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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쓰 ① 샐리 런 Sally Lunn's, Bath 본문
▲ 잉글랜드 서머셋 Somerset, England.
잉글랜드 남서부에 서머셋이라는 주county가 있습니다. 질 좋은 목초지가 많아 치즈 생산으로 유명합니다. 체다가 바로 이 지역에서 탄생했고 지금도 부지런히 생산되고 있어요. 체다 외에도 영국 치즈의 상당수가 이곳에서 생산됩니다. 서머셋 주에는 또 유명한 관광지인 바쓰Bath라는 도시가 있는데, 로마인들이 쳐들어와 건설한 온천 시설과 (그래서 도시 이름이 바쓰) 조지안 시기에 지어진 건축물, 제인 오스틴과의 연관성 등 여러 이유로 관광객이 많이 찾아 옵니다. 동네가 좀 '포쉬posh'해 부띠끄 숍도 많고 치즈 숍도 많아요. 다쓰 부처는 치즈를 사러 갔다왔습니다.
"뭣? 남들은 비행기삯, 기차삯, 숙소비 마련해 큰맘 먹고 여행 가는 곳을 고작 치즈 사러 갔다고?"
아, 치즈광들한테는 치즈 사러 가는 게 큰 이유가 될 수 있지요. 집에서도 그리멀지 않아요. ㅋ
기차에서 내리자마자 곧바로 점심을 먹으러 <샐리 런>이라는 식당에 갔습니다. 바쓰에서 꽤 유명한 집이라 관광객이 많이 찾아 옵니다. 다쓰 부처는 줄 서서 밥 먹는 걸 싫어하므로 줄이 길면 다른 곳에서 먹어야겠다 생각하고 갔는데, 가자마자 바로 자리를 안내 받을 수 있었습니다. 12시부터 붐빈다고 하니 12시 전에 가셔서 이른 점심이나 간식을 드세요.
건물 자체는 1482년에 지어졌고 가게 문은 샐리 런이라는 여인이 1680년에 처음 열었나 봅니다. 알다시피 프랑스가 신교도를 박해하던 시절에 위그노Huguenot들이 신교 국가인 영국으로 많이 이주해 왔지요. 금은 세공장이, 실크 장인 등 쟁쟁한 기술자들이 많이 건너와 영국이 쾌재를 불렀습니다. 위그노였던 샐리 런은 영국에 와서 빵집을 열었네요.
"우리 이러이러한 언론에 소개됐었어요."
사람 사는 곳은 다 똑같구만요. ㅋ
그래도 한국 맛집들의 방송 기념 간판들보다는 덜 요란한 것 같죠?
나름 '컬러 스킴'도 있고.
이 집은 저 둥근 빵 하나로 유명합니다. 모든 음식을 저 빵과 함께 냅니다. 저 빵 하나로 300년 넘게 장사를 해 온 셈인데, 재미있는 가게죠. 고기, 생선, 채소 등을 빵 위에 올려서 내든, 빵 옆에 곁들여 내든, 짭짤하게 조리한 재료를 얹어 식사로 내든, 크림과 잼, 단 소스 등을 발라서 간식으로 내든, 무조건 저 빵과 함께 냅니다.
식당이 아늑하긴 한데 너무 좁아요. 밀려드는 손님들을 마냥 기다리게 할 수 없으니 좁은 곳에 식탁을 정말 다닥다닥 놓아서 밥 먹다가 옆 식탁 사람들과 정이 다 들 지경입니다. 오백년이 넘은 건물이라 그야말로 사방이 삐그덕삐그덕 합니다. 저희는 2층으로 자리를 받았는데, 손님들과 종업원들이 이동할 때마다 바닥이 흔들흔들, 바닥이 흔들리니 식탁도 흔들흔들. 나름 재미로 여길 수 있겠습니다. 편히 앉아서 느긋하게 음식 먹을 공간은 아니고요. 저희는 운좋게 오자마자 자리를 안내 받았지만 저희가 앉고 몇 분 안 돼 자리가 꽉 찼고 밖에 줄이 길게 늘어섰습니다.
사람이 꽉 차 식당 전경은 도저히 찍을 수가 없어 천장만 한 장. ㅋ
식사를 할 목적으로 왔으니 샐리 런 번 위에 짭짤한 걸 얹어 먹기로 했습니다. 그래서 차는 훈제 홍차인 랍상 수숑lapsang souchong으로 시켰습니다. 모닥불을 마신다고 생각하시면 됩니다. 고기 요리나 훈제 음식에 잘 어울리는 홍차입니다. 이 집은 티백을 안 쓰고 제대로 된 산차loose leaf tea를 씁니다. 차 종류도 많이 갖추고 있네요. 그런데 랍상 수숑에서 뜬금없이 민트 맛이 나서 다쓰 부처 둘 다 고개를 갸우뚱. 원래 이 집이 특이한 랍상 수숑 잎을 납품 받아 그런 건지, 손님이 많아 정신이 없어 민트 티 담아 냈던 찻주전자를 제대로 안 씻어 민트 맛이 나는 건지, 아직까지도 의문입니다. ㅋ 차 맛은 괜찮았습니다.
