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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느 밀리터리 매이니악의 홍차 깡통 본문
오늘은 뜬금없이 홍차 깡통 얘기나 좀 해보자.
단단이 그간 마셨던 홍차들 깡통 중에 밀리터리 매이니악인 우리 집 다쓰베이더가 특별히 아끼고 사랑하는 것이 있으니...
영국 공군 역사상 가장 빛나는 전투였던 2차대전의 <Battle of Britain>. 처어칠의 유명한 프로파간다 연설의 한 대목이 바로 이 때 나온 것이다.
"Never was so much owed by so many to so few."
이렇게 많은 사람들이 이렇게 소수의 사람들에게 이렇게 많은 빚을 진 적은 없었소.
여기서 '소수의 사람들'이란 영국 공군인 Royal Air Force의 전투기 조종사들을 말한다.
▲ 사진은 만민의 백과사전 위키피디아에서.
돈 있는 분들은 위키에 기부금 좀 보내 주시라.
영국인들이 뿌듯해해 마지않는 그 <Battle of Britain>이 올해로 70주년을 맞았다. 수집가의 나라인데다 홍차의 나라이니 영국인들이 이런 날을 맞아 기념 홍차를 내지 않는다면 이상한 일. 영국 국기의 변형인 빨강, 하양, 파랑의 과녁 모양 마크가('Roundel'이라고 부른다.) 이 홍차 깡통의 핵심이 되시겠다. 밀리터리 기념품이라 해도 디자인이 카키색으로 칙칙하지 않고 아주 산뜻하다. 홍차 깡통에 무관심한 다쓰베이더도 이 깡통만은 애지중지한다.
영국의 온라인 차 장사꾼들 중 젊고 실력 있는 세 곳을 꼽자면 ☞ Jing Tea, ☞ Rare Tea Company, ☞ Canton Tea Co. 정도를 꼽을 수 있겠는데, 그 중 <Rare Tea Company>에서 <Battle of Britain> 70주년을 맞아 특별히 블렌딩해서 내놓은 것이 지금 보시는 홍차인 것이다. 아프리카 말라위 홍차와 인도 마카이바리 다원 다질링의 혼합으로, 좋은 찻잎을 썼기 때문에 맛과 향이 아주 좋다.
여기서 잠깐 아래의 동영상을 통해 70주년 기념 티파티의 모습을 살짝 엿보도록 하자. 화면에 계속 등장하면서 나레이션을 맡은 빨간 립스틱의 젊은 여자가 바로 이 <Rare Tea Company>의 사장이다. 영국인들은 어떤 날을 기념할 때 마치 영화를 찍듯 당시의 분위기를 살려 옷을 입거나 소품을 구비해 놓는 짓들을 잘 하는데, 이 기념 티파티도 예외는 아니어서 영국의 40년대를 제법 그럴듯하게 재현해내고 있다. 눈 '쫑긋'하고 보시도록.
☞ Teacups raised to Battle of Britain heroes
이건 런던에 있는 임페리얼 전쟁 기념관Imperial War Museum에 갔을 때 무료 입장에 감사하며 그곳 기념품점에서 구입한 실론차 깡통이다. 네 면에 각기 다른 사진이 인쇄돼 있는데, 한쪽 면에는 국가로부터 차를 배급받던 당시를 상기시키듯 "Ration Tea"라는 문구를 새겨 놓았다. 물자가 귀했던 전쟁때인데도 성인 1인당 일주일에 약 60g(2oz)을 배급했다는 이야기도 했었다. 125g 홍차 한 통을 부부가 일주일 만에 해치운다는 소리. 실로 놀라운 소비량이다.
