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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국음식

진짜 빵 만들기 운동 The Real Bread Campaign

단 단 2010. 1. 6. 21:13

 

 

 

 

 처음 구워 본 식빵. 버터 바르기 늠 힘드네;;

영국인들처럼 버터 반 덩이쯤은 늘 실온에 두어야겠어;;

 

 


설거지 하면서 BBC 라디오를 듣다가 재미있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중세 때 이미 빵을 만들어 파는 베이커들이 동네마다 존재했던 모양인데, 이에 대한 법이 지금과는 달리 매우 엄격했다고 한다. 식빵의 재료와 크기, 심지어 무게까지도 법이 정한 대로 맞춰 만들었어야 했고, 만일 기준에 미치지 못한 '불량한' 빵을 만들다 걸리기라도 하면 그 베이커는 자기가 만든 빵을 목에 걸고 런던에서 가장 지저분한 저잣거리를 돌아야하는 벌을 받았다고 한다.


초범일 경우는 이렇게 비교적 가벼운(?) 형벌을 받지만 재범으로 이어지면 벌이 조금 더 심각해진다. 죄인의 목과 두 손을 널빤지 사이에 끼워 뭇사람에게 구경시키던 형틀인 저 '필로리Pillory'를 쓴 채 지나가는 사람들의 야유와 이런저런 세례를 받았다고 한다. 아래와 같은 몰골을 하고서 말이다.

 

 

 

 

 

 

 

 

 

이런 수치를 겪고도 버릇을 못 고쳐 무게를 속인 가벼운 빵, 질 나쁜 재료로 만든 조잡한 빵을 계속 만들다 걸리면 이번에는 집행인들에 의해 오븐이 헐리고 다시는 빵을 굽지 않겠다는 맹세를 한 뒤 빵 굽는 일에서 완전히 손을 떼야만 했단다. 오늘날의 영업 취소보다도 센 벌이다. 그런데 법이 정한 빵의 재료를 보니 기가 막히게 단순하다. 밀가루, 물, 천연효모, 소금 약간. 이것이 전부다.

 

집에서 한 번이라도 식빵을 직접 만들어 본 적이 있는 분이라면 시판되는 식빵의 문제점들을 잘 아실 것이다. 만들어 보지 않은 분들이라도 성분표를 찾아 꼼꼼하게 읽다 보면 으악 소리가 절로 나올 것이다. 각종 첨가물들과 유화제, 별로 몸에 좋을 것 없는 시답잖은 유지 등, 단순한 식빵 하나 만드는 데 얼마나 많은 첨가물이 들어가는지 알고 나면 딱딱하고 무겁고 까칠하더라도 내집표 식빵이 최고라는 걸 깨닫게 된다.


그나마 이런 수퍼마켓표 빵들은 일일이 첨가물 쓴 것들을 법에 의해 밝히게 돼 있으니 소비자의 입장에선 불행 중 다행인데, 수퍼마켓 내에 상주하는 베이커리들이나 길가의 베이커리들은 이런 규제도 받질 않는다. 생각해 보니, 한국에 있을 때도 제과점 빵들의 포장에서는 성분표라는 걸 본 기억이 없다. 유통기한도 찍혀 있지 않았다.

 

내 손으로 만든 식빵과 밖에서 파는 식빵들을 한번 비교해 보라. 내 솜씨가 부족한 탓도 물론 있겠지만, 어째서 수퍼마켓이나 제과점 식빵들은 내 빵과 비교했을 때 그토록 가볍고 쫄깃할 수가 있는지, 마냥 두어도 곰팡이도 안 필 수가 있는지 몹시 궁금해진다. 중세 영국의 기준이라면 오늘날의 빵쟁이들 중 상당수는 자기가 만든 빵을 목에 걸고 거리를 돌아다니고 있거나, 필로리를 쓰고 있거나, 오븐을 빼앗기거나 할 것이 틀림없다. 엉터리 빵들이 제재도 안 받고 벌건 대낮에 버젓이 팔린다. 그래도 내가 볼 때 여기 영국 수퍼마켓의 빵들은 첨가물도 비교적 적게 넣고 유기농 재료나 스펠트분, 통밀 등을 쓴 것들이 많아 딱히 심각할 정도로 나쁘게 보이지 않는데 깐깐한 영국인들에게는 이마저도 성에 차질 않는 모양이다. '기준에 못 미치는' 빵에 분개한 사람들이 발벗고 나서서 시작한 운동이 바로 <The Real Bread Campaign>이다. 시간 있으신 분들은 이곳 ☞ 누리집을 둘러보셔도 좋겠다.

