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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음식우표] 우크라이나 2005 - 보르쉬, 보르쉬츠 (borsch, борщ) 비트 수프 본문
▲ 부클릿booklet 속 소형전지 129×69mm, 우표 한 장 40×28mm.
(클릭하면 큰 사진이 뜹니다.)
전쟁에 휘말린 우크라이나를 돕는 방법에는 여러 가지가 있을 수 있습니다.
☞ 믿을 만한 채널을 통해 구호금을 전달할 수도 있고,
☞ 종교인이라면 위로와 평화를 위해 중보기도를 해줄 수도 있으며,
☞ 발발 원인과 배경을 정확히 알리거나 현지 사람들이 얼마나 곤경에 처했는지 예의주시하며 부지런히 현황을 알려 우크라이나 밖의 사람들이 무관심해지지 않도록 독려할 수도 있죠.
(뭐야, 셋 다 같은 블로그. 대단한 블로그일세.)
푸드 블로거인 저는 우크라이나인들의 '컴포트 푸드'이자 '소울 푸드'인 보르쉬츠를 소개하고 싶습니다. 원래 겨울이 가기 전 푸근한hearty 이국의 수프를 소개할 생각으로 제 음식우표 앨범에서 우크라이나의 보르쉬츠 우표를 꺼내 놓고 있었는데 공교롭게도 전쟁이 발발, 이 어처구니없는 우연에 단단은 우표를 바라보며 장탄식을 했습니다.
2013년 11월 21일에 시작돼 93일간 지속됐던 우크라이나의 '유로마이단Euromaidan' 혁명을 담은 도큐멘터리 영화 〈Winter on Fire: Ukraine's Fight for Freedom〉(2015)에도 친러시아 정부에 저항하는 시민들을 위해 자원봉사자들이 시위 현장에서 보르쉬츠를 끓여 먹이는 장면이 지나갑니다. 보르쉬츠는 우리 한국으로 치면 김치찌개, 된장찌개, 육개장 같은, 겨레의 혼과 분리할 수 없는 'national dish'입니다. 그런데 아래의 위키피디아 갈무리 화면을 보십시오.
음식명 철자도 다양하고 이를 즐기고 있는 지역도 굉장히 많습니다. 동유럽 유태인 이민자들에 의해 서방에 알려졌기 때문에 'borscht'라는, 단어 끝에 't'가 붙는 영어 표기가 통용되고 있는데, 이는 이디시어(Yiddish, 독일어에 헤브루어와 슬라브어가 혼화한 것으로, 헤브루 문자로 씀. 중부와 동부 유럽 및 미국의 유태인[이민]이 사용.)에서 변형된 것으로, 우크라이나 사람들을 위한다면 'borsch'로, 't' 없이 쓰는 게 더 적합하다고 합니다.
한편, 발음의 한글 표기도 '보르시', '보르쉬', '보르시츠', '보르시치' 등 다양하게 존재하는데 우크라이나식으로 제대로 읽으면 '보르쉬츠'가 가장 가깝다고 합니다.
위키피디아 갈무리 화면에서 이 음식을 즐기는 여러 나라 중 맨 처음에 둔 나라가 우크라이나라는 사실을 눈여겨볼 필요가 있습니다. 한국에서는 이 음식을 러시아 음식으로 많이들 소개하죠. 우크라이나 사람들이 섭섭해할 겁니다. 수많은 음식 원조 논쟁 중 '과열' 상위에 속한 음식이 이 보르쉬츠이거든요. 과거 우크라이나를 점령했던 러시아도, 폴란드도, 자기네 음식이라고 공공연히 말하곤 해 우크라이나 사람들의 혈압을 치솟게 합니다. 열거한 위의 지역들에서 전부 즐기고 있는 음식인 건 맞지만 '원조'는 우크라이나로 봐 주는 것이 다행히도 현재는 보편적 지식이 된 것 같습니다. 아래의 연결문서들을 읽어보십시오.
