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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자가 나타났다 Anti-Natalism 본문
오늘 다음Daum 대문에 어느 젊은 현자의 소송 이야기가 떴다.
☞ "왜 동의 없이 날 태어나게 해?" - 부모에게 소송 걸겠다는 청년
와, 나 이 사람한테 후원금 보내고 싶다.
2011년에 단단은 이런 글을 썼었다.
☞ 어린이날 - 인간과 그의 새끼들에 관하여
하이데거는 인간을 '피투성被投性'의 존재로 정의하였다. 나는 이십대 초반에 이 '피투성의 인간'이라는 표현을 처음 보고는 '피투성이 인간'을 잘못 쓴 거 아냐? 눈을 비비고 다시 보았었다. 뜻을 깨닫고는 피투성이 인간 맞네, 고개를 끄덕였지만. 위의 갈무리 화면에서 "자신의 선택이 아닌 사회적 관습이나 의무성 따위에 의해 이미 결정된 고통, 좌절과 함께 현재에 '던져진' 상태"라는 표현에 주목하자.
그래서,
단단 님은 사는 게 죽을 맛이라서 이런 글을 쓰고 계시냐고?
아니.
생활은 늘 쪼들리지만 그 안에서 어떻게든 '소확행'을 찾아 즐기면서 악착같이 삶을 살아내고 있다. 내 의지와 상관없이 세상에 던져짐으로써 이미 한 번 진 인생, 두 번 질 수는 없다며 이 악물고 산다.
몸이 아픈 건 아니고?
자잘하게 신경 쓰이는 곳이 몇 군데 있긴 하나 크게 아픈 데는 아직 없다. 암 투병 하는 분들이 주위에 수두룩한데 이깟 걸로 죽는소리하면 안 되지.
혹시 부모와 사이 나쁜 건 아니고?
부父는 탐탁지 않았지만 모母는 괜찮은 편이다. 형제들과도 사이 좋고. 만나서 즐겁게 시간 보낼 수 있는 친구들도 몇 명 있다. 남편은 다정하기 짝이 없어 다시 태어나도 이 사람과 결혼하고 싶을 정도. 열심히 살아 왔고, 내 전공도 마음에 들고, 지금 하는 일에도 보람을 느낀다.
그래도 태어나지 않는 것은 훨씬 좋은 일일 것 같다. 잘 키울 자신 있는 사람만 애를 낳도록 국가가 강제해도 세상에 던져진 그 '피투성이' 아기는 삶을 버거워할지 모른다. 어찌 살아간다 해도 고통 받는 타인을 보며 괴로워할지 모른다.
외할머니가 돌아가실 때 외할머니가 계신 중환자실 맞은편에는 아이러니하게도 신생아실이 있었다. 우는 사람과 웃는 사람들로 하루에 몇 번씩 복도가 뒤범벅이 되곤 했다. 그때 일을 회상할 때마다 조병화 시인의 ☞ <의자>가 떠오른다. 왜 인간은 삶이 마냥 분홍빛이 아닌 걸 알면서도 세상에 생명 던지는 행위를 멈추지 않는가.
신문 기사의 저 청년은 지금 예술가, 철학자가 되어 우리 다 같이 존재와 삶에 대해 생각해 보자고 '퍼포먼스'를 하는 중이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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