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치즈 ◆ 그리스 페타 Feta • 그릭 샐러드 제대로 해먹기 본문

세계 치즈

치즈 ◆ 그리스 페타 Feta • 그릭 샐러드 제대로 해먹기

단 단 2014. 7. 12. 00:00

 

 

 

동네 수퍼마켓이 취급하는 다양한 페타. 유럽연합국에서 팔리는 페타는 전부 PDO 마크가 붙은 그리스산으로, 모방품은 유럽연합 규정상 페타라 이름 붙일 수가 없다. 영국에서는 <Apetina Salad Cheese>라는 이름으로 팔리는 덴마크산 모방 치즈가 한국에서는 <Apetina Feta>라는 이름을 달고 버젓이 페타 행세를 하고 있으니 속지 말자.

 

 

 

 

여름입니다. 영국인들은 여름 휴가철에는 집에서도 휴가지 음식을 해먹는 바람직한 습관을 갖고 있습니다. 주로 지중해쪽 음식과 카리브해, 동남아시아 음식을 해먹으면서 기분을 내므로 수퍼마켓들도 여름이 되면 이들 지역 식재료들을 많이 수입해 들여놓습니다. 치즈 선반에도 페타나 할루미 같은 그리스·사이프러스 치즈들과 모짜렐라가 특히 많이 보이곤 하죠.


오늘은 그리스 대표 음식 중 하나인 그릭 샐러드를 소개할까 합니다. 그리스 사람들은 이를 호리아티키 살라타ωριάτικη σαλάτα, 혹은 쎄리니 살라타θερινή σαλάτα라고 부릅니다. 전자는 '시골풍 샐러드', 후자는 '여름 샐러드'라는 뜻입니다. 그간 대충 흉내만 냈었는데, 페타 소개도 할 겸 그리스 사람들의 지침에 따라 정통식으로 한번 만들어 보겠습니다. 집집마다 지역마다 조금씩 차이는 있겠지만 그리스 사람들은 그릭 샐러드 하면 으레 다음의 재료들이 필수로 들어가야 한다고 여깁니다.

 

 

 

 

 

 

 

 


먼저, 가장 중요한 페타. 그릭 샐러드이니 당연히 그리스산 페타를 써야겠지요. 그리스는 아마 국력의 반을 외국의 가짜 페타 퇴치하는 데 쓰고 있을 겁니다. 페타가 워낙 수요가 많은 치즈이다 보니 도처에서 모방품을 만들어 재미를 보고 있거든요. 양젖만으로, 혹은 양젖과 염소젖을 혼합해 만드는 치즈인데, 모방 페타들 중에는 소젖으로 만든 것들이 많습니다. 제가 사 온 것은 양젖과 염소젖 혼합 치즈입니다. 오크통에 담아 소금물에 4개월간 숙성시킨 전통 방식 제품입니다. 그리스산이라도 어떤 것들은 맛이 지나치게 자극적이니 잘 골라야 합니다. 조금 떼어 맛을 보아 너무 짜다 싶으면 맹물에 담가 소금기를 조금 빼낸 뒤 쓰셔도 됩니다. 단, 너무 오래 담가 두면 맛이 빠져나가 싱거워지니 주의하시고요.

 

 

 

 

 

 

 

 



양과 염소의 사육 환경에 대한 이야기와 5대째 페타를 만들어 온 어느 그리스 가족의 이야기가 담겨 있습니다. 페타는 양젖으로만 만들거나, 양젖과 염소젖을 섞어 만들거나, 이 둘 중 하나여야만 합니다. 두 종류의 젖을 섞어 만들 경우에는 양젖의 비율이 최소 70%는 되어야 하므로 염소젖은 30% 이상 섞지 못하도록 법이 정하고 있고요.


그리스는 소를 키우기에 적합하지가 않다고 하죠. 편한 것 좋아하고 어슬렁거리기 좋아하는 소들이 살기에는 지형이 좀 험하고 땅이 척박해서 울퉁불퉁한 비탈에서도 민첩하게 잘 다닐 수 있는 염소나 참을성 많은 양이 살기에 좀 더 유리하다고 합니다.


그리스 사람들과 페타의 관계는 우리 한국인과 김치의 관계와 같다고 보시면 될 것 같습니다. 간식으로 어쩌다 치즈를 먹는 게 아니라 마치 우리 한국인들 밥상에 올라오는 밥이나 김치 같은, 밥상 필수 구성 요소라고 합니다. 식사용 짭짤한 음식에도 들어가고 간식용 단 음식에도 들어갑니다. 전세계에서 치즈를 가장 많이 소비하는 나라는 프랑스가 아니라 그리스입니다. 영국 수퍼마켓에도 체다 다음으로 페타가 많이 놓여 있고요.

