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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거이 감자칩이냐 아니냐 - 프링글스 이야기 본문

차나 한 잔

이거이 감자칩이냐 아니냐 - 프링글스 이야기

단 단 2013. 8. 12. 01:39

 

 

 

 

 

돌아가신 우리 영감님 기일이어서 영감님이 쓰시던 다구를 꺼내 자스민 녹차를 우려보았습니다. 곁들인 과자는 양파맛 <프링글스>입니다. 우리 영감님이 양과자 중에서는 프링글스를 가끔 즐기셨고 차는 자스민을 좋아하셨습니다. 이 둘을 같이 먹어 보니 궁합이 환상이네요. 양파맛 프링글스 뒷맛이 꼭 짜장면 먹을 때의 그것과 흡사해 자스민 녹차와 잘 어울립니다. 중국집에서 식사한 것 같아요.

 

과자 좋아하는 단단이 오늘은 <프링글스> 이야기를 해볼까 합니다. 팜유가 들어서 바삭바삭합니다. 오늘도 지구 어딘가에서 팜유 생산하느라 숲을 밀어 버리고 있다 생각하니 와삭와삭 입 천장 찔리면서 마음 한편도 찔립니다. 유럽연합에서는 현재 성분 표기에 있어 팜유를 'vegetable oil'로 적는 것을 허용하고 있는데, 이게 애매하기 짝이 없어 2015년부터는 구체적인 이름을 적는 것으로 법이 개정되었습니다. 한국에서는 어떻게 적고 있나요? 집에 있는 한국산 너구리에는 팜유, 한국산 새우깡에는 팜유와 미강유라고 각각 적혀 있으니 기름에 있어서는 유럽연합보다 한국의 식품 표기가 앞서 있는 것 같네요. 한국 프링글스에는 어떻게 적혀 있는지 궁금합니다.

 

가만 보니 한국의 젊은 여성들은 다이어트 한다고 식품 포장에서 칼로리만 살피는 경향이 있는데, 칼로리보다는 성분표를 더 꼼꼼히 살펴야 합니다. 늙어 봐요, 젊어 아무거나 막 주워먹은 게 슬슬 징후를 나타내지. 제가 고기 좋아하는 우리 영감님 탓에 어린 시절 고기를 하도 먹어대 이십대에 벌써 몸에 통풍 기운이 완연했어요. You are what you eat. 고로, 칼로리 따지기 전에 내 몸 속에 들어가는 성분이 뭔지를 따지는 게 우선해야 한다는 겁니다. (으응? 과자 얘기 할 거 아니었어?)

 

영국 여행 오셔서 수퍼마켓에 들르면 감자칩 종류와 양에 깜짝 놀라실 겁니다. 영국에서는 감자칩을 'chips'라 하지 않고 'crisps'라 합니다. 이 크리습 시장이 아주 큰 시장입니다. 한국인들은 짭짤한 과자가 먹고 싶을 때 새우깡도 먹었다가 오징어땅콩도 먹었다가, 고래밥도 샀다가 쌀로별도 샀다가, 포카칩도 집어보고 자갈치와 양파깡도 집어보고, 인디안밥 사다 우유에도 말아보고 꼬깔콘 사다 손가락에도 끼워보고, 실로 다양한 선택을 하잖아요?

 

영국인들은 무조건 크리습입니다. 영국이 또 감자에 일가견이 있는데, 이 때문에 감자도 많고 감자 가공 식품도 참 많아요. 꼬맹이서부터 노인에 이르기까지 전 국민이 크리습을 즐깁니다. 영국 크리습은 기름도 좋은 걸 쓰고 원료도 좋아요. 양념도 맛있고 식감도 끝내줍니다. 'Hand cooked' 고급 제품도 많은데 한국과 비교하면 값도 비싸지 않아요. 영국산 크리습 먹다가 한국 크리습 먹으면 종잇장 씹는 기분이 날 겁니다. 그러니 이 맛있는 크리습 먹어 대느라 영국에 뚱보가 그렇게 많은 거지요. 온 국민의 소중한 티타임을 위해 티타임용 케이크와 과자들에는 VAT를 매기지 않지만 의료 비용을 늘리는 원흉인 술, 담배, 쵸콜렛, 크리습 등에는 VAT를 얄짤없이 매깁니다.

