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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국 공주와 샬럿 원숭이, 스웨덴 공주 본문

영국 이야기

영국 공주와 샬럿 원숭이, 스웨덴 공주

단 단 2015. 5. 9. 06:45

 



다음 대문에 영국에 관한 이야기가 떴길래 뭔고 하고 봤더니
☞ 원숭이 이름이 '샬럿' - 日 동물원에 항의 빗발쳐

 

제목만 보고는 고개를 갸우뚱. 영국인들이 이런 일로 타국에 항의를 할 리가 없기 때문이다. 기사를 읽어보니 아니나다를까, 영국인들이 항의했다는 게 아니라 일본 국민들이 항의했다는 것이었다. 얼마 지나지 않아 이런 기사가 다시 떴다.
☞ 공주 이름 딴 日 원숭이 이름 '샬럿' 그대로 쓰기로

 

영국 왕실 측에서 "동물에 이름을 붙이는 것은 전적으로 소유자의 자유이므로 노 프라블럼!" 해서 이름을 바꾸지 않고 그냥 샬럿이라 붙이기로 결정하였다고 한다. 동양과 서양의 사고방식 차이를 극명하게 느끼게 해주는 작은 소란이었다. 댓글 중에도 이를 외교적 결례나 무례로 보는 글들이 많다. 영국이 '복수'로 자국 동물원 원숭이에 일본 총리 이름을 붙여야 한다는 주장이 수두룩하다. 원숭이나 동물 따위는 하찮으므로 거기에 사람 이름을 붙이면 그 사람을 모욕하는 걸로 여긴다는 뜻이다.

 

동물을 끔찍히 사랑해 아침 뉴스에서도 동물 이야기가 반드시 한 꼭지를 차지해야 하는 영국에서는 동물에게 사람 이름 붙이는 것이 아무 문제가 되지 않는다. 고양이 이름이 '험프리', 암양 이름이 '에썰'이기도 한 나라이다. 개나 고양이가 여기서는 정말로 가족의 일원으로 여겨지기 때문에 친구가 자기 개한테 내 이름을 붙여주면 영국인들은 각별한 우정의 표시로 여길 게 분명하다.


동물원에서 새끼가 새로 태어나는 일은 어느 나라든 경사로 여길 텐데, 이런 경사에 남의 나라 경사를 갖다 붙여 같이 기념해준다는 것은 영국인들로서는 실로 고맙고 기분 좋은 일이 아닐 수 없다. 그런데도 일본이나 한국이나 이를 외교적 결례로 생각하는 사람이 많다는 것은 동양인들 머리 속에 '감히'와 '무엄'의 개념이 박혀 있다는 소리다. 하긴, 한국은 학술논문에서조차 "임금님이 드시던" 하는 나라이니. 북유럽이나 영국같이 왕실이 있는 유럽 국가들은 자기네 왕실을 아끼고 사랑은 하지만 받들어 모셔야 할 사람들로 여기지는 않는다. 70, 80년대를 주름 잡았던 영국의 저 '리벨리어스'한 록밴드는 이름이 <퀸>이었다는 사실을 상기하자. 제재 받지 않고 활동 잘만 했다.


비슷한 맥락의 일이 근래 또 하나 있었는데, 얼마 전에 개봉했던 영국 영화 <킹스맨Kingsman>의 스웨덴 공주를 두고 벌어진 한국 댓글러들의 성토였다. "자국 공주도 아닌 남의 나라 공주를 이렇게 그려도 되는 건가?", "심하다.", "언짢다.", "스웨덴 사람들 기분 나빴겠다."

 

스웨덴 사람들 붙들고 한번 물어보라. 그거 기분 나쁘게 생각할 사람 있는지. 오히려 자국 공주의 인기가 더 높아졌으면 높아졌지, 그게 어째서 '디스'로 읽히나. 영국의 로얄 패밀리들은 일찌감치 악당의 설득에 넘어가고 스웨덴 공주는 제대로 정신 박혀 끝까지 꼿꼿이 저항하는 걸로 그려지는데, 영화를 어떻게 읽으면 그걸 무엄한 외교적 결례로 해석할 수가 있나. (나는 그 대목이 가장 재미있었구만.) 왕실에 대한 유럽인들의 태도와 성 의식을 잘 모르고 하는 소리들이다. 유럽 중에서도 스칸디나비아 사람들의 성 의식은 우리와 특히 많이 다르다고 한다. 개방적이어서 오히려 더 건강하다고나 할까. '성에 갇힌 공주'는 더이상 예전처럼 수동적이지 않다. 문 열어줄 사람을 앞에 두고 공주는 지금 꾀를 내어 협상을 하고 있는 것이다. 덧붙여, 주인공은 영화의 백미인 저 최후의 대결에서 여성과, 그것도 장애인 여성과 겨룬다. 여성과 장애인에 대한 인식도 우리와 많이 다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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