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loudspotter

[영국음식] 구즈베리 풀 Gooseberry Fool 본문

영국음식

[영국음식] 구즈베리 풀 Gooseberry Fool

단 단 2015. 7. 15. 00:00

 

 

 

 조리용 구즈베리cooking gooseberries.

 

 

 

영국인들이 끔찍히도 아끼는 구즈베리가 제철을 맞았습니다. 지금이야 파인애플, 망고, 천도복숭아nectarine 등 외국에서 들여오는 손쉽게 먹을 수 있는 맛난 과일들이 많지만, 이런 것들이 없던 옛 시절엔 이 구즈베리가 딸기와 함께 여름철 영국인들의 사랑을 듬뿍 받았다고 하죠. 자타가 공인하는 가장 영국적인 과일 - 바로 이 구즈베리입니다. 영국의 기후는 딸기, 라즈베리, 블랙베리, 레드커런트, 블랙커런트, 구즈베리 등 베리류에 적합해 길을 가다가도 길가에 무심히 나 있는 이런 열매들을 많이 볼 수 있습니다. 그래서 영국 디저트나 음식에는 이를 활용한 것들이 많아요. 햇빛 쨍한 남유럽은 레몬과 오렌지 같은 감귤류로 은총을 입고, 서늘하고 '촉촉한' 북유럽은 또 베리류로 복을 받고 있으니 나름 공평합니다. 여름이 너무 더워 남유럽에서는 이 구즈베리가 잘 안 됩니다. 프랑스도 영국과 가까운 저 북쪽의 노르망디나 브르타뉴에서나 구즈베리 맛이 제대로 나지 이하 남쪽에서는 제 맛이 안 난다고 하죠. 그래서 프랑스인들은 영국인들만큼 구즈베리에 열광적이지가 않고, 존재 자체를 잘 모르는 사람도 많아요.

 

유럽에서는 원래부터 산지였던 영국과, 뒤늦게 재배하게 된 독일이 특히 이 구즈베리에 애정을 보입니다. 영국에서는 야생이었던 구즈베리를 13세기부터 사람들이 집에 심어 키우기 시작했다는 기록이 있고, 18세기 후반부터는 아마추어 구즈베리 클럽과 학회가 우후죽순 생겨 더 크고 맛있는 구즈베리 생산 경연 대회를 다 열 정도로 구즈베리 열기가 대단했다고 합니다. 이를 통해 다양한 품종이 개발될 수 있었는데, 이들 클럽 중 아직까지 살아남아 활동하는 곳이 아홉 개나 됩니다. 진화론자 찰스 다윈은 집에 54종의 구즈베리를 심고 즐겼다는 기록이 전해집니다.

 

 

 

 

 

 

 



생긴 게 꼭 청포도에 줄무늬를 낸 것 같죠? 맛도 비슷합니다. 구즈베리 쪽이 신맛이 훨씬 강하긴 하지만요. 아주 신 청포도 맛에, 군고구마 맛, 패션 프루트 맛을 합친 듯한 복잡한 맛이 납니다. 녹색과 붉은색, 두 가지로 수퍼마켓들이 내고 있는데, 붉은색은 시긴 해도 단맛이 많아 그냥 먹을 수가 있지만 녹색 구즈베리는 너무 시어 설탕을 넣고 익혀 먹어야 합니다. 익히면 환상적인 맛이 납니다. 녹색은 그래서 조리용으로만 씁니다. 콤포트compote나 잼을 잔뜩 만들어 두고 여기저기 활용할 수 있어요. 처트니chutney나 피클로 만들어 고등어 구이에도 곁들입니다. 구즈베리의 짜릿한 신맛이 기름진 생선이나 고기에 아주 잘 어울립니다.

 

 

 

 

 

 

 


디저트 구즈베리dessert gooseberries.

 

 

 

 

 

 

 



콤포트를 먼저 만들겠습니다. 깨끗이 씻은 뒤 양 끝을 칼로 칩니다. 익으면서 속살이 비져나와 뭉개지면서 퍼집니다. 형태가 좀 더 살아 있는 콤포트로 만들려면 저렇게 속살이 드러나도록 양 끝을 쳐내선 안 되고 가위로 튀어나온 꼭지들만 바짝 잘라 내야 합니다. 익히는 시간도 반으로 줄여야 하고요.

 

 

 

 

 

 

 


디저트용 레드 구즈베리와 
조리용 그린 구즈베리로 만든 콤포트.

