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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연 있는 사물

[채리티숍만세] 실버 플레이티드 커틀러리

단 단 2015. 2. 5. 01:00

 

 

 


단단은 영국 은도금 커틀러리cutlery를 많이 갖고 있습니다. 그냥 많이도 아니고 정말 많이 갖고 있습니다. 채리티 숍에 가면 이런 것들이 그냥 널브러져 있어요. 식사용 날붙이 24개가 우리돈 만원도 안 하길래 또 집어왔습니다.

 

참고로, 요즘은 '커틀러리' 하면 식사 때 쓰는 포크, 나이프, 스푼 모두를 뜻하지만 원래는 나이프만 뜻하던 단어였습니다. 미국인들은 '플랫웨어flatware'라고도 부릅니다. 식사용 날붙이류는 커틀러리라 부르고, 그릇류는 '크로커리crockery'라고 부릅니다.

 

옛 시절엔 밖에서 무언가를 사 먹거나 얻어 먹으려면 자기 나이프를 자기가 따로 가지고 다니며 써야 했습니다. 

 

 

 

 

 

 

 

 

 


어디 보자, 24개가 맞나...

 

 

 

 

 

 

 

 

 

스푼들만 따로 모아 봅니다. 왼쪽부터 수프 스푼, 테이블 스푼, 디저트 스푼입니다. 저 동그란 수프 스푼은 1900년경에 등장했습니다. 그 전까지는 테이블 스푼으로 수프를 떠먹었습니다. 수프 스푼이 등장하고 나서 테이블 스푼은 서빙 스푼으로 용도가 차츰 변했는데, 옛날 테이블 스푼은 사진에 있는 테이블 스푼보다 훨씬 컸기 때문에 서빙 스푼으로도 손색이 없습니다.

 

영국 테이블 스푼은 한국 숟가락보다 커서 양이 더 많이 담깁니다. 베이킹이나 요리할 때 영국 1큰술table spoon을 15ml로 잡는데, 궁금해서 물을 담아 보니 정말로 15ml가 담깁니다. 한국에서 가지고 온 숟가락은 삽이 얕고 크기가 작아 15ml를 다 못 담고 흘립니다. 

 

그래서 우리 한국 숟가락은 동그란 삽 부분을 입 속에 완전히 다 넣었다 빼도 입이나 입술이 아프지가 않은데, 영국 스푼은 삽이 더 움푹 패이고 크기가 커서 입에 넣기가 벅찹니다. 영국 스푼 몇 번 입에 넣었다 빼고 나면 저처럼 입 작은 사람은 배트맨의 조커 입술이 됩니다. 아파요. 이에 막 부딪히기도 하고요. 포크나 스푼이 이에 부딪히는 소리를 내는 건 식탁 예절에 어긋나는 행동이니 조심해야 합니다.

 

스푼이 입에 넣기가 벅차다는 건 이들은 스푼을 우리처럼 입 속에 다 넣지 않는다는 뜻이지요. 영국과 한국은 스푼 쓰는 법이 서로 다릅니다. 여기서는 테이블 스푼이나 수프 스푼을 한국인들 밥 먹을 때처럼 입 속에 삽 앞머리부터 완전히 꽂았다가 쭉 빨면서 빼질 않습니다. 

국물 이토록 좋아하는 나라가 숟가락 형태는 글러먹어

 

수프 스푼으로 수프를 먹을 때는 스푼 옆구리에 입술을 대고 스푼을 기울여 내용물을 입 속으로 흘려 넣어야 합니다. 예전에 한번 귀띔해 드린 적 있죠? 식힌다고 음식물을 후후 불거나 후루룩 소리 내며 먹어서도 안 되고요. 뜨거운 국물 음식을 먹으면 자기도 모르게 이런 후루룩 소리를 내게 되므로 영국인들은 너무 뜨거운 국물 음식은 잘 먹지 않습니다. 한국 식탁 예절과 마찬가지로 영국 식탁 예절도 꽤 엄격합니다. 영국 식탁 예절은 제가 따로 글을 써서 설명해 드리겠습니다.

☞ 영국인들이 생각하는 기품 있는 사람의 특징

 

 

 

 

 

 

 

 

 

이건 생선용 포크와 나이프입니다. 테이블 포크나 나이프보다 크기가 작고 좀 더 장식적이죠. 빅토리아 시대 때 대유행을 했다가 지금은 거의 자취를 감췄습니다. 요즘은 그냥 테이블 포크와 나이프로 고기, 생선, 채소를 다 아우릅니다.

