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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국그릇] 위타드 티포원 본문
제 티백받침 모음 중에 ↑ 이렇게 생긴 녀석이 하나 있습니다. 기억 나십니까?
작년 제 생일에 어느 고마운 분께서 이 티백받침과 똑같은 그림의 티포원을 보내 주셨지요. 어찌나 신기하고 반갑던지요. 영국 와서 꽃무늬가 막 좋아지기 시작할 무렵 제 생애 첫 꽃무늬 찻주전자가 생겨 참으로 각별했었습니다. 무엇보다, 포트메리온 티포원은 투박하기 마련인 티포원치고는 손잡이가 제법 정교합니다.
제 수집품 중에는 이렇게 생긴 녀석도 있습니다. 기억 나십니까?
그런데 이번 제 생일을 앞두고 어느 고마운 분께서 이 티백받침과 똑같은 프린트의 티포원을 또 보내 주셨지 뭡니까. 오오, 아무래도 이 분, 비상한 기억력을 지닌 분임에 틀림없습니다. 제 티백받침 그림들을 모조리 기억하고 계신 모양입니다.
티포원의 찻잔 부분에 굽이 없는 경우 이렇게 받침을 딸려 내보내기도 하는데, 이렇게 되면 좀 더 완성도 있는 그림이 나오게 되지요. 안정감 있어 보이지요? 접시만 따로 요긴하게 쓸 수 있어 아주 좋을 것 같습니다.
보내 주신 분은 모르시겠지만 사실, 이 사랑스러운 영국제 티포원과는 사연이 좀 있습니다. 제가 영국에 온 첫 해에 런던 시내 어느 유명 찻가게에서 이걸 발견하고는 몹시 갖고 싶어했던 적이 있었지요. 아쉽게도 예쁜 문양과 형태에 비해 표면이 매우 거칠게 마무리 되어 몇 번 만지작하다가 그냥 나와 버렸지만요. 프린트 표면이 거친 것들은 손톱으로 몇 번 긁으면 금방 벗겨지거든요. 집에 위타드 찻주전자가 이미 하나 있긴 하지만 위타드는 브랜드 명성에 비해 다구들은 어쩐지 품질이 좀 떨어진다는 인상이 들었습니다. 특히, 표면 처리가 매끄럽지 못한 게 제일 아쉬웠지요. 손그림 제품들은 괜찮지만 전사 제품들은 표면이 많이 거칩니다. 하여간, 그 후로 시간은 흘러 흘러, 더이상 이 예쁜 티포원은 위타드 숍에서 찾아 볼 수가 없었습니다. 갈 때마다 품절. 결국은 단종. 인연이 아닌가 보다 하고 잊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놀랍게도 이 녀석이 오늘 미국(!)에서 날아온 겁니다. 아니? 미국에 계신 분이 영국에도 없는 물건을 대체 어디서 구하신 겁니까? 그건 그렇고, 어떻습니까, 정말 예쁘지 않습니까?
표면을 쓰다듬어 봤습니다. 응? 영국 위타드 숍에서 본 것처럼 까칠거리지가 않네요. 어찌된 일일까요? 미국에 파는 물건, 영국에 파는 물건이 다른 걸까요? 미국 여인들의 피부는 영국 여인들 피부만큼 까칠거리지 않지요. 기후 환경 탓도 있지만 외모를 중시하는 문화 탓도 있지요. 그런 점이 이 티포원에도 반영된 걸까요? 제가 영국에서 본 그 때 그 제품들이 아마 특별히 문제가 있었던 배치batch가 아니었나 싶네요.
다쓰베이더는 친츠chinz 스타일의 자잘자잘 하늘하늘한 들꽃들을 좋아하고 저는 카리스마 넘치는 실한 꽃들을 좋아합니다. 꽃무늬 다구들은 대개 큰 꽃 아니면 벽지 같은 친츠, 이렇게 둘로 나뉘는데 이 티포원의 꽃그림은 현명하게도 절충 형태를 하고 있어요. 결국 이렇게 해서 내 손에 들어오게 되다니 참 묘한 인연일세, 하면서 정성껏 씻기고 말려 차를 한번 우려 보았습니다. 기분 최곱니다.
티포원만 보내 주신 게 아니라 평소 즐기시던 차도 두 개씩 두 개씩 나누어 주셨습니다. 어릴 적 과자 종합선물세트 받는 기분과 흡사합니다. 글씨도 어쩜 이리 얌전하게 잘 쓰셨는지. 그런데 아직두 중고딩 소녀 글씨체시네? 이런 저런 차를 드셔 보시고는 나름의 결론도 덧붙여 적어 주셨습니다.
이런저런 가향차들을 시음해 보니 결론은 가향 안 된 정통 영국 클래식 차가 최고라는 것!
그쵸? 저두 금방 간파했답니다. 미국에는 맛나고 기발한 가향차가 많고 영국에는 클래식 차가 흔하니, 클래식 차들은 제가 영국에 있을 동안 엄선(?)해서 열심히 보내 드릴게요. 제게는 이렇게 가끔씩 얻어 마시는 고마운 분의 향차, 맛차들도 더없이 소중합니다.
자아, 차는 다 우려졌으니, 조금 전에 만든 레몬 타트, 아직 완전히 굳진 않았지만 곁들여서 제대로 찻자리 한번 갖도록 하겠습니다.
커허, 날씨도 좋고, 차맛도 좋고, 타트도 쨍하니 제대로 맛 나고, 좋구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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