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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이젤라 오징어덮밥 본문

한식과 세계 음식

나이젤라 오징어덮밥

단 단 2010. 10. 15. 13:53

 

 

영국에서 가정요리계의 대모 몇 명을 꼽자면,

 

매리 베리Mary Berry,

딜리아 스미쓰Delia Smith,

나이젤라 로슨Nigella Lawson.

 

특히 나이젤라는 아름다운 얼굴과 육감적인 몸매, 그리고, 미리 손질돼 있는 재료 사다 손쉽게 만드는, 그러면서도 맛 좋은 (날라리) 간편식을 선보이기로 유명해 혼자 사는 이들이나 바쁜 맞벌이 부부들 사이에서 인기가 높다. 그런데 엊저녁, 나이젤라가 황금 시간대에 BBC에 나와 아래의 요리를 뚝딱 만들어 선보인 것.

 

 

 

 

 

 

 

 

 

이것이 무엇인고?
오징어볶음이로다.


으응? 오징어볶음?
비빔밥, 불고기에 승부를 걸고 있는

우리 한국에게 이런 반격을?

 

고추장을 빼놓지 않고 늘 부엌에 두고 있다는 얘기를 잠깐 하더니 의기양양한 얼굴로 순식간에 뚝딱 한국식 오징어볶음을 만드는 것 아닌가. 간장과 참기름도 넣고, 파도 썰어 넣고, 어쭈, 제법이다. 오징어가 질겅거리니 아삭한 식감으로 균형을 맞추기 위해 베이비콘도 다 넣었다. (한국음식은 다 좋은데 대체로 양념이 몇 가지로 한정돼 있고 '크런치 crunchy'한 질감이 부족하다는 평들을 서양인들은 하곤 한다.) 발음을 "gochujang"이라고 제대로 하는 걸 보니 공부 많이 한 모양.

 

 

 

 

 

 

 


 
이렇게 한국식 끈끈한 쌀밥까지 다 지어 예쁜 그릇에 담고 오징어볶음을 척 얹더니만,

 

 

 

 

 

 

 



어디서 한국인 청년 한 명 불러와서는 둘이서 맛있게 냠냠.
"니네 엄마가 이거 오쎈틱하지 않다고 흉 보려나?"
너스레 떨면서 맛있게도 냠냠.


영국의 엄마들이 모여 수다 떠는 한 누리집에서는 당장
"고추장 어디서 살 수 있는겨? 누구 좀 알려 줘!"
난리법석.

 

세계 온 나라 식재료들 다 갖다 팔면서도 유독 한국 식재료만은 취급 않는 영국의 수퍼마켓들이 이제 고추장 좀 갖다 놓으려나? 그동안 서러웠던 차에 나이젤라의 <Korean Calamari> 요리를 TV에서 보고 나니 눈물이 다 나려고까지. 이리하여 차 블로그에 난데없이 뻐얼건 오징어볶음 사진이 올라오게 된 것이다.

 

한국에서는 한식의 세계화다 뭐다 하면서 우리 음식 중 어떤 것을 서양인들의 구미에 맞게 잘 다듬어 알릴까에만 골몰하는 것 같던데, 여기 영국인들을 가만 보니 이들은 외국 음식을 대할 때 요리에 쓰인 주재료보다는 소스나 양념을 더 중요하게 여기는 것 같다. 연어 한 토막이 양념에 따라 영국식도 됐다가 프랑스식도 됐다가 데리야끼 소스 발라 구운 일본식도 되는 것이다. 그 나라 음식을 그 나라 음식답게 만드는 건 결국 양념. 이곳 사람들이 외국의 고유 소스나 양념만 이용하면서도 마치 그 나라 음식을 해먹고 있다는 착각들을 곧잘 하는 것으로 보아 한국식 양념과 장을 먼저 알리는 것도 나쁘지 않겠다는 생각이 든다. 그러니 우리 장을 이용한 퓨전 요리에 발끈해 너무 민감하게 반응하지 않아도 된다. 일단 한국의 양념맛에 흥미를 붙이고 나면 자연스럽게 정통요리도 찾게 될 터. 간장은 일본과 중국을 통해 이미 알려졌으니 고추장이나 된장을 이용해 자기들이 원하는 재료를 가지고 마음껏 해먹을 수 있도록 장을 먼저 알리는 건 어떨까? 코쟁이들 중에는 의외로 고추 애호가가 많다. 영국인들은 커리로 단련되어 있어 매운 음식도 잘들 먹는다.

 

또 하나.
좁아터진 한국 안에서 한식 세계화 본부 설립하고, 회장 뽑고, 총무 뽑고, 홍보 대사 세우고, 발족식하고, 자기들끼리 궁리할 게 아니라 세계 각지에 흩어져 현지의 사정과 기호에 '빠삭'한 유학생들과 교민들의 고견을 수렴하는 것도 현실적인 한 방법이 될 수 있으리라. 음식에다 '효능 드립' 붙일 생각 말고.

 

 

 

 

 

 

 


 
'글로벌'하기로 이름난 BBC 방송국의 레서피 화면이다. 중국, 일본, 태국, 동남아, 아프리카, 중동 요리까지 다 있는데 한국만 없다. 거리 꾸미고 삽질하는 데만 돈 쓰지 말고 문화 알리는 데 좀 더 신경을 써야 한다. 떡볶이 세계화는 포기하시라. 매운 양념이 문제가 아니고 떡이 문제다. 포틀럭potluck 파티에서 영국인들에게 떡볶이 내줬다가 "언제 삼키면 되냐?" 궁금해하며 끝없이 씹고만 있는 걸 보고는 아차. 그런데 떡 없이 떡볶이가 성립될 리 있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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