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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연 있는 사물

첫 자사호

단 단 2010. 10. 30. 20:53

 

 

 

 


차 좀 마신다는 사람이라면 누구나 하나쯤은 갖고 있을 중국 자사호. 단단도 물론 갖고 있다. 그것도 아주 깜찍한 130㎖짜리로.

 

이 녀석을 처음 보았을 땐 "130㎖짜리 차호가 다 있어? 여기 서양에선 1인용 차호가 기본 500㎖는 되는데?" 놀랐으나 중국차의 기준으로는 이 130㎖짜리가 2~3인용이며 이보다 더 작은 것도 수두룩하다는 말을 듣고는 혀를 내둘렀다.

 

서양인들이 큰 차호를 선호하고 중국과 한국인들이 작은 차호를 쓰는 데는 이유가 있다. 서양인들이 즐기는 홍차는 대개 잘게 분쇄된 (싸구려) 잎들인데다 고온에서 오랜 시간(3-5분) 우리기 때문에 첫 탕에 이미 거의 모든 맛과 향이 다 빠져 버린다. 이들에게는 한 번 찻잎을 넣어 여러 차례 물 부어 우려 마신다는 개념이 없다. 홍차이기 때문에 그렇다기보다는 잘게 부순 홍차라서 그런데, 같은 홍차라 해도 중국의 질 좋은 온전한 잎의 공부차들은 여러 번 우리는 게 가능하다. 그러니 한 번 우린 것으로 승부를 보아야 하는 서양식 홍차용 차호는 처음부터 그 용량이 커야만 되는 것. 단번에 많이 우려 놓고 두어 번 나누어 마시는 건 가능하다. 일인용 차호가 500㎖나 되는 이유를 알 만하다.

 

반면 중국인이나 우리 한국인이 즐기는 차는 주로 녹차, 청차, 보이차 등으로, 대량 생산하는 인도, 스리랑카, 아프리카의 홍차에 비하면 대개가 고품질 찻잎들. 반복해 우려도 맛이 좋다. 값도 물론 훨씬 비싸다. 그러니 한 잔에 끝낼 생각으로 찻잎과 물 양을 계산해서는 안 되고 작은 차호에서 여러 번 우려 작은 잔에 여러 번 마셔야 하는 것이다. 이것이 우리 동양의 차 우리는 방식이다. 자연스럽게 차호의 크기도 동서양이 다를 수밖에. 차나무 잎을 따서 즐기는 데도 이렇게 동서양이 다르다는 사실이 재미있지 않나.

 

 

 

 

 

 

 



사진은 좀 크게 찍혔지만 실은 단단의 작은 주먹보다도 더 작은 아주 깜찍한 호다. '가단호'라 하여 가지 꼭지 모양 뚜껑을 얹고 있는데 이것이 전통적인 디자인이란다. 중국인들의 해학이 느껴진다. 여인의 탐스러운 젖가슴 모양을 한 호도 본 적이 있다. 뚜껑 손잡이가 젖꼭지. 캬. 실루엣이 어찌나 예쁘던지 그것도 언젠가는 꼭 손에 넣어야 쓰것다. 비싸지 않으니 탐내볼 만하다.


자사호의 재료가 되는 흙(광석)에는 크게 자니(자색), 홍니(홍색), 본산녹니(미황색)가 있고, 이 안에서 또다시 세밀한 색상으로의 분화가 가능해 우리고자 하는 차의 종류와 각자의 취향에 맞춰 선택할 수가 있다 한다. 자사호가 뭔지 모르던 시절에는 중국 찻가게에 진열된 다구들을 보며 '좀 예쁜 색으로 칠할 것이지 다들 왜 이리 칙칙하누.' 했는데 알고 보니 놀랍게도 이것들이 다 유약도 칠하지 않은 흙 그대로의 색상이란다. 어찌하여 자연의 흙색이 이토록 아름다우며 불의 연단을 거치고도 고스란히 살아남을 수 있단 말인가. 도자기집 딸 놀라 자빠진다. 한국에서는 한 번 구워진 흙에 꼭 화장을 하지 않으면 안 되는데 말이다. 차와 다구에 관한 한 중국인들은 참 복도 많이 받았구나.

