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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식과 세계 음식

영감 생일

단 단 2013. 9. 24. 20:08

 

 

 

다쓰베이더 생일을 맞아 유럽 4개국풍 4-코스 정찬을 차려 보았습니다. 모두 처음 만들어 보는 것들이라 삐뚤빼뚤, 초보가 만든 티가 역력하나 솜씨 좋은 영국 유명 요리사들 레서피를 참고했기 때문에 맛은 아주 좋았습니다.

 

 

 

 

 

 

 



샐러드는 이태리풍으로 '조립'해 보았습니다. 오렌지는 흔히 보는 보통 오렌지말고 블러드blood 오렌지 계열 중 모로moro, 상귀넬로sanguinello, 타로코tarocco 중 하나를 쓰면 좋습니다. 앞의 두 개는 색이 빨갛고 약간의 쓴맛이 나며, 타로코는 일반 오렌지와 이들 오렌지의 중간쯤 되는 발그레한 색상으로 즙이 많고 향미가 풍부합니다. 제 입맛에는 그간 먹어본 오렌지 품종 중 이 타로코가 가장 맛있는 것 같습니다. 여기에 'sweet white onion'을 아주 얇게 썰어 올려 줍니다. 오렌지에 무슨 양파냐고요? 사과처럼 그냥 씹어 먹어도 될 만큼 달고 순한 양파입니다. 오렌지와 양파를 접시에 보기 좋게 배열한 뒤 질 좋은 엑스트라 버진 올리브유를 넉넉히 뿌려주고 후추를 치면 됩니다. 오렌지에 양파, 기름, 후추라니, 신기하죠? 오렌지가 많이 나는 지중해 쪽에서는 샐러드로 많이 먹는다고 하네요. 한국에서는 재료 구하기가 힘들겠지만 일단 재료를 구할 수 있으면 간단하게 만들어 먹을 수 있는 저비용 고효율 샐러드입니다. 맛도 좋고 눈도 즐겁죠.

 

 

 

 

 

 

 



전식으로는 프랑스 조리법을 써서 <시금치 무스>를 만들어 보았습니다. 데친 시금치에 버터와 크림과 달걀을 넣고 곱게 갈아 체에 거른 뒤 오븐에서 중탕으로 익혀 주면 됩니다. 넛멕nutmeg으로 향을 더해 줍니다. 틀에서 빼낼 때 무스가 뭉개지지 않도록 조심해야 합니다. 파마산 치즈 소스를 만들어 곁들이면 좋습니다. 부드러운 무스의 질감이 일품인데, 가볍고 부드러운 식감 내는 데는 역시 프랑스 조리 기술이 으뜸이죠. 블렌더에 갈고 갈고 또 갈고, 체에 거르고 거르고 또 거르고. 건더기 다 건져낸 고운 음식만 먹다간 화장실에서 고생할라.

 

 

 

 

 

 

 



본식main dish은 영국풍으로 만들어 보았습니다. 영국의 '국민생선'인 대구cod와 감자를 썼습니다. 피쉬 앤드 칩스의 재료이기도 하죠. 튀기면 노동자계급working class 음식, 이렇게 만들면 중간계급middle class 음식이 되는 겁니다. 둘 다 맛있지만요. ('Middle class'를 '중산층'으로 번역하면 안 됩니다.)

 

감자는 길게 핑거로 썰지 않고 정사각형으로 깍둑 썰었습니다. 껍질 없이 생선을 구워야 하기 때문에 지짐판에 살이 뜯기지 않도록 조심히 다루어야 하고, 담백한 생선이므로 소스 맛을 잘 내서 보충해 주어야 합니다. 소스 역시 지극히 영국스러운 재료들을 써서 만들었습니다. 감자, 양파, 리크leek, 크림, 생선육수 등을 한데 넣고 익힌 뒤 곱게 갈아 주면 되는데, 여기에 회향fennel, 아니씨드aniseed, 엘더플라워elderflower, 처빌chervil, 차이브chives, 파슬리 등을 넣어 고급스런 향을 더해 줍니다. 영국인들이 향신료와 향초 쓰는 걸 좋아합니다. 커리도 잘들 먹어요.

 

 

 

 

 

 

 



디저트로는 독일의 블랙 포레스트 갸또Black Forest Gateau 비스무리한 것을 만들어 보았습니다. 에혀, 이거 만드는 게 제일 힘들었어요. 케이크 굽고 크림 다루는 거야 늘 하던 거지만, 지식과 기술이 없어 쵸콜렛 다루는 게 너무너무 힘들었어요. 쵸콜렛만 전문적으로 다루는 장인이 왜 따로 존재하는지 이거 만들면서 깨달았습니다. 원래는 오백원 크기만 한 얇은 쵸콜렛 디스크를 몇 개 만들어 위에 멋들어지게 박으려 했는데, 얇게 만든 건 떼면서 다 부러지고 두껍게 만든 건 볼품이 없어 하는 수 없이 박박 긁은 쵸콜렛으로 장식했습니다. 생체리는 얼마 전까지 봤었는데 장 보러 갔더니 그새 철 지났다고 싹 들어가버리고. 에혀에혀;;

 

 

 

 

 

 

 



배 꺼뜨리고 나서 조촐한 티타임도 가졌습니다. 기운이 다 빠져 거창한 아프터눈 티까지는 못 차리고 메이즈 오브 오너 타트Maids of Honour Tart나 구워 간단한 찻자리를 가졌습니다. 영국의 유명한 타트입니다. 커드 치즈, 크림, 달걀, 꾸덕꾸덕 절인 레몬 껍질, 신선한 생레몬 껍질, 레몬 커드, 아몬드 가루 등으로 소를 만들어 채운 뒤 구워 줍니다. 런던 근교의 리치몬드Richmond라는 동네가 이 타트로 유명한데, 그 때문에 '리치몬드 타트'라고 불리기도 합니다. 저는 영국 제과 중 이 타트가 가장 맛있습니다. 머그를 보세요. 단단이 다쓰베이더에게 생일 선물로 사준 영국 작가의 머그입니다. 빛깔이 곱고 형태가 세련돼 보이길래 골랐습니다.

 

 

 

 

 

 

 



다쓰베이더가 이 머그를 보자 눈을 빛내며 좋아하더라고요.


"오, 이것은!"
감동하면서 손에 쥐더니만


"이것은 저 임진왜란 때 우리 조선군이 쓰던 장거리 화포 '현자총통玄字銃筒'의 늠름한 형상이 아니오?"

 

 

 

 

 

 

 

 국립진주박물관에 있는 현자총통. 보물 제885호.

 


캬핫,
또 시작했어, 밀리터리 마니아,

조선시대 무기까정 알고 있다니! >_<
생일 축하나 받으슈~ ㅋㅋㅋ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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