음식이 나왔습니다.
크아, 번 크기 좀 보세요. CD보다도 큽니다.
다쓰베이더가 시킨 오픈 클럽 샌드위치.
닭가슴살과 영국식 백back 베이컨을 얹었습니다. 옛날 방문기를 보면 고기를 수북이 올렸던데, 요즘은 이렇게 샐러드 잎만 잔뜩 올려 고기를 아끼는 모양입니다. 맛은 그냥 평범하네요. 번 위에 올린 재료들에 기름기나 물기가 없으니 번도 금방 말라 음식이 전반적으로 건조합니다. 그냥 찬 샌드위치 먹는 기분입니다. 번만 따로 떼어 맛을 보니 브리오슈와 비슷한데, 옛 시절에도 이 샐리 런 번이 이렇게 가벼웠는지는 모르겠으나, 묵직한 빵을 먹던 영국인들에게 이런 가벼운 빵은 새로운 것이었겠지요. 빵이 식사의 중요한 요소였던 시절이라 영국에서는 무게를 속인 가벼운 빵은 엄벌의 대상이었습니다. 브리오슈풍의 이 밀도 낮고 가벼운 번을 영국에 와서 팔려다 보니 대신 번 크기를 키운 게 아닌가 싶고요. 지름은 커도 '공갈빵'이라 먹고 나서 속이 좀 헛헛했습니다. 점심 식사로 삼기엔 좀 가볍고, 그냥 간단한 스낵 정도로 여기면 좋을 듯합니다.
제가 시킨 웰쉬 래어빗 스페샬Welsh Rarebit Special.
영국의 전통 음식입니다. 오, 이게 아주 맛있네요. 체다, 달걀 노른자, 에일로 만든 영국식 치즈 소스를 번에 발라 구운 뒤 버터에 볶은 버섯과 영국식 훈제 백베이컨을 올렸습니다. 번 위에 따뜻한 재료들이 올라오니 확실히 번에 들었던 버터 풍미가 확 살아서 맛있어요. 옆에 있는 갈색 잼은 영국식 어니언 처트니chutney입니다. 향신료를 넣어 맛낸 양파잼이라고 생각하시면 됩니다. 영국인들이 기름진 고기나 치즈 요리 먹을 때 흔히 곁들이는 겁니다. 새콤달콤 쨍한 맛이 나서 느끼한 음식에 잘 어울려요. 음식마다 곁들인 저 잎 샐러드는 있으나마나 합니다. 한국에서도 이런 의미 없는 싱거운 잎 샐러드를 양식당에서 많이들 내고 있죠? 보기에만 그럴 듯하고 맛은 하나도 없어요. 종잇장 씹는 것 같고요. 상추 계열 잎보다는 로켓(루꼴라)이나 워터크레스(물냉이) 같은 개성 있고 맛있는 잎으로 내면 좋았으련만. 웰쉬 래어빗은 제가 조만간 만드는 방법을 소개해 드리겠습니다.
관광지 유명 식당치고는 값이 그리 비싸지 않습니다. 과연 줄 서서 먹을 만큼 방문 가치가 있는 식당이냐 물으신다면, 으음... 글쎄요. 줄 서서 먹을 정도까지는 아니고 줄이 없으면 들어가서 가볍게 먹고 나올 만은 합니다. 무얼 시켜 먹느냐에 따라 만족도가 많이 달라질 듯합니다. 혼자 가서 만일 다쓰베이더가 시켰던 오픈 클럽 샌드위치를 시켜 먹었다면 '뭐야, 유명세에 비해 별볼일 없잖아.' 할 게 분명합니다. 제가 먹었던 웰쉬 래어빗 스페샬을 먹었다면 '양은 많진 않지만 괜찮네.' 할 테고요. 그래도 영국음식 특유의 푸짐함이 없으니 좀 아쉬워요. 번 위에 올라오는 소들이 옛날보다 양이 정말 많이 줄었습니다. 옛날 방문기들을 보니 베이컨이나 버섯 등을 탄성이 나올 정도로 수북이 올렸더라고요. 스테이크가 올라간 번을 시키지 않는 한, 먹고 흡족할 정도로 배가 부르지는 않겠습니다.
최종 판단은 유보하렵니다. 궁금한 분들은 한번 가보세요. 누리터를 죽 돌며 방문기를 살폈더니 맛있었다는 사람, 별로였다는 사람, 골고루 존재합니다. 분위기는 나름 독특합니다. 샐리 런 누리집을 걸어 드릴 테니 바쓰 관광하실 분들은 어떤 집인가 미리 한번 살펴보세요. ☞ Sally Lunn's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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