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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도네시아 라면 <인도미 Indo Mie> 미고렝 - 식품공학의 개가 본문
▲ 별화음 님이 추천해 주신 인도네시아 라면.
불량소녀 님이 좋아하시는 음식인 '른당' 맛으로 선택.
음식은 몸에 좋거나, 맛이 있거나, 둘 중 어느 하나는 충족을 해 줘야 먹을 수 있지요. 두 요건 모두 충족하면 이상적이긴 하나, 혀끝에 닿자마자 혼을 쏙 빼놓는 '완벽한' 가공식품들이 범람하는 오늘날엔 몸에 좋은 음식들을 맛있다고 느끼기가 점점 더 힘들어집니다. 과일을 예로 들자면, 당도, 산도, 이 둘 사이의 균형, 과육의 치밀한 정도, 즙의 많고 적음, 향기 등, 모든 조건이 자기 입맛에 꼭 맞는 것을 만나기가 쉽지 않습니다. 잘 익혀서 출하해도 맛있을까말까한 것을 익기도 전에 미리 따서 내보내니 맛있을 턱이 없지요. 순둥이 우리 한국인들은 과일이 맛없으면 그런가 보다 하고 그냥 먹지만 코쟁이들은 이럴 경우 레몬즙과 설탕을 넣어서라도 기어이 원하는 당도와 산도를 얻어내고야 맙니다. 지금까지 살면서 저는 맛없는 과일 먹었던 때가 기가 막히게 맛있는 과일 먹었을 때보다 훨씬 많았습니다. 이런 일이 자꾸 반복되면 조린 과일 얹은 제과나 디저트 쪽으로 눈길을 주게 될 수밖에요. (생과일 잘 안 먹으려 드는 사람 보면 '식습관 나쁘다', '초딩 입맛이다' 츳츳거릴 게 아니라 혹시 미식가는 아닌지 의심해 보셔야 합니다.) 과즙맛 곰돌이 젤리 하리보Haribo는 비록 첨가물은 들었을지언정 언제 어디서나 우리에게 한결같은 맛을 선사하고 기쁨을 줍니다. 맛, 향기, 질감, 모양, 색상, 어느 것 하나 나무랄 게 없지요. 식품 전문가들이 오죽 열심히 연구해 세상에 내놓았겠습니까.
유럽연합에서는 식품 첨가물을 'E number'로 표기합니다. 이 성인 남성의 손바닥만 한 라면 하나에는 E number 첨가물이 자그마치 열 한 개나 들었습니다. 른당 맛을 모방하기 위한 연구자들의 눈물겨운 노력이 엿보입니다. 식품 첨가물이 두어 개 들어간 것들은 한낱 평범한 가공식품에 지나지 않지만 열 개가 넘어가면 그때부터는 '예술작품'이 되는 겁니다. 참고로, E number 붙은 첨가물에는 꼭 몸에 나쁜 것만 있는 것은 아닙니다. 구연산이나 비타민에도 E number가 붙습니다. ☞ E number 분류와 목록
성분을 옮겨 적어 보겠습니다:
Noodles: wheat flour (66%), refined palm oil (contains antioxidant E319), salt, acidity regulators (E451, E501, E500), thickener (E412), colour (E101).
Seasoning Powder: salt, sugar, flavour enhancers (E621, E631, E627), artificial beef flavour, garlic powder, yeast extract, colour (E150a), coconut flavour, pepper, grill flavour, clove, star anise.
Seasoning Oil: refined palm oil (contains antioxidant E319), onion, chilli, candlenut (tree nut), garlic, ginger, galangal, turmeric leaves, lemongrass, lime leaves, turmeric, bay leaves, colour (E160c), curry flavour.
Sweet Soy Sauce: sugar, water, salt, wheat, soy bean, spices, sesame oil.
Chilli Powder (0.58%)
열량 367kcal
소금 2g
결국, 생 재료들 사다 오랜 시간 조리해 바로 먹어야 할 음식을 실온에 수개월 상하지 않게 보관했다가 필요한 순간에 물 붓고 가열해 다시 그럴듯한 음식 꼴로 손쉽게 부활을 시키려니 이런 복잡한 E number 잔치를 하는 거지요. 식품공학자들의 노고에 경의를 표합니다. (제 막내 오라버니도 식품공학과 출신입니다. 지금도 가공식품과 식품안전 관련 일을 합니다.) 이런 가공식품이 싫고 식품 첨가물이 싫으면 직장이고 공부고 뭐고 다 때려치고 집에 들어 앉아 채소 다듬고, 서너 시간씩 육수 내고, 반죽 치대어 면 만들고, 생선 살 발라 으깨 양념한 뒤 찌거나 튀겨 어묵 만들고... 음식 만드는 일에 하루를 다 바치면 됩니다.
