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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국 채리티 숍 본문
다쓰베이더와 단단이 사는 동네에는 50m 안에 채리티 숍charity shop이 무려 여덟 개나 있습니다. 영국 어디에도 한곳에 이렇게 채리티 숍이 많이 모인 데는 또 없을 거예요. 채리티 숍은 말하자면 한국의 <아름다운가게> 같은 중고품 자선 가게입니다. 여기저기서 기부 받은 물건들을 자원봉사자들이 잘 정리해서 값을 매긴 후 저렴한 값에 되파는 곳인데, 저도 살 빼서 못 입게 된 옷을 몇 번 갖다 준 적이 있지요. 이곳에서 옷을 사기도 하고요. 괜찮은 청바지를 5천원에 살 때도 있습니다.
영국인들의 삶의 지침이 되는 표어 중에 <One man's trash is another one's treasure>라는 것이 있습니다. 자기가 안 쓰는 물건이라도 절대 쓰레기통에 그냥 버리는 법이 없어요. 누군가에게는 절실히 필요한 물건일지 모른다는 거죠. 실제로 예술가들 중에는 채리티 숍을 다니며 캔버스에 꼴라주해 넣거나 설치작품에 포함시킬 일상용품을 찾는 이들이 있습니다. 너무 낡거나 유행이 한참 지난 물건들, 줘도 안 가져갈 것 같은 조잡한 물건들도 있지만 잘 고르면 꽤 쓸만한 것들도 있습니다. 헌책도 많습니다. 다쓰베이더와 단단은 주로 책과 장식품, 그릇들을 눈여겨봅니다.
위에 있는 접시는 몇 주 전 단단이 900원 주고 사 온 지름 20cm짜리 티 플레이트입니다. 영국 풍경을 담은 거의 새것과 다름없는 깨끗하고 선명한 블루 프린트 접시를 발견하고는 냅다 집어 왔지요. 혹시 예전 글 중 ☞ <The Original Maids of Honour> 티룸 방문기 기억하는 분 계시는지요? 원래 블루 프린트 식기들은 단단의 취향이 아니었는데 이 집에서 멋진 아프터눈 티타임을 가진 이후 눈이 솔깃해지기 시작했습니다. (가만, 눈도 솔깃해질 수 있나?) 자꾸 보니 멋있더라고요.
그런데 오늘.
다쓰베이더가 찻잔 2인조를 사 들고 집에 돌아왔습니다. 오는 길에 채리티 숍에 들러 이것저것 살피는데 지금까지 눈을 씻고 찾아봐도 안 보이던 블루 프린트 찻잔들이 떡 하니 있더랍니다. 브랜드와 그림은 다르지만 우리 집 접시와 왠지 어울릴 것 같아 사 왔다는 기특한 소리를 합니다. 접시 산 집과는 다른 집에서 발견했다네요.
아아니?
영감이 지금 '믹스 앤 매치'질을 다 하셨단 말씀이오?
두 개 합해 3파운드, 환율이 올랐으니 한화로 5,610원 줬다고 합니다. 별 게 다 비싼 영국에서 이 정도 값이면 거의 거저라 할 수 있습니다. 하자 있는 'factory second'도 아닌 제대로 된 영국 <처칠Churchill> 사 것을요. 유럽 세 곳의 풍경이 담겨 있습니다. 블루 프린트라 해도 색조가 천차만별인데 이미 샀던 접시 색을 잘도 기억하고 있었나 봅니다. 당장 소다 칠해서 찻잔들을 말끔히 씻고 찻물부터 올립니다.
접시와 찻잔들을 한데 모으고 우리 집 소중한 '막폿'인 브라운 베티 양을 불러옵니다. 아직은 브리오슈 만들 실력이 안 되니 수퍼마켓에서 사 온 첨가물 범벅 맛난 브리오슈를 곁들입니다. 선물 받은 <포트넘 앤드 메이슨> 소깡통 다질링을 뜨겁게 우려 창가에 앉습니다. 작은 티테이블은 우리 빌라 사람 누군가가 아무나 가져가라고 내놓은 것을 집어 왔습니다. 덕분에 창가에 앉아 차를 마시는 일이 가능해졌어요. 세상은 참으로 훈훈하기도 하지요. 창가에 앉으면 차맛이 항상 좋습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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