이건 아주 오래 전에 사 둔 영국인들의 아침 식사용 대용량 머그다. 영국의 홍찻잔과 머그는 대개 대용량 브렉퍼스트 컵과 보통 크기 컵, 이렇게 둘로 나뉘어 시장에 나오니 영국 브랜드의 홍찻잔이나 머그를 살 때는 사이즈 선택에 주의해야 한다. 머그에 새겨진 문구를 보자. 2차대전 때 나온 프로파간다 포스터를 옮겨 놓은 것이다. 왕관이 있는 것으로 판단컨대 국왕 조지 6세(현 여왕의 아버지)가 국민들에게 '다들 침착하게 하던 일 계속 잘 하라'는 당부를 담은 포스터였던 모양. 이 포스터의 백미는 바로 빨간색이라는 데에 있다. 전쟁으로 폐허가 된 잿더미 속 잿빛 벽에 붙을 포스터를 선명한 빨간색으로 했다는 사실이 그저 재미있기만 하다. 게다가 피 끓는 듯한 빨간색 위에 애국심을 한껏 고취시킬 만한 선동적인 문구도 아니고 '침착하게 하던 일을 계속 하시오.'라니.
단단과 다쓰베이더는 오늘날에도 여전히 영국인들 의식의 기저에 자리 잡아 든든한 삶의 지침이 되어 주고 있는 이 전시 표어를 아주 좋아한다. 우리 둘 다 가장 흠모할 만한 영국인들의 기질로 '위기에 닥쳐서도 놀라울 정도로 침착'하다는 점을 꼽는다. 자연 재해를 입어 자기 집에 난리가 나도, 사랑하는 사람을 사고나 병으로 잃어도, 지하철에 폭탄 테러가 터져도, 어쩜 그렇게 사람들이 한결같이 침착하고 꿋꿋한지 지켜보는 외국인들로서는 그저 기가 차기만 하다. 한국에서처럼 장례식장에서 소복 입고 바닥에 나뒹굴며 '오열'하고 있는 유족들을 TV나 신문사 카메라가 바싹 들이대고 무례하게 찍어 대는 일은 없다. 바닥에 나뒹굴며 통곡해 대는 사람도 없거니와. 영국에서는 길거리나 사람 많은 곳에서 자기 애 부른답시고 큰 소리로 "얘, 동건아!" 하고 소리치는 사람도 절대 없으니 어린 자녀들과 영국 여행 오시면 주의 하셔야.
그렇다고 영국인들이 매사에 그렇게 점잖고 재미 없느냐? 그건 또 아닌 것 같다. 비상시에나 그렇지 평소에는 이들도 심심해 죽는 모양이다. 이 머그는 위의 패러디쯤 되는 버전이라 할 수 있겠는데, 잘 보니 무엄하게도 왕관이 다 뒤집혀 있다. 하도 재미있어 하나씩 사고 보니 본의 아니게 부부잔이 되어 버렸다.
이건 또 무어냐? 홍차와는 상관이 없지만 이 때다 하고 슬쩍 소개해 본다. 단단의 보물 1호로, 금가락지 진주목걸이보다도 더 애지중지하는 싸구려 열쇠고리다. 저 까마득한 먼 옛날, 다쓰베이더가 단단과 멀리 떨어져 남쪽에서 군복무를 할 때 단단이 한 여대 앞에 떡볶이 먹으러 놀러갔다가 떡볶이집 앞 선물의 집에서 발견하고는 냅다 집어 왔던 군인 아저씨 열쇠고리. 단단 평생 그렇게 많은 위문편지를 써 본 적이 또 없다고 한다. 까칠한 단단도 의외로 순정한 구석이 있어 이 군인 아저씨 열쇠고리를 다쓰베이더 삼아 하루도 빼놓지 않고 몸에 꼬옥 지니고 다녔다 한다. 세월이 흘러 이 쬐끄만 군인 아저씨의 철모에도 제법 'patina'가 내려앉았다. 아아, 정말이지 옛 추억은 아름답지 않은가. 자, 그런 의미에서 오늘은 로얄 에어 포스 홍차 우려 "Cheers!"
우리 여성 동지들, 비록 군대는 안 갔다 왔어도 우리들의 그 놀라운 직관과 직감에 의존하여 각 나라 공군들이 전투기에 붙인다는 다음 라운델의 국적들을 한번 맞혀 보자. 많이 맞힌 분께는 가상 홍차와 소정의 칭찬을 보내 드린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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