☞ 한국서는 ‘김치’ 전쟁, 우크라이나서는 ‘보르쉬’ 전쟁?
☞ [BBC Travel] Who really owns borsch?
'BBC Travel' 기사 내용을 아래에 옮겨봅니다.
2019년, 러시아 외무부의 공식 트위터 계정에 이런 단문이 올라온 적이 있다고 합니다.
“A timeless classic, Borsch is one of Russia’s most famous & beloved dishes & a symbol of traditional cuisine.”
러시아인들도 보르쉬를 상식하니 우리 같은 외국인들은 그런가 보다 하고 무심히 넘길 수 있지만 우크라이나 사람들에게는 이야기가 다르겠지요.
"저 돼지 같은 러시아 놈들이 우리의 모든 것을 앗으려 들더니 이제는 음식까지도 훔쳐 간다!"
눈 하나 깜짝 않는 러시아,
"어, 보르쉬 러시아 음식 맞아. 정확히 말하면, 강점기를 통해 발전시킨 우리 음식."
우크라이나어 위키 피디아에서는
“found in Ukrainian, Belarusian, Polish, Lithuanian, Iranian and Jewish national cuisines”로, 저 괘씸한 러시아를 일부러 빼고 기술하고 있고,
러시아어 위키 피디아에서는
“Borsch is a type of beet-based soup, giving it a characteristic red colour. A traditional dish of the Eastern Slavs, it is a common first course in Ukrainian cuisine.”이라고 나름 우크라이나를 배려한 정의를 내리고 있습니다.
스탈린 시절에 광대한 소비에트 연방을 통합하기 위한 문화 정책의 일환으로 100개가 넘는 민족들의 식문화를 조사하게 해 두꺼운 책으로 엮은 적이 있었는데[<The Book of Tasty and Healthy Food>(1939)], 체제 선전적 의도가 다분한 요리책이긴 하나 지금까지도 출판되고 있으며, 발간 이후 한때는 신혼집 선물로 각광 받았었다고 합니다. 러시아와 우크라이나는 복잡하게 얽힌 과거가 있어, 소비에트 연방 시절에 두루 퍼져 지금까지 즐겨 온 음식이면 러시아 음식으로 보아도 무방하다는 입장입니다. 연방의 핵심은 러시아였으니 이렇게 생각해도 된다고 여기는 거죠. 원조가 자기네라고 우기지만 않는다면 아주 틀린 생각은 아닙니다.
수프를 다룬 제6장에서 소비에트 연방의 보르쉬를 무려 6종이나 소개하고 있는데, 그중 유명한 것 네 가지는 다음과 같습니다.
• Shchi [양배추가 주재료인 러시아 수프. 비트루트가 빠진 보르쉬격.]
• Borsch [기본 보르쉬]
• Summer Borsch [여름용 찬 보르쉬. 스쿼시, 셀러리, 비트루트 뿌리가 아닌 줄기와 잎 사용.]
• Ukrainian Borsch [우크라이나 보르쉬츠]
기본 보르쉬는 고기, 비트루트, 양배추, 뿌리채소들, 양파, 토마토 페이스트, 식초, 설탕을 사용하고, 우크라이나 보르쉬츠는 고기, 비트루트, 양배추, 당근, 파스닙, 감자, 양파, 토마토 페이스트, 베이컨, 버터, 식초, 마늘을 사용. 여기에 사워 크림과 다진 파슬리를 얹어 제공한다고 이 책에서 밝히고 있고 지금까지도 이렇게 전해집니다.
푸드 프로세서로 채썬 비트루트.
빛깔과 질감과 명암이 하도 근사해 또 식재료 앞에 놓고 한숨을 푹푹.
