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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물 이토록 좋아하는 나라가 숟가락 형태는 글러먹어 본문

투덜이 스머프

국물 이토록 좋아하는 나라가 숟가락 형태는 글러먹어

단 단 2019. 5. 10. 04:54

 

 


베트남 쌀국수 집에 왔더니

 

 

 

 

 

 

 

 

국물 잘 먹으라고 이런 숟가락을 줍니다.

 

 

 

 

 

 

 

 

 

싱가포르식 중식당에 왔더니

국물과 함께 우육면, 단단면 잘 먹으라고

 

 

 

 

 

 

 

 

이런 앙증맞은 아기국자를 줍니다.

 

 

 

 

 

 

 

 

홍콩식 딤섬집에 왔더니

홍콩식 우육면과 단단면,

국물과 함께 맛있게 먹으라고

 

 

 

 

 

 

 

 

이런 큼직한 '느와르' 숟가락을 줍니다.

 

 

 

 

 

 

 

 

중국 란저우식 정통 우육면 집에 왔더니

 

 

 

 

 

 

 

 

이국 향 나는 맛있는 국물 '간지나게' 즐기라고

식기와 깔맞춤한 예쁜 도자기 숟가락을 줍니다.

감동.

 

 

 

 

 

 

 

 

돈코츠 라멘 먹으러 일본 라멘 집에 왔더니

 

 

 

 

 

 

 

 

국물 양껏 떠서 느긋하게 마시라고

정겨운 나무 국자를 줍니다.

 

돈코츠 라멘은 단단의 '컴포트 푸드'인데 이렇게 국자마저도 차갑지 않으면서 가벼우니 손에 한참 들고 있어도 힘들지가 않아요. 모로 보나 컴포트 푸드입니다. 으흠~ 이 진한 국물맛.

 

 

 

 

 

 

 

 

돈부리 집에서는 심지어

 

 

 

 

 

 

 

 

돈부리용 숟가락과

 

 

 

 

 

 

 

 

우동용 숟가락을 구별해서 냅니다.

Retail is detail.

 

 

 

 

 

 

 

 

 

 

한편,

서양인들도 국물음식을 먹는데,

이들은 아예 이렇게 동그랗고 큰 수프 전용 숟가락을 쓰거나,

 

 

 

 

 

 

 

 

이렇게 길죽하면서 깊은 '테이블 스푼'을 씁니다.

우리 숟가락의 두세 배쯤 담깁니다.

 

 

 

 

 

 

 

 

그리고 스푼 전체를 입에 넣는 게 아니라,

스푼 옆구리에 입술을 대고 기울여

음식물을 흘려 넣습니다.

한 술 떠서는 한참 먹을 수 있죠.

 

 

 

 

 

 

 

 

자, 이제 한식당을 봅시다.

 

냉면 먹으러 왔더니 국물 다 흘리면서 먹으라고 작고 얕은 숟가락을 줍니다.

 

"쯧쯔, 이 양반, 뭘 모르네. 냉면육수는 숟가락으로 먹는 게 아니야. 그릇째 들고 마셔야지."

 

저 무겁고 차가운 금속 그릇을 손에 들고 그릇째 마시라고? 나는 기운 없어 그렇게는 못 하것소. 음식 먹는 도중 소스라치게 찬 그릇에 손가락 대고 싶지도 않고. 손에 물기 묻히기도 싫소.

 
각종 매체에서 냉면에 관한 글을 많이 보지만 다들 유래와 계열, 육수, 면, 고명이 어떻고, 접객이 어떻고 하면서 정작 먹는 도구에 대해서는 언급이 없습니다. 인식조차 못 하는 것 같아요.

 

 

 

 

 

 

 

 

설마 이 뜨거운 뚝배기도 손에 들고 마시라는 소리는 하지 않겠지요.

 

국물 있는 국수 먹을 때뿐 아니라 한국에서는 국, 탕, 찌개 먹을 때도 얕은 숟가락을 줍니다. 숟가락 용적이 적으니 한식 숟가락으로 국을 먹을 때는 숟가락질을 훨씬 많이 해야 합니다. 얕아서 흘리기 일쑤라 얼굴을 국그릇에 가깝게 대야 해 자세도 구부정해집니다. 게다가 국그릇에 도로 '퐁당' 흘리기라도 하면 '왕관현상' 일면서 옷에 뻘건 국물, 기름진 국물이 튀기도 합니다. 여간 불편한 게 아녜요. 왜 타국의 합리적인 예들을 일상에서 흔히 보면서도 개선할 생각들을 하지 않는지 모르겠습니다. 얕은 금속 숟가락은 물려줘야 할 아름다운 우리 문화유산이라서?

 
참고로, 성인용 한국 숟가락 표준 크기는 대략 폭 39mm, 길이 55mm, 용적 8.3ml라고 합니다. 서양의 디저트 스푼 용적[10ml]도 안 되는 거죠. 그런데 귀국해서 보니 한식집들 숟가락 크기가 어째 더 작아진 것 같아요. 다쓰베이더도 같은 소리를 합니다. 특히 고급 한식당에서 유기와 함께 내는 놋재질 숟가락들이 정말 작고 얕던데, 비싼 기물이라서 혹시 없어져도 손실이 너무 크지 않도록 꾀를 내다 보니 작아진 걸까요? (다소 허술한 설계와 결론의 재미있는 논문 한 편 소개 ☞ 숟가락 크기의 감소가 여대생의 식사 속도, 음식 섭취량과 포만도에 미치는 영향)


이게 국을 먹기 위한 게 아니라 밥을 먹기 위한 숟가락으로, 입 안에 숟가락째 밥을 완전히 들여넣었다가 숟가락 표면을 쭉 빨면서 빼기 위한 디자인이죠. (남의 입 속을 수십 번 들락날락했던 숟가락, 살균은 제대로 하는지 모르겠습니다.) 비빔밥이나 '꽁보리밥' 같은 흩어지는 밥 먹을 때나 도움이 될까, 찰기 있는 쌀밥 먹을 때는 사실 필요가 없어요. 숟가락 앞뒤 표면에 찐득한 밥풀 잔상이나 남죠. 차진 밥은 오히려 젓가락으로 떼어 먹는 게 깔끔합니다. (한국 젓가락에는 아무 불만 없습니다.)


요약하자면,

국물 먹기에도 적합치 않고 차진 밥 먹기에도 그리 효율적이지 못한 숟가락을 왜 우리는 지금까지 고집하는가 하는 겁니다. 저는 그래서 밖에 나가 우리 음식 잘 먹으려고 국물용 숟가락을 가방에 따로 넣어 갖고 다닙니다. 등 구부린 채 숟가락질 많이 하고 싶지 않아요. 흘려서 옷에 국물 튀기고 싶지 않아요. 편하게 국물을 즐기고 싶습니다. 음식점들이 현재 쓰고 있는 숟가락을 바꿀 생각이 없다면 비빔밥이나 덮밥용으로 남겨 두고 저 돈부리-우동집처럼 국물용 숟가락을 별도로 준비했다 내주든지요.

 

 

 

 

 

 

 

런던 <빅토리아 알버트 뮤지엄>이 소장한 고려시대의 우아한 숟가락들. 918-1392년 추정. 오늘날의 컵디저트verrine용 예쁜 스푼 같은 생김새다. 이 시기 한국의 식문화가 어땠는지 단단은 알 수 없으나 얕으면서 작은 숟가락이 매우 오랜 전통이었다는 사실만은 대번 파악할 수 있다. 옛것은 옛것대로 잘 보관해 두고, 불편한 것은 바꾸거나 고쳐 써도 되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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