그래도 이 인도네시아 라면에는 른당에 응당 들어가야 할 천연 향신료와 향채가 거의 다 들어가 있는걸요? 라면 한 봉지에 소금양이 2g이면 한국 라면들의 반도 안 되는 수준인데 체감 염도는 훨씬 짠 것처럼 느껴집니다. 이게 다 저 복잡한 향신료와 고소한 기름 덕이지요. 실제로는 그렇게 짜지 않은데 충분히 짠 것처럼 느껴지게 하는 것도 실력입니다. 영양학자들이 권하는 저염식 실천 방법 세 가지 다시 정리해 드립니다.
소금을 적게 쓰는 대신
1. 향신료를 써서 음식에 생기를 부여하거나,
2. 기름을 넉넉히 써서 고소하게 하거나,
3. 신맛을 가미하라.
이렇게 하면 혀가 속아 소금을 적게 쓰고도 충분히 짠맛을 느끼며 맛있게 먹을 수 있습니다. 음식에 레몬즙을 뿌리고 나면 신기하게도 소금 친 것처럼 짠맛이 확 증폭되죠. 그래서 제이미 올리버가 열심히 레몬즙을 쓰나 봅니다.
이 인도네시아 라면은 40펜스 주고 사 왔습니다. 영국인들 체감 물가로는 약 400원 정도 됩니다. (영국 1파운드를 우리돈 1천원으로 환산하면 체감 물가가 얼추 맞습니다.) 단돈 400원에 이런 맛있는 음식을 즐길 수 있다니요. 매콤하고, 짜릿하고, 활기차면서, 동남아시아 음식 특유의 그 다층적인 풍미가 납니다. 혀에 오만 가지 맛이 지나갑니다. 온갖 른당 향신료와 E number 첨가물들이 어우러져 만들어 내는 맛의 향연에 정신이 버쩍. 먹고 나서 서너 시간 동안 마치 카페인 잔뜩 복용한 사람처럼 정신 차리고 일했습니다. 가성비 아주 좋은, 잘 만든 가공식품입니다. 한국 라면은 양이 많아 면만 건져 먹어도 한 개를 다 못 먹고 남기는데 이 라면은 저한테 양이 딱 맞습니다. 양념도 맛있고 이에 씹히는 면발 감촉도 참 좋습니다. 충분히 쫄깃하면서도 부들부들 온화해 우리나라 라면들보다는 이를 좀 덜 튕겨 냅니다. 저는 이게 더 좋은걸요? 동남아시아 싼 라면들치고 면발 좋은 걸 만나기가 쉽지 않은데 이 라면은 면발이 훌륭합니다.
인도미 미고렝 제품군은 른당뿐 아니라 사테이satay, 쁘다스pedas, 기본 볶음면fried 등 골고루 맛봤습니다. 다쓰 부처 입맛에는 른당 맛이 가장 '익죠틱exotic'하고 맛있었습니다. 사테이 맛도 괜찮습니다. 른당보다 향신료 맛은 덜 나나 어쨌거나 충분히 이국적입니다. 좀 더 달착지근합니다. 기본 볶음면은 향신료가 너무 안 들고 익숙한 맛이 나서 감흥이 좀 떨어지긴 합니다만, 대신 달걀 프라이 부쳐 얹어 먹으면 궁합이 잘 맞고 아주 맛있습니다. 향신료 때문에 동남아시아 음식 잘 못 드시는 분들께 좋겠습니다. 쁘다스도 향신료 맛이 거의 안 나면서 매콤해 한국인들 입맛에 잘 맞겠습니다. 'Artificial beef flavour'가 든 것들은 먹고 나서 입 안에 쇠고기 다시다풍 우마미가 좀 오래 남습니다.
인스탄트 라면은 잘 안 먹지만 싱가포르 <프리마 테이스트> 락사 라면과 이 인도네시아 <인도미> 미고렝 라면은 정신 건강을 위해 가끔씩 먹어 주기로 하였습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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