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loudspotter

[영국음식] 훈제 생선 - 트와이닝 잉글리쉬 브렉퍼스트 80주년 기념 본문

영국음식

[영국음식] 훈제 생선 - 트와이닝 잉글리쉬 브렉퍼스트 80주년 기념

단 단 2013. 11. 19. 22:46

 

 

 


<트와이닝> 사의 잉글리쉬 브렉퍼스트 홍차가 올해로 80세가 되었다는군요. 1930년 대에 첫 선을 보였다는 얘기가 되겠는데, 회사가 창립된 해가 공식적으로는 1706년이니 회사 나이에 비해서는 그리 오래된 블렌딩이 아니네요. 영국인들의 아침 식사마다 함께 해온 브렉퍼스트 홍차가 80세가 되었다니, 회사로서는 뜻깊은 일이죠. 기념 포장을 따로 낼 만하죠. 동네 수퍼마켓에서 판매하고 있길래 저도 두 상자를 사보았습니다. 아르 데코 디자인의 포장이 참 근사하죠? 깡통도 함께 냈으면 좋았으련만.

 

 

 

 

 

 

 

 


"우리 회사의 잉글리쉬 브렉퍼스트가 80세 생일을 맞았기에 이를 기념하코자 합니다. 1930년대 저 스타일리쉬한 아르 데코 시절에 탄생한 블렌딩입니다. 활기찬 하루를 시작할 수 있도록 돕는 영국의 전통 아침 식사들 - 키퍼스나 케저리 등에 곁들여도 그 맛이 밀리지 않을 만큼 진하게 블렌딩된 홍차입니다. 오랜 세월 사랑을 받아왔듯 오늘날에도 여전히 우리들의 여유로운 아침 식사에 함께하고 있습니다."


대략 이런 내용입니다.


잠깐!
영국의 아침 식사는 풀 브렉퍼스트full breakfast나 버터·마말레이드 바른 토스트 따위가 전부인 줄 알았는데요?

 

이런 분들을 위해 키퍼스와 케저리의 사진을 아래에 올려드리겠습니다. 전에 ☞ 런던 올림픽 맞이 영국음식 열전에서도 소개해드렸어요.

 

 

 

 

 

 

 

 



이것이 키퍼스kippers, 훈제한 청어herring입니다. 훈향이 물씬 나죠. 이 자체가 완성도 있고 아주 맛있기 때문에 버터만 얹거나 취향에 따라 허브를 더 얹어 먹기도 합니다. 빅토리안들과 에드워디안들이 아침 식사로 특히 즐겨 먹었고, 요즘 젊은이들의 조부모 세대까지만 해도 많이들 즐겼었죠. '폭풍 같은 가시의 향연이 압박적'인데다 젊은이들 취향에는 향이 좀 강해 한동안 인기가 시들했다가 오메가-3 붐이 일면서 다시 각광을 받기 시작했습니다. 요즘은 수퍼마켓들이 먹기 좋게끔 손질해 진공 포장해서 팔고 있기 때문에 별 어려움 없이 즐길 수 있습니다. 잔가시들도 가늘고 부드러워 그냥 다 먹을 수 있어요. 다쓰 부처도 자주 사 먹습니다.

 

 

 

 

 

 

 


청어의 뼈. 예술이죠.

 

 

 

 

 

 

 


청어herring의 뼈bone를 닮은 '헤링본' 직조.

버버리 남성용 코트입니다.
고급스러워 보이네요.

 

 

 

 

 

 

 


아니 이게 누구야?
헤링본 디어스토커deerstalker를 쓴 셜록.

 




영국인들은 훈제 생선을 좋아합니다. 훈제 연어, 훈제 송어trout, 훈제 청어, 훈제 장어eel, 훈제 대구haddock, 훈제 고등어, 아브로쓰 스모키Arbroath smokies 등 종류도 다양해요. 다들 맛있습니다. 과거에는 런던에도 스모커리smokery들이 참 많았는데, 금융 허브화 한답시고 현대화 정책을 펼치는 바람에 죄다 지방으로 밀려났지요. 스코틀랜드에는 아직도 전통 스모커리들이 많이 남아있습니다. 이태리와 스페인은 조제 햄과 조제 고기와 조제 소세지를 잘 만들죠. 영국은 섬나라답게 훈제 생선을 잘합니다.

 

 

 

 

 

 

 



이건 케저리kedgeree 입니다. 커리 분말로 맛을 낸 볶음밥으로, 여기에도 훈제 생선이 들어갑니다. 삶은 달걀을 함께 넣기 때문에 단백질이 풍부하죠. 아침에 양질의 단백질을 먹어두면 든든하다잖아요. 훈제 생선 데친 물로 냄비밥부터 지어야 하니 직장인들이 바쁜 아침에 만들어 먹기엔 시간과 공이 좀 많이 들어갑니다. 인도식 커리가 아닌 영국식 커리 파우더를 소량 넣습니다. 커리향이 은은히 나기 때문에 아침에 먹기에는 인도 커리만큼 부담스럽지는 않아요. 인도인들이 조리 때마다 매번 복잡하게 향신료 섞는 걸 보고 감탄한 영국인들, 고국에 돌아와 커리는 먹고 싶은데 내공이 그만큼 안 되니 대신 커리 파우더란 걸 조제해 판매하게 되었는데, 이게 일본으로 건너가 조미료와 전분을 첨가해 우리들이 잘 아는 일본식 맛난 '카레'가 되었습니다.

 

위의 키퍼스나 이 케저리 모두 오래된 영국 전통 음식입니다. 케저리가 영국의 요리책에 처음 언급된 것은 1790년. 빅토리안들이 이를 특히 아침으로 많이들 즐겼습니다. 귀차니스트인 현대 영국인들은 어쩌다 한 번씩 기분 낼 때나 만들어 먹지 옛 사람들만큼 자주 해먹지는 않습니다.

