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잡생각

[안 본 사람 클릭 금지] 영화 기생충, 재미있었던 장면들

단 단 2019. 6. 6. 07:40

 

 

 

 

단단은 어제 권여사님, 다쓰베이더와 함께 영화 <기생충>을 봤어요. 웃다가 손에 땀을 쥐다가 막 그랬어요. 우리 칠십 노모 권여사님이 알프레드 히치콕 감독의 영화를 좋아하셔서 어제 이 영화도 재밌어하며 보셨어요. 상영관 나오시면서 "상 받을 만하네!" 따봉 하셨어요. 집에 TV가 없어 한국 연예인을 잘 모르는 단단은 어제 영화에서 송강호씨 딱 한 명만 알아볼 수 있었는데, 것두 <공동경비구역 JSA>(2000)에서 본 게 마지막. 음냐. (어디 가면 간첩 취급 받음.)

영화 보신 분들,

우리 또 재밌었던 장면을 꼽아 봅시다.

나는 복숭아 씬이 최고 재밌었어요. 특히 싸모님이 계단 올라오면서 '각혈'하는 가정부 목격하는 대목 절정. 군사작전을 방불케 하는 가족들 움직임은 마치 타이트하게 잘 짜인 연극 같기도 하고, 훌륭한 안무의 무용 공연 같기도 하고, 만화 같기도 하고. 봉감독은 뮤지컬만 빼고 모든 장르의 영화를 다 좋아한다고 자기 입으로 말했는데, 다쓰 부처가 볼 땐 영화에 오페라나 뮤지컬적 요소가 충만했어요. 감독 양반이 자기도 미처 깨닫지 못 하는 음악성을 갖고 있는 거죠. 영화나 음악이나 둘 다 '시간을 재미있게 잘 가두어야 하는 예술'이어서 강약과 완급 조절 잘 해야 하고 너무 예측 가능해서 지루해져 버리면 안 되는데, 이 양반은 곡을 썼어도 잘 썼을 것 같아요. 스토리가 예상한 대로 절대 안 흘러 가요. 우리 씸플한 싸모님 말투로 하면, 히 컨스턴틀리 뤙푸츠 디 오디언스He constantly wrongfoots the audience란 거예요. 이 양반 영화는 이번에 처음 봤어요. (간첩 맞다니까.)

또,

생일 파티에 도착한 친구와 우리 싸모님이 반가워서 두 손 맞잡고 종종종종 뛰면서 뺑뺑 도는 모습. 아주 잠깐 잡힌 장면인데 나 그거 보고 켁켁켁. 단단도 대학 동기들 오랜만에 만나면 저래요. 세상 해맑. 봉감독은 여자들이 다 커서도 저러는 거 어찌 알았누. 나는 '씸플'한 싸모님 역이랑 중후한 목소리의 젠틀하고 예민한 속물 박사장 역 카스팅을 특히 잘했다고 생각해요.

 

나도 지하철 타고 다니는 서민이지만 지하철 냄새 캐공감. 영국 지하철 냄새와는 또 다른 한국 지하철 냄새가 있는데, 전자는 주로 오래된 객차와 역사에서 나는 찌든 냄새, 후자는 사람 몸과 숨에서 나는 냄새. 우리 한국인들만큼 체취 안 나는 민족은 없을 거라고 커뮤니티마다 자화자찬 자뻑들 하고 있지요. 냄새 납니다. 강하지는 않은데 영국에서는 맡아 보지 못한 독특한 냄새가 있어요. 중년 이상 남녀, 특히 남자들한테서 많이 나는. 내가 귀국한 지 얼마 안 돼서 더 극명하게 느껴요. 나도 여기서 한식 먹고 살면서 늙어가면 그런 냄새를 풍기게 되겠지.

