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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인과 설탕, 민스 파이 이야기 본문
▲ 크리스마스 머그 - 불량소녀 님 기증
크리스마스 접시 - 낭만소녀 님 기증
12월이 되었습니다. 영국의 크리스마스 과자 ☞ 민스 파이를 또 사서 즐겨 봅니다. 맛은 있는데, 어후, 달아요, 너무 달아요. 그래도 일년에 딱 한 번 있는 크리스마스인데 건너뛰면 섭섭하죠. 꼬박꼬박 사서 먹습니다. 달긴 하지만 향이 좋아서 민스 파이를 꼭 삽니다.
영국에 계신 분들은 다음의 링크를 참고하세요. 영국의 소비자 단체 <위치Which?>가 선정한 ☞ 2013년 최고의 민스 파이에 관한 기사입니다. 한국과 달리 영국은 제품을 가차없이 평가해 순위 매기고 회사와 제품 이름까지 낱낱이 공개합니다. ㄱ사, ㄴ사, 아, 이딴 머리글자 처리 절대 안 합니다.
사실 어떤 브랜드 제품을 사든 우리 한국인 입맛에는 이 민스 파이가 너무 달고 향신료가 낯설어 썩 잘 맞진 않을 겁니다. 향신료 즐기시는 분들은 그래도 일년에 한 번 먹는 음식이니 저처럼 꼭 사 드셔야지요.
다쓰 부처는 한국인치고는 단 음식을 잘 먹는 편입니다. 그런데도 서양인들의 단것들은 아직도 적응이 안 됩니다. 한 입 깨물면 아예 설탕 입자가 지근지근 씹히는 것들도 있어요.
서양인들만 과자와 후식을 지나치게 달게 먹느냐?
제가 중동 과자 몇 번 먹어 본 적 있는데, 아, 이 사람들도 만만치 않아요. 일본 화과자 먹고 물 몇 컵 들이켠 적도 있어요. 중국 월병도 무지 달아요. 인도 여행기들 보세요. 길거리 단것들 엄청나게 달다고들 하죠. 우리 한국인만 단 간식거리를 싫어하는 걸까요? 우리 한과에도 정과 혹은 전과라 불리는, 설탕 시럽에 졸인 과일이나 채소 같은 것이 있긴 하지만 살면서 제 주변에서 이거 먹는 사람 거의 못 봤습니다. 홍삼정과나 겨우 먹으려나요. 그것도 맛있어서 간식으로 먹는 게 아니라 몸에 좋다니까 비싼 돈 주고 건강식품으로나 사 먹죠. 우리 한국인들은 체질적으로 설탕 많이 든 간식거리를 싫어하는 겁니다.
클릭하면 큰 그림으로 볼 수 있음
▲ 미국인들이 설탕을 가장 많이 소비.
한국(남한)은 아예 통계를 내놓지 않았는데,
일본과 비슷한 수준이거나 더 높을 것으로 생각함.
한식은 대신 끼니로 먹는 음식들에 설탕이 많이 들어가죠. 냉면, 짜장면, 떡볶이, 불고기, 오징어볶음, 양념통닭, 양념갈비, 제육볶음, 이런저런 반찬들. 특히, 볶음류, 조림류, 덮밥류, 밑반찬치고 설탕 안 들어가는 데가 없을 정도로 달게 먹는데, 요즘은 나물 무칠 때도 설탕 넣는 사람들이 다 있더군요. 그래서 단걸 따로 챙겨 먹지 않아도 되는 걸지 모릅니다. 평소 단것 전혀 안 먹는 사람인 양 외국 단것들에 손사래치는데, 실제로는 우리 한국인이 설탕을 더 많이 먹고 있을지 모르죠.
