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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연 있는 사물

아쌈, 스위스 프랄린, 빅토리안 찻잔

단 단 2011. 1. 2. 01:54

 

 

 

 


새해 첫 찻상입니다. 지난 번에 손님 치렀다고 했죠? 보기만 해도 눈이 팽글팽글 돌아가는 이 프랄린들은 센스 만점 손님이 들고 오신 겁니다. 평소에는 만져 보지도 못 할 고가의 모둠 쵸콜렛을 선물 받으면 숨이 꼬르륵 넘어가죠. 쵸콜렛이야말로 최고의 티푸드라고 말씀 드린 적 있어요. 저는 아쌈하고 먹을 때가 가장 맛있더라고요. 흐린 날 찍었더니 색감이 이 모양입니다.

 

 

 

 

 

 

 



몇 개를 추려 접시에 담아 봅니다. 종류가 하도 많아 다 못 담았습니다. 아까보다는 날씨가 좀 더 나은 날 찍은 건데도 기본적으로 좀 어둡죠. 영국에 살다 보면 햇빛의 양에 아주 민감해집니다. 영국에 살면서 사진까지 찍는 사람이라면 더욱 예민해집니다. 햇빛에 따라 사진 톤이 무궁무진 변화무쌍, 구름이 휙휙 지나가 광량도 3초 단위로 바뀝니다. 조명도 장비도 없는 저 같은 초보는 그저 한숨 푹푹 쉬면서 조리개를 수시로 만져 주는 수밖에 없습니다. 초보가 고생합니다.

 

 

 

 

 

 

 

 


측면 접사. 너무 맛있어서 먹고 나면 한숨이 다 나옵니다.


오늘도 역시 아쌈을 우려 봅니다. 지난 번에 불량소녀 님이 보내 주신 티포원과 함께 소개해 드린 적 있죠? 저는 이 <해로즈Harrods> '아쌈 골드 러쉬'가 왜 이렇게 맛있는지 모르겠습니다. 장미향에, 사과향에, 몰트향에, 고소한 너트 맛에, 군고구마 맛에, 꿈 같이 단 엿 국물 같은 뽑기 맛에, 하여간 이렇게 침 고이게 하는 단맛이 많이 나는 차는 아직 못 봤어요. 오만 진귀한 가향차들을 거뜬히 물리치고도 남을 실력입니다. 아쌈은 그래 봤자 몇 종류 못 마셔 봤는데, 다양한 브랜드의 아쌈을 드셔 보신 분 중에 이 <해로즈> '골드 러쉬'보다 맛있는 아쌈을 알고 계신 분 있다면 추천 좀 부탁 드리겠습니다. <해로즈>의 차들은 하여간 저가 라인으로 내놓은 것들도 다 맛있더라고요. <포트넘 앤드 메이슨> 홍차는 간혹 기대에 못 미치는 것들이 좀 있는데 <해로즈>는 믿음직합니다. (이건 순전히 제 개인적인 생각입니다.) 예전의 암녹색 빈티지 틴들이 참 멋있었는데 이제는 안 나와 섭섭합니다.

 

 

 

 

 

 

 



지난 여름, 결혼10주년 기념으로 옥스포드로 소풍 갔다가 사 온 안티크 찻잔입니다. 빅토리아 시대 물건인데, 중후한 안티크만 있는 게 아니라 이렇게 허술하고 귀여운 것들도 있다는 걸 보여 드리려고 샀지요. 무려 110년이 넘은 것으로, 전사된 꽃무늬가 그 시절 여염집 여인들이 입었던 드레스 무늬와 흡사해 재미있습니다. 정말 옛날 생각 나게 하는 찻잔입니다. 사뿐한 게 아주 가볍고 크기도 꼭 아가들 찻잔처럼 작아요. (안티크 잔들이 원래 좀 작습니다.) 잔뜩 낡은 찻잔이지만 애지중지 아껴 가며 써야겠습니다. 금박은 이미 많이 벗겨졌습니다. 한모금 마시려고 입술을 댈 때마다 빅토리안들의 입술이 닿았던 거라 생각하니 묘한 기분이 듭니다. 그간 어떤 사연을 안고 떠돌다가 제 손에 들어왔을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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