 

근데 박사장이 말하는 그 지하철 냄새는 사실 빈부와 관계없고, 잘 씻고 안 씻고와도 크게 상관없는, 한국인이기 때문에 나는 냄새이고, 오히려 박사장네 꼬맹이 아들 녀석이 기택 가족 전부한테서 맡는 공통적인 냄새가 환경에 의한 가난한 집 냄새인 거지. 봉감독이 지하철 안 타고 다니는 부자는 맞긴 맞나 보오. 그거 구분을 못 하는 거 보니. 어쨌거나 고용주 부부와 애가 다같이 냄새 타령을 해대니 자존심이 안 상할 수 없었겠다는 생각. 

또또,

엄마를 뺀 나머지 가족들이 계단에서 엿듣고 있다가 아빠가 발 헛디디는 바람에 뭉텅이로 굴러떨어져 발각되는 장면. 만화 같고 정말 웃기잖소? 켈켈. 이 삑사리 하나 때문에 극이 완전히 뒤집어지므로 웃기면서도 매우 중요한 장면이 되겠습니다. '인생은 계획대로 흘러가지 않는다'의 또다른 표현이 바로 '삑사리 났다' 아니겠소.

그리고, 짜파구리. 

라멘과 우동을 합쳐 'ram-don'으로 번역했다는데, 짜파구리 자체가 웃겼다기보다는, 서민 괴식 위에 부잣집이라고 한우 채끝살 올린 거.

마지막으로,

기우가 뇌수술 받고 나서 눈 떴을 때 "형사같이 생기지 않은 형사"와 "의사같이 생기지 않은 의사"가 띨빵한 표정으로 내려다보며 미란다 원칙 읊조리는 장면. 단역이지만 진짜 카스팅 잘 한 것 같아. 기우의 웃음, 세상과 인생을 향한 조소 같지 않았남요? 인간의 밑천을 보고 난 기우는 이제 그 위치에 있는 사람들이 그 위치에 있는 사람들처럼 보이지가 않는 게지. 명대사라고 생각해요. 돌이 그렇게 쓰일 줄이야.

그리고 이건 재밌는 장면이라기보다는 명장면이라 해야 맞을 것 같은데, 수해로 초토화된 집을 두고 가족 구성원 전부 아무 일 없었다는 듯 다음날 부잣집 꼬맹이 생일 파티에 소환돼 들러리, 광대 노릇 해야 하는 설정. 치욕감으로 얼굴 벌개진 운전기사와, '이게 어디서 선을 넘으려 들어?' 떨떠름하면서도 단호한 표정의 고용주 사이의 텐션, 기가 막혔지. 나는 이 장면이 이 영화에서 가장 인상적이었어요. 풀숲 뒤 바싹 붙어 앉은 두 남자들의 표정 대결 압권. 기택은 두 가족 간 차이가 계층 차이라 생각하고, 박사장은 계급 차이라 생각하고. 

신랄한 건, 

부자도 급이 나뉘듯 가난에도 정도 차가 있어 반지하의 빈자들이 극빈자인 문광 부부를 견제하고 멸시하는 거. 살면서도 숱하게 목격하는 장면이지. 시답잖은 아파트 사는 서민이 바로 앞 임대 아파트 사는 사람 차별하잖아. 아이들끼리도 못 어울리게 하고.

나는 영화 전체에서 어떤 장면이 가장 불편했냐면, 
운전기사가 고용주한테 두 번이나

"사모님 사랑하시죠?" 

묻는 대목. 

 

그런 민감한 질문은 친구 사이에서도 잘 안 하죠. 부부면 서로 사랑해야 하는 게 맞지만 동서고금 막론, 상류층 사람들이 어디 그렇게 서민들처럼 100% 사랑만 갖고 결혼하남? 그야말로 'none of your business'인데 고용인이 자꾸 추궁하듯 물으니 고용주로선 '어쭈?' 생각이 드는 건 당연지사. 이해심 많은 단단은 기택의 모멸감도, 박사장의 불쾌함도, 모두 이해가 되더라는.   