혹시 일본 식민 지배를 거치면서 우리 음식이 달아진 건 아닐까요? 일본음식은 우동이나 데리야끼 소스 같이, 간장 든 음식들이 많이 달잖아요? 한국관광 다녀 온 중국 친구들이 한결같이 하는 소리가 "한국식 중식은 너무 달아."입니다. 한국에서 먹던 중식과 영국에서 먹는 중식은 확실이 맛이 다릅니다. 한국식 중식이 훨씬 달아요. 하나도 안 달아야 할 서양의 식사용 빵들도 한국 제과점들이 만들면 들척지근합니다. 그러니까, 우리는 달게 먹어야 할 음식들은 달아서 못 먹겠다고 손사래치면서 달지 않아도 될 주식은 달게 먹고 있다는 거죠. 밥도 오래 씹으면 단맛이 나는데 거기다 반찬까지 달아요. 서양인들은 후식이나 티푸드, 커피용 단것들에나 설탕을 넣지 주식에는 여간해서 넣지 않습니다. 끼니로 먹는 음식이 달면 문제인 게, 후식과 간식은 안 먹고도 살 수 있지만 주식은 안 먹고는 살 수 없다는 거죠.
다시 민스 파이 이야기로 돌아와서 -
영국 유명 요리사가 고급 수퍼마켓과 손잡고 낸 민스 파이입니다. 아니, 이런 변태들 같으니, 설탕을 도대체 얼마나 넣은 거냐. 너무 달아 저는 한 번에 4분의 1쪽밖에 못 먹겠습니다. 맛은 아주 좋아요. 건과 3종currant, raisin, sultana에 사과, 레몬, 오렌지, 그리고 시나몬, 클로브, 넛멕, 메이스, 로즈 워터까지, 향도 복잡하기 짝이 없어요. 바삭한 반죽shortcrust pastry과 이국의 향이 물씬 나는 과일 소가 매력적입니다. 쌉쌀한 홍차에 곁들이면 아주 잘 어울립니다. 여기 아이들처럼 따끈하게 데운 우유 한 잔과 먹으면 좀 덜 달게 느껴지고요.
민스 파이는 원래 고기와 고기 지방suet에 건과일과 향신료를 넣은 음식이었습니다. 십자군 원정 때 중동에서 전해진 조리법으로 추정을 하고 있는데, 지금도 중동 사람들과 북아프리카 사람들은 고기 요리에 건과일을 많이 활용하죠. 이후 민스 파이에서 고기가 빠지게 되면서 점차 단맛 나는 간식거리로 변하게 되었는데, 영국이 18세기 때 해외 식민지에 세운 대규모 농장들로부터 설탕을 거의 무제한 조달하면서부터 그렇게 되었다는군요.
한국의 백과사전에서는 아직도 '다진 고기를 넣고 구워 만든 서양 과자'로 소개를 하고 있습니다. 한국 자료들이 오래되거나 잘못된 영국 정보를 전할 때가 많아요. 그래서 책과 백과사전만 읽고 전문가 행세하는 분들은 주의하셔야 합니다. 한국의 홍차 '전문가'들 중에도 그런 분들이 좀 계신 것 같아요. 업계의 최신 소식과 요즘 사람들이 실제 즐기고 있는 양상들을 잘 알아보고 전달해야 합니다. 한국의 차 전문가들이 영국의 차 문화에 대해 이야기하는 걸 가만 보면 옛 시절 귀족들의 차 문화가 마치 현대 영국의 차 문화인 양 말하는 사람이 많아요. '티타임'의 개념을 너무 거창하게 부풀리는 경향이 있고, 실제로도 영국인들보다 훨씬 거창하게 차려놓고 먹습니다. 격식 너무 따지지 말고 중국인들처럼, 영국인들처럼, 편하게 수시로 즐기세요. 이제 한국도 많이 추워졌죠? 뜨거운 홍차가 사랑 받는 계절이 돌아왔습니다. ■
☞ The strange and twisted history of mince pie
☞ 단단의 민스 파이 연대기
☞ 영국 크리스마스 음식 총정리
☞ 영국음식 열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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