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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스 파이 - 영국의 크리스마스 과자 본문
한국에 있을 땐 미처 알지 못했다.
서양인들의 크리스마스가 온통 계피와 생강,
그리고 그밖의 향신료로 버무려지는 줄을.
술이나 음료를 마셔도
계피, 생강, 그리고 그밖의 이국 향신료 듬뿍 넣어서.
과자나 파이를 만들어도
계피, 생강, 그리고 그밖의 이국 향신료 듬뿍 넣어서.
멀쩡하던 홍차에도
계피, 생강, 오렌지, 그리고 그밖의 이국 향신료 듬뿍 넣어서.
(가만, 지금 이거 시詩인 거야?)
티라이트, 디너 캔들에까지
계피, 생강, 그리고 그밖의 이국 향신료 듬뿍, 눈 매울 정도로 듬뿍 넣어서.
현재 영국의 크리스마스 풍경 중 상당 부분이 빅토리아 시대로부터 유래된 것들이라고 한다. 크리스마스 카드도, 크리스마스 트리와 이런저런 장식도, 크리스마스 음식들의 레서피도.
민스 파이의 역사는 그보다 더 오래 되었다. 오늘날의 민스 파이와는 형태가 달랐지만 중세 때부터 이미 즐겼다는 기록이 있다. 아이들이 있는 대개의 가정에서는 굴뚝 타고 스타킹에 선물 채우러 오실 산타 클로스 할아버지를 위해(영국인들은 'Father Christmas'라는 용어를 더 선호한다.) 벽난로 옆에 민스 파이와 향신료를 넣어 특별 조제한 술 또는 우유 한 잔을 얌전히 놓아 둔다고 한다. 깜찍하게도 루돌프를 위해서는 당근도 하나 같이 둔다고. 크리스마스 시즌에 누군가가 권한 이 민스 파이를 사양하면 일년 내내 운이 없다고 믿는 사람도 있다. 떡국 한 그릇 꼭 먹어 줘야 아이들이 나이 한 살 더 먹을 수 있다고 믿는 한국인들처럼 영국의 아이들은 해가 바뀌기 전에 꼭 이 민스 파이를 먹어 줘야 한단다.
영국인들이 크리스마스 때 먹는 이 민스 파이에는 계피, 생강, 정향, 넛멕, 그리고 그밖의 이국 향신료들과 미이라 같은 건포도와 기타 다른 과일들, 견과류 등이 들어간다. 단돌이 다쓰베이더는 맛있어한다. 말린 과일에는 칼륨이 농축돼 있고 생과일 먹는 것에 비해 같은 양을 먹어도 칼로리를 더 많이 섭취하게 돼 나는 말린 과일과 견과류 조합으로 된 식품들을 썩 즐기지는 않는다. 여름이나 가을에 수확한 과일을 겨울에 즐기려면 말려 두는 것 외에는 달리 방법이 없었으리라. 이해할 수 있다. 생강은 겨울철 감기에도 좋다 하니 이것도 나쁠 것은 없다만, 크리스마스 시즌이면 어딜 가나 계피, 생강, 정향 냄새에서 벗어날 수가 없다.
크리스마스 때 집중해서 향신료를 즐기는 이유는 다 '동방박사'님들 때문이라 한다. 저 옛날, 페르시아에서 신기한 별을 따라 베들레헴으로 온 현자들이 아기 예수께 드린 예물(황금, 유향, 몰약)로부터 비롯된 풍습이란다. 그러고 보니 유향과 몰약이 모두 강한 향을 내는 물질들이다. 별을 따라 갔다 하니 저기 저 민스 파이에 얹힌 별 모양도, 트리 꼭대기의 별도 괜히 나온 것이 아니다.
엊저녁 BBC 방송에서는 영국과 미국의 천문학자들이 예수님 태어날 당시 동방박사들을 이끌었던 저 크리스마스 별의 존재를 증명하는 다큐멘터리를 내보냈다. 우리가 흔히 동방박사 '세 사람'이라고 하는 데는 오류가 있을 수 있다는 재미있는 이야기를 한다. 그 귀한 것들을 가지고 장거리를 이동하려면 당시의 관습으로 볼 때 더 많은 인원이 필요했을 것이고, 따라서 세 가지 예물을 동방박사들 중 엄선된(?) 자들이 하나씩 차례대로 드릴 수는 있었겠지만 마굿간 밖에는 그밖의 사람들과 수행원들이 대기하고 있었을 거라는 것이다. 고로, 드린 예물의 종류가 세 가지였다는 것이 꼭 동방박사가 모두 세 사람이었다는 뜻은 아닐 수도 있다는 것이다.
그밖에 왜 그런 거대하고 신기한 별을 동방박사들말고 다른 많은 사람들은 발견하지 못 했는지 하는 점들에 대해서도 이런저런 설명을 했는데, 천체란 게 워낙 복잡하고 용어가 전문적이라 듣고도 금세 잊어버렸다. 하여간, 내 결론은 동방박사가 괜히 동방'박사'가 아니라는 것이다. 남들 무심히, 아무 생각 없이 있을 때 하늘을 꼼꼼히 우러러 살피다가 심상치 않음을 간파, 단호히 결심하고 먼 여행 길에 나섰던 것이다. TV도, 전깃불도 없던 시절이니 밤하늘의 별을 살피는 일은 옛 사람들에게 얼마나 신비롭고 황홀한 일이었을까.
어쨌든, 나는 내 생일보다도 크리스마스를 더 좋아한다. 크리스마스의 그 따스한 분위기도, 장작불도, 들뜬 분위기도, 유치한 선물도, 그리고 알록달록 반짝반짝 세상의 모든 클리셰와 키취도 다 용서가 되는 이 축제 분위기가 좋다. 제발 '성탄의 본질은 어디 가고 상업성만 판친다'는 흥 깨는 소리는 하지 말라. 선물 받는 거 무지 좋아하는 이 단단이 단단히 한몫 잡는 날이니 그대야말로 판 깨지 말라.
영국인들은 이 달디단 민스 파이에 크림까지 끼얹어 먹는다는데 아직은 내공이 달려 그렇게까지는 못 하겠고 그냥 한두 개 맛만 본다. 나머지는 다 다쓰베이더 몫이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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