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loudspotter

남자 음식, 여자 음식, 아저씨 음식, 아가씨 음식 본문

잡생각

남자 음식, 여자 음식, 아저씨 음식, 아가씨 음식

단 단 2019. 1. 22. 03:26

 

 

성별이나 연령에 따라 선호하는 음식이 달라질 수 있을까?

곰곰...... 

 

그럴 수 있을 것 같다.


영국에서는 고기와 매운 음식을 '남자의 음식'으로 여기는 경향이 있다. 금요일 저녁이면 남정들이 커리집에 몰려가 누가 더 매운 커리를 먹을 수 있냐로 내기하며 남자다움을 과시하기도 한다. 20세기 초 여성 참정권을 요구하며 거리로 뛰쳐나와 때리고 부수는 테러를 감행했던 과격하고 멋진 영국 언니야들은 육식은 기득권자 남성들의 것이라며 고기 맛있는 나라에서 기꺼이 채식주의로 전향하였다. 채식주의는 공장식 사육에 넌더리난 현대인의 도덕심에서 시작된 것이 아니다. 지금도 크리스마스 만찬상에서 칠면조구이나 거위구이의 해체는 그 집안의 나이 든 남자, 즉, 아빠가 맡는다. (조리는 엄마가 고생해서 했는데 왜 아빠가 다 한 척 공을 가로채?) 육식을 남성과 결부시키는 관습은 남자들이 사냥을 했던 역사에서 비롯되었을 것이다. 반면 '연약한' 아녀자들은 바구니 들고 쉬엄쉬엄 나물이나 열매 채집하는 이미지로 고착되었고. ('극한직업' 한국의 해녀는 암만 생각해도 신기허다.)


그런데 한국에서는 남녀 구분 없이 육식을 즐기는 것 같다. 특히, 길 가다 곱창·대창·막창 구이집과 닭발 파는 집 들여다보고 깜짝 놀랄 때가 많은데, 식당 안에 젊은 여성들이 버글버글, 어떤 땐 밖에 긴 줄까지 서 있다. 유심히 살피니 '슴슴'하게 삶은 고기를 편 썰어 파는 집에는 나이 든 남성들이, 내장 양념구이 집에는 젊은 여성들이 많이 보인다. 


그렇긴 해도 전반적으로는 여성이 남성에 비해 채소나 과일 같은 몸에 좋은 음식을 더 찾는다는 통계가 있으며, 여러 국가들에서 육식을 남성성과 연결시켜 생각하는 경향이 있다. 

 

[통계] 샐러드 토핑, 남성은 고기, 여성은 과일 선호

☞ [신간] 육식의 성정치

[연구] 여성은 데이트 상대에 매력 느끼면 건강식 고르고 남성은 비싼 음식 골라 

 

차이를 또 언급하자면,

영국이나 서양에는 남녀노소 관계없이 단 음식을 즐기는 문화가 있는데, 한국의 중장년 남성들은 단 음식을 썩 즐기지 않는다는 것이다. 이들은 마누라가 잔소리하기 전에는 과일도 잘 먹지 않는다. 맛있는 음식 보면 술부터 찾기나 하지. '디저트 카페' 같은 곳을 가면 젊은 여성들이 대부분이고 간혹 이들 손에 끌려온 남자친구들이 보일 뿐 아저씨는 보기 힘들다. 영국 티룸에는 아저씨, 할아버지들이 많이 앉아 있다. 털 숭숭 난 두툼한 손으로 작고 'fancy'한 티포크, 티나이프 집어 케이크 자르거나 스콘에 클로티드 크림과 잼 바르고 있는 광경을 보면 신기하기도 하고 흐뭇하기도 해 속으로 후후후. 수퍼마켓 냉장 디저트 코너에서 독거 남성 노인들이 식후 자기가 먹을 디저트를 손수 고심해서 고르고 있는 장면도 수두룩 목격한다. 


단단이 한국 아저씨를 상징하는 음식으로 꼽는 것은 국밥이다. 즐겨 찾는 식당 평가 블로그 중에 차분한 문장으로 할 말 다 하시는 현자 같은 신사분의 '혼밥' 기록기가 있는데, 이 분이 주로 사 드시는 음식을 살펴보면 대개 편 썬 고기를 곁들인 조촐한 (술)상 아니면 국밥이다. 이 분 때문에 '국밥 = 아저씨 음식'이라는 고정관념이 생겼다. 실제로, 젊은 남성이나 젊은 여성, 혹은 장년의 여성이 국밥집 혼자 찾아가 밥 훌훌 먹고 있는 모습은 보기 힘들지 않나. 


즐겨 찾는 미혼 아가씨 블로그도 있는데, 이 분 식당 방문기를 보면 또 '과연 아가씨들이 좋아할 만한 음식이구나.' 생각이 절로 든다. 일단 식당이 깔끔하고 음식이 보기 좋게 담겨 있으며, 반찬이 주렁주렁 딸려 나오는 한식 백반상은 드물고, 국밥은 정말 보기 힘들고, 대개 맛깔나 보이는 단품요리 아니면 뷔페. 식문화권 가리지 않고 다양하게 시도하며, 음료와 갸또gateau
도 주식사 못지 않게 중요하다. 

 

장년 여성과 중년, 노년 여성들이 즐기는 음식도 있을까? 

