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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국음식

영국 수퍼마켓에서 미술품 사기 ②

단 단 2014. 1. 18. 11:22

 

 

작년 가을, 수퍼마켓에 갔더니 아래와 같은 환상적인 포장의 크래커들이 선반에 뙇.

 

 

 

 

 

 

 



가격표를 보면 아시겠지만 하나하나 값이 꽤 나갑니다. 단단은 포장 디자인이 훌륭한 식품을 보면 전 재산을 털어서라도 일단 사고 보는 아주 나쁜 버릇이 있어요. 과자에 돈 다 쏟아 붓고 생활비 쪼들려 감자로 연명할 때 많아요.

 

 

 

 

 

 

 

 



다는 못 사고 여덟 종류만 사 보았습니다. 도대체 어떤 회사길래 과자 포장에 이렇게 공을 들이나 궁금해 누리집을 찾아 보았더니,

 

 

 

 

 

 

 



꼬르륵.  
누리집은 더 끝내줍니다.
보라색 외투 입은 분이 창업주랍니다. 백년밖에 안 된 아직은 어린 회사예요. 각 화면마다 디자인이 다 다른데, 정말 아름답습니다.

 

 

 

 

 

 

 



빅토리아 시대(1837-1901) 때 유행하던 채색 동판화 풍으로 작업한 듯합니다. 지극히 영국스러운 것들로 가득 차 있네요. 동식물을 써서 모자를 표현했는데, 동식물 수집과 정교한 그림으로 도감 만들기에 몰두하던 빅토리안들이 떠오릅니다. '영국적 기괴함British eccentricity'도 살짝 엿보이고, 영국의 코미디 그룹인 <몬티 파이슨Monty Python>스러운 엉뚱함도 좀 보이고 그러네요. 과자 선반 앞에 한참 서서 기발함에 혀를 끌끌 찼었습니다.

 

각 포장마다 모자가 공통 분모 역할을 하고 있죠? 토마토맛 크래커에는 토마토 모자를, 치즈맛 크래커에는 치즈 덩이 모자를. 영국인들에게 모자가 얼마나 중요한가는 눈썰미 있는 분이라면 금방 알아채셨을 겁니다. 영국 드라마 챙겨 보시는 분이나 영국에서 잠깐이라도 지내본 적 있는 분들 역시 눈치 채셨을 테고요. 양승은 아나운서가 런던 올림픽 중계할 때 영국 문화 소개한다고 모자 쓰고 나온 적 있었죠? "꼴불견이니 당장 벗으라!" 시청자들의 항의가 빗발, 난리도 그런 난리가 없었다죠. 어휴.

 

영국에서 모자는 오늘날에도 여전히 중요합니다. 정장 멀끔히 잘 차려입고 모자를 쓰지 않으면 덜 갖춰 입은 걸로 간주돼 경우에 따라서는 무례한 사람 취급 받기도 합니다. 윌리엄 왕자 결혼식 때 초청 받은 하객 중 모자를 쓰지 않고 나타난 사람이 있어 이를 신문에서 다 다룰 정도였지요. 영국에서는 모자쟁이들milliner이 아직까지는 먹고 살 만합니다.

 

 

 

 

 

 

 



포장을 뜯었더니 안에 이런 멋진 바구니가 또 있었습니다. 그릇에 옮겨 담을 필요 없이 그냥 이대로 손님 상에 내라는 거죠. 머리 잘 썼습니다. 바구니도 예쁘죠? 크래커 모양이 다 다른데, 과자 상자를 잘 보면 옆에 난 창이 과자 모양으로 뚫려 있어요. 이런 깜찍한 사람들 같으니.

 

 

 

 

 

 

 



삼년 숙성된 체다와 함께 먹겠습니다. 체다 포장도 만만찮게 예쁩니다.

