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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영박물관 관람 전략 두 가지를 짜보았습니다 The British Museum 본문

영국 여행

대영박물관 관람 전략 두 가지를 짜보았습니다 The British Museum

단 단 2015. 4. 27. 00:00

 

 

 

 

 아웃도어 입은 동양인이 왜 이리 많아

 

 

 

다쓰 부처가 큰맘 먹고 런던에 가서는 체스터필드 호텔 아프터눈 티만 즐기고, 백화점 다섯 곳만 들르고, 치즈 가게 한 곳만 들르고, 캐임브리지 사첼 가방 집 들러 가방끈만 줄이고, 피쉬 앤 칩스 두 끼만 먹고 쓩 돌아왔을 리 만무하죠. 짬을 내서 대영박물관에도 갔습니다. 꼼꼼히 보려면 며칠을 들여야 할 텐데, 이 날은 시간이 없으니 빠른 속도로 대충 훑어보고 다음 번 관람 전략을 짜보았습니다.

 

 

 

 

 

 

 

 

 

한 바퀴 대충 돌고 나니 다음엔 어떻게 감상해야 할지 감이 좀 옵니다. 다리도 쉴겸 박물관 카페에 앉았는데, 어라? 커피 담은 종이컵 좀 보세요. 이즈닉Iznik 문양 아닙니까. 역시 박물관이죠. 별 기대 안 하고 마셨다가 커피 맛이 의외로 훌륭해 깜짝 놀랐습니다.

 

 

 

 

 

 

 

 


대각선 맞은 편에 앉은 분은 이집트 문양 컵에 커피를 마시고 계셨습니다. 무언가를 열심히 적어가며 공부를 하시더라고요. 사람 얼굴 함부로 찍어 올리면 안 되지만, 연세가 많으신 것 같은데도 현장을 찾아 공부하는 모습이 하도 인상적이어서 올려 봅니다. 본받고 싶은 모습입니다. 아마도 은퇴한 학자인데 책을 쓰려고 준비 중이거나 작가일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듭니다. 요즘은 작가들도 소설 하나 쓰려면 조사를 많이 하잖아요.


대영박물관이 너무 방대해 무얼 어떻게 봐야 할지 몰라 재미없다는 한국 여행객들이 많아 제가 관람 전략을 좀 생각해봤습니다. (박물관 재미없다는 사람들이여, 사람이 만든 갖가지 물건 구경하는 게 재미없다면 인생에서 대체 무엇이 더 재미있단 말이오.)

 

 

 

 

 

 

 

 


관람 전략은 연령대별로 두 가지로 나누어 짜보았습니다. 일단, 고등학생 이상 되는 분들은 기왕 작정하고 박물관 온 거, 좀 학구적으로 접근하면 좋겠다는 생각이 듭니다. 2010년에 대영박물관과 BBC가 합심해 야심찬 일을 하나 해 놓은 게 있습니다. 박물관 소장품 중 100개를 엄선해 시대순으로 엮은 뒤 각각의 물건들을 통해 해당 역사를 풀어가는 작업이었습니다. 간결하게 정리해 책을 내고 BBC 라디오로도 따로 소개를 했었습니다. 같은 내용을 문자로도, 음성으로도 접할 수 있는 거지요. 고등학생 대학생들은 요즘 내신과 '스펙'을 위해서라도 영어 공부, 역사 공부를 많이 해야 하죠. 이 책과 BBC 라디오 방송을 활용해 영어 읽기와 듣기를 동시에 하면서 상식과 세계사까지 습득해 보세요. 이보다 더 좋은 도구는 없을 듯합니다. 책은 돈 주고 사야 하지만 ☞라디오 방송은 공짜로 들을 수 있습니다. 책은 전자책으로도 구매할 수 있습니다. 초판이 5년 전에 나왔기 때문에 이제는 중고책도 많이 돌아다닙니다. 저는 중고책으로 싸게 샀습니다.

 

 

 

 

 

 

 

 


700쪽이 넘는 책이지만 물건 하나당 사진을 포함해 많아봤자 5~6쪽밖에 되지 않으므로 재미 삼아 하루에 한두 개씩 보기 좋아요. 저는 하루 두 번 있는 티타임에 각각 하나씩 읽고 있습니다. 100개니 부담없이 읽어 50일이면 끝낼 수 있어요. 라디오로 먼저 내용을 듣고, 책을 펼쳐서 읽고, 다시 라디오로 마무리를 합니다. 영어권 국가로 유학 가실 분들께 영어 학습법 중 하나로 추천합니다. 강의나 세미나 잘 알아들으려면 이 방법이 많은 도움이 될 겁니다. 세계사와 문화 상식도 늘리고요.