[삼천포] 그나저나,

배경이 내가 결혼하기 전에 살던 동네랑 너무 똑같이 생긴 거여. 평창동. 실제로 찍은 곳은 성북동이라는데, 뭐 평창동이나 성북동이나 근접해 있으니까. 성북동은 안 살아 봐서 모르겠으나, 근데 평창동엔 고대광실 부잣집만 있는 게 아니라오. 내 그 사실 알려 주려고. 전셋집도 있고 월셋집도 있는데, 거긴 또 겨울에 눈 오면 아주 지옥이여. 집에 비상식량 비축해 둬야 해. (코딱지만 한 전셋집 살았음.) 내가 그래서 타이어에 스노우 체인 혼자서 감을 줄을 알아요. 방전된 배터리, 점프 케이블로 살리는 법도 알고. 만날 가파른 산을 내려와야 하니 브레이크 패드도 금방 닳아 부품 사다 내가 손수 갈고 다녔어요. 험한 동네에 살아 특전사로 훈련된 거지. 산꼭대기 동네들은 그 동네만의 고충이 있다는 소리. 북한산이 기운이 세서 이 산을 끼고 있는 동네에서는 예술가가 단명한다는 썰이 있는데, 그 탓인지 우리 미술인 아버지, 환갑 잔치도 못 치르고 일찍 돌아가셨지. 그래도 집이 꼭대기에 있으니 밤이면 집에 구름도 내려와 앉고, 서울 시내를 내려다볼 수도 있어 운치는 있어요, 그 동네가. 예술가를 부르는 동네인데 불러 놓고는 명을 재촉한다니 아이러니지. 서울예고가 거기 있는 것도 재밌고. [삼천포]

애니웨이,

이 영화 안 본 분들께 단단은 레커맨드 합니다. 재밌게 봤어요. 아, 영화 안 본 사람은 이 글 클릭하지 말라고 했으니 레커맨드 해봤자 유슬리스 하겠구나. 여운이 긴 영화를 좋아하는데 이 영화도 여운이 길어요. 감독이 작품 속에서 사건을 하도 크게 벌여 나가 단단은 팔짱 끼고 보는 관객 입장인데도 도대체가 엄두가 안 나는 거예요. '아니, 이 양반, 대체 이걸 어떻게 수습해서 마무리하려고;;' 다음에 벌어질 일이 이토록 궁금했던 영화는 이게 처음. 그러니 재밌었지. 무슨 계층이니 빈부격차니 위선이니, 거창한 담론 다 집어치고, 그냥 사건 중심의 오락영화로도 충분히 재미있어요. 보고 나면 아무나 붙잡고 영화에 대해 끝없이 수다 떨고 싶어질 거예요. 이 영화에는 과연 많은 이들이 좋아할 만한 공감 가면서도 신기하고 아기자기하고 재미있는 요소가 많았어요. 

참,

얼마 전 넷상에서 논란이 됐던 이동진씨의 한 줄 영화평을 붙여 보오. 

"상승과 하강으로 명징하게 직조해낸 신랄하면서 처연한 계급 우화."

짧지만 매우 적절한 평. 굿.


그런데, 
이 평을 보고 글쎄 '평론가 새끼가 어려운 단어로 현학적 허세 부리고 있다'며 난리 친 사람들이 있다는 거여. 여기서 어떤 단어가 어려운 단어인지 누가 나 좀 알려줘요. 

상승, 하강, 명징, 직조, 처연. 

이거 음악에서도 아무렇지 않게 쓰는 단어들입니다. 음악 이론에 아예 ☞ 짜임새라는 개념과 용어도 있어요. 중학교 때 배웠어요. 그리고 사람이라면 누구나 기본으로 옷 한 벌은 걸치고 있지 않소? 자기 옷을 보면서 그게 직조를 거쳐 나온 거라는 걸 모르는 성인이 있다니? 모르는 단어 맞닥뜨리면 단단은 눈을 빛내며 '오, 못 보던 신기한 단어다!' 신나하는데 어케 화낼 생각을 하는 사람들이 다 있는지 모르것어요.  



 

 

 

 

영화 보고 나왔더니 로비에 송강호씨 손자국이 떠억. 애기 손인 줄.

 

 

 

 

 

 

해외 프로모션용 포스터.

 

 

 

 

 

영국 포스터.




영화 '기생충'이 남긴 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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