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잡생각

자이글의 역사

단 단 2018. 7. 13. 22:00

 

 



그저께인 11일 아침, 차 한 잔 우려 놓고 눈 비비며 뉴스를 읽다가 아래의 소식에 눈이 번쩍 떠졌습니다. 

☞ 청년 김홍도 작품 추정 그림 7점 첫 공개

 

 

 

 

 

 

 

 


<단원속화첩>에 실린 일곱 점의 그림 중 단단의 마음을 특별히 사로잡았던 것은 이것. 아침에 이 그림 보고는 하도 재미있어 저 이날 하루종일 실성한 사람처럼 혼자 키득키득 웃고 돌아다녔습니다. 제가 여러 사람이 모여 무언가 먹고 있는 그림을 좋아하거든요. 유럽 옛날 회화들 중에도 이런 거 많아요. 단원의 인물들은 브뤼겔(브뤼헐, 브뢰열, 브뢰겔...)의 '티격태격 회화'에 나오는 인물들처럼 동글동글한 얼굴을 하고 있어 귀여워요. 표정도 또렷하고요. 원형 구도를 즐겨 채택하는데 꼭 딴짓 하는 사람을 하나 끼워 넣어 구도에 파격을 줍니다.   

그림을 자세히 들여다봅시다. 
성평등 문제에 민감한 요즘 이삼십대 여성들 같으면 "뭐야, 여자는 배제하고 순 남자들끼리만 모여 즐기고 있잖아." 입을 삐죽거리겠지만, 하루종일 삼식이 남편 음식바라지에 넌더리난 오십대 이상 여성들이라면 이 그림 보고 숨통이 트였을 겁니다. "그래그래, 남자들이 저렇게 좀 나가서 먹어 줘야 우리 여자들도 숨 쉬고 살지." ㅋㅋㅋㅋㅋㅋ

이 그림의 재미있는 점으로 저는 다음의 세 가지를 꼽고 싶습니다.

1. 연령대가 다양하다는 점

2. 각자 머리에 쓴 것headpiece들이 다르다는 점

3. 고기 즐기기의 전(全) 과정이 단계별로 잘 나타나 있다는 점

① 그릇에서 생고기 집어들기 
(저 시절에는 왼손잡이가 핍박 안 받고 잘 살 수 있었나 봄.)

② 불판에 고기 놓기, 혹은, 다 익은 면 뒤집기 
(온 정신을 가다듬어 고기 굽기에 집중하는 모습이 인상적.)

③ 다 익은 뜨거운 고기 후후 불어 식히기 
(입에 고기가 이미 들었는데 다 씹어 삼키기도 전에 또 넣으려고 함.)

④ 단단처럼 젓가락질을 잘 못 하는지 젓가락 버리고 손으로 집어 먹기
(혹은 갈비 뜯는 중. 이로 깨물긴 했으나 '앗뜨뜨' 하는 표정이 역력.)

⑤ 고기 다 먹고 술로 입가심하기 
(고기 그릇이 비었음. 남들 아직 한참 먹는 중인데 
혼자 벌써 끝낸 걸 보니 익힘 정도는 '레어'를 좋아하는 듯.)


다섯 명 중 세 명이나 고기 그릇을 들고 있습니다. 요즘처럼 한 명이 도맡아 굽질 않고 나이 상관없이 각자 자기 고기 알아서 구워 먹는 방식인 듯해 좋아 보입니다. 여분의 숯과 벌겋게 달아오른 숯의 색상 대비도 근사합니다. 머리 위 화사한 꽃나뭇가지와 왼쪽의 나무 줄기도 일부만으로 자연을 충분히 느끼게 해 노련함이 엿보입니다. 여백의 미, 아주 좋아요.

그건 그렇고, 
쇠화로의 고기 올려 놓는 부분이 갓을 뒤집어 놓은 형상이라서 흥미롭지요. 그림에는 채소가 보이지 않지만 가운데 움푹 파인 홈에 채소와 장을 넣고 끓여 구운 고기를 찍어 먹었다고 합니다. 가운데가 뻥 비어 있으니 내 고기 네 고기 영역 구분이 잘 돼 다툴 일이 적었겠습니다. 쌈박질 안 하도록 설계 잘했죠. 화로 밑부분은 용적이 넉넉하면서 곡선이라 아름답고요. 동물 다리 형상의 받침대를 붙여 열로부터 바닥도 보호하고, 소반 높이로 높여 조리도구 역할과 상table 역할을 동시에 하게 했습니다. 기능적이면서 디자인이 훌륭합니다. 반쯤 드러난 선비의 하얀 버선발과 좋은 대비를 이룹니다. 
자이글이 어느 날 갑자기 뚝 떨어진 것이 아니었다는 사실에 우리 한국인들 놀라고 있습니다.  

이런 풍속화들이 계속해서 발견되면 좋겠습니다. 동양화 그리시는 분들은 이런 그림 좀 많이 그려 주세요. 가령, 치맥 먹는 사람들이라든가, 옹기종기 모여 떡볶이 먹고 있는 여인들이라든가. (김말이튀김 꼭 포함.) 훗날 저처럼 선조들 먹는 모습에 열광하는 후손이 분명 있을 테니 우리들이 먹는 모습 많이 남겨 주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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