 

 

 

 

 

 

 

 



한국인인 저는 책을 펼쳐서 먼저 우리 한국 물건부터 찾아보았습니다. 통일 신라 시대의 기와입니다. 영국은 남의 나라라서 그런지 확실히 한국 역사를 우리보다 좀 더 객관적으로 봅니다. 통일 신라 시대에 대한 남한 역사가들과 북한 역사가들의 입장을 모두 다루고 있더군요. 중국과 한국의 미감이 어떻게 다른지도 이야기합니다. 유럽보다 금속활자가 훨씬 앞섰다는 이야기도 빼놓지 않고 합니다. 기특합니다. 책에 있는 내용은 BBC 오디오 파일로도 들을 수 있습니다. 한번 들어보세요. ☞ Korean Roof Tile

 

 

 

 

 

 

 

 


야동과 춘화 좋아하는 단단이 그 다음으로 찾아 읽은 건 '워런 컵Warren Cup'. 로마 시대 때 만들어진 은제 컵으로, 동성애 장면을 담고 있습니다. 내용이 적절한가 아닌가를 떠나, 일단 수공예적 관점에서는 굉장히 잘 만든 물건입니다. 컵 안쪽에서 은을 때려서 바깥으로 돌출되게 하는 기법을 썼습니다. 이 시기에 만들어진 은제 컵 중 살아남은 것이 그리 많지가 않은데다 공예가 훌륭해 대영박물관이 이걸 사들이는 데 정말 많은 돈을 썼다고 합니다.


재미있는 것이, 그리스 시대에는 동성애가 자연스러운 것으로 여겨져 만연하기는 하였으나 그림으로 구체적으로 묘사해 남기는 것은 꺼려 성애 장면은 대개 이상적으로 '아름답게' 그려지기 일쑤였다고 합니다. 로마 시대에 와서는 동성애에 차츰 제한을 두기 시작하는데, 희한하게도 일상 용품 등에 기록을 남길 때는 오히려 그리스 시대보다 더 적나라하게 묘사를 했다는군요. 사진에 있는 워런 컵은 로마 시대의 것입니다. 소장자가 그간 여러 차례 매도를 시도했으나 박물관들로부터 번번히 거절을 당하고, 심지어 미국에는 그 내용의 부적절함으로 인해 입국조차 허용되지 못한 적도 있었다고 합니다. 시대가 바뀌고 동성애에 대한 인식이 차츰 달라져 대영박물관이 마침내 이를 사들이게 되었고, 현재는 동성애에 대한 시대별로 다른 사회 인식들을 설명하는 데 중요한 자료로 쓰이고 있습니다. 이야기를 한번 들어보세요.
Warren Cup

 

 

 

 

 

 

 

 


제가 좋아하는 대영박물관 소장품 중 하나인 루이스 체스맨입니다. 볼 때마다 재미있어서 후후 웃게 돼요. 노르웨이에서 12세기에 만들었을 것으로 추정하는 체스 세트입니다. 스코틀랜드의 한 섬에서 발굴되었습니다. 루이스는 발굴지 지명입니다. 표정들이 익살맞죠? 체스는 인도에서 탄생해 중동을 거쳐 유럽까지 오게 되었는데, 인도에서는 코끼리 형상을, 사람 형상을 금하는 이슬람권에서는 추상을, 유럽에 와서는 생생한 사람 형상을 하게 되었다고 합니다. 여성의 활동이 매우 제한적이었던 중동에서는 체스판 위의 왕도 남자 부하들에게만 둘러싸여 있으나, 여왕이 왕의 가장 가까운 조언자 역할을 했던 유럽에 와서는 '퀸'이 체스 말 중 가장 강력한 힘을 지닌 말이 되었습니다. 그밖에, 각 사회의 신분제가 체스 말에서도 고스란히 드러난다는 분석도 곁들입니다.
☞ The Lewis Chessmen

 

 