 

미국 식품 별로 안 좋아하는 영국에서도 <프링글스>는 팔리고 있습니다. 저는 영국에 오기 전까지 '프링글스 = 감자칩' 이렇게 알고 있었습니다. 다들 프링글스를 감자칩으로 알고 먹지 않나요? 영국인들 역시 '미국 감자칩도 괜찮네.' 하면서 먹었답니다. 프링글스 논쟁이 나기 전까지는요. 영국의 어마어마한 감자칩 시장에서 우위를 점하기 위해 <프록터 & 갬블> 사가 어느 날 프링글스에 붙는 감자칩 세금에 이의를 제기했습니다.


"우리 제품, 실은... 감자칩potato crisps 아니다."

 

영국인들이 깜짝 놀랐죠.
뭬야? 감자칩이 아니라고?
프링글스가 이런 선언을 한 데는 이유가 있었지요. 감자칩으로 분류되지 않으면 VAT를 내지 않아도 되고, 또, 그만큼 제품 값을 인하하면 시장에서 유리한 위치를 점할 수 있을 테니까요. 그래서 영국에서는 포장에 "POTATO CRISPS"라는 문구를 쏙 빼고 팝니다. (참고로, 영국은 VAT가 20%나 됩니다. 프링글스 논쟁 당시에는 17.5%였고요. 제품 값의 20%가 세금이라고 생각해보세요.)

 

 

 

 

 

 

 


 'Hand-cooked' 영국 감자칩.

영국인들은 산만하고 투박하고 예측 불가능한 것에 매력을 느낀다.



영국 감자칩들은 감자를 썰어 튀겨서 만듭니다. 우리가 아는 감자칩의 정의와 일치하죠. 그래서 한 봉지 안에 든 감자칩들이 크기가 컸다 작았다, 모양도 삐뚤빼뚤 제각각입니다. 프링글스처럼 살살 녹지 않고 딱딱한데다 크기와 모양이 제각각이니 먹을 때 집중해야 하고 빨리 먹을 수가 없어요. 프링글스는 모양과 크기가 똑같죠. 좁은 공간 안에 차곡차곡 많이 쌓으려고 감자를 가루로 내 다시 반죽했나 보다, 생각했었지요. 성분표를 보신 적 있나요? 이게 감자 가루만 든 게 아니고 밀가루, 쌀가루, 각종 전분에, 보존과 맛을 내기 위한 첨가물이 참 많이도 들었는데, 그래도 소비자들은 감자 가루가 대부분이겠거니 생각합니다.


2009년 5월, 영국 법원의 판결은 이랬습니다.
"어쨌든 감자가 다른 재료들보다는 많이 들었으므로 감자칩. 세금 내시오!"
땅땅땅.


꼼수 부리려다 괜히 잘 사 먹던 사람들에게 '맞아, 이게 감자로만 만든 게 아니었지' 일깨움을 준데다, 영국에서 돈 벌면서 영국의 다른 감자칩 회사들과 정당하게 겨룰 생각 않는다는 안 좋은 인상만 심어 주었죠.


영국에서는 미국 기업들 이미지가 그리 좋지 않아요. 특히, 아마존과 스타벅스를 아주 싫어합니다. 독일과 프랑스에서는 소규모 숍들을 보호하기 위해 아마존이 무한 할인하는 것을 법으로 제한하고 있다는데, 영국 아마존은 웬일인지 이런 제한을 받지 않아 아마존에서 책이나 물건을 사는 게 영국 그 어느 숍에서 사는 것보다 싼 경우가 많습니다. 동네 서점들과 작은 가게들이 다 망해 없어질 지경이죠. 그런데 이들 거대 기업들이 영국에서 막대한 수입은 올리면서도 교묘한 수법으로 세금은 거의 내지 않고 있어 영국인들이 뿔이 단단히 났습니다. 제가 아는 영국인들은 20대 젊은이든 60대 노인이든 절대 스타벅스에 가지 않습니다. 눈 앞에 스타벅스를 두고도 굳이 비좁고 꼬질꼬질해 보이는 동네 허름한 커피숍을 꾸역꾸역 찾아갑니다. 영국인한테 스타벅스에서 만나자고 약속 잡아 보세요. 십중팔구 인상을 살짝 찌푸릴걸요.