 

 

 

 

 

 

 

 


단단의 자사호는 쵸콜렛색의 자니호. 보이차를 마시지 않으므로 홍차용으로 산 것이다. 색상에 따라 재질에도 조금씩 차이가 있고 성격이 다르기 때문에 우리고자 하는 차에 맞춰 선택을 잘 해야 한다. 자니호는 다른 색상 니료에 비해 기공이 많아 보온성이 좋고 숨을 잘 쉰다고 하니 보이차뿐 아니라 고온에 삶듯 우려야 하는 홍차용으로도 안성맞춤이다. 다만, 차의 향을 흡수하여 부드럽게 반감시키는 성질이 있다 하니 홍차 중에서도 베이스 찻잎의 성격이 강하고 인위적으로 강한 향을 입힌 랍상 수숑 정도면 끄떡없겠다. 홍차를 즐기긴 해도 한 번에 많은 양을 마시지 않으니 130㎖ 한 잔이면 족하다. 양을 늘리고 싶으면 진하게 우린 뒤 뜨거운 물로 희석해도 된다. 한 번 더 우려도 좋고.

 

 

 

 

 

 

 



그런데 문제가 하나 생겼다. 이 가단호의 가지 꼭지 모양 뚜껑을 볼 때마다 자꾸 <허쉬> 키세스 쵸콜렛 생각이 난다는 것이다.;; 더 문제는, 영국에서는 허쉬 쵸콜렛을 구할 수가 없다는 것이다. 코코 함량이 유럽연합 기준에 못 미쳐 그런 건지 단순히 미국 식품에 대한 반감 때문에 그런 건지 이유는 알 수 없으나, 여기 사람들은 허쉬 쵸콜렛이 젖먹이 아기가 갓 올린 토사물 향이 나면서 식감이 모래알처럼 지근거린다고gritty 좋아하질 않는다. 동의. 끄덕끄덕.

 

 

 

 

 

 

 


 'Purple sand' teapot. China, Yixing. 1700-20.

Unglazed brown stoneware.

 

 

This teapot imitates a sheng, a Chinese reed instrument. It was made after the Chinese switched from drinking tea whipped in a bowl to steeped tea, prepared in a pot. 'Purple sand' teapots from Yixing were praised by Chinese scholars and tea connoisseurs. They were also exported to Europe, where potters tried to imitate them.

 



자사호만큼 취향을 많이 타는 게 또 있을까? 제아무리 유명 작가의 기백만원짜리 작품호라 해도 몇 만원짜리 생활호가 내 마음에 더 쏙 들면 그것으로 이야기는 끝. 아무도 싸구려 취향이라 비웃을 수 없는 게 또 이 자사호 세계의 매력이기도 하다. 말하자면, 인연이 따로 있다는 것이다. 단단의 저 '쵸콜렛 티폿'도 저렴한 상품호. 내 마음에 든다는데 누가 뭐라 하겠나.

 

지금까지 본 예술호 중에서는 이곳 런던의 <빅토리아 앤 알버트 뮤지엄V & A>에 있는 생황 모양의 호가 가장 아름다워 보였다[위 사진]. 파이프 오르간 느낌도 좀 난다. 실용성은 좀 떨어져 보인다만 음악인들이라면 탐낼 만하지 않겠나 생각한다.

 

 

 

 

 

 

 

 

 좌: Hui Mengchen, Yixing, China. 1650-1660.

Stoneware. Height 8.3 cm.
우: Jiang Rong, Yixing, China. 1984.

Stoneware. Height 5.8 cm.

 


These two teapots were made at the same kiln site at Yixing. The local clays there are cream, red or a warm brown. The teapot on the left was made by the potter Hui Mengchen sometime between 1650 and 1660. The one on the right in the shape of a water chestnut was made in 1984 by the woman potter Jiang Rong. Unusually for Chinese craft workers, the top potters of Yixing sign their teapots.



위의 생황 자사호와 같은 박물관에 있던 것들이다. 아주 깜찍하다. 왼쪽 것은 작아도 우아한 맛이 있다. 1600년대에 만들어졌다는 사실이 믿기지 않을 정도로 매끈하고 모던한 선이 돋보인다. 아름다운 광택patina을 내기 위해 박물관 직원들 중 누군가가 아마도 이것들에 지속적으로 차를 우리고 쓰다듬어 '양호'를 할 것이다. BBC의 새 드라마 <셜록Sherlock>에서 본 그대로 말이다.

 

 


단단이 이후 소장하게 된 또 다른 자사호들
☞ 젖꼭지 뚜껑을 얹고 있는 육감적인 우리 부들이
☞ 점잖고 기품 있게 생긴 우리 지조 높은 누렁이
☞ 해와 해무리를 품고 있는 기개 있는 우리 일출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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