이 책에 있는 것들 중 일단 세 가지만 간략하게 소개해 봅니다. 이런 식으로 구성되어 있다는 것을 맛보기로 보여드리는 겁니다. 전혀 지루하지 않은 책입니다. 얼마나 재밌는데요. 읽고 나면 몰랐던 사실을 알게 돼 뇌가 다 시원해지고, 어디 가서 나불나불 잘난 척 할 거리가 정말 많이 생깁니다. 한국에서 먼저 이 책과 오디오 파일을 통해 영어 '공부'와 세계사 공부를 틈틈이 하신 뒤 대영박물관에 오시면 아무래도 느낌이 많이 다를 겁니다. 책에서 본 걸 실물로 보면 눈이 번쩍 뜨이고 반갑기 마련이죠. 책에 있는 백 개의 물건들을 집중적으로 찾아서 실물을 감상하시고, 다른 전시품들은 가벼운 마음으로 슬렁슬렁 훑어보시면 좋겠습니다. 요컨대, 선택과 집중을 하시라는 거지요. 전시물이 너무 많아 단 하루 방문으로 모든 걸 다 꼼꼼히 볼 수는 없을 것 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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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 번째 관람 전략은 초등학생들과 중학생들을 위한 건데요, 어린이들한테는 공부고 나발이고 우선 '박물관은 지루하지 않고 재미있는 곳'이라는 인식을 심어주는 게 급선무일 듯합니다. (초등생 남자 아이들은 미라를 보면 신나하더라고요.) 초등생이나 중학생 자녀들과 함께 런던 여행 와서 대영박물관 관람을 하게 되면 이렇게 해보세요. 우선, 망가져도 그리 눈물 나지 않을 싼 똑딱이 사진기를 자녀 손에 쥐어줍니다. 그리고는 용돈 줄 테니 박물관 안을 마음껏 돌아다니며 '네가 보기에 골때리게 재미있는' 물건들을 담아보라고 하세요. 가령, 사람 얼굴을 담은 물건들 중 표정이 특별히 재미있는 것들만 찾아서 담아보거나, 동물이 묘사돼 있는 물건들을 담아보거나, 하는 식으로요. 그리고는 집에 와서 블로그에 사진을 올리고 사진 밑에 캡션을 달게 해보세요. 공부시킬 생각 마시고 재미있게 즐기는 걸 목표로 해주세요. 제가 아래에 몇 가지 예를 보여드리겠습니다. 저는 재미있는 사람 얼굴을 한 물건들을 몇 개 담아보았습니다. 캡션도 달았습니다.

 

 

 

 

 

 

 

 

(부처 오른뺨의 칼자국이 한층 조폭처럼 보이게 함.)

 

 

 

 

 

 

 

 

 

 

 

 

 

 

 

 

 

 

 

 

 

 

 

 

 

 

 

 

 

 

 

 

 

 

 

참, "이름은 '영국박물관The British Museum'인데 왜 영국 물건은 없고 죄 남의 나라 물건들만 있나요?" 궁금해하는 분이 많습니다. 영국 물건이 왜 없어요, 잘 찾아 보세요. 이 박물관은 애초 설립 취지가 외국인에게 영국 물건을 보여주고 자랑하려는 게 아니라, 자국민에게 외국 문물을 소개하고 '세계시민'으로서의 자질을 갖추게 하는 것이었습니다. 한스 슬론 경Sir Hans Sloane으로부터 기증 받은 71,000점의 수집품에서 시작되었지요.

 

역사적으로 중요한 영국 물건들을 보려면 대영박물관뿐 아니라 전국에 흩어져 있는 각 지역 박물관들을 일일이 찾아 다니거나, 어떤 분야의 물건들을 전문적으로 다루는 전문 박물관엘 가거나(전쟁박물관, 교통박물관 등), 런던 타워나 궁전들을 가거나, 지방에 점점이 흩어져 있는 귀족 대저택인 스테이틀리 홈stately home들을 찾아 다녀야 합니다(말하자면, <다운튼 애비> 같은...). 스테이틀리 홈들은 자기 가문의 물품 관리자와 기록 전문가archivist를 따로 두고 있기도 합니다. 귀중한 영국 물건들과 기록들은 만일을 대비해 한 곳에 집중해서 모아 놓질 않습니다.

 

탄생, 결혼, 장례 등의 개인 기록들을 찾아 보려면 과거 오늘날의 동사무소 역할을 했던 각 지역 교회들을 찾아가야 합니다.

 

교회들도 기록과 물건들을 잘 보관하고 있습니다(솔즈버리 커씨드랄의 마그나 카르타 등). 영국에 관한 것을 연구하는 학자나 박사과정 학생들은 수고스러워도 논문을 쓰기 위해 영국 전역을 돌아다니며 자료와 기록을 찾고 조사를 합니다. 때로는 좋은 여행 핑곗거리가 되기도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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