 

 

 

 

 

 

 

 


사실, 집에서 식빵을 굽고 싶어도 빵은 케이크와 달리 고놈의 반죽 과정이란 게 있어 번거롭기 짝이 없다. 발효하는 데 걸리는 시간도 길어 나같은 성질 급한 사람은 시도할 엄두조차 못 낸다. 그런데 BBC 라디오 ☞ 누리집에 가 보니 마침 스콘보다 더 간단한 식빵 레서피가 하나 있다. 전에 소개한 적 있는 '스톤그라운드 스펠트분'으로 굽는 것인데, 만들기는 쉬우면서 풍미는 꽤 좋다길래 용기를 내어 도전해 보았다. 이 스펠트분은 보통 밀가루와 달리 이스트에 반응하는 속도가 공격적이라 할 만큼 빨라 발효과정이 따로 필요치 않다고 한다. 재료를 한데 넣고 섞다가 식빵틀에 옮겨 예열된 오븐에 넣어 주면 끝. 재료 섞어서 오븐에 넣기까지 3분도 안 걸린다.

 

3분도 안 걸리는 빵 반죽이라니?


그나마 이 3분이 안 걸리는 반죽도 숟가락으로 슬렁슬렁 해서 손가락에 밀가루도, 물 한 방울도 안 묻혔다. 재료도 스펠트분, 이스트, 소금 약간, 따뜻한 물이 전부라 유지도 필요 없고 설탕도 안 들어간다. 그렇게 해서 나온 것이 사진에 있는 저 못난이 스펠트분 식빵.


일단, 무게가...


크으, 돌덩이다.

 

식빵 한 쪽 무게가 수퍼마켓 식빵 세 쪽에 해당하는 것 같다. 맛은 뭐 비교도 안 될 만큼 훌륭하다. 단단이 그동안 절대 먹지 않았다는 식빵 껍질 부분도 쓰지 않고 누룽지처럼 구수하기만 하다. 이것저것 곁들여 먹어 보니 잼보다는 클로티드 크림이나 처트니와 더 잘 어울리는데 치즈를 곁들여도 아주 맛있다. 솜씨가 늘면 언젠가는 빵 만들기의 진수라는 저 천연효모 빵도 한번 도전해 보리.

 

 

 

 

 

 

 



집에서 식빵 구운 기념으로 처트니 사진도 같이 좀 찍어 본다. 처트니는 쉽게 말해 채소로 만든 잼이라고 보면 된다. 영국에서는 잼 시장 못지 않게 처트니 시장도 규모가 크다. 사진에 있는 저 예쁘고 맛 좋은 처트니들은 잉글랜드 서쪽 시골 마을의 한 농가에서 '패밀리 비지니스'로 만든 제품이라고 한다. 영국인들은 또 '웨스트 컨츄리의 농가에서 만든 소규모(절대로 대량 생산해서는 안 된다.) 패밀리 비지니스 제품'이라고 하면 다들 꺼뻑 죽는다. 잼 좋아하는 다쓰베이더에게 지난 크리스마스 때 선물로 사 준 것이었다. 그럼 다쓰베이더는 단단에게 무슨 선물을 해 줬을까?

 

 

 

 

 

 

 



다쓰베이더가 사준 2009 크리스마스 선물은 바로 이것. 동네 채리티 숍들을 돌다가 티라이트 홀더 좋아하는 단단을 위해 거금 7,500원 주고 사왔다 한다. 유리가 늙은 것을 보니 나이가 제법 든 모양이다. 세월이 더 지나면 저 몸통 부분인 청동에도 녹청이 덕지덕지 앉을 것이다. 카드도 없이 가격표 뒤에다 짤막한 헌정의 글을 썼다. 가격표는 떼지 말고 그냥 멋으로 붙여 두자고 한다. 영국 와서 미감과 입맛이 바뀌고 있다. 이제 꼬질꼬질 낡은 것, 얼룩덜룩 흠 있는 물건들이 새것보다 더 좋아 보이기 시작했다. 한국의 인테리어 잡지나 아파트 분양 광고 사진 같은 것들을 보면 다쓰베이더와 단단은 약속이라도 한듯 한목소리로 "우웩, 가구고 바닥이고 벽이고 소품이고, 다들 너무 쌔거잖아!" 경기 일으킨다.


누리터에서 유럽풍으로 잘 꾸몄다는 카페나 티룸 방문기들을 봐도 무언가 어색하다. 소품이나 가구들은 어찌어찌 유럽에서 잘도 구해다 놓았지만 벽과 바닥과 천장과 창틀과 문 손잡이가 너무 새것이다. 옷 가게를 가도 꼭 <바버Barbour>풍의 'waxed' 혹은 'weathered' 외투들이 눈에 들어온다. 빵도 과자도 광택 없이 부스스한, 그러나 벽돌처럼 묵직한 것들이 더 맛있다고 느껴지기 시작했으니 밤낮 촉촉한 것, 부드러운 것, 솜털처럼 가벼운 것, 살살 녹는 것만 찾던 단단도 이제 슬슬 철이 들어 어른의 맛을 알아가는 모양이다. 다쓰베이더 이 양반은 원래 이런 지푸라기 같은 까칠한 것들을 좋아하던 사람. 과자를 먹어도 꼭 오트밀 크래커, 다이제스티브, 이런 걸 먹는다. ㅋ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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