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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장 좋아하는 한국 생선 - 갈치 본문

한식과 세계 음식

가장 좋아하는 한국 생선 - 갈치

단 단 2017. 6. 21. 22:34

 

 

다쓰베이더가 지진 갈치

 

 

한국. 
일인당 수산물 섭취량 세계 1위. 
[2013~2015년 한국인 1인당 연 평균 58.4kg 소비]
[유엔 식량농업기구(FAO) 통계]
게다가 놀라울 정도로 다양한 종류의 해산물을 먹죠. 
☞ 개불도 다 먹잖아요. 으악 ㅋㅋ 

영국은 섬나라인데도 반도국가인 우리 한국보다 해산물을 덜 다양하게 먹습
니다. 사방이 목초지라서 예로부터 고기가 '펑펑', 해산물에 너무 의존하지 않아도 됐거든요. 그래서 피쉬 앤 칩스의 나라이면서 동시에 로스트 비프의 나라로 회자되는 거지요. (영국의 음식사학자들은 영국을 양고기의 나라로 보는 것이 더 타당하다고 주장하기도 합니다. 이것도 맞는 말입니다.) 당장 양국의 수퍼마켓에서 살 수 있는 생선 가짓수를 비교해 봐도 차이가 확연히 납니다.

 

한국인들은 생물과 더불어 자반, 건조 생선, 반건조 생선을 많이 먹고, 영국인들은 생물과 훈제 생선을 많이 먹습니다. 그래서 영국에 있는 동안은 훈제 생선을 한껏 즐기다 왔지요. 외국 살 때는 구하기 어려운 한국 식품 찾느라 고생하지 말고 그 나라가 잘하는 걸 즐기다 오는 게 현명합니다. 마찬가지로, 한국에 온 뒤로는 아쉽지만 맛있는 훈제 생선 찾는 일은 포기했습니다. 대신 싱싱한 생물 사다가 잘 구워 먹기로 마음을 굳혔는데, 가장 좋아했던 생선인 갈치가 그리워 마트와 백화점 가서 어물전을 기웃거리다가 가격표 보고 '깜놀'.

 

 

 

 

 

 

 

 

 

갈치 다섯 토막 한 마리가 무려 4만 5천원.

갈치가 이렇게 비싼 생선이었나요? 어리둥절

갈치 좋아하시는 우리 권여사님도 비싸서 못 사 드신다고 합니다. 정말 큰 마음 먹고 모녀가 하나씩 샀죠. 

 

 

 

 

 

 

 

 

얼음팩에 좀 눌리긴 했으나 실하고 잘생겼습니다. 이 말씀 드리면 다들 놀라실 텐데, 저는 이 나이가 되도록 갈치를 직접 조리해 본 적이 없습니다. 제 손으로 사 본 적도 없어요. 결혼 전에는 항상 엄마가 구워 주셨고, 결혼한 뒤에는 늘 밖에서 사 먹었기 때문에 갈치는 구워 본 적도, 조려 본 적도 없고, 값이 어떻게 변해 왔는지도 모릅니다. 엄마가 차장수 확성기 소리 듣고 나가셔서 한 마리에 2천 5백원 주고 검은 비닐 봉지에 담아 오신 장면만 기억 납니다. 몇 년도였는지는 기억 안 나고요.  

 

비싼 생선을 앞에 놓고는 다쓰 부처 둘 다 어떻게 하면 잘 구울까 고심, 살살 녹는 섬세한 식감의 고소한 생선이니 최대한 제 맛을 살려 조리하기로 결심했습니다. 향을 맡아 보는데 비린내라고는 눈곱만큼도 안 납니다. 향긋한 바다 내음이 희미하게 나네요. 그렇죠, 신선한 생선에서는 비린내가 나지 않죠. 생선 비린내 빼는 선작업 한다고 우리 한국인들 얼마나 애씁니까. 그런데 그게 신선하지 않은 생선이기 때문이라는 사실을 아는 사람이 많지 않아요.

 

 

 

 

 

 

 

 

손질

 

비싼 생선이니 자기가 손질하고 굽겠다고 다쓰베이더가 욕심을 내길래 그러라고 했습니다. 갈치 표면의 은빛 분말에 복통과 두드러기를 일으키는 구아guanine 성분이 많다고 해 칼과 키친 타월을 써서 살살 벗겨 냈습니다. (익혀 먹을 때는 크게 문제가 되지 않는다고 합니다.) 얇은 회색 막도 함께 벗겨 내야 지졌을 때 색이 칙칙하지 않습니다. 흐르는 물에 가볍게 씻은 뒤 키친 타월로 물기를 말끔히 제거했습니다. 그랬더니 자개 같은 화사한 연분홍 광택의 물결 무늬 살결이 드러납니다. 각도를 이리저리 바꿀 때마다 빛이 달라집니다. 어찌나 황홀하던지. 갈치야, '펄' 화장 벗긴 맨 살은 더 예쁘구나.