 

 

 

 

 

 

 



오이도 필수로 들어갑니다. 영국 오이가 이렇게 큽니다. 30cm가 넘어요. 둘이 먹을 때는 반만 써도 충분합니다. 그리스 오이는 우리 한국 오이처럼 작습니다.

 

 

 

 

 

 

 



토마토도 빠지면 안 됩니다. 가지에서 제대로 익힌 뒤 줄기째 수확한 토마토입니다. 영국 와서 줄기 달린 토마토를 처음 보고는 매우 신기해했었습니다. 향이 얼마나 진한지 모릅니다. 토마토를 아주 잘 익은 것으로 구할 수 없으면 아예 그릭 샐러드 만들어 먹을 생각을 하지 말라고 그리스 사람들이 신신당부를 합니다. 반드시 잘 익은 토마토를 써야 합니다.

 

 

 

 

 

 

 

 



올리브도 필수입니다. 그릭 샐러드이니 그리스산 올리브를 써야겠죠. 잘 익은 자주색 칼라마타 올리브를 쓰면 좋은데, 페타와 함께 이 칼라마타 올리브도 유럽연합에 의해 PDO로 보호를 받고 있습니다. 연약해서 사람이 손으로 일일이 따야 합니다. 병에 '싱글 에스테이트'라고 써 있는데, 올리브도 커피나 홍차처럼 싱글 에스테이트를 따져 가며 먹기도 합니다.


병에 담겨 팔리는 올리브 중에는 아예 그릭 샐러드용으로 나온 것들이 있는데, 그리스산 칼라마타 올리브를 그리스산 엑스트라 버진 올리브 오일에 담아 말린 오레가노 가지를 함께 넣습니다. 그릭 샐러드에 오레가노가 원래 들어가야 하므로 이런 제품을 쓰면 편하죠. 올리브 오일도 병에 담긴 것으로 그냥 뿌려 주면 되고요. 오레가노 향이 밴 질 좋은 오일이라 맛있습니다.


참, 우리 한국인들이 피짜 토핑으로 많이 쓰는 까만색 올리브 있잖아요? 영국 와서 안 사실인데, 올리브는 아무리 잘 익어도 절대 그렇게 새까만 색은 날 수가 없다는군요. 까만색 올리브는 덜 익은 녹색일 때 따서 화학적으로 처리해 만드는 거랍니다. 안 익은 걸 따다가 억지로 잘 익은 것처럼 보이게 하는 거죠. 값도 쌉니다. 소금물에 담가 몇 달씩 숙성·발효시켜야 할 것을 속성 처리해 내보내니 가공치즈 같은 거죠. 저 같으면 돈 조금 더 주고 제대로 발효시킨 올리브를 사 먹겠습니다.

 

 

 

 

 

 

 



양파도 필수입니다. 흔히 쓰는 주황색 껍질 양파 대신 덜 맵고 단맛이 많이 나는 보라색 양파를 쓰세요. 그리스 보라색 양파가 영국 보라색 양파보다는 좀 더 순하다는데, 보라색 양파도 재배지마다 매운 정도가 다르니 맛을 보아 매운 것 같으면 최대한 얇게 썰고 양도 줄여서 넣어야 합니다. 매운 양파를 두껍게 썰면 그릭 샐러드 먹고 나서 양파 맛만 기억하게 됩니다.

 

 

 

 

 

 

 



말린 오레가노도 필수입니다. [사진은 생 오레가노] 외국 향초에 익숙치 않더라도 반드시 넣어야 합니다. 그릭 샐러드 맛 내는 데 핵심 요소이거든요. 오레가노는 타임thyme과 비슷하나 타임보다는 맛과 향이 좀 더 강하고 더 알싸합니다. 꼭 후추알 씹은 것처럼 매워요. 생오레가노와 마른 오레가노는 향미와 느낌이 좀 다릅니다. 생 오레가노는 탄산음료인 스프라이트sprite의 산뜻한 향이 나면서 매운 기운이 있고, 마른 오레가노에서는 연필 나무 냄새가 좀 더 나죠. 어쨌거나 둘 다 향은 우아하기 짝이 없습니다. 오레가노를 뺄 생각이면 아예 그릭 샐러드를 만들지 말고 다른 샐러드를 해 드시라고 말씀드리고 싶습니다. 그리스에서는 꽃 핀 채로 그냥 말린 오레가노 다발을 사서 손으로 필요한 만큼 부숴 쓴다고 합니다. 아래 사진들을 보세요.

 

 

 

 

 

 

 

 아테네 어느 향초 가게의 말린 오레가노 다발.

