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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국 이야기

식품 포장과 디자인 강국

단 단 2018. 9. 13. 00:13

 

 

 진라면 30주년 스페셜 에디션

 



한국은 디자인 강국일까요, 아닐까요?
독자 여러분, 어떻게 생각하십니까.


저는 한국을 '인재는 많은데 멍석을 당최 안 깔아주는 호러블·테러블·미저러블한 나라'로 정의하고 싶습니다. 경제력이 이렇게 높은 나라가 디자인에 이렇게 무심할 수가 없어요. 식당 간판이고 메뉴고, 식품 포장이고, 지자체 현수막이고 뭐고, 아주 그냥 눈이 썩는 것 같아요. 그런데 예술에 관심 있는 체하려고 벌이는 짓들도 가관이에요. 오늘 본 한심천만한 식품업계 소식을 하나 걸어 봅니다. ☞ 30주년 오뚜기 진라면 '호안 미로 스페셜 에디션' 선보여

 

기사에 이런 대목이 있습니다:
"오뚜기 관계자는 '호안 미로와 함께하는 진라면의 새로운 변화와 도전을 통해 오뚜기 진라면의 브랜드 가치를 높일 수 있을 것'이라고 자신했다."


브랜드 가치 높이기 차암 쉽네요. 한국이 디자인 후진국이라는 사실이 이런 데서 드러나죠. 신진 디자이너들의 등용문이 돼 줄 생각은 않고 그저 누구나 다 아는 이미 유명해진 것 가져다 자기 가치 높이려 들기. 제가 한국의 가공치즈 글에서도 비슷한 이야기를 했습니다. ☞ 우리나라 치즈 업계의 행태

"새로운 변화와 도전"은 개뿔.

 

영국에 살다 왔으니 영국 이야기를 해볼게요. 다른 나라들에도 영국과 같은 예가 많을 텐데 제가 직접 살아 보질 않아서 잘 모르니 잘 아는 영국에 대해서만 이야기해 봅니다.

 

 

 

 

 

 

 


 수퍼마켓 체인 <막스 앤 스펜서>

창립 125주년 기념 자사상표 모둠 비스킷 틴.
자국의 젊은 디자이너에게 의뢰.

Sanna Anukka의 작품 세계

 

 

 

 

 

 

 


 단단도 소장하고 있는 <막스 앤 스펜서>의

크리스마스 모둠 비스킷 틴. 북 일러스트레이터에게 의뢰.
☞ Stuart Kolakovic의 작품 세계

 

 

 

 

 

 

 


<막스 앤 스펜서>가 자사상표 모둠 비스킷 틴을 위해

자국의 '두들doodle' 일러스트레이터Kate Wilson에게 의뢰.
티타임에 걸맞는 다양한 두들이 돋을새김돼 있다.

 

 

 

 

 

 

 

 

 

 


수퍼마켓 체인 <웨이트로즈>가

자사상표 식품 포장을 위해

자국의 수채화 일러스트레이터Emma Dibben에게 의뢰.

 

 

 

 

 

 

 


 우리 집에도 이 양반 일러스트가 담긴

<웨이트로즈> 고객 사은품 치즈 대접시가 두 장 있는데,
실물 크기로 포도가 그려져 있어
치즈와 비스킷만 올려도

포도를 같이 올린 듯 풍성한 효과가 나 여간 재밌는 게 아냐.
수퍼마켓 갔다가 당첨돼

졸지에 작가 작품을 하나씩 소장하게 된 다쓰 부처,

느무 씐나 콧굼기가 발씸발씸.

 

 

 

 

 

 

 

 

 아티잔 비스킷 전문 회사 <토마스 퍼지> 사의 포장들.

디자인 전문 그룹에 의뢰.
빅토리아 시대 때 유행하던 채색 동판화풍으로 새로 작업.

비스킷에 들어간 부재료가 모티브.

 

 

 

 

 

 

 


 음료 포장은 또 왜 이리 예쁜 건데.

디자인 전문 그룹에 의뢰.
(이 회사의 무알콜 진저 비어와

엘더플라워 코디알을 즐겨 마셨었음.)

 

 

 

 

 

 

 

 


 단단이 주식 삼았던 <로다스> 클로티드 크림.

디자인 전문 그룹에 의뢰.
(종이 껍질이 하도 예뻐 귀국할 때 기념품으로 가져옴.)

 

 

 

 

 

 

 

 

 컬리그라퍼calligrapher에게 의뢰한 멋진 손글씨와

아프리카 전통 문양으로 가나산 코코 빈 쵸콜렛 포장.
☞ Alison Carmichael의 멋들어진 손글씨 세계

 

 

 

 

 

 

 


 엉뚱하면서 짓궂고 다소 외설적인naughty,

영국식 유머가 담긴 감자칩 포장들.
수퍼마켓 선반 앞에 서서 한참을 들여다보며 기글기글.