모든 할머니 어머니마다 조리법이 다 다른 게 이 보르쉬츠라지만 '보르쉬츠'라고 불리려면 다음의 재료들 중 빨간색으로 표시한 것들은 꼭 들어가 줘야 한답니다. 우표 소형전지에 씌어 있는 재료들을 옮겨봅니다.
2005년 우크라이나 우표의 보르쉬츠 재료:
pork, red beet, cabbage, haricot, potato, carrot, parsley, onion, lard, garlic, tomatoes, red pepper, spice, dill, salt, sour cream. 끝.
이 재료 목록에는 빠져 있는데 해바라기씨유도 추가해야 합니다. 우크라이나에는 해바라기가 많이 심겨 있어 대표 유지로 버터와 함께 해바라기씨유를 많이 쓰거든요. 1800년대에 북미에서 종자를 들여와 퍼뜨렸고 이후 우크라이나의 국화로 등극, 현재 우크라이나는 세계에서 가장 큰 해바라기씨와 해바라기씨유 생산국이자 수출국이 되었습니다. 해바라기는 우크라이나 민속예술의 모티프로도 흔히 쓰입니다. (저 아래의 요리책 표지를 보세요.)
또, 우크라이나 사람들은 건더기로 고기와 콩 중 선택해서 쓰는 경우가 많습니다. 채식주의자가 아니어도 고기 대신 콩을 쓴 보르쉬츠를 선호하는 이들이 많다고 합니다. 우표에 써 있는 "haricot"는 우리가 아는 'baked beans'에 들어 있는 그 해리코 빈이 아니라 강낭콩을 말하는 것 같습니다. 콩 대신 고기를 쓸 때는 소고기말고 돼지갈비를 써야 제대로 맛이 난다고 합니다.
핵심 중 핵심 재료인 비트루트는 여름에 수확한 단맛 많은 어린 것으로 쓰는 게 좋은데, 재료를 어떻게 썰어야 하는지에 대해서도 나름 깐깐합니다. 비트루트와 당근과 양배추는 깍둑 썰면 안 되고 채썰어야 한다고 주장하는 이들이 많네요. 깍둑 썰면 간이식당, 학교 급식, 군대 급식, 감옥 급식의 영혼 없고 싱겁고 칙칙한 보르쉬츠 같아진다고 고개를 젓는 이도 다 있습니다.
뿌리채소들의 단맛을 적당히 끊어 줄 신맛 내는 액체도 필수인데, 레몬 즙이나 화이트 와인 식초 중 취향껏 선택할 수 있고, 발효 음료인 ☞ 크바스kvas를 쓰는 요리사들도 있습니다.
라드는 크림 성상의 것말고 프로슈토나 유럽 조제고기에 붙어 있는 것과 비슷한 부들부들한 것을 얇게 저며 수프 옆에 곁들거나 마늘과 함께 다져 수프에 넣기도 합니다. 우표 사진을 확대해 조제한 라드가 어떻게 생겼는지 확인해 보십시오. 한국에서는 구하기가 힘듭니다.
조리법은 세 가지를 소개해드리겠습니다.
먼저, 롯데호텔 러시아 블라디보스톡 총괄책임자Executive Chef 김병희 님의 레서피.
☞ 원문은 여기에
'스메타나'는 사워 크림을 말합니다. 레서피가 세부 지침과 '노하우'가 죄 빠져 있어 허술하죠. 한국 신문에 실리는 유명 호텔 레서피가 거의 다 이렇습니다.
그 다음, 판매 지수 높았던 우크라이나 요리책의 레서피.
표지가 우크라이나 국기와 같은 색상이고, 비트루트와 해바라기가 모티프로 들어가 있습니다. 비트루트도 국가 상징이 된 모양입니다. 보르쉬츠 때문이겠죠.
