관리 메뉴

cloudspotter

전쟁, 홍차, 예술, 잼 - 런던 전쟁 박물관 Imperial War Museum, London 본문

영국 여행

전쟁, 홍차, 예술, 잼 - 런던 전쟁 박물관 Imperial War Museum, London

단 단 2009. 12. 4. 02:00

 

 

 

 

지난 여름에 갔던 전쟁 박물관 사진들을 찾아서 올려 본다. 우리 집 다쓰베이더가 밀리터리 매이니악이기 때문에 어딜 가든 전쟁 관련 박물관은 꼭 찾아 다니게 된다. 양차 세계대전사와 각종 현대 전쟁사는 물론이요, 각 나라 군대의 무기도 줄줄 다 꿰고 있는 다쓰베이더. 즐겨 찾는 누리집도 '군사세계', 정기 구독하는 잡지도 모형 디오라마 전문지인 '취미가Hobbist'였을 정도다. 이렇다 보니 전쟁영화 한 편을 봐도 그놈의 고증이란 것 때문에 마음 편히 볼 수가 없는 모양이다. 예를 들면 이런 식이다. 

다쓰베이더: (전쟁영화를 보다 말고) 뭐! (버럭) 미군 셔먼 탱크를 갖다 놓고 우리더러 이걸 독일군 탱크라고 믿으라는 거야? 이 사람들이 지금 장난하나!









이 날 보았던 전시품 중 단단 마음에 쏙 들었던 건 바로 1차대전 때 쓰였던 영국군의 캔버스 천 복엽기. 단단한 나무 프로펠러도, 캔버스 천도, 빈티지스러운 멋이 있지 않은가. 날개가 두 겹이나 되니 양력이 좋아 휘릭휘릭 공중 곡예를 잘 돌던 재주꾼이었다 한다.

  
 






복잡하게 얽힌 참호 속에 있었던 나무 이정표들. 
전쟁 중이었어도 유머 감각들은 변함 없다. 








 
2차대전 당시의 가정집 거실 예.
독일군의 갑작스런 공습The Blitz을 대비해 밤에는 늘 집안을 어둡게 하고 있어야 했단다. 









배급 받던 시절의 영국 가정집 부엌. 
티타월과 주전자가 보인다.
폭격에 행여 깨질세라 늘 저렇게 창문에 격자무늬로 테잎을 붙여 놓고 있었다 한다.









어느 집에나 있었다는 방공호 테이블Morrison shelter
평소엔 식탁처럼 쓰다가 공습이 일어나면 멀리 도망갈 것 없이 자기 집 안에몸을 숨길 수 있도록 모리슨 씨가 설계한 것이라 한다. 피폭 지역 생존자들 중에는 실제로 이 모리슨 셸터의 덕을 본 사람들이 꽤 있다고 한다.








 
성인 한 사람의 일주일치 배급 식량을 그린 그림이 다 있어 사진기에 담아 보았다. 홍차도 보이고 살구잼과 버터도 보인다. 조지안 시대의 디자인에 아르데코 터치를 가미한 저 미래지향적 금속제 티포트는 지금도 런던 포토벨로 마켓에 가면 쉽게 구할 수 있는 것이다. 설탕 팩을 한번 보자. '테이트 갤러리'는 설탕 장사로 큰 돈을 번 테이트 씨가 세운 미술관이란 사실을 알아차릴 수 있다.         









전쟁 중이라도 배움은 계속된다. 지나가던 꼬마 오누이가 우리를 위해 전쟁 당시 쓰이던 책상에 앉아 포즈를 취해 주었다. 고마워 얘들아~ 그런데 어릴 땐 이렇게 예쁘던 아이들이 크면 왜 그리 징그러워지는지. 









'평화'를 건네주는 부상병. 
"자, 여기 있으니 다시는 빼앗기지 마시오." 
의미심장하다.









가족과 상봉하는 영국군 포로. 
죽은 줄로만 알았던 남편과 아빠를 다시 만나다니 꿈만 같았을 것이다.









영국 전역에서 열린 빅토리 티파티. 
식탁보도 다 깔았다. 아이들이라도 꼭 제대로 된 찻잔과 받침에 차를 내준다. 전쟁이 막 끝났는데도 꽃병에 꽃까지 다 담았다. 









한국전쟁 코너도 마련돼 있어 반가웠다. 미국인들뿐 아니라 영국인들도 6.25때 많이 희생되었다는 사실을 잊지 말자. 마네킹을 잘 보면 서양인과 한국인 골격이 다른 것이 나름 신경을 쓴 티가 난다. 한국의 백화점들은 한국인한테 옷 팔면서도 코쟁이 마네킹을 갖다 세우는데.









후세인 얼굴이 인쇄된 양키들과 토미들의 화장실 휴지.









런던에는 이렇게 무료로 관람할 수 있는 미술관이나 박물관이 많지만 놀랍게도 정부나 왕실로부터 보조를 받는 곳은 거의 없다고 한다. 대개 기부금이나 기념품 장사, 간단한 요깃거리 판매로 근근히 살림을 꾸려 나간다고 하니 이런 곳에 가서는 기념품점에서 엽서라도 한 장 사줘 감사의 마음을 표하도록 하자. 나는 전쟁 당시 분위기를 물씬 풍기는 실론티 한 팩을 샀다. 

영국 브랜드의 홍차 틴에는 항상 125g(4oz)의 찻잎이 담겨 있는데, 이것이 성인 2인, 즉 부부의 일주일치 홍차 양이라는 사실을 이번에 처음 알았다. 자료실에서 배급 관련 사항을 찾아 보니 1941년 당시 성인 한 사람당 약 60g(2oz)의 찻잎을 지급했다는 기록이 남아 있다. 아무리 못 마셔도 일주일에 홍차 60g, 즉, 하루 두 잔씩은 마실 수 있어야 한다는 전시 영국 식품 관리국의 결정이 지금까지 관행으로 남아 홍차 한 팩당 125g을 담는 모양이다. 