 

 

 

 

 

 

 



트와이닝 홍차 팩에는 소개가 안 되어 있지만 영국인들이 즐겨 먹는 아침 식사로 아놀드 베넷 오믈렛Omelette Arnold Bennett이란 것도 있어요. 오믈렛에 치즈와 훈제 흰살 생선smoked haddock을 넣습니다. 크으~ 재료 얘기만 들어도 벌써 군침 돌지 않습니까? 프랑스식으로 3절 접기나 반 접기를 하지 않고 피짜처럼 동그랗게 부쳐 냅니다.

 

 

 

훈제 생선을 쓰는 영국음식이 더 있으나 아침에 먹는 것들만 일단 소개를 해드립니다. 이 세 가지 다 얼마나 맛있는데요. 아니, 나는 도대체 영국음식을 왜 맛없다고들 하는지 이해를 할 수 없네. 이런 게 있다는 걸 다들 알기는 하나? 영국에 계신 유학생 여러분, 영국에서 질 좋은 훈제 생선 손쉽게 구할 수 있을 때 위 요리들 꼭 해드시고 귀국하셔야 후회 안 합니다. 생선 훈제, 이거 아무나 잘 할 수 있는 게 아니거든요. 한국의 대형마트에서 볼 수 있는 훈향 나는 식품들은 대개 훈연액에 담가 생산하는 겁니다. 장시간 연기를 쏘이기엔 일단 기술이 달리고 비용과 품이 많이 드는 데다 번거로우니 지름길을 택하는 거죠. 만만디 영국인들은 장시간 연기 쏘여가며 훈제하는 데 아주 도가 텄어요. 전기 설비가 된 현대식 스모커리뿐 아니라 전통 수공식 스모커리들도 아직 많이 남아있습니다.


생선을 훈제하는 데는 보통 두 가지 방식을 씁니다: 열훈hot smoking과 냉훈cold smoking. 사진에 있는 키퍼스(훈제 청어)는 대개 냉훈법을 써서 만듭니다. 열훈 방식은 냉훈 방식에 비해 온도가 두 배 이상 높은 대신 훈제 시간은 많이 줄어듭니다. 영국인들은 요리에 따라, 기분에 따라, 두 가지 방식 모두 즐깁니다. 다쓰 부처도 가리지 않고 다 즐깁니다.

 

 

 

 

 

 

 



"우리 브렉퍼스트 홍차와 함께 드시면 좋은 아침 식사들을 소개합니다."
목록에 영국식 아침 식사뿐 아니라 타국의 아침 식사도 몇 개 포함돼 있습니다.


• 베이글에 크림 치즈 바르고 훈제 연어 얹은 것 - 미국

• 포리지: 납작 누른 귀리를 우유에 끓인 것 - 영국

• 버터와 잼 바른 크화썽 - 프랑스 (아침을 달게 먹다니, 신기한 사람들.)

• 에그(스) 베네딕트 - 미국 머핀은 영국에서, 올랑데즈 소스는 프랑스에서. 머리 좋은 미국인들. 남의 것 가져다 자기네 음식으로 근사하게 재조립하는 데 선수들. 에그스 베네딕트 정말 맛있죠.

• 풀 잉글리쉬/웰쉬/스코티쉬/아이리쉬 브렉퍼스트 - 영국

• 케저리 - 영국

 

 

 

 

 

 

 



집에 있는 아르 데코 찻잔을 꺼내봅니다. 1930년대가 영국의 아르 데코 시절입니다. 1차대전이 끝나고 저 흥청흥청 '글래머러스'하던 1920년대를 지나 유럽이 대공황기를 겪던 시절입니다. 그래도 디자인 감각들은 여전하고 홍차도 꿋꿋이 우려 마십니다. 영국의 아르 데코 시절을 대변하는 작품으로는 아가사 크리스티의 추리소설 <푸와로Poirot>를 떠올리시면 되겠네요. 이를 드라마화 한 작품들의 배경과 복식을 떠올리면 그 시절의 생활상을 엿볼 수 있겠습니다. 드라마 시리즈 중 특히 2005년 이후 제작된 것들에서 아르 데코 세팅이 좀 보입니다. 영국과 유럽 대륙의 아르 데코가 약간 다르다고 하는데, 영국 아르 데코에는 대륙에 비해 흑백 대비가 좀 더 많이 쓰인다고는 하나 시간이 없어 더 자세히 알아보지는 못했습니다. 영국에서는 실내 인테리어에 활발히 응용은 됐어도 아르 데코 양식으로 된 건축물 자체는 그리 많지가 않습니다. 전반적인 ☞ 아르 데코의 디자인이 어떤 것인지 구글의 무작위 이미지들을 한번 보십시오. 이 트와이닝 팩과 유사한 점이 많이 보일 겁니다.

 

 

 

 

 

 

 

 Gants Hill Station (Central Line)

 


아르 데코 양식으로 꾸며진 런던의 어느 지하철 역 내부입니다. 위의 트와이닝 홍차 포장과 어쩐지 비슷하지요? 런던 여행 오시면 지하철과 기차 역사들을 잘 살펴보세요. 눈썰미 있는 분들은 그 안에서 놀라운 디자인들을 수두룩 발견해 낼 수 있을 겁니다.

 

 

 

 

 

 

 



자, 이제 차 품평을 해야죠?
기념으로 포장만 바꿔 낸 것일 뿐, 차 맛은 기존 제품과 동일합니다.
꽈당. (이런 싱거운 시음기를 봤나.) 

 

 

 

댓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