"My uncle in Moscow would often be asked by his Russian friends: 'Is it true that Ukrainians eat borshch three times a day?' He answered, 'If you guys could make a proper Ukrainian borshch, you would get up at night to eat it.' Stock is very important here, as with every other broth recipe in this book, and the meat that you use should be well marbled, otherwise it will never become meltingly soft. The most authentic of borshches should include pork salo (cured pork belly) minced with garlic and added at the end. A skinny, old boiling chicken also makes a flavoursome borshch."
소개글이 재미있어요. 저자의 삼촌이 러시아에 체류하고 있는 모양인데, 그 삼촌의 러시아 친구들이 놀라서 이렇게 묻곤 한답니다. "우크라이나 사람들은 하루 세 번 보르쉬츠를 먹는다는 거 진짜야?" 이에 대한 삼촌의 대답 - "제대로 잘 끓인 우크라이나 보르쉬츠는 밤에 자던 사람도 깨워 흡입하게 하지."
조제한 돼지삼겹살의 지방을 마늘과 함께 다져 조리 끝에 투입하는 것이 정통이라고 하는데 한국에서는 구하기가 쉽지 않을 겁니다. 이 책의 저자는 육수용 재료로 소꼬리나 기름 많이 붙은 소갈비를 추천합니다.
요리책 <마무쉬카>의 우크라이나 보르쉬츠
[4인분]
재료
• 비트루트 200g, 껍질 벗겨 가늘게 채썰기
• 감자 200g, 껍질 벗겨 깍둑 썰기
• 해바라기씨유 2큰술 [1큰술=15ml]
• 양파 1개, 잘게 다지기
• 당근 1개, 껍질 벗겨 굵은 강판으로 갈기
• 레드 페퍼(피망) 1개, 꼭지와 씨 제거하고 깍둑 썰기
• 토마토 퓨레 1큰술
• 비프beef 토마토 1개, 껍질 제거하고 굵은 강판으로 갈기, 또는 발효 토마토 100g ['비프 토마토'는 물기 적고 우락부락한 모양의 토마토 품종을 말합니다.]
• 양배추 알 작은 것 반 개, 채썰기
• 강낭콩 400g짜리 깡통, 물기 빼고 헹구기
• 바다소금
• 후추
[육수 재료]
• 소꼬리 또는 지방 많이 붙은 소갈비 500g
• 양파 1개, 껍질만 벗기고 통째로 사용
• 월계수잎 1장
• 찬물 2.5리터
[곁들이]
• 사워 크림 100ml
• 딜dill 반 다발, 다지기
만들기
1. 육수를 먼저 낸다. 육수 재료들은 곰솥에 다 넣고 소금 간을 한 뒤 약불에서 1시간 끓인다. 거품과 찌꺼기는 가끔씩 걷어 낸다.
2. 1의 육수에 비트루트, 감자를 넣고 소금과 후추로 다시 간을 한 뒤 약불에 다시 30분을 끓인다.
3. 끓이는 동안 다른 재료들을 준비한다. 중불의 지짐판frying pan에 해바라기씨유를 넣어 데운 뒤 양파, 당근을 넣고 당근이 부드러워지고 양파는 캬라멜화하기 직전까지 약 5-7분간 볶는다. 이것이 바로 'smazhennya' 또는 'zazharka'라 불리는 우크라이나식 '소프리토soffirtto' 기법이다. [단단: '소프리토'는 잘게 다진 양파, 당근, 셀러리 등을 기름에 볶은 것을 말합니다.]
4. 3에 레드 페퍼, 토마토 퓨레를 넣고 2분간 더 볶는다. 그 뒤 강판에 간 토마토나 발효 토마토를 넣고 볶아 물기를 살짝 줄인다. 그 뒤 2의 육수에 넣는다.
5. 마지막으로, 양배추와 콩을 4에 넣고 7분간 혹은 익을 때까지 끓인다.
6. 사워 크림과 딜을 수프에 뿌릴 수 있도록 곁들이고, 우크라이나식 마늘빵pampushky도 함께 제공한다. 끝.