 

 

 

 

 

 

 

 다발째 들고 식재료 위에 손으로 필요한 만큼 부숴 넣는다.

 

 

 

 

 

 

 

 말린 오레가노인데도 고운 연두색이 난다.

 

 

 

 

 

 

 



그린 페퍼는 필수는 아니지만 넣는 집이 많습니다. 저는 꼭 넣어 먹습니다. 그린 페퍼의 풋풋한 맛이 나머지 재료들과 정말 잘 어울리거든요.

 

 

 

 

 

 

 

 


자, 이제 조립을 해볼까요? 그릭 샐러드는 가운데만 우묵하게 패인 그릇보다는 얕게 패인 평평한 그릇에 담는 게 좋다고 해서 포트메리온 접시를 꺼내 보았습니다. 샐러드 구성 요소들이 드레싱에 골고루 닿을 수 있어야 한다네요. 먼저, 토마토오이를 담습니다. 재료들을 잘게 깍뚝 썰면 안 된다고 그리스 사람들이 신신당부를 하네요. 그렇다고 오이를 디스크 모양으로 얇게 썰면 바닥에 납작 붙어 포크로 찍어 올리기가 매우 힘들게 되죠. 삐뚤빼뚤 두툼하게 써는 것이 가장 좋습니다. 껍질은 반드시 벗겨야 합니다. 채소와 과일은 본디 껍질에 영양 성분이 많은 법이나, 오이 껍질은 가끔 원치 않는 쓴맛과 비린 맛을 낼 때가 있죠. 영양일랑 잠시 잊고 과감히 껍질을 벗겨 버리세요. 샐러드 즙과 오레가노 향을 더 잘 흡수해 오이가 훨씬 맛있어집니다. 토마토는 또 반드시 쐐기꼴wedge로 썰어야 합니다. 그리스 사람들, 까다롭죠?

 

 

 

 

 

 

 



그 다음, 얇게 썬 양파를 흩뿌려 줍니다. 재료들을 절대 드레싱에 한데 버무리거나 마구 섞어서 내면 안 된답니다. 그릭 샐러드는 재료를 섞지 않고 켜켜이 쌓아 내는 샐러드입니다.

 

 

 

 

 

 

 



이번에는 올리브를 얹습니다. 올리브는 미리 씨를 빼서 파는 제품을 쓰면 또 안 된답니다. 맛이 소금물brine이나 기름에 빠져 버려 싱겁기 때문이라네요. 클라푸티clafoutis 만들 때 체리에도 적용되는 겁니다. 어른들끼리 먹을 때는 알아서 씨를 뱉어 낼 수 있으니 올리브를 통으로 그냥 올리고, 아이들하고 같이 먹을 때는 올리브를 손으로 살짝 눌러 일일이 씨를 뺀 뒤 담으시면 됩니다. 씨가 제법 날카로워 아이들한테는 좀 위험할 수 있어요.


올리브를 올리고 취향에 따라 그린 페퍼 채 썬 것을 더 올리셔도 됩니다. 접시 위가 점점 복잡해집니다.

 

 

 

 

 

 

 



치즈를 제외한 재료를 다 올렸으면 이제 올리브 오일오레가노를 골고루 흩뿌립니다. 레드 와인 식초를 같이 뿌리기도 하는데, 식초는 지역에 따라 뿌리는 곳도 있고 안 뿌리는 곳도 있으니 취향껏 선택하시면 됩니다. 저는 신 맛을 좋아해 항상 식초를 뿌려 먹습니다.

 

마지막으로 페타를 얹습니다. 그리스 사람들은 페타를 깍뚝 썰거나 으깨서 흩뿌리질 않고 사진에 있는 것처럼 큰 덩어리를 그냥 척 얹어서 낸다고 합니다. 포크로 각자 먹을 만큼 부숴 먹는 재미를 느껴야 하기 때문이라네요. 보기에도 좀 더 깔끔하고요. 깍뚝 썰거나 으깨 넣을 경우 페타에서 나오는 흰 즙과 부스러기가 다른 재료 여기저기 묻게 되는데, 이게 꼴이 말이 아녜요. 지저분하기 짝이 없죠. 모방 페타들 중에는 아예 처음부터 으깨서 파는 것들이 있죠? 뭐든 미리 갈거나 으깨서 파는 것들은 급이 떨어지거나 수상한 겁니다. 그리스에서는 이런 건 치즈 자를 때 생기는 부스러기trímma라 해서 치즈 가게에서 손님이 원하면 공짜로 그냥 준다고 합니다. 주로 파이 속에 넣는다고 합니다.

