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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식과 세계 음식

미쉐린 가이드 서울 2017 발표를 보고

단 단 2016. 11. 11. 00:00

 

 

 

 

 (반말 주의)

 

 

궁금해서 별 두 개, 세 개 받은 한식당들 방문기를 찾아서 찬찬히 봤는데, 양식 어법과 재료에 너무 의존하지 않고 한국스럽게 잘 내던데? 잘하는 집 제대로 잘 뽑았구만, 뭘. 


그런데도 미슐랑 하면 다짜고짜 "니들이 우리 음식에 대해 뭘 알아?" 하면서 화부터 내는 한국인이 왜 그리 많냐. 내가 좋아하는 해장국집 안 뽑아 줘서?

 
☞ [SBS] 미슐랭 별 딴 한식 - 홍보 기회 vs 외국인 입맛

☞ (댓글들이 가관)

 

 

 

 

 

 



이건 ☞ 허영만 화백 "내가 뽑은 최고의 한식 미슐랭은 감동 담긴 백반" 기사에 달린 댓글 일부. (왼손 마우스질이라 글씨가 저 모양.)

 

한 나라의 식문화를 외국에 퍼뜨리는 건 통념과는 달리 드라마, 영화, 만화 같은 문화 콘텐츠가 아니라, 그 나라에 체류했다가 돌아간 방문객들, 즉, 여행자, 주재원, 출장 왔던 자, 유학 왔다 귀국한 자와 같은 인적 자원이다. 스코틀랜드에서 현재 가장 인기 있는 외국 음식은 멕시코 음식인데, 이게 스코틀랜드가 본선에 진출했던 1986년 멕시코 월드컵 때 응원하러 멕시코에 우르르 몰려 갔다가 거기 음식에 맛들여서 돌아 온 축구 팬들 때문이다. 중국 유학생들이 여기서 공부 마치고 돌아가 풀 잉글리쉬 브렉퍼스트를 그렇게들 찾는다고 하잖나. 차 생산 대국이 영국 브랜드 홍차를 역수입하고 있다질 않나. 그러니 외국에 한식 들고 나가서 힘겹게 외판할 생각말고 한국에 오는 손님들이나 잘 멕여서 돌려 보내는 게 순서인 것이다. 댓글 단 이의 생각과는 반대로 한식을 보급하는 데는 한국산 문화 콘텐츠보다 미슐랑 가이드의 위력이 훨씬 클걸.

 

내 개인적인 취향으로는 '모던 프렌치' 스타일의 한식은 별로다. 맛은 어떨지 몰라도 일단 눈으로 봤을 때. 일식 가이세키처럼 담아 내는 집도 마찬가지.

 

뉴욕의 <정식당>은 내가 예전에 봤을 때는 모던 프렌치 스타일이었는데, 최근 한국 <정식당> 방문기들을 보니 미슐랑 가이드 서울판을 의식해서인지 스타일이 좀 더 한국스럽게 바뀌었더라고. 뉴욕 <정식당>에서 '로얄 비빔밥'이라고 이름 붙인 호화로운 비빔밥을 선보이고 있는데, 본 사람? 밥 위를 블랙 트러플로 빼곡이 덮은 걸 보고는 실소를 금할 수 없었다. 트러플이 맛있는 버섯인 것도 알고, 한식에도 서양 식재료는 얼마든지 쓸 수 있지만, 트러플을 올려 고급화하겠다는 발상은 너무 진부하지 않니. 한국이나 중국에서는 통할지 모르겠다만.


영국 살면서 재미있다고 생각하는 점 하나는 뭐냐면, 나는 여기 사람들이 먹는 버섯이 신기해 죽겠는데 (cep, morel, black trumpet, chanterelle, 커다란 portobello 등) 여기 사람들은 우리가 한국에서 흔히 먹던 버섯들을 보고 그렇게 신기해하면서 좋아한다는 것이다. "오, 익죠틱한 동양의 버섯!" 느타리, 팽이버섯 보고도 어찌나 신기해하는지. 동충하초 보면 놀라 자빠지것네, 아주. (동충하초는 내가 봐도 신기하긴 하다.)

 

그러니 <정식당>이 '로얄 비빔밥' 위에 블랙 트러플을 깎아서 수북이 올린 걸 보고는 실망도 그런 실망이 없었다는 거지. 서양에 잘 안 알려진 우리 버섯을 올려 냈으면 서양인들이 오히려 더 흥미로워했을 텐데. 트러플은 영국 땅에서도 난다. 유럽 여기저기서 다 난다. 미국에서도 나고, 호주에서도 난다. 수확량이 적어 값이 비싸서 그렇지, 너도나도 떠들어 대고 여기서는 중급 이상 식당 가면 상품上品이든 하품이든 다들 뿌려서 내기 때문에 트러플이 주는 이미지가 생각만큼 '와우 팩터'가 있다거나 '럭셔리'하지가 않다. 갈아 넣어서 안 보이게 맛을 내는 경우도 많고.


다소 국뽕스럽긴 하다만 "가장 한국적인 것이 가장 세계적이다."라는 표어가 한국 문화·예술계에 돈 적이 있었다. 이거 유학중인 예술 전공자들과 요리사들은 무슨 뜻인지 잘 알 것이다. 예술가로서의 정체성에 대해 좀 더 천착하다 보면 국악인 이자람씨의 "가장 나다운 것이 가장 세계적인 것이다."라는 말이 더 고차원적이라는 것도 알게 될 테고. 서양인들, 생각보다 동양 음식에 대해 무지하지 않다. 영국에서 인기 투표로 뽑는 식당 목록을 보면, 런던의 땅값 비싼 '포쉬'한 동네에 들어선 ☞ 서양식으로 타락한 세련된 한식집은 인기 없어 못 뽑혔고, 지방에 있는 ☞ 작고 소박하나 지극히 한국적인 한식집은 뽑혔다.

 

 

별 두 개를 받은 <곳간>은 '정성 들여 많이 차려야 한다'는 한국적 고질이 보인다. 자잘한 게 상 위에 너무 많이 올라 오니 정성을 느끼기 이전에 조잡하다는 느낌이 먼저 든다. 상 위에 올라오는 것들을 다 합치면 내 식사량으로는 한 네 끼 분량쯤 되는 것 같다. 이 집은 가짓수를 정리하고 몇 가지를 좀 더 인상적으로 보이게 할 필요가 있다.


별 두 개를 받은 <권숙수> 역시 <곳간>과 비슷한 구성으로 내는데, 이 집은 일단 그릇과 담음새plating를 개선해야 할 것 같다. 음식들은 두 집 다 맛있어 보인다.


그런데, 한식은 반찬 문화에 인이 박여 어쩔 수가 없는 걸까? 한입거리 음식들과 작은 그릇에 반찬처럼 딱 한 가지 요소만 담은 자잘한 것들이 시종일관 이어지니 가짓수, 그릇 수만 많고 좀 답답한 느낌이 든다. 이런 식이면 품만 잔뜩 들고 인상적인 '시그너춰 디쉬' 선보이기가 쉽지 않겠다는 생각이 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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