▲ 비트루트는 반드시 니트릴 장갑을 끼고 다루고,
단단하니 손 대신 푸드 프로세서를 이용해 채썰도록 하자.
세 번째 레서피입니다. 저는 우표에 있는 것과 비슷하게 만들어 보고 싶어 소고기 대신 돼지갈비를 쓰는 이 레서피를 채택했습니다. 돼지육수는 태어나서 처음 내봤는데, 우려와는 달리 잡내 안 나고 맛과 향이 좋았습니다. 우표에는 라드도 쓰라고 돼 있으나 한국에서는 구할 수가 없어서 이 레서피에서처럼 생략했습니다.
재료
[제 식사량 기준으로는 15인분 정도 나오는 것 같습니다.]
[육수]
• 찬물 3리터
• 돼지갈비 혹은 뼈에 붙은 소고기 600g, 작은 크기로 깍둑 썰기
• 양파 반 개, 4등분하기
• 당근 1개, 반 가르기
• 셀러리 2대
• 월계수잎 2장
• 후추알 5개
• 소금 1작은술 [1작은술=5ml]
[보르쉬츠]
• 비트루트 중간 크기 2개, 껍질 벗겨 채썰기
• 감자 중간 크기 3개, 껍질 벗겨 2.5㎤ 정도로 깍둑 썰기
• 해바라기씨유
• 당근 중간 크기 2개, 채썰기
• 양파 1개, 다지기
• 마늘 두 쪽, 으깨기
• 월계수잎 1장
• 토마토 퓨레 3큰술 [1큰술=15ml]
• 양배추 1/2개, 심 제거하고 굵게 채썰기
• 레몬 1개의 즙 혹은 화이트 식초 1작은술
• 소금·후추
[곁들이]
• 사워 크림 또는 크렘 프레쉬creme fraiche
• 딜dill 또는 납작잎 파슬리flat-leaf parsley
만들기
1. 육수 먼저 낸다. 곰솥에 육수 재료들을 다 넣는다.
2. 끓기 시작하면 불을 낮춰 1시간에서 1시간 반 정도 얌전히 끓인다simmer. 압력솥으로는 30분. 돼지갈빗살이 뼈에서 떨어지려고 하면 알맞게 익은 것이다. 위에 뜨는 찌꺼기는 계속 제거해준다.
3. 육수가 완성되면 불을 끄고 약간 식힌다. 돼지갈비를 건져 따로 두고 육수는 체로 거른 뒤 다시 곰솥에 붓는다. 거른 채소들은 버린다. (육수는 하루 전에 미리 만들어도 된다.)
4. 돼지갈비가 다루기 편한 온도로 식으면 뼈에서 분리해 포크 두 개나 손을 써서 결대로 찢는다. 필요할 때까지 보관해 둔다.
5. 육수가 담긴 곰솥에 갈빗살, 비트루트, 감자, 토마토 퓨레, 소금 한 꼬집, 월계수잎을 넣고 불에 다시 올린다. 끓기 시작하면 불을 낮춰 얌전히 끓게 둔다simmer.
6. 약불의 지짐판frying pan에 해바라기씨유 1큰술을 두르고 당근과 양파를 7-10분간 캬라멜화하기 직전까지 볶는다. 마늘 다진 것을 넣고 30초 더 볶는다.
7. 5에 완성된 6과 양배추를 넣고 15분간 익힌다. 양배추 잎이 너무 물러질 정도로 오래 익혀서는 안 된다. 레몬 즙이나 화이트 와인 식초를 넣고 소금 후추로 간한다.
8. 그릇에 담고 사워 크림이나 크렘 프레쉬를 한 숟갈 얹은 뒤 딜이나 파슬리 다진 것을 흩뿌려 낸다. 끝.
완성.
다쓰베이더가 휴일에 장보기서부터 만들기까지 혼자 다 했습니다.
저는 사진과 시식과 글쓰기만.
색이 강렬하면서도 곱죠?
