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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국음식

하이 티 High Tea

단 단 2010. 9. 21. 21:07

 

 

 

 

 

다쓰베이더 생일입니다. 이번처럼 추석과 겹칠 때가 종종 있어 손해를 보곤 합니다. 오늘은 아프터눈 티 테이블 대신 하이 티를 차려 보겠습니다.

 

아프터눈 티와 하이 티가 어떻게 다른지 아시는 분?

 

우선, 시간대가 다르죠. 아프터눈 티는 점심 먹고 나서 저녁 식사 시간이 오기 전까지 딱히 할 일이 없어 빈둥거리는 귀족들의 문화입니다. 나른한 오후에 갖는 간식 시간이라고 보시면 돼요. 오후 4시부터 시작해 대개 5시 정도면 끝나는데, 그리고 나서는 저녁 식사 시간을 기다립니다.

 

이에 반해 하이 티는 주로 잉글랜드 북부의 노동자들이나 농부, 스코틀랜드 사람들이 하루의 고된 일을 마치고 집에 돌아와 갖는 이른 저녁 식사입니다. 대개 6시쯤 갖습니다. 영국의 노동자 계급working class의 생활상을 다루는 영국 영화들을 보면 "저녁 먹었어?" 를 "티 했어?" 라고 묻는 장면들이 종종 나오는데, 이때의 '티'는 일 마치고 집에 돌아와 갖는 저녁 식사를 일컫습니다. 간식이 아닌 거죠. 그렇다고 노동자들이 일상에서 갖는 모든 저녁 식사를 다 하이 티라고 하진 않습니다. 전통적인 방식으로 푸짐하게 한상 가득 차려놓고 가족과 친구들이 함께 모여 홍차를 마시며 떠들썩하게 즐기는 저녁 식사가 진정한 의미의 하이 티라고 합니다. 식사이다보니 아무래도 고기나 생선 종류가 더 올라오는 등 음식의 가짓수가 많고 양도 좀 많습니다. 가장 훌륭한 하이 티는 시골 농가의 하이 티라고 다들 입을 모읍니다. 신선한 재료와 단순한 조리법으로 만든 농가의 푸짐한 저녁 식탁은 떠올리기만 해도 마음이 훈훈해진다고들 합니다.

 

시골 농가의 전통적인 하이 티 테이블에서는 대개 다음과 같은 것들을 볼 수 있다고 합니다. 헬렌 심슨의 <The Ritz London Book of Afternoon Tea>에서 옮겨 봅니다.


하얀 식탁보 씌운 큰 식탁
(아프터눈 티 테이블은 대개 작죠. 하이 티 테이블은 좀 더 크고 높기 때문에 '하이' 티라고 부르게 되었답니다.)
훈제한 햄 또는 달걀과 베이컨을 넣고 구운 파이
큼직하게 자른 치즈 조각
토마토와 물냉이watercress
끓인 버터와 향신료로 버무려 맛낸 새우potted shrimps 또는 끓는 물에 데친 후 버터를 바른 훈제 청어jugged kippers
스크램블드 에그
버터와 잼, 꿀 등을 곁들인 빵
샌드위치 한 접시
바삭하게 구운 티케이크
(티타임용 케이크가 아니라 '티케이크'라는 특별한 종류의 빵이 있습니다.)
케이크 (대개 그 지역 사람들이 구워 먹는 지역 특산 케이크가 올라옵니다.)
건과일과 생강을 넣은 오트밀 시리얼
브라운 베티에 진하게 우린 홍차

 


아시아 국가들을 여행할 때 그곳 호텔에서 흔히 볼 수 있는 하이 티들은 원래 의미의 하이 티에서 많이 변형된 거라는 걸 알 수 있죠. 아프터눈 티 3단 트레이에서나 볼 수 있는 저 우아한 과자들을 여전히 포함하고 있고, 거기에 고기나 까나페, 딤섬 등을 추가한 형태가 많습니다. 지역색을 가미해 독자적으로 해석·발전시킨 거라 생각하면 이것도 나쁘지 않습니다. 영국 사람들한테는 지나치게 고급으로 느껴질 수도 있겠죠.

