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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운튼 애비 시즌 5 본문
매튜가 죽어 나간 뒤로는 김이 새서 보지 않고 있었는데 얼마 전 시즌 5가 시작됐다는 소리 듣고 놀라 자빠지거고.
아니, 그게 아직도 제작되고 있었어?
격려차 다시 보기 시작.
작가 참 힘들겠다 생각이 절로 드는 게, 애초 계획해 놓은 스토리가 있었을 텐데 그놈의 '할리우드'가 뭐라고 거기서 좀 떠보겠다며 주요 인물 둘이 쏙 빠져버려? 특히 메리 남편 녀석. 마치 내 애인을 전쟁터에 보낸 양 가슴 졸이며 전장에서 무사히 돌아오기를 기다려주고 병상에서 어여 벌떡 일어서기를 기원해 주었건만, 배은망덕한 것, 미국 가서 쫄딱 망해라.
아무튼, 흐지부지 끝난 줄 알고 있다가 용케 시즌 5까지 왔다는 사실을 알고 짠한 마음에 다시 보기 시작했는데, 아니, 둘째 딸이 어쩌다가 이 지경이 되었어? 전 시즌을 못 본 채 시즌 5 보고 억장이 무너졌네.
이번 시즌에서 눈여겨볼 몇 가지.
1. 영국 역사상 처음으로 노동당이 정권을 잡았다는 것. 가뜩이나 타이타닉 호 사고와 1차대전으로 대가 끊긴 귀족 가문이 수두룩한데, 귀족이고 신분제고 다 없애야 한다는 노동당이 정권을 잡았으니 당시 귀족들 마음이 얼마나 가시방석이었겠나. 영국에서 귀족은 이제 멸종 위기 동물이나 다름없어서 일부로 없애지 않고 가만 두어도 저절로 없어질 판이다. 얼마 안 남은 귀족 가문, 딸만 하나 달랑 낳고 마는 집도 많거든. 대저택 유지 보수비를 감당 못해 내셔날 트러스트에 넘기는 일도 허다하고.
2. 다운튼 애비에 드디어 라디오를 들여놓게 되었다는 것. (당시엔 라디오라 하지 않고 'The Wireless'라고 불렀음.) 그랜썸 백작이 "내 집에는 절대 안 돼!" 뻗대다 영국 역사상 최초로 왕이 대국민 라디오 연설을 한다는 소식을 듣고는 하는 수 없이 들여놓게 되었는데, 이게 실로 대단한 일인 것이, 옛 시절에 군주의 목소리를 들을 수 있는 보통 사람들이 과연 얼마나 됐겠나. 왕실의 신매체 도입은 영국에서 왕실과 국민 사이의 높은 담을 헌 기념비적인 일로 꼽히곤 한다. (현 엘리자베스 2세 여왕도 자기 페이스북 계정이 있다.) 극 중 다운튼 애비 사람들이 라디오 앞에 모두 모여 차렷 자세로 국왕의 목소리를 경청하는 장면이 있는데, 하도 재밌어서 잠자리에 누워서도 떠올리며 혼자 키득키득.
3. 스포드 사의 스태포드 화이트 자기들이 끊임없이 등장해 단단의 가슴을 벌렁벌렁하게 한다는 것[위 사진]. 아마 이번 시즌 내내 보게 될 텐데, 우리 집에도 스태포드 화이트는 아니지만 자매품인 스태포드 플라워 티포트가 하나 있다[아래 꽃무늬 티포트 사진]. 무리해서라도 찻잔과 간식 접시도 같이 살 걸, 땅을 치며 후회하는 중. 단종 떨이한 뒤 역사의 뒤안길로 사라지려는 찰나 우연히 발견하고 영국 본사에 남은 마지막 제품을 헐값에 겨우 건지긴 했는데, 달랑 티포트만 사서 뭘 어쩌자는 거냐.
아무튼 영국은 막장 드라마도 참 뽀대나게 잘 만든다. 역사 좋아하고, 옛날 복식 좋아하고, 그릇 좋아하고, 인테리어 좋아하는 사람들에겐 이만한 구경거리도 흔치 않을 듯.
▲ 영국 스포드 사의 스태포드 화이트. 조지안 스타일. 수작업으로 22캐럿 금을 두르고 점을 찍기 때문에 비싸다.
▲ 우리 집에 있는 스포드 사의 스태포드 플라워 티포트. 영국 길거리에서 흔히 보는 캄파뉼라campanula를 담고 있다.
▲ 찻자리 매너 귀띔 - 찻상에서 다소 떨어져 앉았을 경우, 찻잔만 덜렁 들어올려서는 안 되고 반드시 받침을 같이 들어야 한다.
▲ 그릇 좋아하는 이는 풋맨들이 들고 오는 저 다구들에 눈이 갈 것이고, 애서가나 장서 수집가들은 책장에 꽂힌 책에 눈이 갈 것이고.
▲ 위로 길죽한 형태로 보아 커피 포트인 모양. 티포트는 좀 더 납작하고 옆으로 퍼진 형태를 하고 있다. 아침이라 커피를 마시나보다.
▲ 꼬장꼬장하지만 속정 깊고 충직한 집사.
▲ 참, 이 드라마 때문에 중국에 버틀러 학교가 다 생겼다는 사실.
☞ International Butler Academy in Chengdu, China
▲ 듬직한 가장 그랜썸 백작. 어깨가 무겁다.
▲ 결혼 기념일을 맞은 마나님.
▲ 남자들 차림새를 눈여겨보자. 만찬에는 항상 보우 타이에 디너 수트. 심지어 풋맨들도.
▲ 마나님, 왜 이러셔용, 이거 드시고 고정하셔용.
▲ 소스 보트
▲ 매기 스미스 할머니는 늘 홍차
▲은제 다구
▲ 서민들 다구도 만만찮아. 맛이 깊고 진하고 묵직한 저 영국의 파운드 케이크.
▲ 스타프들도 꼬박꼬박 티타임.
귀족들은 죄 실버 티포트를 쓰고, 서민들은 죄 도자기 티포트를 쓰고 있으니 보기 안쓰러운가? 차 맛은 도자기 티포트가 더 잘 낸다는 사실. 서민들이 귀족들보다 더 맛있게 차를 마시고 있었을지 모른다. 차는 금속 티포트에 우리면 맛없어진다는 사실을 상기하고 현명한 우리 차동무들은 행여 고가의 실버 티포트나 커피 포트를 탐내며 껄떡대는 일 없도록 하자. ㅋ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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