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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국음식] 피쉬 앤드 칩스 잘 먹는 법 How to eat fish and chips 본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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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국음식] 피쉬 앤드 칩스 잘 먹는 법 How to eat fish and chips

단 단 2015. 4. 20. 00:00

 

 

 

 

 

 

한국인들이 영국의 대표 음식으로 알고 있는 피쉬 앤드 칩스. 얼마 전에 썼던 글 ☞ 영국인이 가장 좋아하는 음식 열 가지에서도 소개했듯 이 피쉬 앤드 칩스는 10위를 차지해 겨우 체면을 세웠지요. 저희 동네에 있던 치피(chippy, 피쉬 앤드 칩스 전문점) 두 곳은 장사가 안 돼 모두 문을 닫았습니다. 자주 가서 사 먹어 주지는 않았지만 막상 셔터 내려진 걸 보니 몹시 서운했습니다. 미안하기도 하고요. 동네에 피쉬 앤드 칩스 집 하나 없다니. 전 국민이 예전처럼 목을 매고 먹는 음식은 아니라는 소리입니다. 이제는 오히려 관광객들이 더 많이 찾는 음식이 되었죠. 그래도 아직까지는 다행히 피쉬 앤드 칩스 집이 맥도날드보다는 많습니다. 영국내 맥도날드 매장 수는 2월 집계에 따르면 약 1,200개, 치피는 10,500개.

 

과격한 주장을 하나 해보자면, 저는 영국 정부가 나서서 관광객에게 피쉬 앤드 칩스 파는 것을 금해야 한다고 생각하는 사람입니다. 왜냐? 관광객들은 피쉬 앤드 칩스 먹을 줄을 모릅니다. 이 음식은 관광객을 배려하지 않는 음식입니다. 간을 전혀 안 해서 내거든요. 주방에서 만들어 내긴 하는데 간을 안 해서 내는 특이한 음식입니다. 여기서 나고 자라 수십년간 피쉬 앤드 칩스를 먹어 온 영국인들은 각자 자기 취향에 맞게 간을 해 먹을 줄 알아 맛있게 먹을 수가 있는데, 관광객들은 어떻게 먹는지를 모르니 그냥 내주는 대로 먹지요. 당연합니다. 외국 가서 어떤 음식을 처음 먹는데 "당신이 알아서 간 해서 드슈" 하면 제대로 먹을 수 있는 사람이 몇이나 되겠습니까. 그러니 관광지 치피들은 여느 음식점처럼 주방에서 미리 알맞게 간을 해 손님에게 내는 게 맞다고 봅니다.

 

 

타르타르 소스는 간을 하라고 주는 게 아니다
피쉬 앤드 칩스 글을 쓰기 위해 제가 요 며칠간 영국 관광 와서 피쉬 앤드 칩스 사 먹은 한국 블로거들 글을 주욱 찾아서 읽어 보았습니다. 그런데 간을 해서 먹는 사람이 거의 없습니다. 작은 종지에 찔끔 담아 내준 타르타르 소스로 간을 삼는 건 줄 알고 튀김을 거기에 찍어들 먹고 있더라고요. 그러면서 아무 맛 없이 느끼하기만 하고 간도 하나도 안 돼 있다고 투덜투덜 합니다. 아니? 간이 이미 충분히 다 돼서 나오는 한국 튀김도 초간장에 열심히들 찍어 먹으면서 간도 안 된 영국 튀김은 왜 그냥 먹습니까? 찔끔 담아 준 타르타르 소스 하나로 그 많은 양의 생선튀김과 감자튀김의 간을 삼기엔 양이 턱없이 모자라죠. 타르타르 소스는 간을 하라고 내주는 게 아니라 몰트 비니거malt vinegar의 새콤한 맛과 타르타르 소스의 새콤한 맛을 번갈아 즐기라고 내주는 겁니다. 게다가 타르타르 소스는 원래 피쉬 앤드 칩스의 필수 요소도 아닙니다.

 

 

생선튀김에 소금과 몰트 비니거를 잊지 말고 꼭 치자
여기 사람들은 일단 음식을 받으면 튀김옷의 기름기가 잦아들기 전 아직 윤이 날 때 생선튀김 위에 소금을 골고루, 그리고 구석구석 꼼꼼히 칩니다. 그래야 기껏 친 소금이 잘 붙어 있게 되죠. 수십년간 먹어 왔으니 이들은 생선 크기와 두께에 따른 알맞은 소금 양과 자기 취향에 맞는 소금 양을 알고 있습니다.

