때문에 크기나 무게가 농가마다 많이 다를 수 있습니다. 무게는 대략 6~12kg 사이가 되는데, 대개는 8kg 정도가 나가도록 만든다고 합니다. 겉껍질은 갈색을 띠고, 속살에는 위 사진들에서 보듯 완두콩만 한 작은 구멍들이 숭숭 뚫려 있기도 합니다.


현재 약 75곳의 농가에서 생산을 하고 있는데, 살균유, 생유, 전지유, 탈지유, 어느 것이든 생산자가 선택해 만들 수 있습니다. 생유를 쓰는 농장은 세 군데밖에 안 남았다고 합니다. 산악 지대에서 생산하므로 젖소들이 먹는 풀에 향초가 많이 섞여 있고, 이것이 원유에도 미묘한 영향을 미칩니다. 그뤼예르와 달리 아펜젤러는 제조 과정중 열을 가하지 않습니다. 그뤼예르는 '가열 압착 치즈', 아펜젤러는 '비가열 압착 치즈'로 분류가 됩니다.

 

반경성 치즈이긴 하나, 막상 씹어 보면 탱탱하고 쫀득거리면서도 크림처럼 부드러운 느낌이 있습니다. 그뤼예르와 느낌이 많이 비슷하나 술츠 덕에 뒷맛이 맵습니다. 제가 이것 때문에 아펜젤러를 좋아합니다. 스위스 사람들은 아펜젤러를 그뤼예르와 함께 퐁듀에 넣어 치즈 소스에 성깔kick을 부여하곤 합니다. 등급은 다음과 같이 나뉩니다. 어느 등급이건 특유의 매운 맛은 다 있습니다. 강도의 차이만 좀 있을 뿐이지요.

 

 

 

 

 

 

 

 

Appenzeller® CLASSIC
최소 3개월 숙성. 은박 라벨로 덮음.

 

 

 

 

 

 

 

 

Appenzeller® SURCHOIX
최소 4개월 숙성. 금박 라벨.

 

 

 

 

 

 

 

 

Appenzeller® EXTRA
6개월 숙성. 검은 라벨.

 

 

 

 

 

 

 

 

Appenzeller® Bio
Classic과 모든 조건은 같으나 우유를 유기농으로 씀.

 

 

 

 

 

 

 

 

Appenzeller® ¼-FAT SPICY
6~8개월 숙성. 탈지유를 씀.

독특한 산미가 있어 애호가가 많다고 함.

 

 

 

 

 

 

 

 

Alpenzeller®
10주 숙성. 생산지에서만 살 수 있어 외국에서는 보기 힘듦.

 

 

 

 

 

 

 

 

Appenzeller® Fondue
퐁듀용으로 가공한 아펜젤러.

 


제가 사 온 것은 금박으로 덮여 있으니 'Surchoix' 등급이 되겠네요. 복잡한 매운 뒷맛이 있어 아주 매력적입니다. 아펜젤러는 얇게 썰어 그냥 먹거나 후추를 쳐서 샐러드에 섞어도 맛있고, 잘 녹기 때문에 그뤼예르처럼 갈아서 여러 요리에 활용을 해도 좋습니다. 퐁듀에는 필수로 들어갑니다. 아펜젤러 한 가지만 써서 퐁듀 소스를 만들기도 한답니다. 사과나 배로 양조한 과실주와도 잘 어울린다고 합니다. 요리에도 활용을 좀 해봐야 하는데, 하도 맛있어서 사 오기만 하면 못 참고 맨입에 그냥 꿀떡꿀떡 먹어치우게 되네요. 언젠가 아펜젤러로 요리를 하게 되면 사진을 꼭 찍어 올려 보겠습니다.

 

 

 

 


2016년 10월 28일 재구매 -

 

 

 

 

 

 

 

 

 



아펜젤러는 그간 여러 차례 재구매를 했지만 이 날은 특별히 치즈 카운터에서 새 치즈를 개시해 사 왔기 때문에 기록을 남겨 봅니다. 새 치즈를 개시하면 진한 풍미의 촉촉한 치즈를 맛볼 수 있습니다. 향과 수분이 날아가지 않은 상태라서 맛이 생생합니다. 치즈 카운터를 스윽 보시고 아직 아무도 개시하지 않은 치즈가 보이면 그걸로 사 먹는 것도 좋은 전략입니다. 치즈 가게들이 파르미지아노 레지아노를 개시하는 날에는 단골 손님들한테 미리 연락을 하기도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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