그린 구즈베리 쪽이 좀 더 새콤하고 짜릿하다.

 



구즈베리 콤포트


 구즈베리 450g

설탕 수북이 뜬 3~4큰술[1큰술=15ml]

물 1-2큰술


냄비에 다 넣고 10여 분간 중약불에서 뚜껑 살짝 덮어 얌전히 보글보글 끓인다. 끝.


엥? 이렇게 쉽다고?

네, 이렇게 쉬워요.

 

불에 올려서 10분이 아니라 끓기 시작한 시점부터 10분 정도가 걸리는 겁니다. 뜨거울 때 열탕 살균한 병에 담아 바로 뚜껑 덮어 보관하시면 됩니다. 식으면서 진공이 돼 뚜껑 가운데가 쏘옥 들어가야만 제대로 병입이 된 겁니다. 집에 있던 연갈색 설탕을 써서 색이 좀 어둡게 나왔는데, 흰설탕을 쓰면 이보다는 좀 더 색이 밝게 나올 겁니다. 본래 구즈베리 속살 빛깔이 청포도처럼 흐리멍덩하고 부얘서 색이 아주 예쁘게 나오지는 않아요. 물기가 많아 보여도 식으면 굳어서 끈적한 시럽이 되니 염려 마시고 시럽 한 방울도 남기지 말고 모두 병에 담으세요.

 



*   *   *

 



구즈베리 콤포트를 만들었으니 이제 이를 활용한 영국 디저트를 만들어 보겠습니다. 가장 유명한 것으로는 구즈베리 풀이 있습니다. '풀'은 과일 퓨레나 잼, 콤포트 등을 크림과 섞은 것을 말합니다. 신맛 강한 과채와 질 좋은 유제품을 얻을 수 있는 나라이니 가능한 음식입니다. 루바브 풀은 예전에 소개해 드린 적 있죠? 루바브도 구즈베리처럼 단맛보다 신맛이 강한데, 이런 신맛 나는 과채들이 잼이나 콤포트를 만들기에 아주 좋고, 크림과 합쳤을 때 대비를 이루어 훌륭한 디저트를 만들어 냅니다. 구즈베리 풀은 15세기부터 영국인들이 즐겨 온 음식입니다.

 

 

 

 

 

 

 


봄철의 루바브 풀Spring Rhubarb Fool.

 

 

 

 

 

 

 


여름철의 구즈베리 풀Summer Gooseberry Fool.

 

 


구즈베리 풀

 

 구즈베리 콤포트
거품기로 살짝 거품을 내서 부풀린 더블 크림double cream 혹은 거품기로 칠 필요가 없는 엑스트라 띡 더블 크림
엘더플라워 코디알elderflower cordial

 

풀을 만들 때 각 재료의 양은 취향에 맞춰 정하시면 됩니다. 참고로, 저는 1인분을 만들기 위해 크림 60g과 엘더플라워 코디알 1작은술(5ml)을 합쳐 거품기로 가볍게 쳐준 뒤 구즈베리 콤포트를 1큰술 수북이 넣어 먹습니다. 콤포트가 좀 넉넉해야 맛있습니다.

 

구즈베리 풀을 만들 때 영국인들은 신맛이 좀 더 강한 그린 구즈베리 콤포트를 씁니다. 엘더플라워와 향이 비슷하면서, 기름지고 부드러운 크림과 더욱 대비돼 궁합이 좀 더 잘 맞는다고 생각하는 것 같아요. 붉은색 과일 잼이나 콤포트는 구즈베리가 아니어도 이미 많이 존재하고 있기도 하고요. 취향껏 선택하세요. 먹어 보니 둘 다 맛있습니다. 그린 구즈베리를 쓸 경우엔 엘더플라워를 풀 위에 장식으로 얹으셔도 됩니다. 아래 사진에서처럼요.

 

 

 

 

 

 

 


엘더플라워 코디알을 넣고 
엘더플라워로 장식한 구즈베리 풀.

[BBC 사진]

 

 

 

 

 

 

 


저지 품종 소젖으로 만든 엑스트라 띡thick 더블 크림.

