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권여사님의 손수건 - 습관과 추억 본문

사연 있는 사물

권여사님의 손수건 - 습관과 추억

단 단 2010. 7. 23. 17:35

 

 

 

 

 

설거지는 말끔히 다 끝냈습니다. 오늘은 '좋은 부모란 무엇인가'에 대해 생각해 보려고 합니다. (주제도 다양하셔라.) 단단이 좋아하는 칼럼니스트 중에 한국일보의 장명수 님과 고종석 님이 있습니다. 한국에 있을 때는 이 분들 때문에 한국일보를 구독했었지요. 장명수 님은 내용이 좋고 고종석 님은 문장이 좋더라고요. ☞ 장명수 님의 칼럼 중 기억 나는 대목이 있어 옮겨 봅니다.

 


부모가 자식에게 줄 수 있는 가장 아름다운 선물은
(과잉보호나 돈GR 과외가 아니라)
좋은 습관과 행복한 추억이다.



그렇죠?
단단은 이 대목에서 무릎을 탁 쳤었습니다. 그리고는 부모님을 떠올렸지요.

 

모친인 말괄량이 권여사님을 생각할 때마다 입가에 웃음이 번집니다. 저희 4남매 극장에도 자주 데려가 주시고, 아이들은 마치 놀기 위해 세상에 온 것인 양 온갖 운동기구와 놀이기구, 오락기, 만화책도 잔뜩 사 주시고요. 가정용 오븐이 귀했던 시절, 집에 오븐까지 들여 놓고 빵·과자도 손수 다 구워 주셨습니다. 저의 홈베이킹은 일종의 '추억 더듬기'라고나 할까요. 생일과 성탄절의 성대한 파티, 미술학원도 아닌데 집에서 가졌던 공작 시간들, 다같이 식탁에 둘러앉아 풀로 반짝이 붙여 가며 성탄카드 만들던 기억, 흰 양초와 크레파스 녹여 알록달록 색양초 만들던 기억 등은 아직도 가슴 한편에 선명하게 남아 살아 가는 데 정말 큰 힘이 되어 주고 있습니다. 다들 IQ 중심으로 교육할 때 단단의 모친은 EQ 중심의 교육을 고집하셨었지요. 당시는 EQ라는 용어조차도 없던 시절이었는데 말입니다.

 

'좋은 습관' 측면에서는, 글쎄요, 장명수 님 말대로 '세상 일에 호기심 갖기'를 부모님께 받은 가장 소중한 유산으로 꼽고 싶네요. 냉소적이고 시큰둥한 사람은 창의적인 일을 할 수가 없잖아요. 그밖에 여자인 단단에게 본이 될 만한 권여사님의 사소한 좋은 습관으로는 '스타킹 챙겨 신기', '속옷 제대로 입기', '다리 아파도 때로는 멋진 신발 신고 다니기', '손수건 늘 갖고 다니기' 등이 있겠습니다. 이런 것들은 단단이 가장 못 하는 일들이기도 합니다. 귀차니스트인데다 좀 칠칠치 못하거든요. 저는 특히 권여사님의 이런 습관 중 손수건에의 집착이 가장 흥미롭습니다. 요즘 젊은이들은 손수건 잘 안 갖고 다니잖아요? 다들 휴대용 티슈나 가방에 넣고 다니지 않나요?

 

결혼해서 분가한 단단을 만날 때마다 권여사님, 꼭 손수건을 쥐어 주셨습니다. "얘, 너희들 손수건 없지? 늬 신랑 땀 많이 흘리니 손수건을 꼭 갖고 다녀야 해." 영국 올 때 죄다 두고 왔더니 이제는 이곳 영국에까지 부쳐 주십니다. 반찬거리 보내실 때마다 곁다리로 꼭 넣어 주십니다. 그렇게 해서 모인 손수건이 자그마치 열 장이나 됩니다. 땀도 닦고 이렇게 찻상에도 깔아야죠. 어떻습니까, 오늘의 멕시칸 스타일 머핀과 색이 잘 어울립니까?

 

 

 

 

 

 

 

 


오늘의 머핀 재료:

 

노오란 콘밀, 밀가루, 설탕, BP, 소금, 달걀, 사워크림, 할라뻬뇨.

 


여름도 맞았고 해서 권여사님의 손수건 중 가장 화려한 걸로 깔아 보았습니다. 저도 이제 늙어 가나 봅니다. 몇 년 전만 해도 질색을 하던 이런 요란한 무늬들이 좋아지는 걸 보니 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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