양배추를 미리 넣어 너무 익히면 안 되고 조리 막판에 넣어 씹는 맛을 어느 정도 살려야 한다고 레서피들마다 신신당부 합니다. 비트루트, 당근, 양배추는 채썰어 쓴다는 사실도 기억하시고요. 비트루트와 당근은 푸드 프로세서로 채치고, 양배추는 8mm 너비로 직접 채썰었습니다.
평가 및 교정
영국에서 자주 먹었던 곱게 간 깔끔한 영국식 비트루트 수프와는 맛이 많이 다릅니다. 한국의 소고기뭇국과 갈비탕과 김치찌개를 합쳐 놓은 것 같은 맛있는 향이 나네요. 김치찌개 같은 신 향은 식초 넣은 채소 국물이라서 그런 듯합니다.
저는 향초herb를 딜과 납작잎 파슬리 둘 다 썼는데, 먹어 보니 딜은 꼭 넣어야 할 것 같습니다.
사워 크림은 꼭 저렇게 국물에 풀지 않고 덩어리지게 올리는데, 먹어 보고 이유를 알았습니다. 국물에 온전히 섞이지 않은 사워 크림이 주는 질감과 맛이 상당히 좋거든요. 저는 아예 사워 크림을 작은 종지에 따로 담아 티스푼과 함께 제공하는 것도 좋겠다는 생각을 했습니다. 두 번째 먹을 때는 매 스푼마다 사워 크림을 새로 얹어 먹었는데 이렇게 먹으니 과연 훨씬 맛있습니다. 수프에 사워 크림을 미리 띄우면 사워 크림이 국물에 자꾸 풀어져 색도 달라지고 맛도 많이 달라집니다. 때로는 철저히 섞인 것보다 불규칙하게 뭉친 것들이 더 맛있을 때가 있지요.
돼지갈빗살을 결대로 찢지 않고 '사진발'을 위해 깍둑 썰었는데, 푹 익혔더니 이에 닿자마자 와르르 무너지면서 폭신폭신 부드럽게 씹혀 식감이 좋았습니다. 왜 소고기가 아닌 돼지갈빗살을 쓰라고 하는지 알 것 같습니다. 맛도 좋고 식감도 참 좋네요. 그런데 고기가 싱거우니 뼈에서 분리해 찢거나 썰고 나서는 간을 따로 좀 해주는 게 좋겠습니다.
수프 속 건더기 중에서는 감자가 가장 뜨거운 데다 가장 싱거우면서 자기 맛이 가장 강하니 엄지손톱만 하게, 좀 더 작게 깍둑 썰어야겠습니다. 카레 속 감자와 달리 짜지 않은 국물 속 감자라서 많이 싱겁습니다.
끓이자마자 먹어도 맛있지만 냉장고에 보관했다 다음날 데워 먹으면 더 맛있습니다. 그런데, 강도 높은 우마미 국물을 상식하는 한국인과 일본인 입맛에는 우마미가 다소 부족할 듯합니다. 돼지고기와 토마토 퓨레가 이노신산과 글루탐산 복합 작용으로 우마미 내는 데 어느 정도 기여를 했겠지만 기대하는 양에 못 미칩니다. 한국이나 일본의 영업집에서는 조미료를 소량 넣고 싶어할 것 같네요. 저도 남은 것들은 토마토 퓨레를 더 넣어 우마미를 보강해 먹어야겠습니다.
딜과 사워 크림 때문에 이국적이고 색다른 맛이 나니 이 두 재료를 구하지 못 하면 보르쉬츠 만드는 걸 보류해야 합니다.
우크라이나가 하루 빨리 평화를 되찾기를 염원합니다. 희생자들의 명복을 빕니다. 유가족들에게는 깊은 위로를 전합니다. ■
☞ [음식우표] 우크라이나 2013 - 우크라이나의 웨딩 브레드 '코로바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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