 

꼭 이런 세금 문제가 아니더라도 영국인들은 체질적으로 거대 기업의 프랜차이즈 숍들을 좋아하지 않는 것 같습니다. 우리 한국에서는 젊은이들이 외국계든 CJ 푸드월드 같은 국내 기업이든, 대기업 프랜차이즈 식당들이나 카페들 참 돈 많이 벌려 주죠. 자기 블로그에 상세한 설명과 사진으로 맛집이라 홍보도 다 해주고요. 봉 노릇 하지 말고 깐깐하게 굴어야 합니다. 영국 소비자들이 하도 깐깐하게 굴어 영국 맥도날드 제품은 미국 맥도날드 제품보다 원료가 좋습니다.


확실히 영국인들은 고놈의 체면과 전통을 지키느라 미국인들보다 돈은 잘 못 버는 것 같아요. 이런 일이 있었습니다. 영국에서는 원래 크리스마스 다음 날인 12월 26일 복싱 데이boxing day부터 가게들이 일제히 세일에 들어갑니다. 온라인 숍들도 크리스마스 자정, 즉, 26일 0시부터 세일을 하곤 했죠. 그런데 경기가 안 좋아지자 온라인 숍들이 슬슬 크리스마스가 되기도 전에 세일을 하기 시작했습니다. 꼬장꼬장한 영국인들, 가뜩이나 이를 못마땅해하고 있던 터에 작년에 영국 아마존이 성탄절인 25일부터 세일을 시작하겠다고 발표해 비난이 봇물 쏟아지듯 했습니다. "성탄절은 온전히 가족과 함께 보내야 하는 날이야. 그런데 뭐?! 성탄절에 세일을 시작해 사람들을 성탄절 아침부터 컴퓨터 앞에 붙들어 앉히겠다고? 당신들 지금 제정신이야?"

 

 

 

 

 

 

 


  그러고 보니, 돌아가신 우리 영감님 스타일이 딱 이랬네.

콧수염에 나비 넥타이.

 

 


이 프링글스에는 마약이 발려 있는 것이 틀림없습니다. 영국에서 파는 프링글스는 한국 프링글스보다 양이 많아요. 한 통에 190g이 들었습니다. 그런데 1회 제공량은 30g이라는군요. 프링글스 한 통을 뜯어 6회에 걸쳐 나누어 먹고 10g 남겨 이웃집 꼬맹이에게 자비를 베풀 수 있는 분? 손들어 보세요.


먹을 땐 맛있는데 잔뜩 먹고 나면 속이 불편해 3일은 고생하는 것 같습니다. 우리 돌아가신 영감님을 기리느라 한 통 사 봤습니다. 그래도 저 특이하면서도 실용적인 포장은 디자인 상이라도 줘야할 것 같습니다.


다음은 VAT가 적용되는 감자 과자 및 기타 짭짤한 과자들에 관한 1994년 영국의 세법 조항 -

"Any of the following when packaged for human consumption without further preparation, namely, potato crisps, potato sticks, potato puffs and similar products made from the potato, or from potato flour, or from potato starch, and savoury products obtained by the swelling of cereals or cereal products; and salted or roasted nuts other than nuts in shell."


논쟁 당시 프링글스 소유주였던 <프록터 & 갬블러> 사의 주장 -
"어허, 프링글스는 감차칩이 아니라니까? 우리 프링글스는 모양도 크기도 죄 똑같고 색깔도 고르니 여느 감자칩과 같은 '자연스러움'은 찾아볼 수 없다고! 게다가 레귤러 프링글스의 경우 감자는 반도 안 되는 42%, 기름 33%, 나머지 재료 중 밀가루는 감자라 할 수 없으니 이건 감자칩이 아니라고! 세금 못 내! 우리는 지금 소비자를 생각해서 이러는 거야!"


이 소비자 눈물 나게 고맙네그려.
몰랐다 알게 되었네, 감자 겨우 42%, 기름 3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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