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loudspotter

리우 올림픽 중계를 보면서 본문

영국 이야기

리우 올림픽 중계를 보면서

단 단 2016. 8. 20. 00:00

 

 BBC의 리우 올림픽 중계 홍보 영상.

 

 

 

여자 다이빙에서 금메달 딴 15세 중국 소녀Ren Qian의 경기 보셨습니까?

예술입니다, 예술. 

 

레슬링에서 금메달 딴 일본 처자Risako Kawai가 기쁨에 겨워 아버지뻘 되는 코치를 두 번이나 집어던진 뒤 목마 태우는 거 보고는 껄껄. 전세계가 웃으며 축하해 주었죠.


테니스 남자 결승전을 보면서 메달을 따기까지 선수가 가장 오랜 시간 고생해야 하는 종목은 테니스가 아닐까 생각했습니다.  


올림픽 종목 중 가장 멋져 보이는 것 두 개를 꼽으라고 하면, 저는 펜싱과 승마를 꼽겠습니다. (귀족적인 스포츠를 좋아하는 듯?) 

 

어둠 속에서 하얗게 빛나는 복면의 펜싱 선수들을 보면 오싹하기도spooky 하고, 초현실적surreal으로 보이기도 하고, 공상과학스럽기도 하고, 하여튼 뭔가 멋집니다. 한 팔은 앞으로, 한 팔은 뒤로, 다리 하나는 굽히고, 한 다리는 뒤로 쭉 빼고. 포즈는 또 왜 그리 멋져 보이는지. 


승마는 '조신한 말dressage'보다는 장애물 뛰어넘는 '팔팔한 말show jumping' 보는 것이 아슬아슬하면서 호쾌하고 더 근사해 보이더라고요. 이번에 58세의 영국 아저씨Nick Skelton가 이 종목 개인 부문에서 금메달을 땄는데요, 승마라 하니 왠지 귀족들 한가한 신선놀음처럼 보이지만 이게 결코 만만한 운동이 아니라는 거. 이 아저씨가 금메달을 따기까지 목뼈 두 군데 부러져, 어깨뼈도 부러져, 다리뼈도 부러져, 골반 관절도 교체해, 하여간 부상 참 많이도 입고 말도 못 하게 고생해 가며 연습했다고 합니다. 선수는 멀쩡해도 같이 뛰어야 할 말이 탈나서 대회 참가가 무산되는 일도 흔하고요. 승마는 인간 외의 생명체가 참가하는 유일한 종목이라는 점에서 특별합니다. 올림픽 기간 중 뜬금없이 인간과 동물간의 교감을 볼 수 있는 유일한 순간이라 많은 생각을 하게 합니다. 그래서 시상식에도 동고동락 함께 애쓴 말 선수가 인간 선수와 같이 입장해 영광을 나누죠. 말 못 하는 동물이라서 더 애틋하고요. 남녀와 노소를 구분하지 않고 치를 수 있는 유일한 종목이라는 점도 마음에 듭니다. 


영국은 메달 딴 선수들한테 포상금이나 연금을 일절 지급하지 않습니다. 영국의 운동 선수들이 '숭고'해 보이는 이유
는 바로 이 때문이죠. 

☞ 영국은 왜 금메달 포상금이 없나

 

대신 국제대회나 올림픽에 출전하기까지 정부가 지원을 잘 해줍니다. '상 탄 놈만 돈 준다'가 아니라 '준비 잘 할 수 있도록 도와줄 테니 메달을 따든 말든 한번 힘껏 해 봐라'인 건데, 이게 훨씬 낫지 않나요? 영국이 이번에 성적이 아주 좋아서 한국 언론들도 언급을 하고 있죠. 그런데 싸이클 이야기만 해대니 마치 돈 잔뜩 들인 특정 종목만 잘하는 것처럼 생각하는 한국인이 많아요. 


영국이 지금까지 메달을 획득한 종목 수는 무려 19개나 됩니다. 참가국 중 가장 많은 종목에서 금메달을 땄고요[15개 종목]. 골고루 잘한다는 소리입니다. 