가만, 125g 틴을 성인 둘이서 일주일 안에 해치운다고? 홍차 좋아하는 다쓰베이더와 단단이 한 달 동안 부지런히 마셔도 비울까말까한 양인데? 역시 홍차 왕국. 물자가 귀했던 전시에도 일주일에 60g씩이나 마셔 댔다니 다만 놀라울 뿐이다. 평소에는 더 마셨다는 소리 아닌가.

전쟁과 홍차 얘기가 나왔으니 이번에는 티타임에 없어서는 안 될 잼 이야기를 좀 해보자. 잼을 밥숟가락으로 퍼먹을 수 있을 정도로 좋아하시는 분? 

제아무리 잼 좋아하는 사람이라도 영화 <피아니스트>의 주인공 저 슈필만처럼 온몸으로 음미하며 맛있게 먹을 수 있는 사람이 또 있을까? 이제 무대를 영국에서 폴란드 바르샤바로 옮겨 보기로 하자.  









기억 하는가, 전쟁의 폐허 속에서 독일군에게 들킬까 몸을 숨겨가며 몇날 며칠 먹을 것을 찾아 헤매던 왕년의 깔끔 피아니스트 슈필만이 음악을 사랑하는 독일군 장교의 은총을 입고 살아남는 그 장면. 그야말로 '바르샤바의 (몇 안 되는) 생존자'인 셈인데, 그가 이 때 맛본 잼의 맛이 어땠으리라는 건 영화를 보지 못 한 사람이라도 상상을 통해 충분히 짐작할 수 있을 터. 피아노를 치던 그 '문명'의 손가락으로 허겁지겁 잼을 후벼 떠먹는 장면. 아아... 보는 이로 하여금 더불어 신음 소리를 내게 하는 영화 속 명장면이다. 









유럽의 어느 전쟁 기념관을 가든 있게 마련인 홀로코스트관이 이곳 런던 <임페리얼 워 뮤지엄>에도 있다. 희생자들의 유품들과 생존자들의 육성을 통해 당시의 상황을 조금이나마 엿볼 수 있는 공간인데, 워낙 끔찍하다 보니 사진 촬영을 금해 담아 온 사진이 없는 것이 아쉽다. 바닥부터 천장에 이르는 거대한 유리벽 안에 산더미처럼 빼곡히 쌓여 있었던 유태인 희생자들의 가죽 구두와 가방들의 기억이 아직도 선명하다. 유품들 중에는 심지어 그들이 가방 속에 간직하고 있었던 은제 티 스트레이너도 있었다.

그런데, 이 유태인들의 희생이 너무 크기 때문에 세상은 종종 독일인 희생자들의 존재를 망각하고 있는 건 아닌가 생각이 들 때가 있다. 전승국인 영국만 하더라도 자국의 전몰자들을 연중 끊임없이 기리며 전쟁 기록들만 하루 종일 내보내는 TV 채널을 다 갖고 있을 정도다. 그러나 독일인 중에서도 유태인 배우자와 생이별한 사람이 적지 않고, 아리안 인종의 우수성에 흠을 내고 사회적 부담을 증가시킨다는 이유로 가족 중 장애가 있거나 정신질환을 앓는 사람들은 나치에게 죄다 끌려가 생매장 당하다시피 했다는 사실을 기억하는 이는 많지 않다. 독일인 희생자 가족들은 세상을 향해 마음껏 소리내어 울 자유도, 분노할 자유도 박탈당한 것처럼 보여 딱한 마음이 드는 것이다. 
 
이 영화의 백미, 또 다른 명장면은 바로 슈필만의 피아노 연주 장면이다. 음악에 대한 열정에 다시금 불을 지필 필요가 있다고 생각될 때마다 찾아서 보게 되는 감동의 장면인데, 독일군 장교 역시 자신의 의지와 상관없이 장교로 차출되어 전쟁 끝 무렵 러시아의 전범 수용소로 끌려가 지독한 고문과 노역으로 생을 마감했다 하니 전쟁의 희생자다. 피골이 상접한 주인공 슈필만이 천신만고 끝에 발견한 야채 통조림 하나를 부지깽이로 따려고 시도하다 밖에 부하를 세워둔 채 밤에 혼자 피아노를 치러 들어온 독일군 장교에게 발각되는 위기의 순간. 기억 나는가. 생애 마지막 연주가 될지도 모르는, 달빛 쏟아지는 폐허를 가득 메웠던 쇼팽의 발라드 1번을 걸어 놓는다.






 

 

 

전쟁 이야기라... 티타임 주제로는 오늘 좀 무거웠을까? 티타임에는 음악이 있어야 된다고 생각하는 분들이 많은 것 같다. 차 한 잔 옆에 두고 위의 음악을 감상하시면 더욱 좋겠다. 영화에서는 시간 제약상 중간 부분이 많이 생략되었으나 쇼팽 자신도 자신의 작품들 중 이 곡을 가장 마음에 들어했다는 '썰'이 있으니 여러모로 감회가 깊은 곡이다. 영화 속 독일군 장교가 치던 음악은 베토벤의 <월광소나타>. 독일 작곡가와 폴란드 작곡가의 음악이 영화 속에 공교롭게도 함께 흐르고 있는 것이다. 







녹슨 영국군 철모와 철조망,

그리고 전장에 무심히 피어났던 빠알간 양귀비poppy.

 

 

 

댓글 4
댓글쓰기 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