디자인 전문 그룹에 의뢰.

 

 

 

 

 

 

 

 

 

 

 

 

 

 

 

 

 

 

 

 

 

 


 <웨이트로즈> 수퍼마켓의

헤스톤 블루멘쏠 제품군 포장을 위한 일러스트들.
괴짜 셰프 이미지에 꼭 맞는 작풍을 가진 아티스트에게 의뢰.
☞ Bob Venables의 작품 세계

 

 

 

 

 

 

 

 

 

 자국의 페이퍼컷 아티스트에게 의뢰해 만든

<웨이트로즈>의 크리스마스 양념훈제연어와 민스파이 포장.
아예 2014년도의 자사상표 크리스마스 제품군을

전부 한 아티스트의 작품으로 깔맞춤.
☞ Isobel Barber의 작품 세계

 

 

 

 

 

 

 


 훈제연어 포장으로 더이상 적절할 수 없는 디자인.
목탄으로 오크oak tree의 나이테와 연기,

바닷물결을 감각적으로 표현.

 

 

 

 

 

 

 


 <웨이트로즈> 수퍼마켓이

자사 식품 소식지의 1면 새 보호 캠페인을 위해
자국의 페이퍼 아티스트에게 의뢰한 작품.

영국의 '귀요미' 가든 버드 블루 팃blue tit.
☞ Lisa Lloyd의 작품 세계

 



요약하자면, 영국의 식품업계에서는 현재 활동중인 자국의 젊은 아티스트에게 작품을 의뢰해 포장에 쓴다는 겁니다. 아니면 디자인 전문 그룹에 맡기든지요. 이로 인해 새 작품이 탄생하는 거죠. 그렇다고 식품 값이 비싸냐? 위에 올린 식품들 죄 영국인들 체감 물가로 1~3천원, 비싸봤자 1만원 안팎입니다. (1파운드를 1천원으로 계산하면 체감 물가가 얼추 맞아요.) 맛도 좋고 성분도 얼마나 좋은데요. 영국에서는 서민들도 큰돈 안 들이고 (비록 대량 생산품이긴 하나) 작가의 따끈따끈한 신작을 감상하거나 소장할 수 있다는 겁니다. 자고로 기업이란 이런 '공익스런' 정신이 좀 있어야 하는 거 아닙니까?


더 한심한 건 뭐냐면요,

 

 

 

 

 

 

 



아오...
이런 짓 좀 하지 말란 말입니다.
아이유가 제품 개발을 거들기를 했어, 포장 디자인을 하기를 했어. 식품 포장에 유명인 얼굴 박을 돈으로 성분 개선하고 맛낼 궁리나 더 하세요. "생크림 가득"이라고 크게 써 놓고는 뭔 식물성크림 9.4%, 유크림 0.3%래요?


더욱 끔찍한 것은,

 

 

 

 

 

 

 



으아악,
나는 요거트를 맛으로 먹는 사람인데 먹거리 포장에 제발 똥 얘기 좀 하지 말란 말입니다. 
<파스퇴르>, 저 버릇 아직도 못 고쳤네;;
영국 가기 전에도 포장에 꿈틀꿈틀 장 그림 그려 있는 것 보고 기겁을 했었는데.

포장에 빼곡이 혹은 큼직하게 효능 써재끼는 짓은 이제 그만.

식품 회사들이여, 대형 마트들이여, 아 쫌 디자인-컨셔스 할 순 없는 거요?


허나, 
한국의 식품 포장에서 연예인 얼굴 박기, 효능 읊기보다 더 짜증 나는 것이 있으니,

 

 

 

 

 

 

 



바로, 기만적인 문구 한가득인 포장.


성분:

(Lactic Butter)[유지방, 야자경화유, 무지유고형분](97.36%, 네덜란드산), 우유(국산), 정제소금 0.7%, 레시틴, 데히드로초산나트륨(합성보존료), 끝. (우유, 대두 함유)


끌끌, 버터pure butter에 누가 색소와 향료를 넣는다고. '유화제·방부제 有첨가'로 바꿔 써야 마땅한 것을.

 

게다가 저 97.36% 중 유지방은 얼마나 들었는지 알 길이 없어요. 싸구려 팜유로 희석시킨 가공버터 광고를 뭘 저렇게 거창하게 해댑니까. 그리고, 가정집에서 가공버터를 쓴다니요. 가공버터는 업소에서나 쓰는 거 아니었나요?

 

☞ 천편일률적 한국 버터, 한 업체가 거의 다 만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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