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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쓰 ③ 바쓰, 거대한 조지안 테마 파크 본문
▲ 바쓰 - 잉글랜드 서머셋 주county에 위치한 온천 도시
▲ 바쓰 조감도 (위키피디아 사진)
바쓰 여행기 아직 안 끝났습니다. ㅋ 바쓰 한 번 갔다 온 걸로 게시물이 자그마치 열 여섯 개가 나오게 생겼어요. 치즈 시식기가 많이 포함돼서 그렇지요.
바쓰는 그 이름만 듣고도 누구든 온천 도시라는 걸 대번 알아차릴 수 있지요. 영국에서 유일하게 수온 40˚C가 넘는 제대로 된 온천수가 솟는 곳입니다. 저 따뜻한 남쪽에서 올라온 '목욕민족' 로마인들이 영국에서 용케 뜨거운 물 나오는 터를 찾아 기원후 60년경에 거대한 온천 시설을 건설했습니다. (로마인들이 오기 전부터 이곳의 온천수에 대한 기록이 있긴 합니다.) 알프스 이북에 존재하는 고대 로마 유적지 중에서는 바쓰의 이 로만 바쓰 시설이 수작으로 꼽힙니다.
제가 영국 와서 신기하다고 생각했던 것 중 하나 - 여기 사람들은 로마의 지배를 받았던 과거를 자랑스러워 합니다. 400여 년 동안 거대한 로마 제국의 일부가 되어 문명국으로 변모해간 것을 뿌듯해하죠. "미개했던 우리 섬 촌놈들이 로마의 지배를 받아 많이 세련돼졌지." 아, 이렇게 생각들을 하더라고요. 남의 나라 괴롭히며 식민통치 했던 책임을 회피하려고 "우리가 너희를 근대화해줬어." 우기는 나라는 봤어도 자기들이 식민지배 받은 걸 긍정적으로 평가하고 연구하는 나라는 처음 봅니다. 먼 옛날의 일인데다, 현재의 잉글랜드 사람들은 대개 로마인들이 물러간 다음 덴마크, 네덜란드, 독일 쪽에서 건너온 앵글로-색슨의 후예들이니 로마에 악감정을 가질 이유가 없어 웃으며 이런 소리를 할 수 있나 봅니다. 브리튼 섬의 천연자원을 많이 수탈해 가긴 했으나 반대로 제도, 교육, 건축기술, 문화, 먹거리 등 로마인들이 브리튼 섬에 가져다 준 것들도 많으니 아주 틀린 말은 아닙니다. 영국은 여기저기서 침략을 받아 피가 많이 섞인 나라입니다. 영국 북쪽 사람들 중에는 "나, 용맹한 바이킹의 후손이야! 움화화" 너스레 떠는 사람이 많아요. ㅋ
유네스코 세계 유산
바쓰는 도시 전체가 유네스코 세계 유산으로 지정되었습니다. 유럽에서는 이태리 베니스와 영국의 바쓰만이 도시 전체가 세계 유산으로 지정되었다고 하죠. 중세에는 양모 산업으로 번성했는데, 영국에서 양모 산업이 융성했던 곳은 돈이 많이 모여 대개 부촌이었습니다. 조지안 시대, 특히 조지 1, 2, 3세 때는 다시 온천 도시가 되고 문학과 예술의 도시로 탈바꿈을 하게 됩니다. 오늘날 바쓰에서 볼 수 있는 유명한 조지안 건축물들은 존 우드(John Wood 1704-1754), 레이프 알렌(Ralph Allen 1693-1764), 리차드 보 내쉬(Richard "Beau" Nash 1674-1761), 이 3인방의 작품입니다.
바쓰 스톤
잘 계획되고 정비된 탓에 도시 전체가 거대한 테마 파크 같은 통일감이 느껴집니다. 조지안 양식의 건물들이 많아요. 바쓰 부근에서 나는 따뜻한 노란 빛깔의 석회석으로 건물들을 지어 분위기가 독특합니다. 런던만 해도 여러 시기에 지어진 건축물들이 뒤섞여 건축 양식, 벽돌·석재의 재질 및 색상 등이 다양한 편인데, 바쓰는 '바쓰 스톤'이라 불리는 돌로 특정 시기에 집중적으로 건물을 지어 통일감이 있습니다. 새로 짓는 건물도 옛 건물들과의 조화를 생각해 바쓰 스톤을 써서 지어야만 하는지, 최근에 새로 조성된 상점가의 새 건물들이 바쓰 스톤으로 지어져 있어 신기했습니다. 저 옛날 로마인들이 지은 로만 바쓰도 바쓰 스톤, 조지안 시대에 지어진 조지안 양식의 건축물들도 바쓰 스톤, 빅토리안 시대에 재정비된 고딕 양식의 바쓰 애비도 바쓰 스톤, 현대에 지은 상점가 건물들도 바쓰 스톤. 수세기에 걸쳐 통일성을 유지하고 있는 거지요. 대단한 사람들입니다.