 

 

훌륭한 생선이므로 소금과 기름만 써서

 

밀가루나 카레 가루는 쓰지 않고 조리하기 바로 직전에 후추 없이 소금만 뿌려 향 적은 기름에 지졌습니다. 소금은 영국에서 가져 온 '몰든 바다소금Maldon sea salt flakes'를 썼습니다. (귀국해서 보니 백화점들이 팔고 있더군요. 좋은 건 어떻게 알아가지고.) 소금을 미리 쳐 두면 살이 단단해지고 살에서 물이 빠져 나와 겉이 바삭하게 지져지질 않습니다. 

 

 

잘 지지기

 

불은 중불을 썼습니다. 불이 너무 세면 속까지 채 익기 전에 생선살이 말리거curl 갈라지고, 불이 약하면 바삭한 표면을 만들기 힘들어집니다. 지짐판frying pan은 논-스틱 코팅 팬을 쓰는 게 좋은데, 스테인레스 스틸 팬은 예열을 아무리 잘 해도 결국에는 살이 뜯기거나 바닥이 지저분해지므로 미슐랑 스타 셰프들도 생선을 지질 때는 스테인레스 스틸 팬을 쓰지 않습니다. 아니면, 스테인레스 스틸 팬에 요즘 마트마다 팔고 있는 지짐판용 실리콘 처리 유산지를 깔아서 써도 좋고요.  

 

생선을 기름 두른 지짐판에 익힐 때는 보여 줘야 할 면을 먼저 지지는 게 좋습니다. 탄 찌꺼기가 없는 상태일 때 지진 면이 아무래도 깔끔하게 보이거든요. 큰 원칙은 '껍질 벗긴 쪽을 나중에 지지기skinned side up', 즉, '껍질 붙어 있는 쪽을 먼저 지지기skin side down' 혹은 '보여 줘야 할 면을 먼저 지지기presentation side down'인데, 갈치의 경우는 포fillet를 뜬 게 아닌 뼈째 친 토막인데다 양쪽 모두 은빛 분과 회색 막을 벗겨 냈으므로 어느 쪽이든 상관없이 먼저 지지면 됩니다.

 

생선을 지짐판에 올리고 나서는 손으로 생선 윗면을 약 20초간 지그시 눌러 지짐판에 생선살이 최대한 밀착되게 해주면 노릇노릇 먹음직스러운 구운 색을 고르게 낼 수 있습니다. 익어가는 갈치 단면을 눈으로 잘 관찰하고 있다가 딱 한 번만 뒤집는 게 좋고요. 두께와 크기가 다 다르므로 시간이 걸려도 한토막 한토막 따로 지져 먹었습니다. 맛이 뛰어나면서 값도 비싼 생선이니 그에 걸맞는 극진한 대우를 해줄 필요가 있습니다. 두께가 두껍지 않은데다 껍질을 벗겼으므로 칼집은 꼭 내지 않아도 되나, 사이사이에 소금 결정flakes을 박아 속까지 간이 배도록 하고 동시에 완전히 녹지 않은 소금 결정을 씹었을 때 경쾌한 식감이 나도록 했습니다. 일자로 칼집을 냈으나 자체 결에 의해 아래와 같이 의도치 않은 아름다운 물결 무늬가 나게 되었습니다.   

 

 

 

 

 

 

 

 

다 지졌습니다. 

그러니까, 이 한 토막에 재료 값만 약 만원이 든 셈입니다.

시식.

 

아우, 맛있쩌.

>_<

 

겉은 바삭 찐득, 속은 촉촉, 가끔씩 씹히는 소금 결정의 경쾌한 식감. 한국식으로 껍질째 너무 바싹 익히지 않고 영국식으로 껍질 벗겨 지지니 더 고소하고 맛있어요. 저는 갈치가 한국 생선 중 가장 맛있어요. 그런데 이렇게 비싸서 어쩝니까. 내년 생일 때나 또 큰 맘 먹고 사야지요. 흑흑.


밥도 반찬도 없이 갈치만 먹었다고 그 날 저녁 권여사님께 한소리 들었습니다.

 

"뭬야? 그 비싼 걸 밥도 없이 한 끼에 다 먹어 치웠다고?! 아껴 먹지 않고서?"

 

아니? 

이 훌륭한 생선을 왜 간 세게 해서 들척지근한 밥 따위와 함께 먹습니까? 아깝게스리. 요리로 격상시켜 단독으로 먹어야지요.

 

권여사님은 귀한 생선이므로 아껴 먹어야 갈치에 예우를 다하는 거라고 철석같이 믿으시고, 단단은 귀한 생선이므로 싱싱하고 상태 좋을 때 빨리 맛있게 다 먹어 주는 게 갈치에 대한 예의라고 믿는 거죠. 세대 차이일까요?  

 

 


☞ 국민생선이었던 갈치의 이모저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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