 


영국 크림은 다들 질이 좋고 맛있습니다만, 영국에 계신 분들을 위해 (다쓰 부처 개인적 취향에 의해) 특별히 더 맛있는 크림을 추천해 드리자면 'Extra Thick Jersey Double Cream'을 꼽아 드리겠습니다. 같은 크림이라도 웨이트로즈 것 보다는 세인즈버리즈 수퍼마켓의 최고급 제품군인 Taste the Difference가 맛도 질감도 좀 더 낫고요. 최고급 제품이래봤자 284ml 한 통에 1.35파운드밖에 안 합니다. 우리돈 2,400원 정도 하려나요. 맛도 진하고 질감도 관능적이면서 그 느낌이 고급스럽기 짝이 없어요. 'Extra Thick'인데도 칼로리는 일반 더블 크림과 비슷하니 걱정 없이 바꿔 쓸 수 있습니다. 그릇에 덜어 거품 치는 수고를 하지 않아도 돼 편합니다. 아이스크림 대신 구즈베리 풀이나 루바브 풀을 즐겨 보세요. 성분이 훨씬 좋고 맛도 좋은데다 '홈메이드'라 뻐길 수 있으니 집에서 해 드시면 참 좋습니다. 위의 크림은 저지 품종 소의 젖을 짜서 만듭니다. 건지Guernsey 품종 소젖으로 만든 크림도 진하고 맛있으니 다음 번 장보실 때 크림 선반을 한번 유심히 보세요.

 

 

 

 

 

 

 


엘더플라워 코디알.

 


영국에서는 구즈베리로 디저트를 만들 때 거의 항상 엘더플라워 코디알을 같이 씁니다. 구즈베리와 엘더플라워는 영국의 '클래식 콤비' 중 하나이니 서양 디저트나 제과 공부하시는 분들은 기억해 두시면 좋아요. 엘더플라워 꽃이 피는 시기와 그린 구즈베리 제철이 일치하는 데다 맛과 향이 묘하게 닮은 데가 있어 아주 잘 어울립니다. 그린 구즈베리 품종 중에는 구즈베리 자체에 실제로 은은한 엘더플라워 향을 가진 것들도 있고요. 구즈베리 잼이나 콤포트를 만들어 병입한 다음 슬렁슬렁 동네 산책 나가서 엘더플라워 코디알을 몇 병 사다 쟁이면 뭔가 뿌듯하고 행복합니다. 엘더플라워 코디알은 엘더플라워로 맛낸 청syrup으로, 꿈같은 맛과 향이 납니다. 로즈 워터, 오렌지 블로썸 워터와 함께 저의 '3대 낭만 식재료'로 꼽힙니다. 농축돼 있으므로 탄산수로 희석해 음료로 마셔도 좋고요. 구즈베리 풀에 이렇게 엘더플라워 맛과 향을 더해 먹기 때문에 구즈베리로 잼이나 콤포트를 만들 때는 향 내는 다른 재료들은 넣지 말고 설탕과 물만 넣어 최대한 단순 명료한 맛이 나도록 하는 것이 좋습니다.

 

구즈베리 잼 만들기는 이렇게 무척 간단하지만 이것마저도 귀찮은 분들은 수퍼마켓에서 완제품을 사다가 활용하셔도 됩니다. 다음과 같은 형태의 제품들이 나와 있습니다.

 

 

 

 

 

 

 



구즈베리 콤포트.
누리터에서 무작위로 갖다가 올린 사진이니 상표는 개의치 마시고 이런 유형의 제품이 있다는 것만 알아 두세요.

 

 

 

 

 

 

 



구즈베리 프리저브.
이름이 좀 애매하긴 한데, 그냥 잼이라고 보시면 됩니다.

잼, 마말레이드, 젤리, 콤포트 등 장기 보관이 가능하도록 설탕을 넣고 가열한 과일들은 모두 '프리저브'에 속합니다. 시판 구즈베리 프리저브들은 다 좋은데 구즈베리보다 설탕이 더 많이 든 것들이 많아요. 성분표를 잘 보고 고르세요.

 

 

 

 

 

 

 



시판 제품들 중에는 이 제품이 구즈베리 함량이 높으니 참고하시고요.

 

성분: Gooseberries (83%), Sugar, Gelling Agent: Pectin. 끝.


성분이 단순해서 좋죠?

 

 

 

 

 

 

 



구즈베리 치즈.
우리가 아는 그 유제품 치즈가 아니라 과일'묵'이라고 보시면 됩니다. 영국인들은 치즈의 개념을 훨씬 넓게 잡고 씁니다. 이런 과일묵들은 실제로 치즈 먹을 때 곁들여도 아주 좋습니다.