 

식탁 위 어딘가에는 소금과 함께 몰트 비니거도 놓여 있을 텐데, 그 몰트 비니거도 같이 쳐야 합니다. 풍미가 독특한 갈색의 영국 식초입니다. 몰트 비니거에는 소금이 일절 들지 않았지만 소금의 짠맛을 증폭시키고 생선의 풍미를 돋우는 역할을 합니다. 그러니 몰트 비니거가 증폭시킬 짠맛까지 감안해서 소금을 뿌려야 하는데, 이게 좀 어려워요. 소금과 몰트 비니거를 치면 맛이 완전히 달라집니다. 정말 맛있어지죠. 느끼하기는커녕 술술 먹힙니다. 제가 이 음식을 통해 얻은 큰 깨달음 하나 - 식초가 튀김에 이렇게 잘 어울리는구나. 그 뒤로는 다른 튀김 먹을 때도 식초를 곁들이게 되었죠. 한국에서도 몰트 비니거를 보게 되기를 바랍니다. 몰트 비니거가 똑 떨어졌을 때는 발사믹 비니거를 쓰셔도 좋습니다. 잘 어울립니다. 집에서 먹을 때 가끔은 몰트 비니거와 발사믹 비니거를 반씩 쳐서 먹기도 합니다.

 


몰트 비니거 치는 법도 사람마다 다 달라
소금을 꼼꼼히 뿌린 뒤 몰트 비니거를 처음부터 생선튀김 전체에 뿌려서 먹는 사람이 있는가 하면, 튀김옷 눅눅해지는 게 싫어 매번 잘라 먹을 때마다 소량씩 새로 뿌리는 사람도 있고, 식초를 튀김옷에 뿌리지 않고 잘라서 드러난 생선살 단면에 '촉!촉!' 뿌리는 사람도 있습니다. 백인백색이죠. 다들 평생을 고집스럽게 지켜오는 자기만의 간 하는 양과 순서가 있기 때문에 현지인을 상대로 장사할 때는 소금과 식초를 주방에서 미리 뿌려 내주면 안 되는 겁니다. 그러다 보니 제대로 간을 할 줄 모르는 애꿎은 관광객들이 피해를 보는 거지요. 제가 그래서 관광객한테는 피쉬 앤드 칩스를 팔지 못 하게 정부가 금해야 한다는 과격한 소리를 하는 겁니다.


포장해 가는 손님들한테는 "소금하고 식초 뿌려 드릴까?" 묻기도 하는데, 사무실이나 집에 소금과 식초가 있으면 거절을 하는 사람도 있습니다. 그렇잖아도 갖고 가는 동안 눅눅해질 튀김이 식초까지 미리 뿌리면 더 눅눅해지니까요.


저는 먹는 사람이 직접 간을 해야 한다는 사실을 잘 알고 있지만 피쉬 앤드 칩스를 많이 사 먹어 보질 않아 습관이 덜 들어 식초 쳐가며 먹는 게 여전히 서툽니다. 소금은 음식을 받자마자 미리 뿌려 둘 수 있지만, 먹느라 정신 팔려 먹을 때마다 계속해서 식초를 쳐야한다는 사실을 자꾸 까먹게 돼요. 주방에서는 절대 간을 해서 내주지 않는다는 사실을 기억하시고 번거롭더라도 반드시 소금과 몰트 비니거를 뿌려서 드셔야 합니다. 먹을 때의 '리추얼'을 즐기는 사람들은 사실 이 과정을 꽤 즐기기도 합니다. 우리가 삼겹살 먹을 때 각자 자기만의 쌈 싸 먹는 순서와 방식이 있고 그 과정을 즐기는 것처럼요.


참, 먹기 전에 생선튀김을 미리 다 썰어 놓으면 안 됩니다. 금방 식고 촉촉했던 생선살에서 수분이 증발해 마릅니다. 맛없어져요. 스테이크처럼 생각하고 먹을 때마다 잘라야 합니다.

 


감자튀김
이제 감자튀김 이야기를 좀 해보겠습니다. 영국에서 감자튀김용으로 가장 많이 쓰이는 품종은 고형분 20~22%의 마리스 파이퍼Maris Piper입니다. 샐러드용으로는 쫀득쫀득한 점질waxy 감자를 쓰고, 튀김용은 포실포실한 분질floury 감자를 씁니다. 전통식은 감자를 맥도날드 것처럼 얇게 썰지 않고 두툼하게 썹니다. 
이들이 감자를 두툼하게 써는 이유는,

 

첫째, 감자맛을 물씬 느끼고 크림처럼 촉촉하고 부드러운 속살의 질감을 만끽하기 위해서입니다. 우리는 감자튀김이 얇고 바삭해야 한다고 여기는데 영국인들이 감자튀김에서 원하는 건 좀 다릅니다. 이걸 이해하셔야 군말 없이 맛있게 먹을 수 있습니다.

 

둘째는, 기름 섭취를 조금이나마 줄이기 위해서입니다. 감자를 잘게 썰수록 감자 한 알의 표면적이 넓어져 기름 섭취가 많아진다고 하죠.

 

 

먹음직스러운 황갈색빛 튀김 너무 좋아하지 마라
영국 감자튀김은 여느 튀김집에서 보는 것과 달리 갈색 기운이 적고 색이 좀 창백한데, 감자튀김에서 갈색 기운이 많이 도는 것은 보기에는 먹음직스러울지 몰라도 감자를 잘못 보관해 냉해를 입어 감자의 당 성분이 활성화했거나(설탕은 쉬 타기 마련), 기름을 너무 오래 써서 색이 진해진 탓이거나, 너무 오래 튀겼거나입니다. 감자는 가늘게 썰거나 오래 튀길수록 발암물질인 아크릴아마이드가 점점 더 많이 생성된다 하니 좀 덜 바삭하더라도 두툼하고 창백한 영국식 감자튀김이 몸에는 그나마 덜 해로운 거지요. 영국 정부에서 아예 국민 건강을 생각해 감자칩과 감자튀김의 아크릴아마이드 허용치를 정해 놓고 있습니다. 