 

 

 

 

 

 

 



페타를 사실 때는 노란색 빨간색의 PDO 마크가 있는지를 확인하고 사세요. 정통 그리스산이라는 증표입니다. 간혹 포장의 배색에 맞춰 흑백으로 인쇄돼 있는 경우도 있습니다. 더 좋기로는 오크 통에서 숙성시킨 것barrel-aged을 사는 건데, 한국에서는 아마 이것까지 바라는 건 무리일지 모르겠습니다. 미리 으깨서 파는 제품은 물론이요, 저로서는 사실 미리 깍뚝 썰어 기름에 담아 파는 제품도 이해하기가 좀 힘듭니다. 소비자가 정작 필요로 하는 건 치즈인데, 기름 따위로 양 불려 수입 물류 비용을 늘릴 바엔 차라리 제대로 된 판 모양의 페타를 수입해 치즈 무게를 늘리는 편이 낫지 않냐는 거죠. 한국에는 그리스산 페타 대신 미국산, 독일산, 덴마크산 모방 페타가 많이 들어가 있죠? 이것 때문에 그리스가 속 많이 썩고 있습니다. 모방 페타들 중에는 소젖으로 만든 것들이 많은데, 소젖은 양젖이나 염소젖보다 일단 값이 쌉니다. 색도 덜 하얗습니다. 소젖으로 페타 흉내를 내려니 화학적으로 우유를 뽀얗게 표백하는 과정을 거치지 않을 수가 없죠. 양젖과 염소젖 치즈는 소젖 치즈보다 고소한 단맛도 더 많이 납니다.

 

 

 

 

 

 

 



페타와 올리브에 이미 간이 충분히 돼 있으므로 샐러드에 소금은 따로 안 치셔도 됩니다. 양파와 생 오레가노에서 알싸하고 매운 맛이 나므로 후추도 칠 필요 없고요.


그릭 샐러드를 낼 때는 빵을 같이 내서 접시에 남은 샐러드 즙을 싹싹 닦아 먹는 즐거움을 누릴 수 있게 해줘야 한답니다. 그릭 샐러드 만들 때 저질러서는 안 될 '만행'을 다시 정리해 드리겠습니다. 그리스 사람들, 까다로워요.


1. 우묵한 그릇에 담지 말라. 샐러드 즙이 가운데에만 고이게 된다.
2. 샐러드이니 잎채소를 넣겠다고? 꿈도 꾸지 말라.
3. 재료를 깍뚝 썰지 말라. 큼직큼직 대범하게 썰고 토마토는 웨지로 썰라.
4. 페퍼는 올려도 되고 안 올려도 되나, 올릴 때는 그린으로. 레드는 금물.
5. 버무리지 말라. 그릭 샐러드를 위한 별도의 드레싱이란 건 없다.
6. 페타도 으깨거나 작게 깍뚝 썰 생각 말라. 통째로 올려라.
7. 앞접시에 덜어서 먹지 말라. 큰 접시에 담아 가운데에 놓고 포크로 이것저것 마음 내키는 대로 찍어 먹어 재료의 다양한 조합을 즐기는 음식이다. 고로, 막역한 사람들끼리 함께 앉아 먹는 것이 좋다.
8. 그릭 샐러드는 피타pita와 먹지 않는다. 그냥 평범한 빵을 곁들이라.

 


맛을 보겠습니다. 과연 포크로 페타 부숴 먹는 재미가 쏠쏠합니다. 토마토와 양파를 같이 찍어 먹어도 보고, 그 다음엔 오이와 올리브를 함께 먹어도 보고. 이런 식으로 조합을 매번 바꿔 가며 먹는 재미가 있어요. 그리스 사람들이 뭘 좀 아는 것 같습니다. 재료만 놓고 보면 강렬하기 짝이 없는 샐러드인데, 이게 막상 맛을 보면 참 신선하면서도 우아한 데가 있습니다. 오레가노가 정말 중요한 역할을 합니다. 일단, 토마토를 아주 잘 익은 것으로 써야 하고, 페타를 너무 싸구려로 사지 않아야 합니다. 페타를 짜고 시고 자극적이기만 한 치즈로 알고 계신 분들은 잘못 만든 걸 사 드시고 계신 겁니다. 좋은 걸 사서 써 보니 확실히 험하지가 않고 둥글둥글, 고소하면서 풍미가 참 좋네요.


휴가 갈 돈과 시간은 없고, 집에서 휴가지 음식이나 만들어 먹으면서 여름을 만끽하는 중입니다. 그릭 샐러드는 여름이 가기 전에 몇 번 더 만들어 먹어야겠습니다.

 




☞ 지중해 샐러드 ② 이태리
지중해 샐러드 ③ 프랑스
☞ 지중해 샐러드 ④ 스페인
☞ 지중해 샐러드 ⑤ 모로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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