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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국 색칠공부 책의 위엄 British Colouring Book 본문

영국 이야기

영국 색칠공부 책의 위엄 British Colouring Book

단 단 2015. 5. 20. 00:00

 

 

 

단단은 어릴 때 공부를 정말 열심히 했습니다.

일주일에 색칠'공부' 책을 한 권씩 뗄 정도로 열심히 공부를 했어요. (꽈당)
색칠공부하며 보낸 행복한 어린 시절도 다 잊고 정신없이 지내고 있었는데,
어제 수퍼마켓에 장보러 갔다가 뙇,
이런 것을 발견했습니다.

 

 

 

 

 

 

 

 

 

 
허억,
표지 보고 눈이 휘둥그레. 
요즘은 색칠공부가 이렇게 나오나 보죠?
한 권 냅다 집어왔습니다. 내용을 몇 장 들여다보도록 하지요.

 

 

 

 

 

 

 

 

 

 

 

 

 

 

 

 

 



으음...
아무래도 72색 더웬트Derwent 색연필을 한 상자 사야 할 듯합니다.
집에 있는 12색으로는 턱도 없겠어요.
제가 칠하기엔 이제 눈이 어른어른 침침하니 가족 모임 때
조카들 한 놈씩 붙잡아다 색칠해 보라고 해야겠습니다.

색칠 예

 

영국인들은 어릴 때부터 들에 나가 ☞ 이런 걸 보거나,
실내에서 ☞ 이런 걸 보거나,
교회 가서 ☞ 이런 걸 보고 자라서
이런 '정신 사납지만 아름다운' 색칠공부를 하는 게 아닐까요?

 

 

 

 

 

 

 

 

 

 

 

 

 영국 도자기 회사들의 화려한 손채색 동물들과 꽃그림 접시들도 '갑툭튀'가 아닌 것이다.

 

 

 

 

 

 

 

 

지난 가을에 충동 구매한 <캐쓰 키드슨> 가을 꽃가방.

정신 사나운 꽃무늬에 일가견 있는 영국 디자이너들.

 

 

 

 

 

 

 

 

우리 동네 어느 집 앞마당.

메도우를 그대로 옮겨놓은 듯 알록달록.

"안 가꾼 것처럼 보이도록 정성껏 가꾸기"가

이들의 가드닝 모토다.

 

 

 

 

 

 

 

 자자자, 가드닝 할 때는 웰링턴 부츠도 색상별로 골라 신으세요.

 

 

 

 

 

 

 

 

 다음 달에 내 생일 있다.

 

 


한국 신문에서 아이 양육에 관한 신간 소개를 하나 읽었습니다. 아이들이 쓰는 장난감과 물건들을 논하면서 아이한테 주면 좋은 것과 나쁜 것을 어른들이 '감히' 구분해 놓은 책입니다. ☞ '색칠공부' 책, 당신의 아이를 망칠 수 있다

 

이 책에서 저자들은 색칠공부 책을 "아이를 망치는 물건"으로 분류하고 있습니다. 네에, 일주일에 한 권씩 색칠공부 책을 뗐던 단단 어린이는 잘도 망쳐져서 커서 이렇게 멀쩡히 잘 살고 있습니다. 이미 그려진 그림 안에 색을 채워 넣는 건 뭐 아무 생각 없이 쉽게 할 수 있는 일이랍니까? 수많은 색 중 어느 한 색을 골라 이미 칠한 색과 조화시키고 대비시키는 건 뭐 시간만 때우고 앉아 있으면 거저 된답니까? 이런 주장을 하는 사람들은 백지에 새로 그림 그리는 것만이 창의적인 일이고 채색이나 배색을 고민하는 건 창의력과 상관없다고 보는 거죠. 사람 얼굴은 그저 (백인) 살색 하나로, 머리카락은 까만색 하나로, 나뭇잎은 초록 하나만 칠하고 자란 아이라면 커서 이런 주장을 할 수 있을지도 모르겠습니다. 정확히 말하자면, 사람 얼굴은 백인 살색 하나로 칠하고, 머리카락은 까만색으로만 칠하고, 나뭇잎은 초록색으로 칠하라고 가르치는, 예술성이라곤 눈곱만큼도 없는 어른들 밑에서 자란 거지요. 저는 색칠공부 하느라 손에 늘 색연필이나 크레용을 쥐고 있는 아이가 백지에 자기 그림 그릴 확률도 다른 아이보다 더 높을 거라고 봅니다. 제가 그랬거든요. 색칠공부 하면서 제 그림도 많이 그렸어요. 아이가 색칠공부 책에 있는 그림을 모방하려 들기 때문에 창의력이 자라지 못할 거라는 우려는 순 학자들의 기우입니다. 예술가들은 오히려 학습 시기의 부지런한 모방을 권장하지요. 유럽의 미술관들 가 보세요. 바닥에 퍼질러 앉아 원작 따라 그리고 있는 학생들 수두룩합니다.

 

제가 미취학 아동일 때의 일입니다. 친구 집에서 친구와 둘이 색칠공부를 하고 있는데 친구 엄마가 오셔서 제가 칠한 걸 스윽 들여다보시더니 이런 말씀을 하십니다. "아이구, 잘못 칠했네. 나뭇잎을 초록색으로, 나무 기둥을 밤색으로 칠해야 하는데 거꾸로 칠했잖니. 하하하."


뭐라구요?
난 분명히 초록색 기둥과 갈색 잎의 나무를 본 적이 있는데?

 

 

 

 

 

 

 



얼마나 억울했으면 국민학교도 입학하기 전에 있었던 까마득히 먼 옛날의 일을 단단이 아직도 기억을 할까요? 피카소 전 보고 온 제 조카한테 "재미있었니?" 물었더니 "얼굴 색이 알록달록한 게 가장 재밌었어요!" 합니다. 색칠공부가 아이의 창의성을 죽이는 게 아니라 색칠공부 하고 있는 아이를 지도하려 드는 어른이 아이의 창의성을 망치는 겁니다. 그 어른이 '이건 아이한테 주면 좋은 물건', '이건 나쁜 물건'을 가르고 있는 것이고요. 그리고 색칠놀이도 아니고 색칠'공부'는 또 뭡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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