바쓰 스톤은 가공하기 쉬운 '착한' 돌로 정평이 나 있습니다. 어느 한쪽으로만 결이 나 있질 않아 어느 방향에서든 돌을 켜는 것이 가능하고, 돌을 쌓는 방향에도 제약을 받지 않아 자유롭게 사용할 수가 있다고 하죠. 바쓰를 방문하시면 건물에 쓰인 돌들을 유심히 보시고 손으로도 한번 만져보세요. 대리석이나 화강암처럼 차갑지가 않고 따뜻하면서 마치 바싹 마른 빵 만지는 것 같은 질감과 벨벳 같은 질감이 동시에 납니다. 바쓰에 가면 건물을 쓰다듬어 본다 - 기억하셨다가 꼭 실천하시길 바랍니다.
아래에 바쓰 관광 홍보 영상을 걸어드릴 테니 도시 분위기가 어떤지 한번 감상해 보세요. 메모리 카드 용량이 적어 제가 이날 사진을 많이 못 찍었습니다. 바쓰 갔다 와서 대용량으로 하나 장만했으니 다음부터는 많이 찍을 수 있겠습니다. 영상에는 대신 조감도가 많이 나오므로 여행자 사진이 줄 수 없는 멋진 각도의 경관들을 볼 수 있습니다. 화면 오른쪽 아래의 톱니바퀴 모양 표식을 눌러 화질을 720HD 이상으로 해서 보시면 좋습니다.
아래서부터는 제가 찍은 사진들입니다.
바쓰 가는 기차 안입니다. 비전문가들을 위해 교양서 차원으로 나온 간략한 <영국 건축의 역사> 책입니다. 저는 창밖 사진 찍느라 정신이 없어 다쓰베이더가 대신 읽고 이런저런 설명을 해주었습니다.
도착했습니다. 역 이름 좀 보세요. ㅋㅋ
저 버스가 돌아다니는 걸 보니 관광지 맞구만요. 이날 날씨가 참 좋았습니다. 영국에 살고 있어서 좋은 점 하나를 꼽자면, 주간 날씨를 미리 살펴서 날씨 좋은 날을 골라 즉흥 여행 하는 게 가능하다는 거지요.
기차에서 내리자마자 샐리 런으로 달려갔습니다. 12시 이전에 가야 줄 안 서고 먹을 수 있어요.
점심 먹고 나서는 ☞ 바쓰 애비를 방문했습니다.
바쓰 애비 앞 거리의 악사들. '항hang' 연주자들입니다. 생기기는 꼭 태곳적 악기처럼 생겼는데 2000년에 스위스의 어느 악기 회사가 개발한 새 악기입니다. 인간이란 참으로 놀라운 존재이지요. 어떤 악기든 개발이 되자마자 금세 잘 다루는 연주자가 생깁니다. 인간의 손으로 할 수 있는 수많은 경이로운 일들 중 저는 악기 연주를 최고봉으로 꼽습니다. 항 소리를 한번 들어보세요. 스틸팬(스틸 드럼)보다 좀 더 명상적이고 신비로운 소리가 납니다. 음계별로 저도 몇 개 갖고 싶네요.
소리 참 좋죠? 뒤로 갈수록 복잡하고 정교한 음악들이 나오니 틀어 놓고 딴 일 하셔도 되겠습니다.
바쓰 애비 옆 상점.
진열장에 티포트가 빼곡했습니다.
일상용품 모양을 한 이런 재미있는 티포트들을 '노벨티 티포트novelty teapot'라고 부릅니다. 실제로 사용하기보다는 장식으로들 쓰는데, 티룸에 가면 많이 볼 수 있어요.
아가AGA 오븐 위 깨알 같은 베이킹 현장. ㅋ
영국에서는 중산층의 척도 중 하나로 이 아가 오븐을 꼽습니다. 오븐 자체의 값도 비싸고 유지비도 많이 들거든요.
이건 바쓰 길드홀 마켓 안에서 본 노벨티 티포트들.
여기도 아가 오븐이 보이네요.
부자 동네여서 빈티지·안티크 숍이 많습니다. 일일이 다 들어가서 구경했어요. 이 집에서 창이 뾰족하고 잘생긴 은도금 포크 여섯 개를 샀습니다. 나이프도 세트로 같이 사면 좋았을 텐데 포크만 있어서 아쉬웠습니다. 스파게티 돌돌 말아 먹을 때 소개해드리겠습니다.
바쓰의 유명한 건축물 중 하나인 '써커스The Circus'입니다. 이렇게 활처럼 휜 긴 건물 세 개가 모여 제가 서 있는 곳의 녹지대를 중심으로 원을 이루고 있습니다. 그래서 이름이 써커스입니다. 1754년에 시작해 1768년에 완공된 건물입니다. 지금도 주거 공간으로 쓰입니다.