 

 

 

 

 

 

 

 


다쓰베이더와 단단은 반식半食을 실천하는 중이므로 위에 열거한 것들을 모두 식탁 위에 올릴 수 없었습니다. 하나씩 찬찬히 보자면요,


샌드위치는 아프터눈 티 테이블에도 올라오는 건데, 하이 티 샌드위치니 좀 더 시골스럽게 만들었습니다. 통밀 식빵을 바삭하게 구운 후 훈제연어 파테와 중동 사람들이 즐기는 후머스hummus를 발라 보았습니다. 요즘 영국의 중산층 사이에서는 기름진 기존 스프레드 대신 이 후머스를 발라 먹는 게 유행입니다. 이것도 스프레드 타입이라 간편하면서도 색다른 맛이 있어요. 겉껍질이 구수하고 맛있는 식빵이니 잘라내지 않고 그대로 다 씁니다.

 

 

 

 

 

 

 



훈제한 햄이나 고기 파이를 내야 하지만 둘 다 고기를 즐기지 않으므로 후추 숭숭 박은 맛난 훈제 고등어로 대신합니다. 고기를 안 먹는다 하면 사람들은 무조건 채식주의자인 줄 알더라고요. 채식주의자 아닙니다. 해산물은 몹시 즐기는걸요.(해산물이 고기보다 비쌉니다. ) 영국인들이 고등어를 이렇게 맛있게 즐기고 있을 줄은 상상도 못했습니다. 우리 한국의 묵은지 고등어 조림이 세상에서 제일 맛있는 고등어 요리인 줄로만 알고 있었는데요.

 

 

 

 

 

 

 

 


요즘도 그런지는 알 수 없지만, 옛 시절엔 할 일 없는 영국의 부잣집 도련님들은 클럽Gentlemen's Club에서 도박이나 하며 낮시간을 때웠다고 하죠. 그런데 이런 클럽에서도 남자들끼리 티타임을 가졌다고 하니 재미있습니다. 이때 차에 곁들이는 음식 중 유명한 것이 바로 포티드 쉬림프potted shrimps입니다. 영국의 수퍼마켓 냉장 코너에서도 종종 볼 수 있습니다. 만들기 무척 쉬우니 다들 집에서 만들어 한번 즐겨 보세요.
☞ [영국음식] 브라운 쉬림프, 포티드 쉬림프

 

 

 

 

 

 

 

 

 

치즈도 내야 한다고 하니 다쓰베이더가 좋아하는 영국 치즈 3종을 내어봅니다. 스틸튼, 체다, 크랜베리가 박힌 웬즐리데일입니다.


수퍼마켓에서 치즈 살 때 주의할 점:
절대 모둠 치즈로 구성된 제품은 사지 마십시오. 한 번에 이것저것 다양한 치즈를 맛볼 수 있으니 좋겠구나 싶어 사게 되는데, 오합지졸들의 집합이라 보시면 됩니다. 모둠 치즈에 든 것들만큼 맛없는 치즈도 없어요. 치즈도 종류별로 각자 잘 만드는 전문 생산자들이 따로 있으니 잘 알아보시고 단품으로 구입해 치즈보드를 꾸미세요. ☞ 치즈보드 구성하는 법

 

오트밀 씨리얼도 낸다는데 그것까지 내면 너무 배 부를 테니 간단하게 오트밀 비스킷으로 대신합니다. 영국에서는 치즈에 곁들이는 크래커로 담백한 워터 비스킷을 많이 쓰는데, 이 묵직한 오트밀 비스킷도 몸에 좋고 풍미도 좋아 많이들 선호합니다. 까만 열매는 포도가 아니라 자두의 일종인 댐슨damson입니다. 작아서 한입에 먹히니 일반 자두보다는 편합니다.

