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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국그릇] 얼떨결에 버얼리 티세트 본문
내 사랑 <버얼리Burleigh>.
그런데 버얼리 제품이라고 다 좋아하는 건 아니고, 사진에 있는 <아시아틱 페전트Asiatic Pheasants> 문양만 좋아합니다. 이 아시아틱 페전트는 영국 전통 문양입니다. 원조를 가리기 힘들 정도로 여러 회사들이 그간 너도나도 써 왔지요. 붉은 계열, 갈색 계열, 녹색 계열로도 있고, 심지어 보라색으로도 있습니다. 푸른색도 뉘앙스가 아주 다양하고요. 저는 버얼리의 이 꿈같은 하늘색을 가장 좋아합니다. 빅토리아 시대[1837-1901] 때 이 문양으로 된 그릇들이 영국에 대유행을 했었습니다. 동양적 이미지를 영국 낭만주의풍으로 잘 해석했다는 평가를 받습니다. 번진 듯한 흐린 선들, 파스텔 조 색상, 마치 꿈결에서 본 이상향 같죠. 세부 묘사도, 부케의 배열도, 정말 아름답습니다.
제품군 중에서는 지름 30cm짜리 디너 플레이트가 문양을 가장 잘 살려 보여주는 것 같아요. 실물은 더 아름다워서, 접시 한 장 꺼내 놓고 그저 넋을 놓고 바라보곤 합니다. 이건 백화점에서 할인할 때 사 둔 거고요,
이건 동네 채리티 숍에서 집어 왔습니다. 동글동글하니 형태가 귀엽죠. 꽤 많이 담기더라고요.
밀크티용 홍차가 똑 떨어져 채리티 숍 들렀다 집에 돌아오는 길에 브렉퍼스트 홍차 한 팩을 사 왔습니다. 종류가 너무 많아 한참을 고민하다가 버얼리 티포트가 인쇄돼 있는 수퍼마켓 자사 제품으로 낙점했습니다. 영국에서 한국으로 버얼리 구매 대행하시는 분들은 이 홍차도 같이 판매하시면 아주 좋을 것 같다는 생각을 해봤습니다.
짠.
이렇게 해서 얼떨결에 버얼리 세트가 구성되었습니다. 희한한 세트죠? 로또 당첨되면 새언니들과 동서와 시누이한테 버얼리 6인조 티세트 사서 안겨주고 싶어요. 티포트 - 우유기 - 설탕기 - 찻잔과 간식 접시 트리오 6인조 - 케이크 접시 2장 - 직사각형 샌드위치 접시 - 2단 케이크 접시, 이렇게요. 버얼리 티포트는 선이 참 예쁘게 잘 빠졌습니다. 버얼리 제품 써서 찻상 차린 걸 TV에서 본 적이 있는데요, 빨갛고 노란 차음식들과 버얼리의 꿈같은 하늘색이 기가 막히게 잘 어울리더라고요. 영국에서는 TV와 잡지에서 버얼리 제품을 많이 봅니다. 영국의 푸드 스타일리스트들이 좋아하는 제품이라 요리책에서도 자주 눈에 띕니다.
가득 담아보니 320ml. 꽤 많이 담기죠? 영국 전통 과자 두 쪽 곁들여 찻자리 가져봅니다. 커스타드 크림Custard Cream입니다. 전통 과자라 어느 회사든지 기본으로 출시를 하고 있습니다. 정교한 바로크 문양에 너무 기름지지도 달지도 않은 우아한 맛이 일품이라 다쓰베이더가 좋아합니다. 저희는 웨이트로즈 제품으로 사 먹고 있는데, 회사마다 맛이 조금씩 달라요. 값은 참 쌉니다. 영국에서는 티타임용 비스킷이 비싸면 안 됩니다. 아무리 가난한 사람이라도 티타임은 가질 수 있어야 한다는 암묵적인 사회적 합의가 있거든요.
웨이트로즈의 이 브렉퍼스트 홍차는 맛이 아주 좋네요. 진하면서도 싱그러운 풀내가 나서 감탄사가 절로 나옵니다. 산차loose leaf로 샀어요. 브렉퍼스트 홍차들은 진한 맛을 내기 위해 잘게 부순 찻잎들을 혼합하잖아요? 그 때문에 티백이 아닌 산차를 우리고 나면 아무리 촘촘한 망에 걸러도 잎이 많이 샙니다. 망에 박힌 자잘한 찻잎 씻어 내는 것도 참 힘들어요. 꾀를 부려 망에 종이 필터를 대고 따라도 봤는데요, 차에 있는 향기로운 오일 성분을 종이가 흡수해 차 맛이 또 완전히 달라지더라고요. 차 향이 사라지고 맛이 싱거워집니다. 이럴 바엔 처음부터 티백에 담긴 것으로 우리는 게 낫죠. 티백째 물에 오래 담가 두면 아무래도 차 오일에 담긴 향이 찻물에 조금이나마 스밀 수 있을 테니까요. 영국인들이 왜 브렉퍼스트 홍차를 티백에 담는지 이해할 수 있게 되었습니다. 차 맛있게 잘 마시기도 참 힘듭니다. ■
▲ 버얼리 아시아틱 페전트 보라색 2인용 티 세트.
▲ 영국 베이킹의 대모 매리 베리Mary Berry 할머니의 아프터눈 티 찻상.
버얼리 제품이 보인다.
▲ 영국 전통 케이크인 '버터플라이 케이크'.
윗부분을 따 내고 크림을 짜 얹은 뒤
따낸 부분을 반 갈라 나비 날개 모양으로 다시 꽂아준다.
▲ 저 뒤에 있는 4단 케이크 역시 영국의 전통 케이크인 '레몬 드리즐lemon drizzle 케이크'.
맨 앞에는 티 샌드위치들이 보인다.
▲ 쪼르르르...
▲ 영국에서는 스콘에 잼 먼저 올릴 것이냐 크림 먼저 올릴 것이냐를 두고
쌈박질 하기도 하니 크림-잼, 잼-크림 골고루 얹어 내는 게 좋다.
▲ 브렉퍼스트 찻상. 젖소 모양의 우유기가 재미있다.
▲ 아시아틱 페전트 문양은 큰 접시에서 가장 잘 표현되는 듯.
▲ 2023년 서울 여의도. 버얼리 그릇들로 장식한 어느 카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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