 

 

 

 

 

 

 

 

 

이건 과일 형태가 그대로 살아 있는 통조림입니다. 구즈베리를 물, 설탕과 함께 깡통에 넣고 가열 살균합니다. 우리나라 황도 통조림 같은 제품이죠. 디저트뿐 아니라 제과에도 많이 씁니다. 케이크나 파이 만들 때 쓰면 좋아요. 제철 아닐 때도 구할 수 있으니 편하고 실용적입니다.

 

 

 

 

 

 

 



구즈베리 풀을 집에서 만들기 귀찮은 분들은 수퍼마켓 냉장 코너에서 완제품을 사 드셔도 됩니다만, 제가 여러 수퍼마켓, 여러 브랜드 제품으로, 심지어 상 받은 제품까지 포함해 두루 사 먹어 보니 전부 집에서 만들어 먹는 것만 못합니다. 시판 제품들의 문제점으로 저는 다음의 세 가지를 꼽습니다:


첫째, 인공 향료나 바닐라를 넣어 구즈베리 맛이 가려지고 구즈베리가 선사하는 그 추상 같은 깔끔함과 순수한 맛이 많이 떨어집니다. 어떤 것들은 크림이나 요거트에 증점제로 전분이나 젤라틴, 검 등을 넣기도 하는데, 이러면 맛이 더 많이 가려지고 설상가상 식감까지 텁텁하고 끈적해집니다.


둘째, 크림과 콤포트, 혹은 퓨레가 블렌더로 섞은 듯 너무 잘 섞여 있어 도무지 먹는 재미가 없어요. 마치 물이 되도록 완벽하게 섞은 빙수 떠먹는 것과 같달까요. 집에서 만들어 먹을 땐 불규칙하게 섞어 먹으니 이쪽에선 크림 맛도 났다가, 저쪽에선 콤포트 맛도 났다가, 둘이 합쳐진 맛도 났다가 하는 등 다채로운 미각 체험을 할 수 있는데, 곤죽처럼 섞인 시판 제품들에서는 이런 체험이 원천적으로 불가능합니다.

 

 

 

 

 

 

 

 

 

셋째, 크림의 유지방이 부담스러운 사람들은 크림 대신 (저지방) 요거트를 쓴 '건강' 구즈베리 풀을 사 먹고, 수퍼마켓들도 이런 현대 소비자의 기호에 맞춰 요거트로 만든 구즈베리 풀을 훨씬 더 많이 갖다 놓고 있으나, 제가 요거트로 만든 풀을 먹어 보니 신 구즈베리에 신 요거트라 균형이 맞질 않고 신맛 한쪽으로만 치우칩니다. 본디 정신 버쩍 나는 쨍한 과일과 부드럽게 감싸주는 크림의 대비와 조화가 핵심인 음식인데 신것들만 쓰면 위로는 대체 어디서 얻으란  말인가요.

 

게다가, 디저트 먹으면서까지 건강 염려하고 싶진 않지요. 아직은 젊으니 방종을 부리는 건데, 그보다는 사실, 질 좋은 크림 '펑펑' 나는 낙농 강국에 있을 때 크림을 먹어 둬야지 언제 또 먹겠나 싶어 그렇습니다. 하여간, 여러 이유에서 저는 집에서 만들어 드실 것을 권합니다. 시판 제품들도 어쨌거나 맛은 좋아요. 단지 집에서 만들어 먹는 것만 못하다는 소리죠.

 


영국에 계신 유학생 여러분,
크림 왕국 영국에 계실 동안은 크림 꺼리지 마시고 다양하게 맛보시기를 바랍니다. 풀 뜯어 먹고 사는 소 젖으로 만든 질 좋은 크림은 아무데서나 맛볼 수 있는 게 아녜요. 크림을 소 품종별로 골라 살 수 있는 나라도 그리 흔치 않고요. 구즈베리도 마찬가지입니다. 영국의 기후 풍토가 구즈베리 생장에 최고로 적합하다고 하니 영국에 계실 때 구즈베리 꼭 맛보셔야 합니다. 제철이니 잼이나 콤포트 만들어 이렇게저렇게 활용해 즐겨 보세요. 만들기 쉽고 한번 만들면 오래 저장할 수 있습니다. 하여간, 외국 나와 있을 때 한국에서 못 먹는 음식 많이 먹어 두자고요.

 

 

 

 

 

 

 


개봉 후에는 냉장 보관.

구즈베리 풀에 차가운 콤포트를 올리면 더 맛있다.

 

 

 

댓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