 

 

 

 

 

 

 



본고장 체다의 모습은 이렇습니다. 적당히 단단하나 힘을 주면 또 잘 바스라집니다. 색은 미색이며 경쾌한 짠맛과 신맛, 단맛, 감칠맛, 고소한 맛이 납니다. 삶은 밤 맛도 좀 납니다. 맛이 강하지만 굉장히 복잡해요. 삼년 숙성된 것은 한풀 꺾인 부드러운 맛이 납니다. 저는 순한 맛의 아기 체다도 좋아하고, 날카로운 맛의 젊은 체다도 좋아하고, 오래 묵어 농익을 대로 농익었으나 차분해진 늙은 체다도 좋아합니다. 주황색 나는 고무 질감의 느끼하기만 한 것들은 제대로 된 체다가 아녜요. 본고장인 영국에서는 체다에 색소를 넣지 않습니다. 한국의 어느 미식가가 '나, 치즈 좀 잘 아는 세련된 사람이야.' 보란듯이 치즈 게시물을 여러 개 올려 놨길래 '잘됐네, 공부 좀 해야겠다.' 하고 주욱 살펴봤는데요, 주황색 고무 질감의 대량 생산된 영혼 없는 체다 먹고 쓴 글 보고 곧바로 나와버렸어요. 저는 이 분이 죽기 전에 반드시 제대로 된 체다를 꼭 한 번 맛보시길 간절히 염원할 뿐입니다. 다른 맛 크래커도 한번 먹어 볼까요?

 

 

 

 

 

 

 



세상에나, 영국에는 숯맛 크래커도 다 있습니다. 카리스마 넘치죠? 실제로 숯이 들었어요. 숯맛보다는 깨맛이 먼저 나는데, 깨가 이토록 강한 향미를 가졌다는 걸 한국에 있을 땐 몰랐다가 영국에 와서야 깨닫게 되었지요. 서양인들한테 음식 줄 때는 참기름을 너무 많이 치지 않도록 주의해야 합니다.

 

 

 

 

 

 

 



이건 영국의 푸른곰팡이 치즈 스틸튼Stilton과 함께 먹었습니다. 과자는 외모와는 달리 담백하고 고소했습니다. 입에 넣자마자 강렬한 맛이 나는 공장 과자 느낌은 전혀 없고 씹을수록 맛이 나는 게 꼭 집에서 만든 과자 같네요.

 

 

 

 

 

 

 



이건 좀 더 진한 숯맛입니다. 까맣게 탄 내 가슴? 뭐 이런 건가 봅니다. 강렬한 꽃분홍색의 딥은 비트루트로 만든 건데, 새콤 달콤 짭짤해 고소한 크래커에 제법 잘 어울립니다. 수퍼마켓에서 사 왔습니다. 여긴 빵이나 크래커용 딥도 종류가 너무 많아 고르기가 힘들어요. 일단은 무식하게 다 사 먹어 봅니다. 맛있었던 것들은 성분과 성상을 기록해 둡니다. 크래커와 딥을 궁합 잘 맞는 것끼리 짝지어 상에 올리는 것도 많은 연구와 노력을 필요로 합니다.

 

 

 

 

 

 

 


 
성분표와 영양 정보를 마치 옛 시절 요리책처럼 정리를 해 놨네요. 구석구석 세심하게 신경 쓴 티가 납니다.

 

 

 

 

 

 

 



몇 종류 꺼내 늘어놔 봅니다. 예쁘죠? 각자 개성이 있고 맛있었는데, 심심한 것도 있고 강렬한 것도 있고 그렇습니다. 빨간 건 비트루트 맛입니다. 영국인들은 우리 한국인들 무 쓰듯 비트루트를 즐겨 씁니다. 영국 기후와 토양에 잘 맞아 아주 잘 자라요. 이런저런 요리에 많이 쓰이지요. 치즈가 든 것들은 맛이 강하고 짭짤해 술안주로도 좋겠습니다. 쐐기 모양shard의 크래커들은 맛과 향과 간이 세지 않으면서 질감이 꽤 단단한데, 딥이나 수프처럼 물기 많은 것을 찍어 먹도록 고안되었기 때문인 듯합니다. 동그란 모양의 것들은 섬세하고 잘 바스라져 먹기 편합니다.


수프와 치즈를 매우 즐기기 때문에 영국은 크래커를 잘 만듭니다. 술 파티에는 또 까나페가 필수이고요. 크래커 수요가 많습니다. <카스Carr's>도, <라이비타Ryvita>도, 세계적으로 유명한 크래커 회사들이죠. 모두 영국 회사입니다. 아래에 <퍼지스> 누리집에서 가져온 사진과 그림들을 무작위로 배치해 볼게요. 눈여겨봐 두셨다가 손님 상에 손수 만든 딥과 함께 멋들어지게 크래커 한번 내보시기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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