장년인 단단은 무얼 즐길까?

[여기서의 '장년'은 長年이 아니라 壯年. 고용·건강보험 기준에 따르면 만35세에서 49세까지.] 
가리는 음식이 많은 '초딩' 입맛이라서 내 입맛이 내 연령대 여성의 표준이라 하기에는 무리가 있으니 감안하시고, 


일단,

먹기 번거롭거나 식탁 위에서 조리해야 하는 식당은 배제. 

즉, 화로구이집과 전골집 배제.

(후우, 피곤하니 제발 조리해서 내줘요.)

시답잖은 밑반찬만 잔뜩 깔리는 질 떨어지는 한정식집 배제.

매운 음식, 간장에 담근 음식 배제.

국밥집 배제. 

(홀에 고기 누린내가 가득하거나 꼬질꼬질한 식당이 많아서.)

육지동물의 내장이나 생선 내장 배제. (비위가 약해서.)

생굴이나 회 같은 날음식 배제. (면역력이 약해서.)

그릇 후진 집 배제. (성격이 못돼서.)


중식당, 단품요리 일식당, 국숫집을 자주 가고, 한식은 깔끔하게 내는 집만 골라서 간다. 중식 좋아하시는 권여사님과는 63빌딩 <백리향 싱타이>를 즐겨 찾고, 친구들과 모일 때는 적색육 꺼리는 암환자와 밀가루 음식 꺼리는 이가 있어 <한일관>, <화니> 같은 한정식집을 간다. 거기 가 보면 맨 아줌마, 할머니들 천지다. 권여사님도 동년배 여성들과 모일 때는 대개 한정식집을 가신다고 한다. 장·중·노년 여성들이 왜 정갈하게 내는 한정식집을 좋아하냐면, 이건 단단의 분석인데,

 

1. 집에서 하는 반찬, 이런 영업집들은 어떻게 만들고 어떻게 내나 '벤치 마킹'하려고.

 

2. 남이 해주는 집밥을 먹는 것 같아 오늘 하루 '자유부인'이 된 듯해서. 

 

3. 무거운데다 고가라 집에서는 엄두도 못 내는 유기, 밖에 나와서라도 실컷 즐겨 보세.

 

그런 의미에서,

얼마 전 단단이 친구들과 함께 먹은 한정식 밥상의 김구이 프리젠테이션을 눈여겨보고 다들 집에서 따라해 보도록 하자. 한지로 옷고름을 만든 것이 앙증맞다. 잡채는 최소한의 재료만 넣었는데도 맛이 좋다.

 

여기서 또 배울 점. 

재료 이것저것 많이 넣는다고 음식이 비례해서 맛있어지는 건 아니라는 것. 이건 김밥, 비빔밥, 전골도 마찬가지다. ■ 

 

 

 

 

 

 

 


 깜찍하다. 그런데 초간장 같이 찍는 걸 잊었다.

 

 

 

 

 

 

 

 

센스 있다. 깍두기가 빨갛다면 김치는 저렇게 하얀 걸로

내야 조화롭지. 잡채는 동물성 재료 일절 없이

양파, 시금치, 목이버섯만 넣었는데도 맛이 좋다.

 

 

 

 

 

 

 

 

 외국인들이 한식 중 가장 싫어하는 것으로 '가시 생선'

을 꼽았다는데, 이해가 가고도 남는다. 맛은 좋다.

 

 

 

 

 

 

 

 

단단이 영국 가기 전에는 본 적이 없는 '바싹불고기'.

2010년대 들어 유행하기 시작한 모양이다.

 

 

 

 

 

 

 

낙지볶음. 어후, 너무 매워.

음식을 이렇게까지 맵게 할 이유가 있나.

단단은 한 젓가락 먹고 나가떨어짐.

먹성 좋은 친구들이 이 날 유일하게 남긴 음식.

 

 


장·중·노년 여성들이 세련된 한정식집을 선호하는 이유 추가

 

4. 뿌까 님의 분석 [↓댓글란]

양식이나 중식은 기름져서 소화가 안 돼 한식을 먹고 싶으나 찌개집, 백반집 같은 단출하게 내는 집은 빨리 먹고 일어나는 직장인들을 선호합니다. 고로, 눈치 안 보고 느긋하게 앉아 먹을 수 있는 한정식집행. 

 

5. 빈티지 매니아 님의 분석 [☞ 블로그 글 "외식"]

① 고기 굽고 자르기, 전골 조리 및 분배하기, 솥밥 누룽지 끓여 분배하기 등을 종업원이 해줘 여성들이 편해요.

② 노인들은 젊은이들 많은 식당에선 왠지 눈치가 보여 마음 편한 한정식집 가요.

 

 

 

'잡생각' 카테고리의 다른 글

턱이 떨꺽  (5) 2019.10.21
[안 본 사람 클릭 금지] 영화 기생충, 재미있었던 장면들  (6) 2019.06.06
오늘도 뿌옇네 집에서 운동해야겠다  (2) 2019.02.23
현자가 나타났다 Anti-Natalism  (11) 2019.02.08
지난 여름, 강아지풀  (0) 2018.11.17
웹툰 하나 보세요  (0) 2018.10.25
명절 산만 후기  (8) 2018.09.26
자이글의 역사  (8) 2018.07.13
댓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