 

영국은 다른 선진국들과 마찬가지로 엘리트 스포츠뿐 아니라 생활체육 저변도 넓은 나라입니다. 엘리트 스포츠 선수들 보고 자극 받은 아이들이 운동을 시작하고, 많은 아이들이 운동을 하고 있으니 좋은 선수 뽑기 좋고, 서로 좋은 형국입니다. 게다가 무상의료 시행국이니 국민들이 행여 운동하다 다쳐도 병원비 걱정을 하지 않아도 되죠. 저는 이게 제일 부러워요.

 

영국에서는 왕족이나 귀족들도 땀 흘려가며 운동하는 것을 미덕으로 여기는 전통이 있습니다. 명문 사립학교 '도련님', '아가씨'들도 그래서 열심히 운동합니다. 여왕의 딸인 앤 공주도, 여왕의 손녀인 앤 공주의 딸도, 올림픽 국가대표 선수에 메달리스트였습니다. 케이트 왕세손비도 운동 잘합니다.

 

축구, 하키, 럭비, 골프, 탁구, 테니스, 수구, 복싱, 해머 던지기, 투포환, 높이뛰기 등 근현대 스포츠 종목 중 상당수가 영국에서 나왔습니다. 

 

영국은 또 스포츠 과학 수준도 높습니다. 정부가 단지 돈다발이나 툭 던져 주며 "어디 잘해 봐라"만 하는 게 아녜요. 싸이클 선수들 엉덩이 통증을 완화하기 위한 최적의 자전거 안장 각도, 속도를 더 내기 위한 바퀴의 재질과 형태와 무게, 선수들 헬멧과 유니폼, 양말 등, 자전거에서부터 사소한 착장에 이르기까지, 스포츠 과학 전문가들과 의사들을 총동원해 꼼꼼히 개선해 나가고 있고 이 종목의 기술 견인차 역할을 하고 있다는데, 심지어 여자 선수들의 아래 은밀한 부위의 안녕까지 염려해 'friction' 전문가들을 써서 "땀 흡수를 방해하고 마찰로부터 피부를 보호할 수 없으므로 비키니 왁싱은 하지 않는 게 좋다"라는 지침까지 다 내놓는답니다. 무서운 나라예요. 끌끌. 


영국의 여자 하키 선수들이 금메달 따고 신나서 팔짝팔짝 뛰는 모습을 보고는 오랜만에 포니 테일이 참 발랄하고 사랑스럽다는 생각이 들었었습니다. 아아, 나도 포니 테일 하던 20대 때는 다쓰베이더가 '꽁지' 쓰다듬으며 몹시 예뻐해 줬었는데. 머리숱이 이제는 반으로 줄어 그 맛이 안 날 겁니다. 흑.

 

참, 리듬체조와 싱크로나이즈 말입니다. 이거 여자들만 할 수 있는 단 두 개의 올림픽 종목이라는 사실, 알고 계셨습니까? 저는 이 두 종목 중계 볼 때마다 의아한 게 뭐냐면요, 이것들이 좀 힘든 운동이냔 말이죠, 그런데 그토록 힘들고 숨찬 운동 하는 선수들에게 왜 힘 하나도 안 드는 척, 시종일관 방글방글 웃고 있으라는 걸까요? 몸과 마음 가다듬고 최대한 정신을 집중해도 될까말까한 상황인데요. "자고로 여자는 어떤 상황에서도 웃어야 하는 법." 뭐 이런 걸까요? 바비들이 늘 웃고 있는 것처럼? 아까 곤봉 놓친 것 때문에 속으로는 울고 싶을 텐데, 물 속을 꼬륵꼬륵 왔다 갔다 해야 하니 숨 쉬기도 벅찰 텐데. 남자 선수들이 땀 뻘뻘 흘리는 힘든 경기 하면서 관중 생각해 활짝 웃어야 한다는 지침 있다는 소린 내 못 들어 봤습니다. 


피지와 싱가포르가 최초로 금메달을 획득해 온 국민이 기뻐했다는 소식에 저도 기뻤습니다.  

 

 

 

 

 

 

 

에... 이건 비밀인데, 단단은 아직도 메달 쵸콜렛

동전 쵸콜렛을 돈 주고 사 먹는다는 사실.

 

 

 

댓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