 

가만. 
튀김 먹으면서 건강을 생각해? 

 

워낙 많이들 먹으면 규제해야지요. 이들에게 감자는 우리 쌀밥 같은 존재인 데다 무상의료를 시행하는 곳이니 정부가 국민 식생활에 간섭하는 것은 당연합니다. 설탕세도 다 있는걸요. 깐깐하게 규제해도 비만인 천지인 것 보세요. 말 더럽게 안 듣는 국민이에요.

 

그런데 영국의 미슐랑 3-스타 셰프 헤스톤 블루멘쏠Heston Blumenthal이 '세 번 조리한 감자튀김triple-cooked chips'를 선보인 후 갸스트로펍gastropub들 중 감자튀김을 전통 방식에서 벗어나 세 번 익힌(먼저 끓는 물에 데쳐 표면을 너덜너덜 일으킨 후 두 번 튀김) 극강의 바삭한 것으로 내는 집이 늘었습니다. 전통식이든 헤스톤 식이든 둘 다 장점이 있고 맛있습니다.

 


몰트 비니거냐, 케첩이냐, 커리 소스냐

감자튀김은 그럼 어떻게 먹느냐? 생선튀김과 마찬가지로 몰트 비니거를 쳐서 먹을 수도 있고 다른 소스를 활용할 수도 있습니다. 런더너Londoner들은 케첩을 선호하고 노더너Northerner (잉글랜드 북부 사람)들은 커리 소스를 선호한다고 합니다. 음식에 좀 더 신경을 쓰는 갸스트로펍gastropub이나 레스토랑들은 피쉬 앤드 칩스를 낼 때 케첩을 주방에서 직접 만든 것으로 제공하기도 합니다. 커리 소스는 대개 따로 시켜야 하는데, 감자에 전분이 이미 존재하므로 감자튀김용 커리 소스는 일본이나 한국식 카레처럼 전분이 너무 많고 끈적이면 안 됩니다. 저는 치피에 들어가 식탁 위를 슬쩍 봐서 시판 케첩이 놓여 있으면 커리 소스를 주문합니다. 감자튀김을 커리 소스에 찍어 먹는 것도 아주 맛있습니다. 몰트 비니거를 이용하든, 케첩을 이용하든, 커리 소스를 이용하든, 어쨌거나 감자튀김도 간을 안 해서 내기 때문에 음식을 받으면 생선튀김과 마찬가지로 먼저 소금을 꼼꼼히 쳐야 합니다.

 


피쉬 앤드 칩스 먹는 법 다시 정리 (주인장 너무 친절하다)

 

생선튀김 - 받자마자 소금을 꼼꼼히 친 후 몰트 비니거, 레몬 즙, 타르타르 소스를 번갈아가며 즐겨보세요.


감자튀김 - 받자마자 소금을 꼼꼼히 친 후 몰트 비니거, 케첩, 커리 소스를 번갈아가며 즐기세요. 커리 소스는 별도로 시켜야 할 겁니다. 커리 소스를 생선튀김에 발라 먹는 게 아니라 감자튀김에 곁들이는 겁니다. 영국인들은 여간해서는 섬세한 해산물에 강한 양념의 소스를 곁들이지 않습니다. 


으깬 콩인 머쉬 피즈mushy peas는 피쉬 앤드 칩스의 필수 요소인데 별도로 주문하게 하는 집들이 간혹 있습니다. 튀김용 소스가 아니라 따로 먹는 겁니다. 솜씨 좋은 갸스트로펍이 아니면 십중팔구 머쉬 피즈 맛을 잘 못 내고 있을 테니 시키지 않으셔도 됩니다.

 

그 외 취향에 맞는 영국 맥주를 주문해 곁들이면 됩니다. 맛있게 드세요!

 

 

 

 

 

 

 


☞ 런던 코벤트 가든의 <록캔 쏘울 플레이스>

 

 

 

 

 

 

 


☞ 런던 코벤트 가든의 <제이미 올리버 유니온 잭스>

 

 

 

 

 

 

 


☞ 바닷가에서 먹는 피쉬 앤드 칩스의 맛

- 브라이튼 피어의 <빅 피쉬>

 

 

 

 

 

 

 

 

이건 영국 미슐랑 2-스타 갸스트로펍의 피쉬 앤드 칩스.

음식에 레몬 씨와 과육 떨어지지 말라고 망도 다 씌워 놓았다.

 

 



더 읽을 거리
☞ 영국엔 피쉬 앤드 칩스 맛 과자도 다 있다는 사실
☞ 피쉬 앤드 칩스만 찾지 말고 다른 것도 경험해봅시다 - 영국음식 열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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