바쓰의 또다른 유명 건축물인 '로얄 크레센트Royal Crescent'입니다. 이걸 찍기 위해 사람들이 언덕길을 쉬엄쉬엄 올라옵니다. 저희도 아이고 아이고 하며 올라왔어요. ㅋ 건물이 너무 길어서 사진 안에 다 못 담겼는데, 실제로 보면 탄성이 절로 나옵니다. 제가 이 게시물 도입 부분에 올린 항공사진을 보세요. 거기 초승달crescent처럼 생긴 건물이 바로 이 건물입니다. 이곳도 현재 사람들이 거주하는 주거 공간입니다. 1774년에 지어졌습니다. 저는 이곳 건물들을 보고 좀 의아했던 게, 한국에는 아파트가 30년만 돼도 낡았다고 재건축 위원회가 들어서잖아요? 이 건물은 240년이 넘었어요. 제가 현재 살고 있는 빌라flat도 30년이 넘었습니다. 그런데도 건물 외관과 속 모두 깨끗하고 튼튼하고 방음이 잘 돼 있어 조용합니다. 우리도 건물 지을 때 좀 멀리 내다보고 예술적으로 잘 지으면 얼마나 좋을까요? 유럽 여행 많이들 가는데, 그게 다 자연 보려고 가는 게 아니라 건물 보려고 가는 거잖아요?
로얄 크레센트 입주민들만 이용할 수 있는 전용 잔디밭이 건물 앞에 넓게 펼쳐져 있습니다. 그 뒤로는 누구든 이용할 수 있는 공용 잔디밭이 더 넓게 조성돼 있고요. 다음 방문 때는 먹을 것 바리바리 싸들고 와서 피크닉을 하기로 했습니다. 바쓰 방문하실 분들은 음식 싸갖고 여기 오셔서 세상을 내려다보며 점심을 즐기셔도 좋을 듯합니다. 명당이라 탁 트이고 전망이 아주 좋아요. 햇빛도 잘 듭니다. 로얄 크레센트 집값이 어마어마할 것 같죠.
로얄 크레센트의 어느 집 창에 둘러진 장미 넝쿨.
연분홍 장미를 보니 왠지 제인 오스틴 소설의 하늘하늘 흰 옷 입은 뽀얀 살결의 여주인공들이 떠오르기도 하고요.
기차역으로 돌아가는 길에 찍은 어느 골목.
역시 바쓰 스톤으로 지어졌습니다.
바쓰가 나오는 영국 영화나 드라마
키이라 나이틀리와 레이프 파인즈 나오는 <공작부인The Duchess>이라는 영국영화 보신 분 계세요? 다이애나 비의 스펜서Spencer 가문 선조였던 조재이너가 당대 세도가였던 데본셔 공작에게 시집 와 마음 고생하면서 뒤로는 그레이 백작과 불꽃 같은 사랑을 나누는 이야기입니다. (네에, '얼 그레이' 할 때의 그 그레이 백작이요.) 권력가, 정치가, 세도가들이 바쓰에 모여 노는 장면이 나옵니다. 거주지로 삼기보다는 휴양지 삼아 놀러오던 곳이 이 바쓰였다고 하죠. 제인 오스틴(1775-1817)은 바쓰에서도 한참을 살았지만 놀러와서 흥청대는 상류층의 모습에 신물이 났는지 바쓰를 별로 좋아하지 않았고 이곳에서는 창작을 거의 하지 않았다고 합니다. 그래도 제인 오스틴 시절의 인간 군상을 이 바쓰처럼 잘 보여주는 곳은 또 없을 거라고 저는 생각합니다. (바쓰가 배경으로 나오는 문학작품이나 영화, 드라마를 또 아시는 분들은 댓글로 귀띔해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화사한 곳으로 기억에 남는 바쓰
바쓰는 햇빛 좋을 때마다 반복해서 방문하고 싶은 도시입니다. 동네 전체가 노오란 돌로 지어져서 그런지 분위기가 화사하고 따뜻합니다. 부자 동네라서 작지만 고급스러운 부띠크 숍들이 많은데, 영국 하이스트리트 어디서나 보이는 연쇄점들보다는 누구든 이런 예쁘게 꾸며진 독립적인 가게들 보는 걸 더 좋아하지요. 갤러리와 디자이너 숍, 고급 인테리어 숍들이 특히 많아서 눈이 즐거웠습니다. 무엇보다, 한 동네에 치즈 전문 가게가 이렇게 많은 곳도 또 없을 듯합니다. 바쓰의 치즈 가게에 관해서는 다음의 글들을 보시면 되겠습니다. 바쓰는 조만간 다시 방문 할 예정입니다. 2차 방문기도 올리겠습니다.
☞ 니블스 치즈
☞ 파인 치즈 컴퍼니
☞ 팍스톤 & 위트필드
참, 바쓰에서 요즘도 온천을 즐길 수 있다는 사실 아세요? 로만 바쓰 유적지가 하도 유명하다 보니 사람들이 바쓰에서 실제로 온천욕 할 수 있다는 사실은 잘 모릅니다. 성인 한 명의 두 시간 입욕 비용이 주중 32파운드, 주말 35파운드. 나쁘지 않죠? 시설이 아주 잘 돼 있다고 합니다. 관심 있는 분들은 멋진 수영복 챙겨 가셔서 (홀딱 벗으면 안 됩니다!) 바쓰에서 온천도 한번 즐겨보세요. 저는 그 돈으로 치즈나 더... 쿨럭;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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