 

피쉬 포크는 테이블 포크보다 창tine이 더 촘촘하게 붙어 있는데, 저렇게 하면 가시를 고르는 데 좀 더 편하다고 합니다. 피쉬 나이프는 그 형태가 생선을 뼈에서 발라내기에 적합했다 하고요. 테이블 나이프와 다르게 생겼죠?

 

고기나 채소를 썰던 테이블 나이프와 달리 피쉬 나이프는 생선 뼈에서 살을 발라 내고 살을 결대로 '톡' 떼어 내기 위해 고안된 것입니다. 피쉬 나이프로는 '톱질'을 하지 않습니다. 요즘 영국의 수퍼마켓들은 생선 손질을 하도 잘해서 포장해 내놓기 때문에 여염집에서 뼈 있는 생선을 사다 조리할 일이 매우 드뭅니다. 포fillet가 잘 떠져 포장돼 있어요. 그래서 살을 발라 내기 위한 이런 생선용 포크와 나이프가 굳이 따로 필요하지 않게 되었습니다. 

 

참고로, 빅토리아 여왕은 나이프 없이 테이블 포크 두 개를 써서 생선을 발라 먹었다는 기록이 있는데, 왕족이나 '뼈대' 있는 귀족 가문에서는 생선용, 과일용, 디저트용 등 커틀러리를 용도별로 따로 주욱 늘어놓고 쓰는 것을 꺼려했다고 합니다. 졸부들이 돈 자랑하던 데서 온 관습으로 여겼다고 하죠. "나 돈 이만큼 많이 벌었으니 비싼 실버 커틀러리를 용도별로 갖춰 잔뜩 늘어놓고 자랑하고 싶어." 쯤으로 생각을 했다네요. 빅토리안 시대의 귀족들은 오히려 조지안 시대 때부터 가문 대대로 물려 쓰던 잘 만든 실버 커틀러리 몇 가지만 단출하게 올려 놓고 썼다고 합니다. 

 

자, 이제 때 꼬질꼬질한 녀석들을 광내 보겠습니다. 금속 광내기 취미가 있는 다쓰베이더가 수고하겠습니다.

 

 

 

 

 

 

 

 

 

짠~
멀끔해졌죠? 
이 글을 보신 독자분들은 이제 피쉬 포크와 나이프를 알아보실 수 있을 겁니다.  흔히 볼 수 있는 테이블 포크와 피쉬 포크가 마침 나란히 있으니 비교해 보세요.

 

 

 

 

 

 

 

 

 

실버 광내기가 사실 그리 힘든 일이 아닌데도 많은 이들이 지레 겁먹거나 귀찮아 합니다. 처음 한 번만 광내고 그 다음부터는 쓰고 나서 물기 잘 닦아 공기 접촉 덜 되게 밀폐용기에 잡아 넣기만 하면 돼요.

 

 

 

 

 

 

 

 

 

참, 손잡이마다 이니셜이 보이죠? 이니셜이 죄 같은 걸 보니 물려받은 후손이 닦기 귀찮아 채리티 숍에 갖다 준 모양입니다. 영국에는 아직도 가족 이니셜 서비스를 해주는 커틀러리 업체들이 있습니다. <다운튼 애비> 보고 눈치 채신 분들 계실지 모르겠는데, 귀족 가문에서는 식기도 문양을 따로 의뢰해 맞춰서 쓰거나 가문 고유의 문장을 전사해 쓰는 일이 많습니다. 헤렌드 아포니도 그래서 탄생한 패턴이라고 하죠.

 

틈날 때마다 집에 갖고 있는 커틀러리들을 하나씩 소개해 드릴게요. 비싼 건 하나도 없고 그저 싼 맛에 재미 삼아 모으고 있습니다. 어떤 건 짝도 안 맞아요.

 

은도금 커틀러리는 요즘 나오는 새 제품으로 맞추려면 돈이 많이 듭니다. 빈티지나 안티크 물건 중에 상태 좋은 걸로 사시는 것이 현명합니다. 값도 싸고 문양도 더 멋있습니다. 만듦새도 요즘 것들보다 더 나은 것들이 많고요.

 

어떤 사람들이 어떤 음식을 먹으며, 어떤 이야기들을 주고 받으며 이 커틀러리를 썼을까, 궁금해지기도 합니다.  

 

 

 

 

 

 

 

 


 런던의 <빅토리아 & 알버트 뮤지엄>이 소장한

실버 피쉬 포크와 나이프. 1899-1900년 홀마크.

 

 

 

 

 

 

 


 실버 피쉬 서버. <빅토리아 & 알버트 뮤지엄> 소장.

1850-1851 홀마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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