 

 

 

 

 

 

 


 
토마토를 큼직하게 썰어 내는 대신 먹기 좋게 살사salsa로 내봅니다. 쌉쌀한 물냉이watercress는 새우나 생선을 먹을 때 같이 먹으면 좋습니다. 사다가 씻기만 해서 그냥 내는 일종의 잎샐러드로 호스래디쉬와 비슷한 맛이 납니다.

 

 

 

 

 

 

 

 

 

<티케이크>입니다. 케이크가 아니라 <홋 크로스 번> 같은 번 종류입니다. 헷갈리기 쉽죠. 토스터로 바삭하게 구워 버터를 발라 먹습니다. 영국인들이 아주 좋아합니다. 옛날에는 다들 벽난로에 구워 먹었다고 합니다. 벽난로 앞에 떨어져 앉아 포크같이 생긴 긴 꼬챙이 끝에 식빵이나 티케이크를 꿰어 구워 먹곤 했다는데, 지금도 BBC 골동품 프로그램인 <Antiques Road Show>에 이 꼬챙이들이 심심찮게 등장하곤 합니다.

 

 

 

 

 

 

 

 


티케이크가 있어도 잼과 함께 빵을 따로 또 내야 한다네요. 다 못 먹을 게 분명하므로 빵은 생략하겠습니다.

 

 

 

 

 

 

 



단것으로 마무리 해야죠. 아프터눈 티든 하이 티든 케이크가 빠지면 섭섭하죠. 하이 티 테이블에는 그 지역 사람들이 즐기는 케이크를 올려 식탁에 변주를 준다고 하는데, 외국인인 우리가 우리 지역 사람들이 즐기는 케이크가 뭔지 알 턱이 있나요. 사과가 제철인데다 다쓰베이더가 사과를 아주 좋아하니 <애플 파이>로 대신합니다. 한 쪽 덜고 나머지를 예쁜 접시에 옮기려다 철퍼덕, 죄다 부숴 뭉갰어요.;; 파이 전체 사진은 못 찍습니다.

 

아프터눈 티타임에 약간의 형식과 절차가 필요하듯 하이 티타임에도 나름의 불문율이 있습니다. 하이 티 테이블에 올리지 않는 것들에 대해 적어봅니다.


밀푀유나 머랭과자
아이싱슈가나 퐁당fondant 입힌 작고 고급스런 과자들
부드럽고 살살 녹는 프랑스식 과자들
은제 찻주전자와 얇고 우아한 본차이나 찻잔
아프터눈 티 테이블에서 종종 볼 수 있는 가식적인 사교적 언행들

 

 

오늘은 불량소녀 님이 보내주신 티게슈TeeGschwendner의 <써머 로맨스>를 우렸습니다. 빨간 찻물의 베리 차입니다. 이름이 근사하네요. 여름을 떠나 보내는 아쉬운 마음을 담아 마십니다. 하이 티에는 원래 영국식 블렌딩 차를 진하게 우려 낸다는데, 진한 차는 아침에 마셨으니 저녁엔 순한 차를 마셔야지요. 저도 이제 늙어서 저녁 때 카페인 마시면 잠 못 잡니다. 하이 티에는 본차이나 찻잔 대신 두툼하고 투박한 찻잔을 쓰고 은제 찻주전자 대신 석기stoneware인 '브라운 베티'를 쓴다고 합니다. 우리 집 베티가 이제야 제 무대를 만난 셈이죠.

 

가만 있자, 그건 그렇고 다쓰베이더 선물은 뭘 사 줘야 할까요? 갖고 싶은 걸 얘기해 보랬더니 너무 비싸서 차마 말 못 한다고 합니다. (으응?) 뭘까요?

 

 

 

 

 

 

 

 

끝내 입을 열지 않은 다쓰베이더.

하는 수 없이 헌책방에서 <군 항공의 역사>나 사다 안겨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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