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잡생각

단풍이 들기도 전에 말라버린 나뭇잎들

단 단 2023. 10. 25. 23:50

 

 

공원이나 산책로에서 안목 없는 지자체장이 혈세 낭비해 세운 조잡한 인공 조형물 보는 것을 아주 싫어합니다. 눈이 썩는 것 같아요. 지자체장을 선출할 때는 안목 검증 절차가 꼭 있어야 합니다.

 

가을이 가기 전에 인공 조형물이 최대한 적으면서 인파도 그리 많지 않은 곳을 찾아 자연 촬영을 연습하고 왔습니다. (어딘지 맞혀보세요. 강남 코엑스에서 43km 정도 떨어져 있으며, 평일 정오쯤에 출발해 자가 운전을 할 경우 70분 정도 소요됩니다.)

 

장비와 촬영 조건은 다음과 같습니다. 제 실력엔 과분한 장비라고 생각하고 있습니다. 

 

Canon R6 Mark II (중급기 미러리스)

RF 24-105 mm f/4L IS USM

조금 흐린 날

전부 조리개 우선 모드

전부 수동 초점

('초점 피킹'이라는 막강한 기능이 있어 작은 뷰파인더와 LCD 창, 노안老眼의 악조건에서도 초점 맞추기 수월)

삼각대 반입 금지로 전부 손각대 

편광 필터를 가지고는 갔으나 사용하지 않음

후작업으로는 밝기 수정과 자르기crop 정도만 하고 색채는 건드리지 않음  

 

 

 

 

 

 

 

 

 

입장하자마자 흥미로운 광경을 맞닥뜨렸습니다.

줌을 최대한 당겨 찍어보았죠.

곤충 촬영을 다 해보다니요. 

 

메뚜기가 필사적으로 움직여보지만 거미줄에서 헤어나질 못합니다. 

정교하게 친 거미줄 좀 보세요. 정말 놀라운 곤충입니다.

(사진을 클릭해 크게 띄우면 거미줄이 더 잘 보입니다.)

 

 

 

 

 

 

 

 

 

음지의 고사리도 담아봅니다. (양치식물로도 유명한 곳입니다.)

이것도 놀라운 게,

전체 모양이 그대로 축소돼 작은 잎에 담겼고 그 작은 잎을 이루는 더 작은 잎에 또 한 번 담겼습니다.

프랙탈fractal 이야기할 때 꼭 언급되는 거지요.

아직 어린 잎이라서 형태가 덜 또렷하긴 하지만 실물을 보니 정말 경이롭습니다.

[짤막 동영상] Barnsley Fern - Fractals Everywhere

 

 

 

 

 

 

 

 

 

말라죽은 고사리조차 카리스마 넘칩니다.

좀 더 자란 고사리라서 위에서 본 파릇파릇한 고사리보다는 키가 큰데,

각각의 잎도 그 비율을 따라서 길어진 게 신기합니다. 

(가로로 긴 사진들은 클릭하면 큰 사진이 뜹니다.) 

 

 

 

 

 

 

 

 

 

나뭇가지에 달린 채 말라버린 수국.

시간이 멈춘 것 같고 초현실적surreal으로 보입니다.

나탈리 포트만 주연의 《소멸의 땅Annihilation》(2018) 장면 같은 곳이 제법 있었습니다.

이 나무는 작지만 수형樹形이 아주 잘생겼죠?

 

이곳은 풍광이 좋은 곳이 아니라 그저 나무와 풀이 많이 심긴 곳이라서 멋진 풍경을 찍겠다는 기대는 애초 하지 않고 왔습니다. 대신 흥미로운 개체가 보이면 열심히 담았습니다.   

 

 

 

 

 

 

 

 

 

우러러보며 나무 찍는 것을 좋아합니다.

한동안 가물어서 단풍이 들기도 전에 잎이 바싹 말랐고

낙엽이 져 벌써 앙상해진 나무들도 많았습니다.

더 미루지 않고 이날 억지로라도 시간 내서 온 것을 잘했다고 생각했습니다.

 

이 사진은 왠지 다채로운 꽃잎으로 꾸민 압화 같지 않나요?

 

구도도 은근히 재미있습니다. 마치 단단이 길을 걷다가 갑자기 의식을 잃고 쓰러졌는데 눈을 떠보니 선량한 시민들이 걱정스런 눈으로 단단을 내려다보며 "이봐요, 이봐요, 이제 좀 정신이 들어요?" 웅성웅성 하고 있는 것 같습니다.

 

 

 

 

 

 

 

 

 

꽃 핀 나무나 단풍 든 풍성한 잎의 나무도 아름답지만

가지만 남은 늦가을과 겨울 나무의 분방하면서도 정교한 실루엣이 주는 근사함이 또 있지요.

 

 

 

 

 

 

 

 

 

흑백사진 아닙니다.

조영제 투여한 혈관 보는 것 같죠?

 

 

 

 

 

 

 

 

 

이건 먹물 붓으로 굵은 획을 그은 뒤 종이에 고의로 펜촉 끝을 걸리게 해 잉크를 튀긴 것 같고요.

오래된 나무라서 키도 크고 잔가지도 저렇게 많습니다.

 

 

 

 

 

 

 

 

 

조용한 곳을 찾아 기도 중인 노신사.

 

 

 

 

 

 

 

 

 

해질 무렵의 전나무숲.

 

 

 

 

 

 

 

 

 

오렌지빛으로 물든 오후의 세상. 

 

 

 

 

 

 

 

 

 

역광 촬영 시 암부를 밝게 만들어주는 HDR 기능이 고맙기는 하나 어떤 때는 그냥 시커먼 채로 두고 싶을 때가 있습니다. 전경-중경-후경에, 요란한 하늘에, 물에 비친 반영에, 물에 뜬 연잎까지, 구도가 다소 산만하고 프레임 안에 정보가 많아 암부는 일부러 손대지 않고 두어 정보양을 조금 줄여보았습니다. 어차피 해가 지고 있었으니 어두운 것도 나쁘지 않습니다. 클릭해서 큰 사진으로 보면 좀 더 밝게 보이기는 합니다. 요즘은 아예 사진기 안에 HDR 기능이 들어 있어 촬영 전에 선택할 수도 있고, 스마트폰은 이런 상황에서 기본으로 HDR 촬영을 해주므로 후보정 하는 시간을 아껴줍니다.

 

 

 

 

 

 

 

 

 

해가 거의 다 졌습니다.

 

이곳은 식물을 자연 그대로 보존하기 위해 방제를 일절 하지 않나봅니다.

오염물질을 최소화하려고 하루 입장 인원도 제한하고 경내를 돌아다니는 작업용 탈것들도 전부 전기차로 채택했는데,

래서 그런지 잎이 성한 나무가 없습니다. 

나무들마다 잎을 전부 벌레한테 뜯어먹혀 구멍 숭숭 너덜너덜 얼룩덜룩.

뜯어먹힌 잎도 제 눈에는 멋있어 보여 한 장 담아보았습니다.

 

이날 풀냄새 나무냄새를 흠뻑 마시고 돌아왔습니다.

특히 전나무숲 향이 압권입니다.

숲길을 걷는 내내 현악기 하는 친구들이 활에 문지르는 매운 송진 냄새가 났죠. 

 

수 시간 촬영을 하고 나니 이제야 사진기가 손에 좀 익습니다.

겨울 설경은 어디 가서 담으면 좋을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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